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파이어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5-4 존 코리 시리즈 4
넬슨 드밀 지음, 김홍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전 세계 국가 중에서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핵물질을 이용한 공격, 즉 핵 테러를 가장 두려워하는 국가는 역시 “미국(美國)”일 것이다. 이런 미국의 핵 테러에 대한 공포는 한 두 해 사이에 생겨난 게 아닌데, 1991년 구소련 붕괴 후 관리 소홀로 인한 핵물질 및 핵무기 유출 문제가 국제적인 이슈로 떠오르면서 핵 테러의 가능성이 급부상하기 시작했고, 2001년 “9ㆍ11 테러”를 겪으면서 미국의 핵 테러에 대한 공포는 언제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즉 실현 가능성이 매우 높은 위험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 보니 이번에 서울에서 열린 “핵 안보 정상회의(Nuclear Security Summit)”에서 전 세계 정상들이 핵 테러 방지를 위한 11개 주요 과제에 합의했다고 하는데,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각국 정상들의 의지를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그만큼 미국의 핵 테러에 대한 공포가 얼마나 크고 심각한지를 알려주는 증거 - 이 회의의 제안자가 바로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고, 2010년 1회 회의를 미국 워싱턴에서 열었다 - 이라고 할 수 있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을 보유한 미국이 가장 핵을 무서워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실제로 일어난다면 이만큼 끔찍한 사건은 없겠지만, 가상(假想)으로야 참 흥미로운 소재인지라 지금 당장 생각나는 영화만 해도 대 여섯 편에 이를 정도로 드라마나 영화의 단골 소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이런 핵 테러를 소재로 한, 그것도 그동안 만나본 어느 영화보다도 가장 끔찍한 상상을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서구 스릴러 소설을 만났다. “넬슨 드밀(Nelson DeMille)”의 <와일드 파이어(원제 Wild Fire / 랜덤하우스코리아/2012년 2월)>이 바로 그 책이다.

 

9·11 테러가 일어난 지 1년 후인 2002년 10월 어느 금요일, 전직 뉴욕 시경 강력계 형사이자 연방 대테러 특별 기동대(Anti-terrorist Task Force, ATTF)" 의 특수 계약직 요원인 “존 코리”는 토요일부터 시작되는 콜럼버스 기념일 3일 연휴 중 이틀을 아내인 FBI 요원 “케이트 메이필드”와 함께 주말여행을 하기로 계획한다. 퇴근 전 만난 선배인 “해리 밀러”가 주말에 뉴욕 주 북부의 오지에 있는 “커스터 힐 클럽”에서 회합을 갖는 극우 인사들의 감시 업무를 수행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비정상적이라거나 특이한 부분은 없지만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다. 현재 미국은 이라크와 전쟁에 돌입하기 직전인 상황이고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전쟁이 진행 중인 상황인데 극우들의 모임이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 수준은 아마 낮음과 전무 사이의 어딘가에 불과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비록 약간 이상한 점이 있지만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느낀 코리는 아내와 예정된 주말여행을 떠난다. 이틀 후 월요일, 출근한 코리는 상관인 FBI 주임 특별 요원 “톰 월시”에게서 해리의 실종 소식을 전해 듣는다. 월요일 아침 커스티 힐 클럽 감시 내용과 사진들을 보고하기 위해 출근했어야 할 해리가 출근 하지 않았을 뿐 더러 연락조차 전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원래는 자신이 감시 업무에 배정되었지만 아내와의 주말여행이 계획되어 있어 대신 해리가 그 업무를 맡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해리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해리의 신상에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직감한 코리는 윌시에게 자신이 해리의 실종 사건을 맡겠다고 강력히 주장하고는 아내와 함께 커스터 힐 클럽으로 향하게 된다. 과연 그저 우익 인사들의 사교 클럽인 줄 만 알았던 커스티 힐 클럽에서 지난 주말에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실종된 해리는 과연 무사할까? 책은 상상하기도 끔찍한 핵 테러에 얽힌 비밀과 음모를 낱낱이 우리에게 밝힌다.

 

(이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1978년 데뷔한 이래 30여 년 동안 20 여 편이 넘는 소설을 발표하고, 8편이 영화 판권이 팔렸으며 그중 3편이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되었다는 인기작가인 “넬슨 드밀”은 이 책으로 처음 만났다. 책을 받아들고서는 낯선 작가 기피증 - 특히 서구 작가들에 대해서는 정도가 더 심하다 - 이 있는데 다가 웬만한 책 2권 분량인 592 페이지, 거기에 빽빽한 줄 간격과 작은 글씨 때문에 이 책 언제 다 읽나 싶어 막막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막상 읽기 시작하니 술술 잘 읽혀 평일 퇴근 이후 여유 시간에 읽었음에도 며칠 만에 한 권을 뚝딱 다 읽었으니 제법 빨리 읽히는 책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현재 미국인들에게 있어 가장 실제적이고 실현 가능한 최고의 공포라 할 수 있는 “핵 테러”라는 흥미진진한 소재 때문이었다.

 

종종 영화에서 핵 테러는 “알 카에다(Al-Qaeda)”와 같은 이슬람 테러 단체가 구 소련에서 흘러나온 핵무기를 비밀리에 반입하여 미국 대도시들을 공격하려고 모의하고 이를 미국 경찰이나 첩보원이 막아낸다는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이 책에서는 기본 맥락은 같은데 핵 테러의 주체가 이슬람 테러리스트를 위장한 미국 극우 세력으로 설정한다. 즉 주인공 코리의 동료인 해리가 감시했던 “커스터 힐 클럽”에 모인 인물들, 즉 대통령 특별 보좌관, 군 장성(將星), CIA 고위 간부 등 면면이 참 화려한 그들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자신들의 조국 영토 - 책에서는 4개의 핵배낭을 미국 서부에 위치한 두 도시에서 터뜨리려고 한다 - 에 핵을 터뜨리려고 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가상의 핵 보복 프로그램인 “와일드 파이어(Wild Fire)” 계획이 숨어 있다. “와일드 파이어”란 미국 영토 내에 이슬람 세력에 의해 핵, 화생방 공격 등으로 치명적인 피해가 발생할 경우, 테러 발생 수십 여 분 안에 준비된 절차에 의해 중동의 주요 도시들에 수 십에서 수 백기에 이르는 핵미사일을 발사하여 보복한다는 계획이다. 대상 도시는 50 여개인 A 리스트와 122 개인 B 리스트로 나뉘는데, B의 경우에는 최대 3억 명 이상이 죽고 이슬람 세력을 아예 지도에서 지워 버리는 “이슬람 말살 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클럽 멤버들은 9·11 테러를 보복하기 위한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와의 전쟁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고 수많은 미군 장병들이 희생될 것이 뻔한 이상 값싸지만 가장 확실한 살상 무기인 핵을 사용하여 비용과 장병들의 희생도 획기적으로 줄이고 이참에 화근인 이슬람의 씨를 말려 버리자는 참 극우(極右)스러운 발상을 실행에 옮기려는 것이다. 여기에는 겉으로는 사탄 그 자체인 이슬람 세력을 제거해 하나님의 정의를 현세에 실현하고, 미국의 영구적인 평화를 가져오겠다는 그럴싸한 명분(?)으로 위장하지만 속내는 석유 재벌인 클럽 모임 회장이 핵전쟁 이후 무주공산이 된 중동 지방의 유정(油井)을 차지하겠다는 추악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어 마치 9·11 테러가 사실은 중동 석유 패권을 차지하려는 미국의 자작극에 의한 것이라는 음모론을 연상시키게 한다.

 

그런데 과연 이런 계획이 실제로도 있을까? 작가는 “저자의 말”에서 “와일드 파이어”라는 정부 비밀 계획은 자신이 접했던 정보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대부분의 정보는 온라인에서 접했기 때문에 일종의 소문이나 실제 사실, 순수한 허구, 혹은 진실과 허구가 뒤섞인 정보, 어느 쪽으로든 해석이 가능하지만 자신은 개인적으로 와일드 파이어의 몇 가지 변형들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으며, 만약 그렇지 않다면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실재한다는 것인지 허구란 것인지 뉘앙스가 묘하지만 이런 계획이 실재(實在)한다면 9·11 테러를 납치한 비행기로 저질렀기에 망정이지 핵으로 저질렀다면 물경 3억 명 이상이 죽을 뻔 했다니 이 책을 읽은 이슬람 테러 단체는 가슴을 쓸어내렸을 지도 모르겠다. 물론 3,000 여 명의 희생자를 낸 9·11 테러 이후 벌어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의 희생자가 군인, 민간인 다 합쳐서 수십 만 명에 달한다고 하니 결코 작다고는 볼 수 없지만 말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존 코리”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을 수 가 없을 것 같다. 이 책이 “존 코리” 시리즈의 4번째 작품이라고 하니 이미 여러 사건들에서 종횡무진 활약을 펼쳤을 것으로 짐작 - 이 책에는 전작들에서 겪은 사건들이 코리의 입을 통해서 간간히 소개된다 - 되는 이 친구는 자신은 1년 전 9·11 테러 당시 간발의 차이로 목숨을 건졌지만 적잖은 동료들을 잃게 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인물로 나온다. 그런데 전작에서는 세발의 총알이 몸에 박힐 정도로 위험천만한 순간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 책에서는 이렇다 할 액션씬은 선보이지 않는 대신 화려하고 거친 입담을 유감없이 선보인다. 출판사 소개글에서는 “무례할 정도로 재치 넘치는 이 터프가이의 유머 감각”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서양 특유의 성적 농담과 유머를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탓인지 내가 코리의 상관인 월시였다면 복창이 터져도 열 번은 더 터졌고, 곁에 있었다면 확 쥐어 패고 싶을 정도로 “밉상” 그 자체인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처음 코리의 입담을 접했을 때는 꽤나 냉소적이고 재미있는 캐릭터이구나 싶었다가 갈수록 가볍기 짝이 없고 무례한 농담들을 남발해대자 참 어이없고 짜증스럽기까지 했다. 일견 “나쁜 남자”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는데, 여자들에게는 착한 남자보다는 나쁜 남자가 더 매력적일 수 도 있겠지만 - 그러니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아름다운 미녀를 아내로 삼고 있겠지만 - 나에게는 영 정이 안가는 그런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다.

 

소재와 주인공까지 소개했으니 이제 이야기 전개를 마지막으로 언급해보자. 책은 토요일, 일요일 이틀 동안 커스터 힐 클럽 경비원들에게 붙잡힌 해리가 인질로 멤버들의 회합에 강제로 참석하여 와일드 파이어에 대한 전모를 고스란히 전해 듣는 과정을 전반부 상당한 분량을 할애한다. 사실 여기서 긴장 요소라고 하면 비밀을 듣게 된 해리가 과연 언제 살해당하느냐 인데 금세 죽어 버리는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해리는 꽤나 오랫동안(?) 살아 남는 게 색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그 다음에는 월요일 오전부터 코리와 메이필드가 커스팅 힐 클럽으로 향하여 해리의 실종 사건 - 결국 화요일 아침 시신으로 발견된다 - 을 수사하고 클럽을 방문하여 탐색하는 과정을 그리는 데, 여러 가지 단서들을 증언을 통해서 진실에 조금씩 접근해가는 과정이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것 같은 긴장감과 재미를 느끼게 한다. 그런데 결말이 다가오는 데도 딱히 해결 국면이 등장하지 않고 긴장감만 지속되고, 남은 페이지가 자꾸 얇아지자 불안감마저 들기 시작한다. 이거 몇 번 총질 끝에 악당이라고 할 수 있는 클럽 멤버들 모두 죽어 버리고 끝나는 거 아냐 하는 그런 불안감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액션 끝에 후다닥 마무리하는 결말은 아니어서 다행이긴 하지만 핵 테러가 예정된 시간인 화요일 저녁에 그만 딱 끝나고 마는 것이다! 이건 변죽만 잔뜩 올린 셈이 되고 만 것 아닌가. 너무 허무한 결말에 마지막 페이지를 다시 봤지만 “끝” 이라는 분명하게 박혀 있다. 확 책을 집어 던지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혹시 몰라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보니 먼저 읽은 독자 분께서 이 한 권에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후속권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셔서 그럼 그렇지 하며 책 뒷 표지를 손으로 쓸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왠지 괘씸하다. 한참 열이 오를 찰나에 찬물을 확 끼얹는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 책을 덮고서는 후속편은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상상해보니 입심만 과시하던 코리가 드디어 총을 빼들고 격렬한 액션을 선보여 음모 세력을 처절히 응징한다는 뻔한 이야기라는 것을 쉽게 예측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왕 후속권으로 이어진다면 클럽 멤버들이 꾸민 핵 테러가 그대로 일어났다고 가정해보면 어떨까? 미국은 최악의 혼란에 휩싸이고 와일드 파이어는 계획대로 실행되어 전 세계가 아마겟돈의 상황으로 치닫게 되는 “종말론적” 상황 말이다. 너무 허무맹랑한 것 같지만 매번 주인공이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테러를 막아낸다는 식상한 결론보다는 차라리 더 기발하고 참신한 결말이 되지 않을까? 물론 코리 시리즈는 여기서 막을 내려야 하겠지만 말이다.

 

핵 테러라는 흥미로운 소재, 독특하고 매력(?)적인 캐릭터, 액션 스릴러 특유의 긴장감과 스릴 등 분명 재미있는 소설이긴 한데 최종 평가는 결말이 담겨진 후속편을 읽고 난 뒤로 미뤄야겠다. 언제 후속편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기다리는 동안 주인공 존 코리가 활약한 전편들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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