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나, 마들렌
박서련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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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나는 박서련이라는 이름을 처음 보았다. 아니, 그 전에도 봤을지 모르겠지만 소설을 읽고 이름을 기억하게 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때 작품집에 수록되어 내게 각인된 소설의 제목은 <당신의 엄마가 당신보다 잘 하는 게임>이었는데, 작중 화자가 정말 아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황이 재미있게 맞물려 갔다. 그리고 소설의 결말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주제가 게임 화면 속에 뜨는 글자를 타고 흐를 때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아들이 남에게 뒤쳐져서 무시를 당하거나 자신감이 깎이지 않도록 화자인 엄마는 끊임없이 아들의 모든 것을 체크하고 관리한다. 성적은 기본이고 신체사이즈까지도 관리하는 엄마의 관리는 완벽에 가깝다. 그럼에도 아들은 만족할 수 없다. 하나가 갖춰지면 다른 부분에서 결핍이 나기 마련이니까. 결핍은 경쟁사회에서 뒤처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엄마는 아들이 뒤처져서 자신감을 잃는 것을 두고 볼 수가 없다. 그래서 아들이 잘 하지 못하는 게임을 자신을 먼저 배워서 아들에게 가르쳐주려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한다. 아들이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키우려고 했던 엄마의 노력은 어떤 식으로 보상받는지, 소설의 마지막이 압권이다.

그 다음에 읽은 소설은 『채공녀 강주룡』이었다. 아 이 소설은 처음부터 소름 끼치도록 압권이다. 이 부분은 말로 설명할 수 없으니(그 장면에 대한 묘사를 말로 옮길 만한 능력이 되지 않기 때문..) 꼭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작가의 또 다른 소설 『마르타의 일』은 권여선의 『레몬』과 비슷한 결을 지닌 소설이었는데 다음 포스팅에서 자세히 다뤄보려고 한다.

오늘 소개할 작품은 『나, 나, 마들렌』으로 이 책에는 표제작을 포함해서 작가가 문학잡지와 영화제에 기고했던 소설 일곱 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 중에서 <나, 나, 마들렌>은 지난 겨울에 <창비>에 수록되어 있어서 먼저 읽었었는데, 이번에 다시 보니 또 다른 '나'가 생기는 이유가 다시 눈에 들어오는 것 같았다.

일곱 편의 소설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흥미로운 서사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보다 더욱 흥미로운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 소설들을 읽으면서 나는 다시 한 번 박서련 작가가 한 사람의 소설가가 아니라 작품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등장 인물들, 그러니까 동시에 여러 등장인물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표현을 따르자면, "그녀는 동시에 도처에 공재 가능했다"라고 해야 할까. 그만큼 박서련 작가는 작중 인물 그 자체인 것만 같았다. 나는 그가 소설을 쓸 때 어떤 모습일지 어떤 생각일지 궁금했다. 설마 그의 방에 소설 속으로 들어가는 비밀의 문이 있지는 않겠지, 하면서 슬쩍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까지 생길 정도로.

<오직 운전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에서는 바이러스가 퍼진 세상에서 감염자를 피해 도망다니는 여자가 주인공이다. 처음에는 감염자만 피해다녔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비감염자가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여자는 과연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

<젤로의 변성기>에서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소년 주인공 목소리 때문에 유명해진 50대 여자 성우가 순정만화처럼 생긴 미모의 20대 신인 성우를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평생 어린 소년의 목소리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50대의 몸은 현실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성장은 이어진다.

표제작 <나, 나, 마들렌>은 자고 일어나니 또 다른 '나'가 생겨버린 상황으로 이야기를 열어간다. 일관되지 못한 신념과 흔들리는 신념이 솟아날 때마다 분열하는 또 다른 나의 탄생. 담담하게 그려낸 마지막 장면이 눈으로 본 듯 생생하게 다가온다.

<한나와 클레어>, <세네갈식 부고>, <김수진의 경우>, <마치 당신 같은 신>도 이야기를 읽는 맛이 있는 소설들이다. 재미있는 스토리에 성기지 않은 문제의식까지 담아내고 있다.

이 책에 수록된 소설에는 고정관념과 편견으로 단단하게 다져진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며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외롭고 위태로운지 온몸으로 보여주는 인물들이 나온다. 그들이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분열과 소멸의 과정이 필요할까.

책을 다 읽고 표지 그림을 보니 '나'가 세 명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나'가 생겨날지 알 수는 없는 마들렌의 친구인 감자 친구 '나'.

결국 살아간다는 것은 이런 분열과 소멸을 거치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진심에 닿으려고 할 수록 더욱 빈번하게 나타나는 현상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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