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메이어
앤드류 니콜 지음, 박미영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앤드류 니콜”의 <굿 메이어(북폴리오/2012년 1월)>를 받아들고서 표지를 한참 들여다봤다. 파스텔톤의 옅은 블루와 핑크 색상 배경에 하얀색 음영(陰影)으로 그려진 도시와 다리, 그 위로 검은색 음영으로 그려진 신사(紳士)와 숙녀(淑女)가 손을 잡고 있고, 신사는 풍선으로 보이는 제목인 <굿 메이어>에서 내려 뜨려진 끈을 붙잡고 있다. 표지만 봐도 로맨스 소설일거란 연상이 들 정도로 예쁜 표지였다. 아니나 다를까. 표지 좌측 하단에 “출간 즉시 26개국 판권 수출! 유럽과 북미 대륙을 매료시킨 존경받는 시장의 가슴 아픈 러브 스토리!”라는 문구가, 우측 하단에는 “환상적인 세부묘사와 매혹적인 통찰력, 유머까지 겸비한 이 동화 같은 로맨스는 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를 위한 진정한 선물이다 - 퍼블리셔위클리”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로맨스 소설은 즐겨하지 않은 장르 - 물론 어렸을 때야 눈물이 날 정도로 가슴 아픈 로맨스 소설도 마다하지 않고 잘 읽었는데 나이가 들고 나니 이제는 영 아니다 - 인데다가 그나마 판타지나 SF 설정이 가미된 “판타지 로맨스” 소설 정도만 그것도 간간이 만나볼 정도로 꺼려하는 장르인데 “가슴 아픈”, 거기에 “동화 같은” 로맨스라니 표지와 문구만으로도 난감함마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책꽂이에 꼽아 놓고 한동안 눈길도 안주다가 결국에 읽게 된 이 소설, “의외로” 참 재미있었다. 단 납득이 안가는 결말 부문의 이야기만 빼고 말이다.

 

해안가에 작은 섬이 어찌나 많은지 지도 제작자들이 일찌감치 지도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포기했던 발트 해 북쪽 멀리 어디쯤인가 위치한 도시 “도트”시의 시장(市長, Mayor)직을 거의 20년간 수행해온 “티보 크로빅”은 시장으로서 시민들에게 봉사하고 시민들과의 만남을 즐기는, “시장”이 천직(天職)같은 사람이다. 그의 신실(信實)한 모습에 시민들은 그를 “선량한(Good) 티보 크로빅”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선량한 그이지만 사랑에는 영 “숙맥(菽麥)”이라 자신의 아름다운 여비서이자 유부녀인 “아가테 스토팍”을 사모하면서 내색도 못하고 문틈으로 그녀의 행동만 훔쳐보고 마는 가슴 아픈 외사랑을 한다. 시장의 외사랑을 눈치채지 못하는 아가테 또한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다. 한때는 그 누구보다도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부부였지만 아이를 잃고 차갑게 식어버린 남편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해 속옷까지 새로 구입해 입어 보지만 남편은 그녀를 외면하기만 하고 그녀는 자신의 결혼 생활이 예전처럼 행복할 수 없다는 것에 상심해 한다. 어느날 시청 앞 분수대에서 홀로 점심을 먹던 아가테가 그만 도시락을 물에 빠뜨리자 그걸 지켜보던 티보가 엉겁결에 그녀에게 점심을 같이 먹자고 제안하자 아가테는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티보는 꿈에 그리던 아가테와 점심 식사를 하게 된다. 이때부터 둘의 사랑이 시작된다. 매일 점심 식사와 휴일 음악 공연까지 같이 관람하러 가면서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는 사이로 발전하지만 사랑에 서투른 티보는 키스와 사랑한다는 고백을 바라는 아가테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 이에 실망한 아가테는 “나쁜” 남자인 자신의 남편 사촌 동생 “헥토르”에게 끌려 불륜을 저지르고 아예 집에서 뛰쳐 나와 사촌 동생과 동거하기에 이른다. 그로부터 3년 후 여전히 티보는 시장으로 아가테는 시장의 여비서로 근무하고 있다. 한량(閑良)인 헥토르에게 몸과 마음을 다 바치는 답답하기 그지없는 생활을 이어가는 아가테를 티보는 여전히 바보처럼 사랑하고 있다. 그러던 중 헥토르가 시체로 발견되는 사고가 일어난다. 과연 티보의 해바라기 사랑은 해피엔딩으로 결말을 맺을까? 이야기는 다행히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지만 영 이해가 되지 않는 결말로 끝을 맺는다.

 

이 책,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랑에는 착하기만 한 남자의 바보- “숙맥”을 영어로 “fool"로 번역하기도 하니 ”바보“가 어울리는 말이다 -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가테만을 바라보는 티보의 사랑은 말이 좋아 “바보”지 참 답답하기 이를 데 없는, “멍청한”이라고 표현한 어느 독자의 말이 딱 제격인 그런 사랑이다. 그런데 우연찮게 제안한 점심 식사 제안에 아가테가 응하면서 - 여기에는 찻잔으로 점(占)을 치는 카페 늙은 주인의 조언도 한 몫을 한다 - 사랑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둘의 사랑이 어떻게 이뤄질까 하는 기대감에 페이지를 계속 넘기게 된다. 그런데 그녀와의 계속된 만남에도 여자가 원하는 스킨십을 하지도 못하고 “사랑한다”는 의미의 단어까지 들려줬음에도 눈치 채지 못하는 티보가 영 답답하기만 하다가 갑작스레 나쁜 남자인 남편의 사촌 동생의 매력에 끌려 동침하고 남편과 결별하는 아가테의 모습에서는 어리둥절함마저 들 정도로 황당함이 느껴졌다. 결국 이 책도 나쁜 남자의 매력에 이끌린 여주인공이 착한 남주인공을 차버리는, 그래도 남자 주인공은 여전히 여주인공을 사랑하는, 막장 드라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그런 이야기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책을 확 덮어 버릴까 하다가 도대체 티보가 얼마나 더 가슴 아파하고 기다려야 사랑이 이뤄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책을 마저 읽었다.

 

역시나 나쁜 남자에게 얽매여 버린 아가테는 몸과 마음까지 다 바쳐 희생하는 “뻔한” 이야기로 흐르는데 헥토르와 아가테가 크게 싸우고 얼굴이 하얗게 변한 헥토르가 집을 뛰쳐나가는 대목에서 이야기는 새로운 분기점을 맞이한다. 일견 “비극(悲劇)”적인 결말이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파오기도 했지만 죽는 쪽은 바로 그 남자였고 아가테는 죽지 않아 이제야 아가테와 티보의 사랑이 결실을 맺는구나, 너무 멀리 돌아왔지만 그래도 다행이구나 싶었는데 여기서 이야기가 갑자기 이상하게 전개된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뭐가 이상한지 밝힐 수 는 없지만 표지에 “동화(童話)같은” 이라는 문구가 어울리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데, 나는 영 납득할 수 없었던 그런 전개였다. 어느 분 표현대로 깜짝 놀랐다고 해야 할 지 아니면 기묘를 넘어 기괴하다고 해야 할 지 영 난해한 이야기 전개에 대해 다른 분들 서평을 읽어보니 일종의 “비유(比喩)”로 해석하는 분들도 있는데 쉽게 납득이 가진 않았다.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어 다행이다 싶었는데 영 찜찜하기만 한 그런 결말이었다. 하긴 이 책의 화자(話者)가 장식물로, 그림으로 도시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도트시의 상징인 1200년 전 죽은 수호성인이었으니 처음부터 “판타지”스러운 설정을 눈치 채지 못한 나의 몰이해가 큰 이유였을 것이다. 차라리 동화나 판타지적인 전개가 아니라 깊은 상처를 입었지만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서로를 보듬으며 비로소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는, 어쩌면 상투적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면 더 진한 감동을 느꼈을 수 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럼에도 이 책, 로맨스를 즐겨하지 않는 내가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어낼 만 한 재미있는 책임에는 틀림없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작가가 그림이나 장소를 묘사하는 솜씨는 머릿 속에서 그대로 그려볼 수 있을 정도로 탁월해서 감탄이 절로 터져 나오게 만드는데, 그걸 보면 결코 이 작가, 글솜씨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충분히 계산하고 의도한 글쓰기였다고 할 수 있고, 그런 의도를 제대로 간파해내지 못한 나의 감상을 탓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얼마전 인기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서 한 출연자가 자신과 같은 노총각들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를 불러 공감을 불러 일으킨 것처럼 이 책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뜻 다가서지 못하고 “해바라기”만을 하는 “선량한 바보”들에게 용기가 되어주는 소설이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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