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노피에 매달린 말들 - 톨게이트 투쟁 그 후, 불안정노동의 실제
기선 외 지음, 치명타 그림, 전주희 해제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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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자리에서 밀려나거나 그 불안을 지녀본 사람들이라면, 누가 지금 자리하지 못하고 있는지, 이 자리가 누군가를 밀어내고 마련된 건 아닌지 살피고 감지하게 된다. 누구나 마주보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이들이 춤을 출 때, 서로를 보기 위해 끊임없이 크고 작게 찌그러지고 펴지는 원을 만든다. 누구든 언제든 손잡을 수 있는 거리가, 맞은편에 자리한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큼의 거리가 원의 크기와 개수를 결정했다. 민주주의와 공존의 조건은 이런 것 아니겠는가.

캐노피에 매달린 말들/  p14

 

 2019년 7월, 한국도로공사는 자회사 고용을 거부하는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 1500명을 해고했다. 당시 나는 기존 용역업체 소속이던 노동자에게 자회사 소속은 좋은 기회인데 왜 거부할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지인들과 그런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 대화에 참여했던 나와 지인들은 많은 부분을 언론보도에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구체적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폭력적인 시위 현장과 시민들의 불편에 대해서만, 언론이 던져주는 보도와 기사를 받아먹으며 앵무새처럼 따라하고 있었다. 노동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노력 따위는 하지 않았으며 언론이 보여주는 화면에서의 그들에 대해 오히려 비난조의 말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세상의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마음과 진실과 가까운 곳에 마음을 두고 싶어하는 것은 나이와 그다지 상관이 없는 것 같다. 진실에 닿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며 불편한 진실을 피하지 않을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간명한 답"보다 여러 측면에서 추출할 수 있는 답을 내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간명한 답을 내놓는 것은 노력을 동반하지 않기 때문에 쉽다. 그런 의미에서 불편을 감수하지 않아도 된다. 불편하다는 것은 현재 상황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에, 대체 진실이 무엇이냐고 질문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한마디로 언론이 주는 간명한 답에는 진실이 없었다는 것이다.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 중에서 자회사 전환을 거부해서 해고된 1500명은 도로공사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한국에서 가장 넓은 25차로 톨게이트 지붕(캐노피) 위로 올랐다. 그들은 '정규직'이라는 허울 뿐인 이름 뒤에 넓게 펼쳐져 있는 기만적인 한국 노동정책의 실제를 간파하고 이를 거부했다. 개부분 중장년층 여성인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싸우는 과정을 따라가면 이 노동자들의 현실, 우리나라 노동의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캐노피로 올라가서 직접고용을 외쳤던 노동자들은 결국 98일간의 싸움을 마치고 정규직이 되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정규직이었으니 이제는 모든 것은 해피엔딩일까. 아쉽지만 그런 세상은 쉽게 오지 않으며 노동환경이 열악한 노동자에게는 더욱 쉽지 않다.

정규직이 된 노동자들에게는 본래 맡았던 요금 수납 대신 담배꽁초를 줍거나 풀을 뽑는 일 등이 주어졌다. 다른 직무로의 전환이 아니라 모욕을 주는 것으로 도로공사는 그들에게 보복을 한 것이다.

 2017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 선언 이후, 비정규직의 무기계약직화, 계속되는 간접고용 등 노동의 불안정성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었다. 2019년, 불안정노동 문제 개선과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캐노피로 올라가 투쟁을 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은 열악한 처우와 불안정한 노동환경 속에 있는 다른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이어진다. 2020년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2021년에 국민건강보험공단 콜센터 노동자들의 투쟁으.

 『캐노피에 매달린 말들』은 한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였던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대책’의 경과를 톺아보고 그 실제를 파악하기 위해, 상징적인 투쟁의 주인공들인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구술기록 형태로 묶어낸 기획이다. 톨게이트 노동자이면서 동시에 한부모 가정, 장애여성, 북한이탈주민, 경력단절자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이들은 노동 이전의 삶, 노동 현장의 경험, 투쟁의 순간, 복귀 이후의 일터까지 수십 년에 걸친 노동과 투쟁의 경로를 상세히 쏟아낸다.

 덕분에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없는 비정규직 투쟁의 복잡한 맥락들을 입체적으로 조망해 볼 수 있다. 지금껏 이들의 투쟁은 “로또취업”, “공정공평이 무너진다”라는 왜곡된 ‘공정’, ‘능력주의’ 담론을 앞세운 날 선 비난을 받아왔고, 노동자를 숫자로 셈하고 성과만을 내세우는 정치 진영의 싸움으로 쉽게 오해받았다.

 『캐노피에 매달린 말들』은 언론이 전하는 피상적이고 간명한 보도 너머에 진짜 사람들이, 노동자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톨게이트여성노동자 구술기록팀’은 성, 장애, 이주, 노동권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한 활동가들로 구성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투쟁의 풍경을 선명한 빛깔로 그려낸 치명타 작가의 그림과 한국 노동시장의 맥락에서 구술자의 말들을 정리한 전주희 작가의 해제는 한국의 불안정한 노동의 현황과 캐노피 투쟁이 갖는 의의를 살피는데 큰 도움을 준다.

 이 책을 읽다보면 IMF 이후 국가가 어떻게 체계적이고 합법적으로 불아정노종인구를 양산해 왔는지 돌아보게 되고 노동의 자동화담론에도 질문에 닿게 된다. 그리고 온정주의 통치가 뿌려놓은 정책에 휩쓸려 노동을 바라보는 온정주의 시선에 대해서도.

진실에 닿는 노력은 언제나 힘이 들고 불편하다. 하지만 진실이 바로 보지 않으면 노동의 현실은 암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그것은 불안정 노동을 지속하고 있는 개인적인 상황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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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 뷰티 - 장애, 모성, 아름다움에 관한 또 한 번의 전복
클로이 쿠퍼 존스 지음, 안진이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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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추와 골반을 연결하는 뼈인 천골이 형성되지 않은 ‘천골무형성증’이라는 장애를 지니고 태어난 클로이 쿠퍼 존스는 여성이자 엄마, 철학자..더 나아가 여행자이자 사색가 등 여러 단어로 자신을 설명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애인이라는 단어 속에 클로이의 정체성을 가두려고 한다.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다른 모든 부분을 덮어버릴 정도로 강력해서 자신이 무례를 범하고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이는 클로이가 지나갈 때 자신을 설명해보라는 요구를 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이는 장애가 있는 몸을 신기하게 쳐다보기도 한다. 클로이 쿠퍼 존스는 이 책에서 장애로 인해 겪었던 수많은 차별과 편견, 멸시에 대한 치열한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모든 사유와 통찰은 클로이의 여행과 함께 이루어진다.



여행의 시작은 클로이가 남편과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브루클린에 있는 술집에서부터였다. 그곳에서 함께 박사과정을 이수했던 제이와 콜린이라는 두 남자가 클로이의 삶이 살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두고 논쟁을 벌였다. 그중 콜린은 클로이와 같은 몸이 존재하지 않을 사회를 옹호하면서 우생학이 좋은 학문이었다는 주장까지 펼친다. 그러면서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이를 낳는 것은 폭력이라며 이상적인 사회에서는 장애는 미리 발견되고 낙태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들과 다른 몸으로 살아서 긍정적인 면도 있다는 클로이의 말에도 콜린은 그것은 장애에 대한 대응일 뿐이란고 대꾸한다. 콜린의 말에 따르면 장애는 세상을 살아가기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에 미리 알았다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며 태어나면 불행일 뿐이라는 것이다. 콜린 뿐 아니라 클로이가 가르치는 대학생들도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아이를 낳는 행위는 비윤리적이라고 말했다.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 아이를 낙태시켜야 하는가. 이 주제에 대해서 그렇지 않다, 고 확실하게 말할 자신은 나에게도 없다. 장애에 대한 편견이 없다고 말할 수 없으며 불편한 시선을 돌린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없으므로.

'장애'라는 단어는 내가 나 자신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안 됐지만, 이상하고 혼란스러운 순간들을 해독하는 도구가 되어주긴 했다. 낯선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면서 내가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순간들.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몸과 내 몸을 대비시켰다. 그들은 내 몸에서 없는 것과 부족한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나는 태어날 때부터 내 몸 안에서 살았으므로 뭐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았다. 계단을 오르는 일은 계단을 오르는 일처럼 느껴진다. 걷는 일은 걷는 일처럼 느껴진다.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내 움직임이 이상해 보이고 열등해 보이는 모양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열등감을 느낄 이유가 없었다. 그런 걸 느끼려면 누가 가르쳐줘야만 했는데, 나에게 기꺼이 그걸 가르쳐주려는 사람들은 차고 넘쳤다.

이지 뷰티

브루클린의 술집에서 나온 뒤 클로이는 여행을 하기 시작한다. 로마의 미술관, 밀라노의 비욘세 콘서트, 프놈펜의 킬링필드까지.

여행지를 향한 출발부터 과정, 도착지에서의 일정을 거치면서 클로이는 장애라는 이유로 스스로 자신을 배제하며 계층적 지위를 방패처럼 들어올렸던 과거의 무겁고 단단한 심리적 코르셋을 조금씩 벗겨내면서 새로운 삶으로 열린 가능성을 향해 자유롭게 걸어들어간다. 500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었지만 장애로 인해 겪었던 차별을 철학적 사유로 풀어내는 작가의 깊이 있으면서도 활달한 문장은 책의 두께를 잊고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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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꼭두각시
윌리엄 트레버 지음, 김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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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소도시 페르모이, 킬네이라 불리는 저택에 사는 퀸턴가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은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어제와 다름 없는 오늘을 보내고, 다시 비슷한 내일을 보내면서 평온한 나날을 지켜보면 내가 살던 소도시도 그렇게 평온한 풍경으로 그려지는 듯한 착각이 들곤 한다.

윌리엄 트레버는 지난 시간들의 풍경을 오래도록 지켜보고 곱씹고 지켜보고 곱씹다가 그 안에 들어가서 과거의 풍경과 과거의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는 것 같다. 윌리엄 트레버의 《여름의 끝》을 읽고 고요한 호수가 뜨거운 불을 품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이 책의 처음에서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고요한 호수는 독자의 눈길을 끌지만 호수가 품고 있는 뜨거운 불은 독자의 마음을 끈다.

언젠가는 내가 이 제분소를 물려받으리란 걸 알았다. 여기서 일하게 된다는 것과 아버지가 곡물이나 제분기에 대해 배운 것을 나도 배우게 된다는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았다. 난 제분소 자체가 좋았다. 제분소의 회색 돌들은 담쟁이덩굴로 부드러워졌고 다락과 창고 문들의 적갈색 페인트는 세월이 흐르면서 햇볕에 그 빛을 바랬다. 지붕 한가운데의 초록색 시계는 언제나 1분이 빨랐다. 나는 이곳의 냄새를 사랑했다. 옥수수의 따뜻하고 건조한 냄새를, 공기 중에 먼지가 떠돌지만 그 청결함을 사랑했다. 나는 흐르는 물줄기 위로 톱니가 맞물리며 커다란 바퀴가 회전하는 것을 지켜보는 게 즐거웠다. 활송로의 목재는 닳아서 매끄러웠고 가죽끈들이 열렸다 뒤로 떨어졌다 다시 열렸다. 자루에는 우리 이름인 Quinton이 원을 그리며 적혀 있었다.

운명의 꼭두각시/ p25

아무런 사건도 발생하지 않았던 호수의 상태일 때 윌리가 묘사한 제분소의 풍경이 좋았다. 같은 풍경이라도 작가의 역량에 따라 그곳은 온기가 스며드는 추억의 공간, 독자를 끌어들여 함께 추억을 공유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제분소의 회색 돌과 담쟁이 덩굴, 옥수수의 따뜻하고 건조한 냄새, 햇볕과 공기 중에 떠도는 먼지.

이러헌 평화는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1차 세계대전 직후 고조되는 독립투쟁을 막고자 영국이 아일랜드에 파견한 첩자가 킬네이 주택에서 혀가 잘린 상태로 목매달린 채 발견되면서 제분소의 따뜻한 공기와 냄새는 파괴되고 윌리의 어린 시절은 막을 내리게 된다.

그 이후는 냉혹한 현실과 잔인한 운명의 연속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의 삶은 깨어졌고 그들의 보금자리는 폐허가 되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살아가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작가는 그들을 좇는 시선을 멈추지 않는다.

군인들의 학살 이후 킬네이가 그랬듯 그 결정적인 순간들 이후 우리는 모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난도질당한 삶들, 그림자의 피조물들. 그의 아버지의 말처럼 운명의 꼭두각시들. 우리는 유령이 되었다.

운명의 꼭두각시/ p330


비극이 우리의 운명을 뒤흔들어 삶을 파괴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깨진 삶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 천천히 햇볕이 남아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의 뒷모습으로 햇볕이 고인다.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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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봄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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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두 달이 훨씬 지났는데도 이태원은 텅 비어 있었다. 상점이나 음식점들도 비어 있고, 시야에 들어오는 길거리 행인은 다섯도 되지 않았다. 흡사 유령 도시였다. 해밀턴호텔 옆 골목에는 젊은 친구들이 제법 있었는데 녹사평역삼거리 합동 분향소에는 조문객이 아무도 없었다. 분향소 주위에 현수막이 빽빽이 둘러쳐져서 바깥에선 분향소가 보이지 않았따. 영한이 현수막을 세어보니 모두 열네 개였다. '이재명 상습 거짓말쟁이. 구속 수사하라.' '이태원 참사 희망자의 명복을. 이태원 참사를 즐거워하는 이재명.' '국민들에게 더 이상 슬픔을 강요하지 말라.'

모두 '신자유주의연대'라는 단체의 이름으로 돼 있었다. 신자유주의는 국경 없는 세계적 규모의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원리를 이르는 말인데 신자유주의연대는 무엇을 위해 연대하는 단체이길래 이태원 분향소에 혐오 스피치의 철벽을 두르고 있는 것일까. 요새는 자유니 공정이니 하는 근사한 개념들이 엉뚱한 곳에 잘못 쓰이는 경우가 흔하다.

그리고 봄, p254-255

 


 다시 10월이다. 이제 10월에는 29일이 떠오른다. 4월에 16일이 저절로 따라붙는 것처럼. 어제 뉴스에는 올해 할로윈 축제에서 인파가 몰려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예방하도록 정부와 지자체와 총력전을 벌여 실전훈련까지 하고 있는 장면이 나왔다. 서울시가 지난해 이태원 참사 이후 인파 밀집 사고 등에 대비하고자 만든 ‘지능형 피플 카운팅 시스템’을 활용한 유관기관 합동훈련이라고 했다. 어떤 정보도 없이 화면만 봤을 때는 다시 이태원이 반복되는 것인지 알고 심장이 덜컥했다.

미국에서는 이태원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크러시>가 공개되었다. 국내에서는 서비스가 되지 않아 볼 수 없는 <크러시> 공식 예고편은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기 직전 할로윈 축제에 갈 생각으로 들떠있던 사람들의 영상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급작스럽게 바뀌는 상황..좁은 골목에 끊임없이 사람들이 밀려들면서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린다.


《그리고 봄》은 이태원 참사를 다룬 소설이 아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각자 다른 계절처럼 한가족이지만 각자 다른 방식으로 삶을 만들어가는 정희 하민 동민 영한 4명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야기 속에는 이태원이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태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태원 참사에서 느꼈던 가슴 답답한 울분이 가득 들어차 있다. 사계절을 지나고 다시 봄으로 돌아왔을 때 소설 속 가족인 4명의 갈라졌던 관계도 회복세로 돌아왔다. 그러니까 세대 갈등, 이데올로기 갈등 등으로 4명의 분열이 4명의 독립으로 전환점을 맞이한 것이다.


《세 여자》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혁명가 주세죽, 허정숙, 고명자의 삶을 재현하며 요산김정한문학상, 허균문학상, 노근리문학상을 연이어 수상했던 작가 조선희가 이번에 보여주는 《그리고 봄》은 작가가 답답한 세상을 향해 던지고 싶은 말들이 살아있는 소설이다. 하고 싶은 말을 대신 쏟아내주는 등장 인물들이 있어서 속 시원한 면도 있고 소설치고는 다소 거친 것이 아닌가 하는 면도 있었다. 하지만 작가의 말을 보면 소설이 이러한 방식을 선택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이 소설은 2022년 4월부터 1년을 다뤘고 집필은 8월에 끝났지만 그 시점에도 정치 상황은 빠른 속도로 더 나쁜 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대통령이 되기 가장 위험한 개인에게 대통령직을 맡긴 다음, 불안과 불편은 그에게 대통령직을 허락한 국민 대중이 감당해야 하는 몫이다.

하지만《그리고 봄》에는 변증법의 희망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 군사정권 이후 가장 어두운 시기로 접어들고 있지만, 질서와 가치와 상식이 무너지는 정치 IMF를 경험하고 있지만, 공이 높이 튀어 오르려면 바닥을 세게 쳐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봄, 작가의 말

 

 가족 이데올로기에 갇혀서는 가족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는 것 같다. 너무 가까이 붙어 있으면 분열이 시작되고 존중하며 거리를 둘 때 독립이 시작된다.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는 소설이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는 것 같아서 소설적 재미가 덜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을 거의 읽어갔을 때는 소설이라서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누군가 나 대신 시원하게 질문하고 쏟아내는 말들이 흘러넘치는 것이 좋아 그것들이 흐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등장인물 중에서 동민의 말과 행동이 이해되지 않아서 잠시 그에 대해 적개심을 느끼기도 했는데 ㅎㅎ 나중에는 동민 때문에 울컥했다.


시원하고 슬프고 다시 봄으로 돌아와서 좋았던 소설이다. 겨울을 지나고 다시 봄, 이렇게 봄이 희망이라는 식으로 돌아오는 방식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에게는 희망이 필요하다. 시원하게 소리쳐 줄 목소리와 함께. 나에게 없는 것이 가득 들어찬 소설이라서 다시 읽었다. 겨울 다음에는 봄이 온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당연한 목소리에 기대를 걸어본다.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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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 일터의 죽음을 사회적 기억으로 만드는 법
신다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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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먼 친척의 부고를 전해들은 적이 있다. 한두 번 만났을 정도로 왕래가 없었기에 얼굴도 흐릿하게 잘 기억나지 않았지만 나와 어떤 관계에 있는 친척이라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죽음은 나이에 맞춰서 다가오는 것은 아니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아직 죽을 나이가 아닌데'라는 생각이 맴돌고 있었다. 내가 죽음의 원인에 대해 묻자, 부고 소식을 전해준 이는 그가 조선소에서 일을 하다가 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조선소에서 용접 작업을 하던 중에 갑작스레 떨어져내린 철근에 깔린 거라고. 명백하게, 산재사고였다.

출근을 했다가 퇴근하지 못한 그 분에게는 딸과 아들이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분이 사고를 당한 순간을 떠올렸고 누구라도 일터에서 사고를 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불안했고,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의 이야기에 울컥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돈과 시간(사실 시간은 돈과 같은 맥락이니까 결국은 돈)을 아끼기 위해 일터의 위험 요소들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산재사고로 하루 평균 두 명이 사망한다고 한다. 일을 하기 위해 출근을 했다가 퇴근하지 못하는 사람이 두 명이라는 것이다. 사회적 참사와 재난, 안전할 권리 등을 주제로 현장을 취재하는 신다은 기자는 이 책에 산재 현장을 취재하며 모은 지식을 담으면서 두 가지를 목표를 세웠다고 한다.

그래서 1부와 2부에서는 산재 사망사고의 구조적 원인을 파악해 그 기저에 기업 조직의 어떤 관심과 인식이 있는지 탐구하는 것을 담았고, 3부와 4부에서는 다른 하나는 연간 800여 명에 달하는 산재 사고 사망자의 조사자료가 왜 공개되지 않으며 이를 드러내려면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알아보는 내용을 담았다.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부 : 2021년 평택항에서 숨진 20대 노동자 이선호 씨 사고를 중심으로 '안전을 방치한 기업 구조'가 노동자 죽음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2부 : 2015년에서 2022년 사이에 언론보도에 알려진 여러 제조업 산재 사망사고를 유행별로 분류

3부 : 산재의 원인이 겉으로 드러나지 못하게 되는 사회 구조적 배경을 기업과 정부, 노조, 언론의 4가지 영역으로 나눠서 살펴

4부 : 앞으로 산재사고에 관해 더 많은 정보가 드러나려면 무서을 해야 하는지 갈무리


제 아이가 죽은 가장 큰 이유는 그날 그 작업을 우리 아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아무 전문성 없는 사람이, 관리감독자도 없는 상황에서 시켰기 때문입니다. 부두 내에서 항상 사고의 위험은 내재돼 있었으나 (그간) 천만다행으로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던 것은 작업 인력의 전문성, 즉 다시 말해 해 봤던 사람들이 일을 하니까 누구보다도 작업의 시작과 끝을 잘 알고 있을 뿐더러 어떤 작업이 위험하다는 것을 인지하는 사람들이 해 왔기 때문입니다. (사고 당일에는) 위험한 작업장 내에서의 전문 인력의 중요성을 배제한 채 이 일, 저 일을 시켰습니다. (이재훈 씨 유족 의견서)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 p44


가장 처음 나오는 이야기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평택항에서 사망한 이선호 씨의 사고와 관련되어 안전을 방치한 기업 구조에 관한 내용이다. 사고 당일 아버지는 선호 씨와 같은 평택항에 있었다. 다른 노동자를 야적장에 가라는 말을 하러 갔던 선호 씨는 올 시간이 넘도록 오지 않았고, 야적장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때 아버지는 '자는 듯 엎드린 아들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명백한 산재사고였으나 기업은 노동자의 과실로 주장하고 나섰으며 죽음이 알려지기까지도 보름이 걸렸다. 선호 씨의 죽음에는 4가지 원인이 있었다. 이리저리 넘겨진 지시로 인해 빠져나간 안전, 노후화된 설비와 잘못된 작업 방식, 위험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지 않은 소통 부재, 형식적 안전 관리.

책에서는 산재사고 발생의 유형을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눠서 살펴보고 있다.

첫째, 회사가 세워 둔 안전수칙이 효율적 업무방식과 충돌할 때이다. 많은 산재사고가 겉으로 보기에 노동자들의 스스로 선택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에게 위험을 감수하고 일할 선택지는 있지만 그러지 않을 선택지는 없을 때가 많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적시한다. 그 예로 2022년 식품기업 SPC의 자회사 SPL에서 청년 노동자가 샌드위치 속재료를 만들다가 소스 만드는 기계에 몸이 끌려들어가 숨지는 사고를 이야기한다. 원래 규정은 덮개를 덮는 것이지만 생산 물량이 많고 일의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현장에서는 덮개를 열어놓는 작업 방식이 관행이라는 사실이 문제였다. 더욱 큰 문제는 노동을 하지 않는 쪽에서 규정을 만드는 것이었다.

정말로 안전을 생산보다 우선순위에 놓고자 한다면 기업 조직 전체가 그 목표에 투자하고 도달 여부를 점검해야 한다. 안전은 노동자나 안전관리자 한두 사람의 의식 변화로 이룰 수 있는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안전은 개인이 아니라 조직의 목표여야 한다.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p69


둘째, 위험에 관한 기업 간 소통이 부족할 때이다.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 노동자 김용균 씨가 컨베이어에 끼여 숨진 사고 발생했다. 김용균 시는 컨베이어를 감싸는 문을 열고 그 안에 몸을 직접 집어넣어 소음을 확인하고, 고장난 듯한 곳은 사진까지 찍어 윗선에 보고해야 했다. 원칙적으로는 컨베이어와 노동자는 거리를 둬야 했지만 거리를 두면 작업을 할 수 없는 현장이었다. 위험 정보를 공유하는데 실패한 결과였다. 컨베이어에 몸을 넣어서는 안 된다는 정보, 두 정보가 적시에 공유됐다면 작업 방식을 바꾸거나 설비를 개선하는 식으로 사고 위험 미리 제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셋째, 안전에 투자할 돈과 시간이 부족할 때이다. 우리 사회는 안전에 배분하는 돈의 기준이 낮은 편이다. 건설법을 예로 들면, 법적 산업안전보건관리비는 50억 이상 공사 현장의 경우 공사액의 1.97퍼센트 수준으로 아주 적다. 인건비, 보수 비용만 책정해도 안전관리비의 120퍼센트가 넘어서 안전관리 인원 채용도 못하는 현실이다.

이와 관련해서 덴마크의 안전 공학자 에릭 홀나겔은 기업의 계산법에 주목해서, '사고 상황 줄이기'보다 '사고 안 나는 상황 늘리기'에 중점을 두자고 제안했다. 더 확실한 문장으로 변환하자면, '안전한 일터를 만들자는 것.'

시간이 돈이기 때문에 빨리 끝낼수록 이득이 되는 구조 속에서 말단의 2차, 3차 하청 노도자들은 속도전에 노출되어 있으며 그만큼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한 위험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안전한 일터를 만들어야 한다.

넷째, 안전에 관한 설명이 부족할 때이다. 노동자에게 작업환경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위험한지 알려주지 않는 경우가 흔한데, 사업주도 위험성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다가 노동자는 시키는 대로 일하다가 어느 날 몸이 왜 나빠졌지 하는 상황에 이른다. 안전관리를 사업주에게만 맡겨놓고 나중에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묻는 면피성 안전관리는 사업주 교육에 실패한 정부의 책임도 크다.


이 챕터에서 사업주가 하는 오해와 진실 일부를 발췌했다.

1. 오해: '안전하지 않은 물건을 시중에서 팔 리 없다.'

실제 : 어떤 물품을 살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이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2. 오해 : '나는 유해물질을 다루고 있지 않아.'

실제 : 대부분의 작업은 건강에 유해할 수 있는 물질을 사용합니다. 심지어 밀가루처럼 흔한 물질도 공장에선 건강에 해로운 물질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3. 오해 : '자연물질은 위험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 : 자연물질도 위험할 수 있습니다. 목재 분진은 천식을, 돌이나 콘크리트 먼지는 폐 질환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시트러스 오일도 피부 질환의 원인이 됩니다.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p141

다섯째, 안전에 대한 역량과 이해가 부족할 때이다. 이 부분에서는 소규모 기업 안전관리가 부재하다는 내용과 함께 폐기물업체 파쇄기에 빨려 들어가 숨진 김재순 씨에 대해 이야기한다.

언론에서 산재사고 소식을 접할 때 우리는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는 정도에서 소식에 대한 생각을 멈춘다. 그저 수많은 사망사고 중 하나라는 생각이 강한 것이다. 하지만 한 명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사망사고는 이렇듯 수많은 구조적 원인을 품고 있다.

산재사고가 발생한 다음에 벌어졌는데 왜 은폐되고 밝혀지지 않는지에 대한 내용은 답답한 마음에 흙을 끼얹는 것 같다. 희망을 향한 숨구멍이 남아있을까 싶은 처참한 심정마저 든다. 정부에서 처벌 위주의 비판을 하고 안전 관리를 돕는 대신 원칙론만 내세우는 이유. 노조가 체계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때의 결과. 깊이 탐색하기보다 단신 보도에 바빴던 언론의 책임 등. 결국 비어 있는 서사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노조와 시민사회가 고군분투하고 있으며, 유족이 나서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가족의 산재 소식을 접한 유가족들이 눈물로 만든 안내집이 있다.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이 산재 사망사고 유가족을 위해 만든 안내서 <수많은 우리들이 함께 찾는 길>. 이 전자 책자는 산재로 가족을 떠나보낸 이들의 경험이 담긴 종합 안내서로 인터넷에서 누구나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안내서에 소개된 내용 중에서 "장례는 '빨리'가 아니라 '제대로' 치러야"한다는 말이 가슴에 들어와 박혔다.

책을 다 읽고 마지막에 갑자기 막내 외삼촌의 왼쪽 팔이 떠올랐다.

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걸까. 막내 외삼촌은 외양선을 타다가 왼쪽 팔을 잃었다. 기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서 전원을 끄고 살피러 갔는데, 점검을 한다는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다른 직원이 전원 버튼을 누르는 바람에 왼쪽 팔이 기계에 빨려 들어갔다. 부산에 있는 병원으로 급히 옮겨졌지만 배에서 보낸 시간이 너무 길었고 상처가 깊어서 팔을 살리지 못했다. 어렸을 때 있었던 일이고 세월이 흐르면서 외삼촌이 너무 자연스럽게 팔을 사용하시는 걸 보고 잊고 있었나보다.

사람의 목숨보다 중요한게 어디 있을까. 일터는 살아가기 위한 곳이지 죽기 위한 곳이 아니다. 산재 조사는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노동자가 일터에서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는 일이다. 속보로 전해지는 산재사고에서 지워진 사람들의 이름과 이야기를 되살리는 것은 추모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산재사고 뿐 아니라 재해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이름을 지우고 이야기를 덮지 못하도록 더 많은 사람들이 '왜'냐는 질문을 하고 이야기를 잊지 않기 위해 계속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산재를 줄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높다란 담으로 둘러쳐진 공장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밖에서는 알기 어렵다. 전국의 위험한 현장을 다 멈추게 하거나 일일이 점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죽음의 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책을 읽으며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일터의 죽음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독자들이 아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변한다. 사고 발생 후 여론의 강한 비판을 받은 몇몇 기업들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건의 사항을 받아들이고 선제적으로 설비 개선을 하며 '안전에 돈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인식을 조금씩 갖기 시작했다. 시민들이 죽음의 행렬을 멈추라고 기업과 정부에 강하게 요구한 결과다. 노조들도 자신들이 해야 할 의무로서 산업안전을 주목하고 대응책을 찾고 있다. 모두 시민들의 관심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에필로그/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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