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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 SE (2disc) - [할인행사]
밀로스 포먼 감독, 루이즈 플레쳐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영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런 선차적인 질문은 두드러기와 같은 반응을 잡아내기도 한다. 영화는 순전히 느끼는 것으로, 이해는 그것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물론 동감하지 않는 이야기지만 말이다.
이 영화의 제목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이다. 새삼스러운 이야기이지만, (왜냐하면 우리가 이것을 이야기하려면 경유할 수밖에 없는 단단함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 질문은 우리를 견딜 수 없게 한다. "왜 하필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란 말인가? 아니, 생각해 보면 '뻐꾸기 둥지'란 어디인가가? 하는 본원적인 질의 차원으로 넘어가게 된다.
물론 영화에서 둥지란 영화가 끝없이 공전하는 궤도, 그곳은 병동이다. 여기서 얻어지는 뻐꾸기의 자리란 바로 병동인 셈인데, 탁란, 그러니까 뻐꾸기는 자신의 둥지를 짓지 않고 다른 종의 둥지에 자신의 알을 낳기 때문에 둥지란 뻐꾸기 둥지이며 동시에 아닌 곳이 된다. 최근의 연구는 그 둥지 주변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자식 뻐꾸기로 하여금 어미 뻐꾸기를 인식하게, 그러니까 새끼 뻐꾸기를 위탁받은 식모는 어디까지나 식모살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지만,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어머니가 아닌 어머니인 것이다. 이 영화의 탁월함은 그것이다.
병동으로 이감된 맥머피와 그 시작부터 사사건건 신경전이 벌어지는 랫체드와의 관계는 상당히 흥미롭다. 왜냐하면 그녀는 잠재울 수 없을 만큼의 폭력을 충동질하게끔 부르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로하여금 (몇몇 누군가 이 표현을 좋아할지 모르지만) 정복욕을 일깨운다. 음악을 줄이러 들어선 맥머피에게 그녀는 계속해서 (차분하게) 환자와 간호사는 별개, 그러니까 다른 존재이며, '넘어선 안 되는' 투명한 유리창과 같은 것임을 끝임없이 강조한다. 그녀는 창에 손자국조차 남기지 말 것을 지시한다. 물론 그럴수록 충만해지는 질감은 그녀의 자리다. 우리는 숱한 맥머피의 '정욕'에 대한 제스쳐 덕분에 우리의 그런 환상이 얼마나 타당한 것인지 일깨워준다. 랫체드는 아름답지 않다. 그러나 그녀는 섹쉬(sex-y)하다. 그녀는 우리를 부른다. fuck.. me... 그렇지만 영화는 (결정적으로!) 그것을 안배하지 않는다.
이제 영화가 빠르게 전개되고 거의 마지막에 도달한다. 그녀 앞에 빌리가 선다. 그녀는 빌리의 행동에 대해 어머니 친구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어머니로 자처한다. 빌리에게 부끄러움을 요구한다. "부끄럽지도 않니?" 우리는 여기서 한참 전에 대답되지 않은 빌리의 대답(좋아하는 여자가 있었고... 청혼을 했고...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대체 그 다음은!)이 가졌던 -영영 대답되지 않을- 불안을 포착하게 된다. 물론 그 상한은 어머니 자신이다. 그것이 대답되는 순간, 빌리는 자멸한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정확히 모든 것을 포괄하는 힘이 엉뚱한 곳으로부터 분출한다. 바로 "어머니가 아닌 어머니"인 맥머피다. 병동을 "둥지이며 동시에 아닌 곳"으로 물들이는 파괴적인 힘, 그러지 말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V) 속에서도 응답되지 않는 절대적인 지점, 바로 그곳이다. 여기에 영화는 징그러운 장면을 삽입한다. 랫체드의 목이 졸리던 그 텅 빈 공간이 어두워지고 드러난 지점, 그곳에 한 개비의 담배가, 한 개비의 담배가, 한 개비의 담배가 그리고 나누어지는 카드들... "어머니가 아닌 어머니"로서의 맥머피가 지닌 힘을 설정하는 장면이다. 여유가 흐르며 충분히 담배가 공급되고, 모두가 만족스러운 생활을 영위하는.. 병동으로 들어선 그에게 렛체드는 불러세운다(V). 시펠트는 대답한다. "yes, ma'am" 그녀는 온화한 미소로 그것에 응답하며 그다 다시 이곳에 자리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그는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떠든다. 맥머피가 어쩌고.. 그의 실패에 대해... '그'란 엉터리라고. 사랑은 엉터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