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언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5-1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5
엘리자베스 코스토바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악마인 “흡혈귀(吸血鬼,Vampire)”의 기원이 고대 그리스 신화의 갓난아기를 잡아먹는 괴물인 “라미아(Lamia)가 가장 오래된 원형(原形)이라고 하니, 가히 그 역사가 인간의 역사와 맞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민간 전승이나 신화로만 전해 내려오는 허구의 존재임이 분명하겠지만, 종종 실존 인물들 중에서 흡혈귀로 의심되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고 하는데, 바로 동화 <푸른 수염>의 실제 모델로 수많은 어린이들을 잔인하게 살해했다는 ”질 드레(Gilles de Rais; 1404~1440)” 백작이나 젊음과 미모를 유지하기 위해 소녀들 수백 명을 수시로 납치해 차례로 죽인 후, 그 피로 목욕했다고 알려진 “피의 백작 부인” “엘리자베스 바토리(Bathory Erzsebet, 1560~1614)”가 바로 그들이라고 하겠다. 그래도 흡혈귀로 추정되는 실존 인물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역시 흡혈귀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드라큘라(Dracular)"로 잘 알려진 15세기 루마니아 왈라키아(Walachia) 지방의 영주 “블라드 체페슈(Vlad Ţepeş, 1431~1476)” 일 것이다. 그런데 실제 역사에서는 오스만제국의 군대를 물리친 구국의 영웅으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브람 스토커(Bram Stoker)”의 괴기소설 <드라큘라(1897)> 때문에 졸지에 흡혈귀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으니 너무 억울해서 아마도 지하에서 엉엉 통곡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이 루마니아어로 번역된 시기는 공산주의 정권이 끝난 후인 1990년이었다고 하는데, 그때까지 루마니아에서 드라큘라 백작은 무명(無名)의 존재였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드라큘라의 모델이 블라드 공이라는 사실에 대해 루마니아 현지에서는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을 보인다고 하는데, 관광에 이용할 수 있다고 좋아하는 이들도 있는 반면, 조국의 영웅을 괴물 취급하는 것에 대해 불쾌해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위키 백과사전 발췌). 그런데 이번에 블라드 공을 무덤에서 뛰쳐나오고 싶어할 만한 그런 소설을 만났다. 바로 “엘리자베스 코스토바”의 <히스토리언(원제 The Historian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2년 1월)>이다. 이 책은 500 년 전에 죽었다는 블라드 체페슈가 아직도 살아 있다고 말하고 있으니, 그것도 놀라울 만큼 상세하고 치밀한 역사적 자료들까지 내밀고 있으니 브람 스토커가 죽은 블라드 공의 심장에 박아 놓은 말뚝을 더욱 깊이 밀어 넣고, 여기에 “흡혈귀”라고 쓴 낙인을 이마에 찍어 버리기까지 하는- 아무리 흡혈귀 소설이라고 해도 비유가 너무 거칠고 잔인한 것 같다^^ -, 블라드 공에게는 “부관참시(剖棺斬屍)”와도 같은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1972년 16세 소녀인 “나”는 아버지의 서재 제일 꼭대기에서 노랗게 바랜 편지 뭉치를 찾아낸다. 편지는 42년 전인 1930년 12월 12일 날짜로 “ 이 편지를 읽을 불행한 이에게”로 시작된다. 일부만 읽고 황급히 편지를 봉투 안에 집어넣었지만 편지의 기이한 분위기 때문에 쉽게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던 나는 외교관인 아버지(“폴”)를 따라 나선 슬로베니아 알프스 여행 길에 편지 얘기를 물어본다. 망설이던 아버지는 어느 미국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공부하던 시절에 색 바랜 가죽 택등에 작고 섬세한 녹색 용이 그려져 있는 이상한 책을 우연하게 발견했던 이야기부터 조심스레 털어놓는다. 자신의 담당 교수인 “로시”를 찾아가 책을 책을 보여주자 로시 교수는 책상 뒤 모퉁이로 걸어가 작고 검은 책을 아버지에게 내놓는다. 그 책 역시 자신이 들고 온 책과 똑같은 모양의 용이 그려져 있는 책이었다. 로시 교수는 자신이 이 책을 갖게 된 내력과 말뚝왕으로 알려진 “블라드 체페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마지막에 도저히 믿기지 않는 말을 내뱉는다.

 

“드라큘라 블라드 체페슈......그는 아직 살아 있네”

 

그리고 다음날 로시 교수는 책상 위에 핏자국을 남긴 채 실종되어 버리고, 아버지는 로시 교수의 딸인 “헬렌 로시” - 바로 나의 어머니이다. 즉 아버지의 은사이자 1930년에 드라큘라 무덤을 찾기 위해 여행에 나섰던 로시 교수는 나의 외할아버지였다 - 와 함께 드라큘라의 존재와 무덤을 찾아 터키, 헝가리, 불가리아로 이어지는 여행을 떠나게 된다. 여행길에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던 아버지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편지 한 장만 남긴 채 그 옛날 로시 교수처럼 홀연히 사라져 버리고, 나는 그런 아버지를 찾기 위해 집을 떠난다. 나를 옥스퍼드에서 암스테르담 집에 데려다 주기 위해 나섰던 대학생 “발리”는 혼자 집을 나선 내가 영 불안해서 여행에 동참하게 된다. 나와 발리는 아버지가 남긴 편지들을 읽으면서 아버지의 뒤를 추적한다.

 

<히스토리언>은 몇 해 전 다른 출판사에서 세 권으로 출간된 구판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적이 있었다. 구판을 읽으면서 너무 방대한 이야기 때문에 언제고 다시 한번 읽어야지 마음 먹었는데 그 바람이 이루어졌는지 한 권 728 페이지로 묶어 나온 개정판을 다시 읽게 되었다. 이미 읽었던 책인데도 새 책을 읽는 듯한 흥미와 재미를 고스란히 느끼게 해준 이 책, 개인적으로 뱀파이어 소설이나 영화를 즐겨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책에 흠뻑 빠져 웬만한 목침(木枕)만한 두께의 책을 전혀 지루함 없이 읽게 만드는, 읽는 내내 마치 내가 책 속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드라큘라가 드리우는 어둠과 공포의 그림자에서 허우적 거리게 만들었던 소설이었다.

 

이 책의 장점은 역시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물어 버리는 “팩션(Faction)" 소설 특유의 재미를 극대화했다는 데 있을 것이다. 책 속에 인용되는 수많은 자료와 민간전승 들은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허구인지를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상당히 치밀하고 상세하다. 팩션 소설 중 가장 성공한 <다빈치 코드>에서의 예수 결혼설이나 유럽 도피설 등은 이미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오래전부터 널리 알려졌던 대표적인 음모론인데다가 표절 시비까지 붙었던 역사 논픽션인 <성혈과 성배>가 이미 1982년에 출간되어 있으니 자료 조사나 설정에 그다지 어렵지 않았을 텐데, 브람 스토커 때문에 유명해졌다고 하지만 유럽 변방 국가 지방의 영주에 불과했던 지라 사료며 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했을 텐데 오로지 작가의 상상력 만으로 500년 전 인물인 “블라드 체페슈”를 이렇게까지 생생하고 치밀하게 복원해내어 독자로 하여금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혼동케 만들어 버리다니 절로 감탄이 터져 나오게 만든다. 그렇다 보니 <다빈치 코드>를 뛰어넘는 지적 쾌감이라는 홍보 문구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그런데 블라드 체페슈에 대한 각종 자료들과 전설들만 빼곡이 담아냈다면 지루했을 텐데 작가는 소설적인 긴장감과 재미를 적절하게 배치하여 지루할 겨를이 없게 만든다. 책 도입부부터 위에서도 언급한 로시 교수의 말로 이 책 심상치 않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게 하더니, 드라큘라를 추종하는 흡혈귀들이 주인공들을 위협하고 드라큘라의 재림을 두려워하는 오스만 제국의 후예들이 수백 년 동안 비밀결사를 결성해 맞서 왔다는 설정, 또한 로시 교수와 루마니아 시골 여인, 아버지 폴과 어머니 헬렌의 애틋한 로맨스와 현재의 어린 소녀 대학생 발리의 풋풋한 로맨스에 이르기까지 주인공들의 러브 라인들도 곁들여 지루하기만 할 것 같은 드라큘라 추적에 활기를 불어 넣는다. 여기에 터키, 동유럽, 그리고 서유럽 각 유명 명승지나 오래된 건축물, 그리고 서로 다른 시대의 사회, 정치, 문화 환경에 대한 세밀한 묘사 등은 마치 뮤지컬이나 영화에서 수시로 바뀌는 다채롭고 화려한 무대와 장소적 배경 때문에 시선을 사로잡는 것과 같은 시각적인 즐거움마저 느끼게 만든다. 이처럼 “드라큘라”라는 흥미로운 소재, 사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팩션 소설적 재미와 역사의 베일에 감춰진 진실 - 물론 작가가 의도해낸 허구이지만 - 에 조금씩 다가가는 지적인 즐거움, 그리고 유럽 전역을 장소적 배경으로 하는 시각적인 즐거움 등 베스트셀러가 갖춰야 하는 재미와 흥행 코드는 모두 담고 있는 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 쉽게 읽혀지는 책은 아니다. 우선 책에서 상당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동유럽과 오스만제국(지금의 터키) 역사와 문화, 그리고 블러드 체페슈에 관련한 수많은 자료들은 사전 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영 낯설게만 느껴지게 만든다. 그리고 세 주인공 남녀가 드라큘라를 추적하는 여정도 늘어지는 면도 없지 않아 지루하게 느껴질 수 도 있다. 특히 흡혈귀들과의 대결이 간간히 등장하긴 하지만 이렇다 할 공포스러운 장면들이나 액션씬이 등장하지 않다 보니 흡혈귀 소설이나 영화 특유의 자극적인 공포를 기대했던 분들이라면 실망스러울 수 있겠고,  또한 <트와일라잇>처럼 환상적인 로맨스를 기대했던 분들이라면 역시나 이 책에 등장하는 로맨스가 영 밋밋하고 싱겁다고 느껴질 것이다. 그렇다 보니 이 책을 먼저 읽은 지인들 중에 중도에 읽기를 포기하고 책을 덮어버리는 분들이 몇 분들 있었고, 나도 구판을 읽을 때는 중간에 덮어두었다가 나중에 다시 읽었던 경험이 있다. 그런데, 결코 중간에 포기하지 말기 바란다. 결말 부문은 혹시 느꼈을 지도 모르는 밋밋함과 지루함을 보상이라도 하듯 충분히 재미있고 스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결말을 밝힐 수 는 결말이 실망스러웠다는 독자들도 적지 않은 것을 보면 역시 책에 대한 평가는 개개인마다 다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앞서 말한 대로 흡혈귀 소설이나 영화를 즐겨하지 않다 보니 읽은 책도 몇 권 되지 않고 앞으로도 그다지 읽을 것 같진 않지만 개인적으로 읽은 권수를 떠나서 완성도와 재미가 뛰어난 흡혈귀 소재 소설을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망설임 없이 이 책을 추천할 것 같다. 베스트셀러는 죄 영화화하는 요즈음 헐리우드 추세이다 보니 영화화 소식이 빠질 수 없는데, 역시나 “소니 픽처스”에서 거액을 주고 판권 계약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책이 출간된 게 2004년이니 벌써 8년이 넘게 흘렀는데도 영화가 제작 완료 되었다는 소식이 없고, 영화사 홈페이지 신작 리스트에도 없는 것을 보면 영화로 만나기는 요원할 것 같다. 2007년 어떤 신문 기사에는 소니가 각본 작업 중이라고 하던데 이런 이런 무슨 각본 작업을 5년씩이나 한단 말인가. <트와일라잇>으로 불기 시작한 뱀파이어 열풍이 사그라지기 전에 영화로 만나보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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