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작품은 『나, 나, 마들렌』으로 이 책에는 표제작을 포함해서 작가가 문학잡지와 영화제에 기고했던 소설 일곱 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 중에서 <나, 나, 마들렌>은 지난 겨울에 <창비>에 수록되어 있어서 먼저 읽었었는데, 이번에 다시 보니 또 다른 '나'가 생기는 이유가 다시 눈에 들어오는 것 같았다.
일곱 편의 소설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흥미로운 서사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보다 더욱 흥미로운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 소설들을 읽으면서 나는 다시 한 번 박서련 작가가 한 사람의 소설가가 아니라 작품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등장 인물들, 그러니까 동시에 여러 등장인물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표현을 따르자면, "그녀는 동시에 도처에 공재 가능했다"라고 해야 할까. 그만큼 박서련 작가는 작중 인물 그 자체인 것만 같았다. 나는 그가 소설을 쓸 때 어떤 모습일지 어떤 생각일지 궁금했다. 설마 그의 방에 소설 속으로 들어가는 비밀의 문이 있지는 않겠지, 하면서 슬쩍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까지 생길 정도로.
<오직 운전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에서는 바이러스가 퍼진 세상에서 감염자를 피해 도망다니는 여자가 주인공이다. 처음에는 감염자만 피해다녔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비감염자가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여자는 과연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
<젤로의 변성기>에서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소년 주인공 목소리 때문에 유명해진 50대 여자 성우가 순정만화처럼 생긴 미모의 20대 신인 성우를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평생 어린 소년의 목소리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50대의 몸은 현실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성장은 이어진다.
표제작 <나, 나, 마들렌>은 자고 일어나니 또 다른 '나'가 생겨버린 상황으로 이야기를 열어간다. 일관되지 못한 신념과 흔들리는 신념이 솟아날 때마다 분열하는 또 다른 나의 탄생. 담담하게 그려낸 마지막 장면이 눈으로 본 듯 생생하게 다가온다.
<한나와 클레어>, <세네갈식 부고>, <김수진의 경우>, <마치 당신 같은 신>도 이야기를 읽는 맛이 있는 소설들이다. 재미있는 스토리에 성기지 않은 문제의식까지 담아내고 있다.
이 책에 수록된 소설에는 고정관념과 편견으로 단단하게 다져진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며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외롭고 위태로운지 온몸으로 보여주는 인물들이 나온다. 그들이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분열과 소멸의 과정이 필요할까.
책을 다 읽고 표지 그림을 보니 '나'가 세 명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나'가 생겨날지 알 수는 없는 마들렌의 친구인 감자 친구 '나'.
결국 살아간다는 것은 이런 분열과 소멸을 거치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진심에 닿으려고 할 수록 더욱 빈번하게 나타나는 현상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