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지면 시든다네

박 남준

늦게 깍은 곶감
조금 위태위태하기는 했으나
그나마 며칠 날이 춥고 햇볕이 나서 겨우겨우 말라간다
남들은 깍은 곶감이 다 내려앉아버리기도 하고
태반이 푸른 곰팡이가 나고 색이 검게 변해버려서
다 내다 버렸다고 한다
때깔 곱고 곰팡이 피지 말라고
곶감 건조장 문 닫아걸고 황산 피우는 사람들 많지만
내가 아는 사람들 내다 버리면 버렸지 그런 짓 당최 안 한다
감식초로 만들지 그랬느냐고 조언을 했는데
식초도 만들어본 사람이 해야하는데 경험도 없고
항아리를 또 사야 하지 않느냐고
이래저래 그 친구들의 경제가 빠듯해졌을 것이다
나야 뭐, 인테리어 개념의 곶감깍기라서
쪼물락 쪼물락
단단하던 감들이 만지면 만져줄수록
쪼글쪼글 시들어간다
축축 늘어진다
사람의 모난 마음도 쓰다듬고 어루만져주면
둥글게 두리동동 동그래질것 이다
감을 깍다가 익거나 으깨져서 물러진 부분들
서걱 베어낸 곶감이 있다
그 베어진 상처 쪼물락 쭈물럭 조심스럽게 만져주었더니
그러니까 상처가 씻기고 치유되어서
동글동글~

햐-
만져줄수록 때깔도 곱다
아닌게 아니라
주홍빛 알전구를 켜놓은 것 같네
아침에 일어나서 몇 개 만졌더니 금세 손가락이 시려서
오후 햇살에 다시 시작 쪼몰락 쭈물럭~
한 보름쯤 후면 곶감도 맛 볼 수 있겠다
곶감 딱 한 개만
맛보러 오셨다는데 내가 뭐 어쩌겠는가
있는 것 알고 달라는데
걸려 있는 것 빤히 보고 입맛 다시는데 우짜든동


시인의 밥상에 담겨진 시중 하나
감 사진은 있는데 곶감 사진은 없는것이 아쉽다

버들치 시인은 여러번 들었지만 그 시까지 관심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는데 이렇게 산문 속에 들어 있으니 글과 시가 그리고 사진이 하나가 되어 더 깊이 들어오는듯 하다

아직 시를 이해하기에는 많이 멀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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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1-14 23: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의 시감상법은 비논리적인 느낌으로 읽기 입니다...낭송하다보면 운율이 나오고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간의 행간의 빈 여백에 눈길도 넣고..그러다보면 그랬구나.라고 꺼덕꺼덕... 사실 요즘 현대시는 외계어수준이라서 뭔 말인지도 모르겠더군요..ㅎㅎㅎ아니 읽기의 가독성 조차 무시하는 경향이라서 ..ㄷㄷㄷ

지금행복하자 2016-11-15 07:25   좋아요 2 | URL
낭송하기.. 글쿤요~ 그것도 방법이겠어요. 일리아스 읽을때도 그랬던것 같아요. 소리내서 읽으면 더 잘 읽힌다고.. 눈으로 읽는데 익숙해서 눈으로는 여러번 읽는데 낭송은 쉽지 않아요 ㅎㅎㅎㅎ

너무 난해한 시나 예술작품들을 보면 이해하라고 만든거야 아님 그러든지 말든지야? 할때가 있어요;; 공개한다는건 누군가에게 보여주는걸 전제로 하는 걸텐데요 ㅎㅎㅎ

오거서 2016-11-15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시인의 밥상>을 읽고 있어요… 저자가 존경하는 버들치 시인이 주인공 같아요… 버들치 박남준 시인의 시를 찾는 중에 이 글을 보게 되어 참 반갑습니다. 지금행복하자 님은 저보다 깊이 있는 책읽기를 하시는군요. 북플 이웃분들의 내공에 감탄할 따름입니다. ^^

지금행복하자 2016-11-15 07:26   좋아요 0 | URL
아내에게 선물로 주셨다는 글 읽었어요~ 행복한 책 읽기를 하신다고 생각했어요 ㅎㅎㅎ

cyrus 2016-11-15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에 따온 지 얼마 안 된 감을 오래 놔두면 맛이 식초처럼 변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골에서 따온 감을 집에 보관하면서 하루에 많아야 두 개씩 먹습니다. 어렸을 때는 감이 맛있는 과일로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저도 나이 들면서 감에 감 잡았는지 감의 단맛을 좋아하게 됐어요. 이러다가 감을 자주 먹어서 당 높아질까봐 걱정입니다. ^^;;

지금행복하자 2016-11-15 16:26   좋아요 0 | URL
단감이 말랑해지면 맛 없어지는건 알았는데 식초처럼 변하는건 처음 알았어요. 그래서 감식초가 만들어진걸까요? 단감 맛있어요.. 포만감도 좋고 달달하고요 ㅎㅎ
질리는 단맛이 아니라 적당히 먹을 수가 없는 매력의 단맛이에요~

cyrus 2016-11-15 16:29   좋아요 0 | URL
제가 표현을 잘못했군요. 감 맛이 식초처럼 신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래서 잘 익은 홍시는 냉동실에 보관해야 오래 먹을 수 있는데, 냉동실이 비좁아서 창고 안에 보관하고 있어요. 이대로 놔두면 맛이 변해요. ㅎㅎㅎ

지금행복하자 2016-11-15 17:01   좋아요 1 | URL
아~~^^ 홍시 이상한 맛 알아요 ㅋ 상한건지 아닌지 모르는 묘한 시큼한 맛ㅋㅋ

samadhi(眞我) 2016-11-15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시를 잘 읽지 않지만 요즘 같은 때는 겁나서 시를 못 고르겠어요. 여기저기 범죄자들 작품이 많아서...

지금행복하자 2016-11-16 00:17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요... 선듯 책 고르기가 그게 무서워요.. 속까지 알수가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