고스트 듀엣
김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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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 옹호라는 시적 사명을 올곧이 수행하며 자신만의 시 세계를 밀어붙였다”(신동엽문학상) “풍부한 인간의 삶과 감정과 이야기가 있고 사회적인 자의식이 독특한 방식으로 표명돼 있다”(김준성문학상)고 평가받은 김현 시인의 첫 소설집이다.


시인은 한국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소수자의 서정을 애특하게 그려왔으며 인권 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고 한다. 세월호에서 돌아오지 못한 304인을 기억하는 '304 낭독회' 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으며 이태원 참사 추모 문학제에서 사회를 맡기도 했다. 사회 문제에 순순히 눈감지 않고 잊지 않기 위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동시에 오래도록 지치지 않고 참여하는 작가들이 나는 존경스럽다. 자신의 목소리를 작품 속에 제대로 담아내는 것도 어렵지만 직접 사회적 활동으로 실천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후에 나는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을 향해 거세게 달려드는 비난과 혐오를 보면서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세월호로부터 십 여년이 지났음에도 변하지 않고 더욱 커져버린 혐오의 덩어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 그들은 왜, 어떤 이유로 그런 식으로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일까.

며칠 전 영상 하나를 보았다. 영상 속에서 혐오로 무장한 누군가가 이태원 희생자 유가족들 앞에서 '이태원 참사는 북한 소행'이라는 발언을 하고 있었다. 이에 유가족이 울면서 다가오자 그 누군가는 '북한 소행이 맞으니까 저러는 것'이라는 식으로 말하면서 '가장 아픈 곳을 찌르는 방법을 알았다'며 유가족을 비웃었다.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를 향한 비웃음소리가 악몽처럼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누군가에게 사람이라는 존재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그들에게 애도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죽음을 비웃는 소리라니...

시인 김현은 그런 현장을 오래도록 지켜왔을 것이다. 잊지 않고, 기억으로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은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의미가 있다.


2009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시 「블로우잡Blow Job」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김준성문학상,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글로리홀』, 『입술을 열면』, 『호시절』 등, 산문집으로 『걱정 말고 다녀와』, 『아무튼 스웨터』, 『질문 있습니다』, 『당신의 슬픔을 훔칠게요』, 『어른이라는 뜻밖의 일』, 『당신의 자리는 비워 둘게요』 등이 있고, 앤솔러지 소설집 『새벽의 방문자들』, 『인생은 언제나 무너지기 일보 직전』 등에 참여했다. 2012년 짧은 영화 [영화적인 삶 1/2]를 연출했다. 2021년 『낮의 해변에서 혼자』 시집을 냈다.사

출처 : 예스24 작가파일


작년에도 그랬지만 올해도 여러 죽음이 들려왔다. 수많은 희생자를 내는 죽음에는 비극적인 사건이 존재한다.

《고스트 듀엣》은 삶에 죽음이 들어와 있는 시대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담겨 있다. 그의 소설에서 죽음의 삶의 반대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후에 남겨진 사람들은 이전과는 다른 삶이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먼저 떠난 사람을 기억한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기록한다. 그들에게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은 분리되어 있지 않기에 작가는 초자연적 현상과 SF적 소재를 매개로 산 자와 죽은 자를 만나게 하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려고 한다.

맑은 술이 담긴 잔이 돌고 돌고 노래할 사람은 노래하고 춤출 사람은 춤추고 갈 사람은 가지 않고 이승에 미련이 없는, 가야 할 귀신이 가고 싶지 않아 해서 산 사람들이 어르고 달래 저승문 앞까지 배웅했다.

수월水月/ 고스트 듀엣/ 김현

소설집의 가장 처음에 실린 <수월>은 평온한 죽음을 맞이했던 엄마가 찾아와서 보름달이 뜨는 밤마다 딸과 딸의 친구와 그 옆의 친구와 함께 놀다 가는 이야기로 소설의 마지막 구절은 작가가 시인이라는 사실이 실감나는 장면이 있다. 표제작이기도 한 <고스트 듀엣>에 나오는 "마음을 다해 잊고자 하는 얼굴이 아니라 마음을 다해 기억하고자 하는 그 얼굴을."이라는 구절에서 작품을 쓰는 작가의 다정하고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리고 '웃자고 하는 말에 죽자고 달려든다'고 말하며 농담을 이해하지 못하는 꽉 막힌 사람처럼 상대를 평가하는 말이 있는데, 나는 그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에게는 농담일 수 있지만 상대에게는 상처일 수 있는 말이기 때문. <유미의 기분>에 내가 품고 있었던 마음을 대변해주는 문장이 나온다. "아, 그건, 다 같이 웃자고 한 얘기지." "저는 안 웃었는데요." 모두가 불편하지 않도록 웃어주면, 그 다음에도 변하지 않을 테니까 유미는 끝까지 자신의 기분을 지킨다. 그로 인해 고립되어 가는 상황에 처해지더라도. "저는 기분이 나빴어요." 라는 말을 누구에게나 할 수 있는 유미들이 계속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면 한다.


내가 사라지더라도 간직해줘. 이건 오랫동안 변하지 않으니까. 누구나 간직하진 않지만, 누군가 간직하게 되면 오래 사랑받으니까.

천사는 좋은 날씨와 함께 온다/ 고스트 듀엣/ 김현

사람하는 사람을 잃고 계속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죽음이 삶으로 들어온 시대에 함께 머물러주고 싶은 위로와 다정을 담은 소설집.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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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레시피 - 논리와 감성을 버무린 칼럼 쓰기의 모든 것
최진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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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에 하니포터 6기 서평단 활동을 마치고 무거운 여름을 보낸 뒤 다시 하니포터 7기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한겨레출판에 읽고 싶은 새 책들이 많이 출간되어서 내 욕심대로 신청을 했다가 나중에는 마감 아님 마감에 쫓겼던 적도 있었다. 즐거움으로 시작된 독서가 의무감으로 치닫게 될 위기에 처했던 날들을 무사히 이겨내고 하니포터6기 활동을 잘 마치고, 우수서평자로 뽑혀서 상품권 선물까지 받게 되었을 때 어찌나 뿌듯하던지..!

이제 다시 하니포터7기로 서평단 활동 시작한다. 성긴 독서의 끈을 조이면서 좀더 숨차게 달려가보려 한다.

첫번째로 받은 책은 《칼럼 레시피》

처음에는 여느 글쓰기 책처럼 보편적으로 알려진 내용을 버무린 것이겠지 하면서 무심히 읽기 시작했는데, 읽을수록 저자의 칼럼 쓰는 기법 뿐 아니라 책의 구조를 짜내는 기술에도 빠져들었다. 물론 출판사 편집을 통해서 정리가 되었겠지만 칼럼을 요리 레시피에 빗대어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면서 폭넓은 사례까지 깊은 통찰을 통해 보여주는 글은 진정성있게 다가왔다.

내가 존경하는 정희진 작가님의 추천사가 있다는 점도 독서의 몰입도를 높이는데 도움을 주었다, 는 점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요리는 재료의 변환과 통섭, 도약의 과정이다. 훌륭한 요리사는 예술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글쓰기 레시피의 모범이라 할 만하다. 필자의 유려하고 쉬운 문체와 좋은 사례, 관점이 매력적으로 발효되었기 때문이다. 진부한 주장들 그리고 사유 부재의 '사연 팔이'가 솔직한 글쓰기의 특징으로 오해되는 당대 한국 사회에서, 모처럼 담백하고 정직한 책을 만나 기쁘다.

정희진/ 칼럼레시피 추천사

저자는 오랫동안 칼럼의 매력에 빠져 지내는 글쓰기 전문 강사로 강의 현장에서 경험하고 정립한 글쓰기의 기본기와 고급 기술의 정수를 이 책에 담았다고 한다. 그런만큼 실제적으로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사고와 사유의 깊이를 돋아볼 수 있는 내용으로 알찬 책이다. 요리에 빗대자면 유튜브 숏츠로 간략하게 보이는 레시피가 아니라 재료 선정과 손질 방식, 조리 과정을 지나 플레이팅에 이르기는 모든 것을 차근차근 보여주는 내공 깊은 셰프의 레시피라고 할까.

칼럼이라는 글의 장르는 어쩐지 진입 장벽이 높게 여겨져서 나는 그동안 한번도 도전해볼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장르를 쉽게 보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내게 모든 글쓰기는 왜 이토록 어렵고 막다른 골목에서 헤매고 있다는 기분만 느끼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서평을 쓸 때도 한번도 입구를 찾지 못하고 엄청나게 헤맨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내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사안의 돌기를 짚어 내고 나름의 의견을 제기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칼럼을 잘 쓸 수 있어요." 라고.

인터넷과 SNS에서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이슈가 터지고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서도 쉽기기 어려움 돌기들이 솟아있는데 그런 돌기들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쓰고 싶은 마음만 있다면 방법를 익혀서 누구나 칼럼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경험만으로 요리를 하지 않습니다. 조리를 해보지 않았기에 라면을 끓이고 배달 음식을 시키는 게 더 마음이 편할 뿐이에요. 칼럼 역시 경험으로만 쓰지 않습니다. 사안의 돌기를 발견하고 불편람을 넘어 분노가 끓어도 막상 글로 표현하려니 두려워 뒷걸음질할 뿐이죠. 레시피가 주어지면 누구나 요리를 할 수 있듯이 방법을 알면 누구나 칼럼을 쓸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쓰고자 하는 마음이니까요.

칼럼 레시피

초보자들도 큰 부담없이 쓸 수 있는 1단계 레시피는 '이야기서술+의미부여'로 시작한다. 2단계는 '개인 경험을 사회 문제로 확장하기', 3단계는 "주제를 정해 주장하기'이다. 레시피를 따라하듯 직접 쓰면서 "체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모두 11장으로 구성된 레시피에는 좋은 글감을 찾는 법, 칼럼 여정 그리기, 흡입력 있은 첫 문단 쓰는 법, 전개 방식, 글의 격을 높이는 고급 기법들, 글력 향상을 위한 필수 루틴 등등으로 초보자가 백지에 첫글자를 쓸 수 있도록 세심하게 손을 잡아준다.

책의 내용을 요약해서 이 지면에 소개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 같으니 직접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자주 꺼내 읽으면서 글감을 찾고 문장을 쓰고 구조를 다듬고 마무리를 하는 것까지 꾸준한 매일의 훈련이 필요할 것 같기 때문이다. 곁에 두고 반복해서 따라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체화된 칼럼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오랫동안 글쓰기를 놓아버렸던 나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면서, 내 앞에 놓인 백지가 체화된 글로 채워지기를 바라면서 첫 문장의 획을 그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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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의 음악 - 날마다 춤추는 한반도 날씨 이야기
이우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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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폭우가 쏟아졌다. 창문을 살짝 열었더니 강한 바람과 들이치면서 전원이 꺼져 있던 선풍기 날개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태풍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강한 바람이었다. 요사이 비가 참 자주 내린다. 장마철이기 때문에 언제라도 비가 내릴 수 있지만 패턴이 다른 것 같다. 며칠 동안 무더운 열대야가 이어지다가 갑자기 국지성 호우가 쏟아지고 있다. '장마'는 '여름철 가장 많은 비가 내리는 기간'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기후 패턴이 바테뀌면서 장마가 아닌 기간에도 폭우나 오래 비가 내리는 날들이 생기고 있다.

장맛비는 대양의 수증기가 계절풍을 타고 아시아 대륙의 열기를 찾아가는 대규모 지구촌 행사다. 여름이 되면 태양의 남중고도가 높아지고 열의 적도는 북반구로 옮겨온다. 육지가 많이 몰려 있는 북반구는 바다가 많은 남반구보다 빠르게 달아오른다. 특히 아시아 대륙은 광활한 만큼 다른 지역보다 더욱 빠르게 달아오른다. 더워진 공기는 위로 올라가고 이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주변에서 바람이 모여든다.

날씨의 음악

사람들은 장마가 아니라 아열대성 우기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기상청에서는 우리나라 여름철 강수 패턴을 분석한 결과 아열대화되고 있다는 설명을 내놓기도 했다.

날씨는 우리 생활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 날씨는 확인하는 것은 일상 속 친숙한 습관이 되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인류가 진화해 오는 동안 날씨의 리듬은 우리 몸속에 체화"되어 있을 것이다.

『날씨의 음악』의 저자 이우진은 연세대학교에서 천문기상학을 전공하고 카이스트에서 물리학 석사, 미국 일리노이대학교에서 대기과학 박사학위를 받은 기상학자로 바송을 통해 기상 현상을 해설하기도 하고, 신문이나 잡지에 기상 칼럼을 기고해 왔다고 한다. 이 책은 오랫동안 《한겨레》에 <이우진의 햇빛>이라는 칼럼을 쓰는 도중에 편집자로부터 날씨와 음악을 연결 지어 책을 써보자는 제의를 받고 집필했다고 한다.

'자연이 들려주는 음악'에 귀를 기울인 저자의 글은 부드럽게 잘 읽힌다. 날씨와 음악의 알레고리 가운데 역사적 사건이나 그림도 나오고 일상사와 멋진 풍광과 기후 변화에 대한 걱정도 담겨 있다.

책의 목차를 보면 다른 계절에 비해 여름의 목차가 유독 길다. 작가는 4계절을 4악장에 빗대어 2악장인 여름이 기후 위기로 인해 점점 길어진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자연은 '긴장과 이완, 강약을 조절해가면서 한 편의 완전한 교향악'을 들려주고 있다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전에는 악장마다 연주 시간이 비슷했지만 최근 온난화가 가속화되면서 그 길이도 달라지는 추세다. 봄을 노래하는 1악장은 짧아지고, 대신 2악장의 여름은 점점 길어진다. 악장을 다시 육등분한 절기는 우리 선조들이 살았던 시대의 기후와는 맞아떨어졌을지 모르지만 오늘날에는 조금씩 엇박자를 내고 있다. 기후가 변화한 탓이다. 거기에 날씨까지 춤을 추면서 우리가 체감하는 계절의 시작과 끝도 오락가락한다. 하지만 일 년 전체를 통틀어 보면 자연이 긴장과 이완, 강약을 조절해가면서 한 편의 완전한 교향악을 우리에게 들려주는 걸 알 수 있다.

날씨의 음악

음악의 선율같은 부드럽고 감미로운 글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학자이자 현장 전문가로서 최근 가속화되고 있는 지구 온난화와 토네이도, 태풍, 우박 등의 자연재해가 발생한 지역에 대한 우려에 대한 글도 보인다.

여름철 열돔 현상에 대해서는 냄비에 찬물을 넣고 아래에서 불을 때고 수온이 올라가고 공기의 순환이 막혀서 식지 않는 열기와 열대야로 설명하면서 온난화의 원리와 문제점을 지적한다. 저자에 따르면 그러한 원리로 인해 "기후변화는 단순히 지구 온도를 높이는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지역적으로는 한 곳에 폭염과 가뭄을 주는 동시에 다른 곳에는 홍수를 불러오는 양면성"을 지닌다고 말하고 있다.

감수성이 돋보이는 시적인 문장에 현재 심각한 기후 위기에 대한 경각심도 일깨워주고 있으며 기상학자가 하는 일도 이야기하고 있어서 어렵지 않게 날씨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책이다. 시적 감수성에 전문적인 설명을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오랫동안 그 일에 몰두해온 사람이 가지는 재능일 것이다. 장마, 혹은 우기가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는 요즘 날씨에 어울리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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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나, 마들렌
박서련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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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나는 박서련이라는 이름을 처음 보았다. 아니, 그 전에도 봤을지 모르겠지만 소설을 읽고 이름을 기억하게 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때 작품집에 수록되어 내게 각인된 소설의 제목은 <당신의 엄마가 당신보다 잘 하는 게임>이었는데, 작중 화자가 정말 아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황이 재미있게 맞물려 갔다. 그리고 소설의 결말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주제가 게임 화면 속에 뜨는 글자를 타고 흐를 때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아들이 남에게 뒤쳐져서 무시를 당하거나 자신감이 깎이지 않도록 화자인 엄마는 끊임없이 아들의 모든 것을 체크하고 관리한다. 성적은 기본이고 신체사이즈까지도 관리하는 엄마의 관리는 완벽에 가깝다. 그럼에도 아들은 만족할 수 없다. 하나가 갖춰지면 다른 부분에서 결핍이 나기 마련이니까. 결핍은 경쟁사회에서 뒤처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엄마는 아들이 뒤처져서 자신감을 잃는 것을 두고 볼 수가 없다. 그래서 아들이 잘 하지 못하는 게임을 자신을 먼저 배워서 아들에게 가르쳐주려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한다. 아들이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키우려고 했던 엄마의 노력은 어떤 식으로 보상받는지, 소설의 마지막이 압권이다.

그 다음에 읽은 소설은 『채공녀 강주룡』이었다. 아 이 소설은 처음부터 소름 끼치도록 압권이다. 이 부분은 말로 설명할 수 없으니(그 장면에 대한 묘사를 말로 옮길 만한 능력이 되지 않기 때문..) 꼭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작가의 또 다른 소설 『마르타의 일』은 권여선의 『레몬』과 비슷한 결을 지닌 소설이었는데 다음 포스팅에서 자세히 다뤄보려고 한다.

오늘 소개할 작품은 『나, 나, 마들렌』으로 이 책에는 표제작을 포함해서 작가가 문학잡지와 영화제에 기고했던 소설 일곱 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 중에서 <나, 나, 마들렌>은 지난 겨울에 <창비>에 수록되어 있어서 먼저 읽었었는데, 이번에 다시 보니 또 다른 '나'가 생기는 이유가 다시 눈에 들어오는 것 같았다.

일곱 편의 소설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흥미로운 서사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보다 더욱 흥미로운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 소설들을 읽으면서 나는 다시 한 번 박서련 작가가 한 사람의 소설가가 아니라 작품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등장 인물들, 그러니까 동시에 여러 등장인물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표현을 따르자면, "그녀는 동시에 도처에 공재 가능했다"라고 해야 할까. 그만큼 박서련 작가는 작중 인물 그 자체인 것만 같았다. 나는 그가 소설을 쓸 때 어떤 모습일지 어떤 생각일지 궁금했다. 설마 그의 방에 소설 속으로 들어가는 비밀의 문이 있지는 않겠지, 하면서 슬쩍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까지 생길 정도로.

<오직 운전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에서는 바이러스가 퍼진 세상에서 감염자를 피해 도망다니는 여자가 주인공이다. 처음에는 감염자만 피해다녔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비감염자가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여자는 과연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

<젤로의 변성기>에서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소년 주인공 목소리 때문에 유명해진 50대 여자 성우가 순정만화처럼 생긴 미모의 20대 신인 성우를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평생 어린 소년의 목소리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50대의 몸은 현실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성장은 이어진다.

표제작 <나, 나, 마들렌>은 자고 일어나니 또 다른 '나'가 생겨버린 상황으로 이야기를 열어간다. 일관되지 못한 신념과 흔들리는 신념이 솟아날 때마다 분열하는 또 다른 나의 탄생. 담담하게 그려낸 마지막 장면이 눈으로 본 듯 생생하게 다가온다.

<한나와 클레어>, <세네갈식 부고>, <김수진의 경우>, <마치 당신 같은 신>도 이야기를 읽는 맛이 있는 소설들이다. 재미있는 스토리에 성기지 않은 문제의식까지 담아내고 있다.

이 책에 수록된 소설에는 고정관념과 편견으로 단단하게 다져진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며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외롭고 위태로운지 온몸으로 보여주는 인물들이 나온다. 그들이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분열과 소멸의 과정이 필요할까.

책을 다 읽고 표지 그림을 보니 '나'가 세 명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나'가 생겨날지 알 수는 없는 마들렌의 친구인 감자 친구 '나'.

결국 살아간다는 것은 이런 분열과 소멸을 거치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진심에 닿으려고 할 수록 더욱 빈번하게 나타나는 현상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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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리터러시 - 혐중을 넘어 보편의 중국을 읽는 힘
김유익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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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수교가 30년을 넘은 이 시점에서 상호 우호적인 이상적인 외교의 길이 답답하게 막혀있는 것만 같다. 공동의 이익을 위한 합리적인 방안 대신 감정적인 목소리가 크게 들려오고 강경한 안보의식이 경제의 길을 막아서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수교 이후 최악이라고 할 정도이다.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경색 국면에서 양국 항공사들은 중국과 한국을 수요가 줄어서 노선을 조정하고 있다.

언젠가부터 우리에게 널리 퍼져있는 혐중정서는 중국인들을 자기 우월적이고 맹복적인 애국주의자로 단순화시킨다. 그리고 죽어가는 사람을 도와주지 않거나 도움을 받고 자해공갈을 하는 단편적인 동영상을 반복재생하며 그런 이기적이고 비도덕적인 모습이 마치 모든 중국인의 특성인것처럼 납작하게 해석하여 버린다. 이러한 혐중정서는 우리나라의 안보와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세계는 각자 떨어진 섬이 아니다. 나비효과라는 말이 딱 들어맞도록 사소해보이는 부분이 나중에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물며 우리나라와 가까이 있으면서 오랜 역사 동안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았던 중국은 말할 것도 없다.

김유익

서울에서 태어나 다국적 기업의 금융 IT 컨설턴트로 일하며 서울, 홍콩, 베이징, 도쿄, 싱가포르 등 여러 대도시에서 거주했다. 2012년, 생태 농업 등 지속 가능한 라이프 스타일 활동가로 커리어를 전환해 일본의 자급자족생활센터와 서울의 하자센터에서 일했다.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상하이에서 청년들을 위한 생활 공동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현재는 중국인 아내와 광저우 근교 마을에 살면서 서로 다른 국적, 언어, 문화를 가진 사람과 지역을 연결해 주는 코디네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차이나 리터러시

저자는 광저구 근교에서 사람과 지역을 연결해주는 코디네이터로 활동하면서 생활에 기반을 둔 지식과 문화를 통한 여러 아이디어를 이 책에 담았다. 그는 한국이 가진 특수한 지정한적 위치는 자급자족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기 때문에 여러 문명, 여러 세력과의 교역과 교류를 이어갈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책에 담긴 내용들은 때로는 동의되지 않는 점도 있었고 좀더 자세하게 풀어줬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도 있었다. 저자도 책의 '들어가는 글'에 그러한 점이 염려되었던지 이런 말을 꺼내고 있다.

이 책은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 '생소한 중국, 생생한 중국인 이야기'에서는 송나라가 최고 리즈 시절로 꼽히는 이유와 홍콩과 대만, 중국의 SF에 대해 풀어내고 있다.

2부 '추상적인 거약을 넘어 새로운 보편으로'에서는 하나의 중국이라는 도그마, 중국의 검열과 규제 등 중국 사회의 정책과 한계를 이야기한다.

3부 '도그마 너머의 중국과 한국을 만나다' 편에서는 혐중 정서의 또 다른 원인을 '르상티망'에서 찾는다. 나는 처음 들어보는 용어였는데 르상티망은 숙명적으로 도저히 능가할 수 없는 상대에게 품은 원한을 뜻한다고 한다. 이 장에서는 중국을 플랫폼으로 활용하라고 제시하면서 한국 청년들이 미국이나 서구 사회로 진출하는 것처럼 중국으로 진출해서 자신이 알지 못했던 중국을 찾아내면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4부 '두려움과 부러운 사이에서 발견한 새로움'에서는 지금 중화민족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와 '민족주의' 대신 '지역'과 '사람'을 만나자는 방법을 제시한다.

인터넷에 익숙한 세대에서는 인터넷에서 촉발된 한복이나 김치 논쟁으로 인해 민족주의 감정 충돌이 발원지가 되었다. 저자는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양국 민족주의의 충돌은 파편적이고 선정적이기 때문에 매우 격렬해보이지만 소수의 계층에 불과하여 반한 기류를 형성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문제를 삼고자 하는 내용은 전체 계층으로 확산되어 거의 모든 중국인이 알게 되고 기류를 형성하게 된다. 현재 반중정책을 드러내면서 실행하고 있는 현 정부의 외교가 우려스러울 수밖에 없다.

책 내용 중에 중국 내에서 보도되는 한국 뉴스가 부정적인 면모 일색이었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중국 언론은 K컬처 드라마나 영화에 대해 부정적인 분석도 곁들였다고 한다. 이런 의식은 중국인들이 일본 국가는 싫어하지만 일본 문화를 세련된 것으로 묘사하는 것과 반대이다. 결과적으로 중국 젊은이들은 한국 사회를 자신들에게 소개된 '도가니, 소원, 기생충, 오징어 게임, 더 글로리'의 상황이 실제로 일어나는 사회로 인식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굵직한 외교 문제 뿐 아니라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미디어에서도 이런 왜곡으로 인한 편견이 심해진다면 반한 감정은 점점 갈등의 골이 깊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이든 국가든, 어느 대상을 납작하게 만들어서 해석해버리면 편리하다. 시간을 들여서 노력하지 않고 단정짓고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편견으로 쌓아올린 기준의 잣대로 납작하게 눌러버린 대상과의 관계가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은 어디에도 없다. 중국이 아니더라도 입체적으로 제대로 읽어내는 힘은 필요하다. 저자 본인이 전문가는 아니라도 했지만 이러한 납작 대상화가 가지는 위험성을 일깨우고 입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각성을 일깨운 것만으로도 읽어볼만 한 책이다. 그리고 이번 기회와 중국 SF를 읽어보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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