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 뷰티 - 장애, 모성, 아름다움에 관한 또 한 번의 전복
클로이 쿠퍼 존스 지음, 안진이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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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추와 골반을 연결하는 뼈인 천골이 형성되지 않은 ‘천골무형성증’이라는 장애를 지니고 태어난 클로이 쿠퍼 존스는 여성이자 엄마, 철학자..더 나아가 여행자이자 사색가 등 여러 단어로 자신을 설명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애인이라는 단어 속에 클로이의 정체성을 가두려고 한다.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다른 모든 부분을 덮어버릴 정도로 강력해서 자신이 무례를 범하고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이는 클로이가 지나갈 때 자신을 설명해보라는 요구를 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이는 장애가 있는 몸을 신기하게 쳐다보기도 한다. 클로이 쿠퍼 존스는 이 책에서 장애로 인해 겪었던 수많은 차별과 편견, 멸시에 대한 치열한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모든 사유와 통찰은 클로이의 여행과 함께 이루어진다.



여행의 시작은 클로이가 남편과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브루클린에 있는 술집에서부터였다. 그곳에서 함께 박사과정을 이수했던 제이와 콜린이라는 두 남자가 클로이의 삶이 살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두고 논쟁을 벌였다. 그중 콜린은 클로이와 같은 몸이 존재하지 않을 사회를 옹호하면서 우생학이 좋은 학문이었다는 주장까지 펼친다. 그러면서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이를 낳는 것은 폭력이라며 이상적인 사회에서는 장애는 미리 발견되고 낙태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들과 다른 몸으로 살아서 긍정적인 면도 있다는 클로이의 말에도 콜린은 그것은 장애에 대한 대응일 뿐이란고 대꾸한다. 콜린의 말에 따르면 장애는 세상을 살아가기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에 미리 알았다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며 태어나면 불행일 뿐이라는 것이다. 콜린 뿐 아니라 클로이가 가르치는 대학생들도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아이를 낳는 행위는 비윤리적이라고 말했다.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 아이를 낙태시켜야 하는가. 이 주제에 대해서 그렇지 않다, 고 확실하게 말할 자신은 나에게도 없다. 장애에 대한 편견이 없다고 말할 수 없으며 불편한 시선을 돌린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없으므로.

'장애'라는 단어는 내가 나 자신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안 됐지만, 이상하고 혼란스러운 순간들을 해독하는 도구가 되어주긴 했다. 낯선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면서 내가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순간들.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몸과 내 몸을 대비시켰다. 그들은 내 몸에서 없는 것과 부족한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나는 태어날 때부터 내 몸 안에서 살았으므로 뭐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았다. 계단을 오르는 일은 계단을 오르는 일처럼 느껴진다. 걷는 일은 걷는 일처럼 느껴진다.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내 움직임이 이상해 보이고 열등해 보이는 모양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열등감을 느낄 이유가 없었다. 그런 걸 느끼려면 누가 가르쳐줘야만 했는데, 나에게 기꺼이 그걸 가르쳐주려는 사람들은 차고 넘쳤다.

이지 뷰티

브루클린의 술집에서 나온 뒤 클로이는 여행을 하기 시작한다. 로마의 미술관, 밀라노의 비욘세 콘서트, 프놈펜의 킬링필드까지.

여행지를 향한 출발부터 과정, 도착지에서의 일정을 거치면서 클로이는 장애라는 이유로 스스로 자신을 배제하며 계층적 지위를 방패처럼 들어올렸던 과거의 무겁고 단단한 심리적 코르셋을 조금씩 벗겨내면서 새로운 삶으로 열린 가능성을 향해 자유롭게 걸어들어간다. 500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었지만 장애로 인해 겪었던 차별을 철학적 사유로 풀어내는 작가의 깊이 있으면서도 활달한 문장은 책의 두께를 잊고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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