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 일터의 죽음을 사회적 기억으로 만드는 법
신다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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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먼 친척의 부고를 전해들은 적이 있다. 한두 번 만났을 정도로 왕래가 없었기에 얼굴도 흐릿하게 잘 기억나지 않았지만 나와 어떤 관계에 있는 친척이라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죽음은 나이에 맞춰서 다가오는 것은 아니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아직 죽을 나이가 아닌데'라는 생각이 맴돌고 있었다. 내가 죽음의 원인에 대해 묻자, 부고 소식을 전해준 이는 그가 조선소에서 일을 하다가 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조선소에서 용접 작업을 하던 중에 갑작스레 떨어져내린 철근에 깔린 거라고. 명백하게, 산재사고였다.

출근을 했다가 퇴근하지 못한 그 분에게는 딸과 아들이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분이 사고를 당한 순간을 떠올렸고 누구라도 일터에서 사고를 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불안했고,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의 이야기에 울컥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돈과 시간(사실 시간은 돈과 같은 맥락이니까 결국은 돈)을 아끼기 위해 일터의 위험 요소들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산재사고로 하루 평균 두 명이 사망한다고 한다. 일을 하기 위해 출근을 했다가 퇴근하지 못하는 사람이 두 명이라는 것이다. 사회적 참사와 재난, 안전할 권리 등을 주제로 현장을 취재하는 신다은 기자는 이 책에 산재 현장을 취재하며 모은 지식을 담으면서 두 가지를 목표를 세웠다고 한다.

그래서 1부와 2부에서는 산재 사망사고의 구조적 원인을 파악해 그 기저에 기업 조직의 어떤 관심과 인식이 있는지 탐구하는 것을 담았고, 3부와 4부에서는 다른 하나는 연간 800여 명에 달하는 산재 사고 사망자의 조사자료가 왜 공개되지 않으며 이를 드러내려면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알아보는 내용을 담았다.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부 : 2021년 평택항에서 숨진 20대 노동자 이선호 씨 사고를 중심으로 '안전을 방치한 기업 구조'가 노동자 죽음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2부 : 2015년에서 2022년 사이에 언론보도에 알려진 여러 제조업 산재 사망사고를 유행별로 분류

3부 : 산재의 원인이 겉으로 드러나지 못하게 되는 사회 구조적 배경을 기업과 정부, 노조, 언론의 4가지 영역으로 나눠서 살펴

4부 : 앞으로 산재사고에 관해 더 많은 정보가 드러나려면 무서을 해야 하는지 갈무리


제 아이가 죽은 가장 큰 이유는 그날 그 작업을 우리 아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아무 전문성 없는 사람이, 관리감독자도 없는 상황에서 시켰기 때문입니다. 부두 내에서 항상 사고의 위험은 내재돼 있었으나 (그간) 천만다행으로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던 것은 작업 인력의 전문성, 즉 다시 말해 해 봤던 사람들이 일을 하니까 누구보다도 작업의 시작과 끝을 잘 알고 있을 뿐더러 어떤 작업이 위험하다는 것을 인지하는 사람들이 해 왔기 때문입니다. (사고 당일에는) 위험한 작업장 내에서의 전문 인력의 중요성을 배제한 채 이 일, 저 일을 시켰습니다. (이재훈 씨 유족 의견서)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 p44


가장 처음 나오는 이야기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평택항에서 사망한 이선호 씨의 사고와 관련되어 안전을 방치한 기업 구조에 관한 내용이다. 사고 당일 아버지는 선호 씨와 같은 평택항에 있었다. 다른 노동자를 야적장에 가라는 말을 하러 갔던 선호 씨는 올 시간이 넘도록 오지 않았고, 야적장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때 아버지는 '자는 듯 엎드린 아들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명백한 산재사고였으나 기업은 노동자의 과실로 주장하고 나섰으며 죽음이 알려지기까지도 보름이 걸렸다. 선호 씨의 죽음에는 4가지 원인이 있었다. 이리저리 넘겨진 지시로 인해 빠져나간 안전, 노후화된 설비와 잘못된 작업 방식, 위험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지 않은 소통 부재, 형식적 안전 관리.

책에서는 산재사고 발생의 유형을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눠서 살펴보고 있다.

첫째, 회사가 세워 둔 안전수칙이 효율적 업무방식과 충돌할 때이다. 많은 산재사고가 겉으로 보기에 노동자들의 스스로 선택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에게 위험을 감수하고 일할 선택지는 있지만 그러지 않을 선택지는 없을 때가 많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적시한다. 그 예로 2022년 식품기업 SPC의 자회사 SPL에서 청년 노동자가 샌드위치 속재료를 만들다가 소스 만드는 기계에 몸이 끌려들어가 숨지는 사고를 이야기한다. 원래 규정은 덮개를 덮는 것이지만 생산 물량이 많고 일의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현장에서는 덮개를 열어놓는 작업 방식이 관행이라는 사실이 문제였다. 더욱 큰 문제는 노동을 하지 않는 쪽에서 규정을 만드는 것이었다.

정말로 안전을 생산보다 우선순위에 놓고자 한다면 기업 조직 전체가 그 목표에 투자하고 도달 여부를 점검해야 한다. 안전은 노동자나 안전관리자 한두 사람의 의식 변화로 이룰 수 있는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안전은 개인이 아니라 조직의 목표여야 한다.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p69


둘째, 위험에 관한 기업 간 소통이 부족할 때이다.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 노동자 김용균 씨가 컨베이어에 끼여 숨진 사고 발생했다. 김용균 시는 컨베이어를 감싸는 문을 열고 그 안에 몸을 직접 집어넣어 소음을 확인하고, 고장난 듯한 곳은 사진까지 찍어 윗선에 보고해야 했다. 원칙적으로는 컨베이어와 노동자는 거리를 둬야 했지만 거리를 두면 작업을 할 수 없는 현장이었다. 위험 정보를 공유하는데 실패한 결과였다. 컨베이어에 몸을 넣어서는 안 된다는 정보, 두 정보가 적시에 공유됐다면 작업 방식을 바꾸거나 설비를 개선하는 식으로 사고 위험 미리 제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셋째, 안전에 투자할 돈과 시간이 부족할 때이다. 우리 사회는 안전에 배분하는 돈의 기준이 낮은 편이다. 건설법을 예로 들면, 법적 산업안전보건관리비는 50억 이상 공사 현장의 경우 공사액의 1.97퍼센트 수준으로 아주 적다. 인건비, 보수 비용만 책정해도 안전관리비의 120퍼센트가 넘어서 안전관리 인원 채용도 못하는 현실이다.

이와 관련해서 덴마크의 안전 공학자 에릭 홀나겔은 기업의 계산법에 주목해서, '사고 상황 줄이기'보다 '사고 안 나는 상황 늘리기'에 중점을 두자고 제안했다. 더 확실한 문장으로 변환하자면, '안전한 일터를 만들자는 것.'

시간이 돈이기 때문에 빨리 끝낼수록 이득이 되는 구조 속에서 말단의 2차, 3차 하청 노도자들은 속도전에 노출되어 있으며 그만큼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한 위험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안전한 일터를 만들어야 한다.

넷째, 안전에 관한 설명이 부족할 때이다. 노동자에게 작업환경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위험한지 알려주지 않는 경우가 흔한데, 사업주도 위험성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다가 노동자는 시키는 대로 일하다가 어느 날 몸이 왜 나빠졌지 하는 상황에 이른다. 안전관리를 사업주에게만 맡겨놓고 나중에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묻는 면피성 안전관리는 사업주 교육에 실패한 정부의 책임도 크다.


이 챕터에서 사업주가 하는 오해와 진실 일부를 발췌했다.

1. 오해: '안전하지 않은 물건을 시중에서 팔 리 없다.'

실제 : 어떤 물품을 살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이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2. 오해 : '나는 유해물질을 다루고 있지 않아.'

실제 : 대부분의 작업은 건강에 유해할 수 있는 물질을 사용합니다. 심지어 밀가루처럼 흔한 물질도 공장에선 건강에 해로운 물질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3. 오해 : '자연물질은 위험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 : 자연물질도 위험할 수 있습니다. 목재 분진은 천식을, 돌이나 콘크리트 먼지는 폐 질환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시트러스 오일도 피부 질환의 원인이 됩니다.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p141

다섯째, 안전에 대한 역량과 이해가 부족할 때이다. 이 부분에서는 소규모 기업 안전관리가 부재하다는 내용과 함께 폐기물업체 파쇄기에 빨려 들어가 숨진 김재순 씨에 대해 이야기한다.

언론에서 산재사고 소식을 접할 때 우리는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는 정도에서 소식에 대한 생각을 멈춘다. 그저 수많은 사망사고 중 하나라는 생각이 강한 것이다. 하지만 한 명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사망사고는 이렇듯 수많은 구조적 원인을 품고 있다.

산재사고가 발생한 다음에 벌어졌는데 왜 은폐되고 밝혀지지 않는지에 대한 내용은 답답한 마음에 흙을 끼얹는 것 같다. 희망을 향한 숨구멍이 남아있을까 싶은 처참한 심정마저 든다. 정부에서 처벌 위주의 비판을 하고 안전 관리를 돕는 대신 원칙론만 내세우는 이유. 노조가 체계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때의 결과. 깊이 탐색하기보다 단신 보도에 바빴던 언론의 책임 등. 결국 비어 있는 서사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노조와 시민사회가 고군분투하고 있으며, 유족이 나서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가족의 산재 소식을 접한 유가족들이 눈물로 만든 안내집이 있다.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이 산재 사망사고 유가족을 위해 만든 안내서 <수많은 우리들이 함께 찾는 길>. 이 전자 책자는 산재로 가족을 떠나보낸 이들의 경험이 담긴 종합 안내서로 인터넷에서 누구나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안내서에 소개된 내용 중에서 "장례는 '빨리'가 아니라 '제대로' 치러야"한다는 말이 가슴에 들어와 박혔다.

책을 다 읽고 마지막에 갑자기 막내 외삼촌의 왼쪽 팔이 떠올랐다.

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걸까. 막내 외삼촌은 외양선을 타다가 왼쪽 팔을 잃었다. 기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서 전원을 끄고 살피러 갔는데, 점검을 한다는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다른 직원이 전원 버튼을 누르는 바람에 왼쪽 팔이 기계에 빨려 들어갔다. 부산에 있는 병원으로 급히 옮겨졌지만 배에서 보낸 시간이 너무 길었고 상처가 깊어서 팔을 살리지 못했다. 어렸을 때 있었던 일이고 세월이 흐르면서 외삼촌이 너무 자연스럽게 팔을 사용하시는 걸 보고 잊고 있었나보다.

사람의 목숨보다 중요한게 어디 있을까. 일터는 살아가기 위한 곳이지 죽기 위한 곳이 아니다. 산재 조사는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노동자가 일터에서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는 일이다. 속보로 전해지는 산재사고에서 지워진 사람들의 이름과 이야기를 되살리는 것은 추모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산재사고 뿐 아니라 재해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이름을 지우고 이야기를 덮지 못하도록 더 많은 사람들이 '왜'냐는 질문을 하고 이야기를 잊지 않기 위해 계속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산재를 줄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높다란 담으로 둘러쳐진 공장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밖에서는 알기 어렵다. 전국의 위험한 현장을 다 멈추게 하거나 일일이 점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죽음의 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책을 읽으며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일터의 죽음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독자들이 아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변한다. 사고 발생 후 여론의 강한 비판을 받은 몇몇 기업들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건의 사항을 받아들이고 선제적으로 설비 개선을 하며 '안전에 돈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인식을 조금씩 갖기 시작했다. 시민들이 죽음의 행렬을 멈추라고 기업과 정부에 강하게 요구한 결과다. 노조들도 자신들이 해야 할 의무로서 산업안전을 주목하고 대응책을 찾고 있다. 모두 시민들의 관심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에필로그/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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