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타라 - 상
후지타니 오사무 지음, 이은주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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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고등학교 시절 반(班)에 한 두 명 씩 있었던 “예체능(藝體能)”계열 아이들은 “우리” - 여기서 “우리”란 인문계, 자연계로 구분하여 수험 준비를 했던 일반 학생들을 말한다 - 와는 “다른” 아이들이었던 것 같다. 보충수업에, 자율학습에 밤낮 없이 공부에 시달리던 우리들과는 달리 며칠씩 수업에 나오지 않다가 등교(登校)해서도 수업 시간에는 엎드려 잠을 자기 일쑤이고, 실기 시험 준비한다며 점심시간 이후에는 금세 사라져 버렸던 그 아이들은 부러움(憧憬)과 질시(嫉視)의 대상이자 앞서 말한 대로 우리와는 “다른” 그런 학생들이었다. 그렇다 보니 우리 같은 “일반” 학생들과는 잘 어울리지 못했던, 때로는 같은 반 친구이면서도 말 한마디 제대로 나눠 본 친구가 없었을 정도로 존재감(存在感)이 약했던 친구들로 기억된다. 그래서인지 가끔씩 만나는 동창생들 중에서 그 친구들의 근황을 묻거나 알고 있는 친구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후지타니 오사무”의 음악 청춘 소설 <배를 타라 上,下(원제 船に乘れ /북폴리오 / 2012년 4월)>을 읽으면서 고등학교 시절 60 여 명의 학생들로 북적였던 교실 한 켠에서 유달리 말이 없고 조용했던, 지금은 이름은 커녕 얼굴조차 기억이 나지 않아 졸업 앨범을 꺼내 놓고 한 참을 들여 봐야 찾을 수 있었던, 바이올린을 전공했던 “그” 친구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 친구가 우리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우리들 못지않게 고뇌와 방황, 그리고 외로움으로 젊은 날을 보냈다는 것을 아주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부모님을 제외하곤 외할아버지 내외와 외삼촌, 이모 모두 음악가인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나(“사토루”)는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피아노를 배우게 된다. 하지만 “피아니스트”가 되기에는 역부족인 실력 탓에 (외)할아버님은 내게 중학생이면서도 체격이 좋고 가족 중에 아직 첼로 연주자는 없으니까 첼로를 배워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셨고, 나 또한 “명령”같기만 한 할아버님 말씀에 따라 첼로를 배우기 시작한다. 음악을 하려면 예대에 가는 것이 아주 당연한 일이었고 그 외 학교는 모두 이류라는 생각이 집안의 불문율과 같았기 때문에 당연히 예고 입시를 준비하지만 다른 학과 성적이 너무 나빠 그만 낙방하고는 할아버님이 음악 대학 학장으로 계셨던 “신세이” 대학 계열의 음악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예고와는 비교가 안 되는 “3류” 수준의 음악 학교인지라 나의 첼로 실력은 1학년 신입생임에도 불구하고 두각을 나타내고, 나는 학교 연례행사인 “오케스트라” 멤버로 참여하고 학교 축제 연주회에 참여하는 등 바쁜 학창 생활을 보낸다. 그러던 중 입학할 때부터 한 눈에 들어왔던,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동급 여학생 “미나미”와도 풋풋한 로맨스를 시작하게 된다. 어렵기만 했던 멘델스존 피아노 협주곡을 미나미와 함께 연주하고, 오페라를 함께 관람하며 둘 만의 데이트를 하게 된다. 특히 신세이 고등학교에서는 드물다고 할 수 있는 예대 진학을 한 선배에게 자극받아 나와 미나미는 예대 진학을 목표로 그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연습을 하고 음악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둘의 사랑은 갈수록 커져만 간다.

 

그런데 이렇게 행복할 줄 만 알았던 학창 시절은 2학년 여름방학 끝나고 나서부터 큰 변화를 겪게 된다. 독일에서 거주하던 외삼촌과 숙모의 제의로 두 달 여 동안 독일에서 첼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나를 그 누구보다 반가워 해줄 줄 알았던 미나미가 나의 시선을 슬슬 피하는 것이었다. 이유를 물어도 답변을 하지 않는 미나미는 결국 학교를 그만둬 버리고, 사연을 알게 된 나는 깊은 절망감에 빠져 버린다. 그리고는 결국 나를 아껴줬던 선생님을 누명을 씌워 학교에서 내쫓게 만드는 일까지 저지르게 된다. 모든 것이 어그러진 상황, 3학년이 된 나는 결국 앞으로의 내 음악 인생에 희망이 없음을 깨닫고 음악마저 포기하기에 이른다. 그리고는 어쩌면 나의 마지막 연주가 될 지도 모르는 오케스트라와 3학년들 동급생들로 구성된 미니 오케스트라 연주에 열중한다. 오랜 준비 끝에 드디어 미니 오케스트라 연주가 시작되는 날, 학교를 그만뒀던 미나미가 바이올린 연주를 위해 교복을 다시 입고 공연장에 나타난다. 미나미 또한 자신의 삶에서 마지막 연주가 될 지도 모르는 이 공연에 참석하고 싶어 친구를 통해 연습 테이프를 들어가며 준비를 해왔던 것이다. 공연 후 다시 사라져 버린 미나미에게서 미안하고 고마웠다는 편지를 받은 나는 이제야 미나미와 완전한 이별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모함으로 학교를 그만 둔 선생님을 찾아가 사죄를 한다. 선생님은 용서는 할 수 없지만 이해는 하시겠다며 나에게 “배를 타라”로 시작되는 니체의 책 한 구절을 선물한다. 나의 청춘은 이렇게 막을 내린다.

 

이처럼 책은 주인공인 사토루가 음악고등학교에서 3년 동안을 그린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역시 “음악 소설”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악기 연주와 협연 장면들이 꽤나 사실적이고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취재를 통해서 구성한 것 같진 않고 혹시 작가가 실제로 음악을 전공했던 사람이 아닐까 싶어 작가의 이력을 살펴보니 역시나 주인공처럼 실제로 센조쿠가쿠엔 고등학교 음악과를 전공했다고 한다. 또한 출판사 소개글을 보니 작가 스스로도 트라우마였기에 쉽게 들추어낼 수 없었다고 고백한, 자전적인 스토리를 담은 소설이라고 하니 어쩌면 작가의 경험을 고스란히 녹아냈기에 오케스트라 연주나 협주, 그리고 첼로, 기타 악기들의 연주 모습을 이렇게 사실적이고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구나 하고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게 되었다. 또한 십대 후반 고등학생들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그 시절의 방황과 고민, 불안한 심리 상태 등을 치밀하게 그려내는데, 이 또한 관찰자가 아닌 작가 스스로의 경험이었기에 그렇게까지 섬세하게 그려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작가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 같은 은밀한 즐거움과 함께 절로 감정이입이 되면서 주인공과 미나미의 풋풋한 사랑에 입가에 미소를 짓다가도 갑작스레 닥친 상황에 함께 가슴 아프고, 마지막 공연에 나타난 미나미의 모습에 주인공처럼 가슴 먹먹한 아픔을 느끼다 보니 어느새 800 여 페이지 가까운 만만치 않은 분량을 다 읽고야 말았다. 그리고는 눈을 감고는 귓가에 계속 맴도는 클래식 선율 - 물론 책 속에 나오는 클래식 음악들 중 제대로 아는 음악은 거의 없었지만 - 의 여운에 한동안 자리에 머물러야만 했다.

 

그렇다면 작가는 자신의 일기장과 같은 이 글을, 스스로 트라우마처럼 여겼던 상처를 왜 이렇게 소설로 드러내야 했을까? 어쩌면 꼭꼭 숨겨둔 상처를 드러냄으로써 이제는 벗어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 작가는 “배를 타라”라는 말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배를 타면 흔들린다. 파도에 흔들리기 때문에 뱃멀미를 한다.

뱃멀미를 하는 건 괴롭다. 그래서 파도가 잦아들기 바라지만 파도는 잦아들지 않는다. 파도가 잦아들면 좋겠다고 바라는 것은 바다가 평온해 지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뱃멀미는 언제가 없어질 것이다. 그렇지만 흔들림은 언제까지나 계속된다. 뱃멀미가 사라졌을 때 배가 더이상 흔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어른들의 거짓말이다. 어른은 거짓말을 그럴싸하게 한다. 그것도 자신보다 젊은 사람에게. 뱃멀미가 사라졌다고 해서 배가 계속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누가 뭐라고 해도 잊어서는 안 된다. - 하권 P. 362~363

 

인생은 흔들리는 배를 타는 것과 같다고, 처음에 나를 괴롭히던 멀미야 어느 순간 사라지겠지만 배는 계속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잊지 말라고, 청춘은 흔들리는 배를 타고 있는 것처럼 위태롭고 불안하지만 그런 배를 타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 쯤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그리고 작가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흔들리는 배를 타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며 삶의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고 책의 마지막 구절에서 말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시간의 흐름은 오로지 인생을 쇠퇴시킬 뿐이라며 한탄하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인생은 지금부터라든가 살다보면 좋은 일도 있다는 경솔한 말을 입 밖에 낼 정도로 살아오지도 않았다. 나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그 시절과 비교해서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됐다. 천천히, 그러나 끊임없이 파도에 흔들리면서 항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하권 P.368

 

그런데 이 마지막 구절을 읽자 의문이 하나 들었다. 과연 이렇게 끊임없이 파도에 흔들리면서 계속되고 있는 항해의 최종 도착점은 어디일까? “트루먼”(짐 캐리 주연의 영화 <트루먼쇼>)처럼 거짓된 세계에서 벗어나 진실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를 마주하게 될까 아니면 인생에서의 모든 고통과 번민을 벗어나 편안한 안식을 얻게 되는 일종의 “깨달음”의 경지일까? 그 항해의 목적지를 찾는 것은 바로 우리들 독자들의 몫일 것이다. 그러기에 작가도 “그것으로 됐다”로 마무리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음악 소설이라는 색다른 소재가 주는 재미와 성장소설의 감동, 두 가지 모두를 맛볼 수 있었던, 그리고 다 읽고 나서도 귓가에 계속 맴도는 클래식 선율처럼 여운이 오래 남는 책이었다. 다음에는 책 속에 나오는 클래식 음악들을 맞춰 들으면서 읽어봐야겠다. 머릿 속으로 상상했던 음악과 실제 연주 음악은 어떻게 다른 지, 또한 어떤 감동을 줄 지 자못 기대가 된다.

 

끝으로 절친한 동창에게서 서두에서 언급했던 바이올린 전공했던 친구를 거리에서 우연히 만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연락처만 주고 받고 헤어진 터라 자세한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다는 데, 음악은 대학 때 포기하고 지금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이야기만 들었다고 한다. 간단한 근황이지만 그 근황 속에 그 친구도 만만치 않은 흔들림과 뱃멀미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다음 동창회 때 나오기로 약속했다니 수십 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는 셈이다. 학창 시절 변변히 이야기 한 번 못나눴던 내가 먼저 아는 척 하려니 머쓱하기도 하지만 흔들리는 배를 타고 인생을 항해하는 동지로서 그를 반갑게 맞이할 생각이다. 동창회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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