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광대 - 김명곤 자전
김명곤 지음 / 유리창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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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廣大): 가면극, 인형극, 줄타기, 땅재주, 판소리 따위를 하던 직업적 예능인을 통틀어 이르던 말. 한자를 빌려 ‘廣大’로 적기도 한다.(네이버 국어 사전)

 

 

재주(才操) 있는 사람을 일컫는 말인 “광대”는 순우리말(어원이 <훈몽자회(예산 문고본)(1527)>이라고 한다)로 한자(漢字)로 적을 때는 “廣大”로 적는다고 한다. “넓고 큼”의 의미인 “광대”에는 어떤 뜻이 숨겨져 있을까? 국립극장장, 문화관광부 장관을 역임했던, 그러나 이런 국가 기관장 타이틀보다는 영화 <바보선언(1984)의 절름발이 청년 “동철”, 영화 <서편제(1993)>의 소리꾼 “유봉”, 그리고 고(故) 노무현 대통령 노제(路祭) 연출자로서 더 인상적이었던 배우 “김명곤”씨의 자전(自傳) <꿈꾸는 광대(유리창/2011년 12월)>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어느 언론사와 한 “저자와의 대화”에서 광대의 의미를

 

 

“저는 광대라는 뜻을 넓을 광자 큰 대자, 뜻 그대로 넓고 큰 예술적 영혼으로 이 사회의 많은 분들의 고통을 껴안고 그분들의 영혼을 위로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해석을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예술의 길도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고요."(오마이뉴스, 2012.1.18.기사)

 

 

라고 설명한다. 아마도 세상사 모든 애환과 시름을 끌어안아 특유의 웃음과 해학으로 승화시키는 그네들의 삶과 연기가 마치 미추(美醜)를 구분하지 않고 모든 것을 끌어안는 광활한 대지와 같다는 의미라는 말일 것이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광대”의 길이었다고 말하는, 그리고 아직도 그 길을 꿈꾸고 있다는 그의 자전에는 어떤 인생사가 담겨 있을까?

 

 

그는 머리말 <꿈을 꾸는 사수>에서 자신이 꿔 왔던 수많은 꿈을 “불후의 명작”에 대한 꿈이라고 압축해서 말하며, 오늘도 자신은 ‘한심한 꿈’을 꾸는 몽상가라고 지칭한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잡지사 기자로, 독일어 교사로, 연극배우로, 영화배우로, 소리꾼으로, 연출가로, 작가로, 기획자로, 제작자로, 극장 경영자로, 장관으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며 쉴새 없이 화살을 쏘았지만 때로는 과녁에 맞은 화살도 있지만 수많은 화살이 빗나갔다고 독백하며, 그 모든 화살은 여전히 자신의 가슴에 있으며, 과녁을 맞힌 화살보다 맞히지 못한 화살이 자신의 가슴을 아프게 찌른다고 독백한다. 이 책은 그렇게 자신의 꿈을 위해 수없이 쏘았던, 영광보다는 아픔과 상처가 더 많았던 자신의 지난날을 고백한 글인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제 숨을 고르고 활을 내려놓을 나이가 되었건만, 아직도 서투른 솜씨로 열심히 활을 쏘는 “꿈을 쏘는 사수”라고 말한다. 그의 꿈은 지나간 과거형이 아니라 아직도 현재 진행중인,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미래형”이라는 말일 게다. 어쩌면 이 책은 자전(自傳)의 형식을 빌어 쓴, 그를 배우로 기억하는 모든 이들에게 그 모습을 잊지 않고 지켜나가겠다는 미래에 대한 약속(約束) 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본문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그의 출세작인 <서편제> 캐스팅 일화를 들려준다. 연극 관계 일로 분주했던 1992년 7월 말, 임권택 감독에게서 의논할 일이 있으니 만나자는 전화가 걸려온다. 무슨 일일까 궁금해 하며 약속 장소에 나간 김명곤에게 감독은 이청준 선생의 <소리의 빛>이라는 단편 소설을 영화로 만들까 하는데, 김명곤에게 각색과 주연을 맡아달라고 청해온다. 당대 최고의 감독인 임 감독과 작품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출연을 수락한 그는 대학시정부터 20년 넘게 판소리를 짝사랑해오고 배워온 자신의 경험을 십분 살려 영화 제작과 촬영에 적극 임하게 된다. 영화는 알려진 바대로 한국 영화사상 초유의 “100만 관객 돌파”라는 대흥행을 거두고 그에게는 <서편제>의 소리꾼 “유봉”이라는 타이틀로 각종 영화상을 수상했고 그후로도 오랫동안 자신의 이름 뒤에는 “서편제”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니게 된다. 그런 수식어가 부담이 되었는지 언제쯤 <서편제>의 족쇄에서 벗어날까라고 자문하면서 그 족쇄가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었고, 자신의 인생을 더욱 행복하게 조여줄 족쇄가 아닐까라며 복에 겨워 잠깐 투정을 부린 것이라고 자답한다. <서편제>는 자신의 기나긴 판소리 사랑의 결실을 맺게 해준, 자신이 꾼 많은 꿈을 하나씩 이루어갈 토대가 되어준, 그리고 앞으로 <서편제>를 뛰어넘는 새로운 작품을 하라는 ‘꿈 너머 꿈’을 제시해준 소중하고 귀중하며 보물 같은 작품이라는 말이다.

 

 

그는 1부 <나의 꿈에 날개를 달다>에서 이처럼 <서편제> 이야기와 함께 그가 만난 많은 사람들과의 인연을 들려준다. <서편제>에 함께 했던 배우 “오정해”, 자신의 작품을 마음대로 각색하라며 막걸리를 건네준 “이청준” 작가, 자신에게 영화의 길을 열어준 “이장호” 감독, 그리고 자신이 만난 최고의 관객이었던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독설(毒舌)로 인연(因緣)을 맺게 되었지만 자신을 문화부장관으로 임명했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일화와 모든 이들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노제(路祭)”를 연출했던 당시의 이야기를 차례로 소개한다. 2부인 <꿈의 씨앗이 자라다>에서부터 본격적인 자신의 과거 이야기가 시작된다. 2부에서는 음악을 사랑하셨던, 자신에게 예술의 혼을 불어 넣어준 부모님과 그에게 문학의 눈을 뜨게 해준 은사인 박시중 선생님과 함께 자신이 서울대 사대 독어교육과에 입학하게 된 과정을 들려준다. 제3부 <꿈의 회전목마를 타다>에서는 학업은 뒷전으로 미루고 연극에 미쳤던, 그리고 그의 소리꾼으로서의 길을 터준 “박초월 명창”을 만났던 일화와 함께 잡지사 기자로, 학교 선생님을 전전하면서도 연극에 대한 열정만큼은 결코 꺾지 않았던 청년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제4부 <꿈의 퉁수쟁이가 되다>에서는 병고 끝에 몸을 추스르고 본격적으로 연극판에 나선 그가 민중문화운동의 연극판에서 앞장서서 활약하던 시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지막으로 제5부 <꿈과 현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다>에서는 “국립극장장”과 “문화관광부 장관”이라는 공직 생활 시절을 들려주고 이제는 다시 “광대”로 돌아와 자유로움과 창작생활의 희열에 빠진 요즘 생활을 이야기하며 앞으로도 계속 꿈을 꾸는 “광대”로 살아가겠다고 마무리한다.

 

 

올해 나이 61세(1952년 생), 이제 막 환갑을 맞은, 어떻게 보면 아직 자서전이 어울리지 않은 나이인 그가 자서전을 냈다니, 처음에는 요즈음 하루에도 몇 차례씩 열린다는 현역 국회의원들이나 지망생들의 “출판기념회”의 일환으로 나온, 즉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내놓은 정치 선전물과 같은 그런 책은 아닐까 하고 삐딱하게 쳐다봤다. 그런데 그의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의 예술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결코 거짓이 아니라는 “진정성(眞正性)”을 느끼게 되었고 처음의 오해와 편견이 어느새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림을 알 수 있었다. 그의 광대 인생은 그가 말한 대로 과녁을 맞춘 화살보다 빗나간 화살이 더 많은 어쩌면 아직 “성공”하지 않은 그런 삶일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지금 나이에도 그는 “광대”의 꿈을 위해 서투른 활시위를 계속 당기겠다고 다짐한다. 자신의 명예와 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넓고 큰”이라는 광대의 본 의미를 위해, 이 세상 애환과 시름에 고통받는 많은 분들의 영혼을 위로해주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 그의 믿음과 소망이 그저 사탕발림이거나 허언(虛言)이 아니라고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그가 걸어왔던 삶에 있다. 이 책에서 들려준 것처럼 배고프고 병들었어도 오직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모든 고난과 시련을 이겨왔던 그의 삶 말이다. 고(故) 이윤기 선생은 서른아홉 살 김명곤을 가리켜

 

 

김명곤의 삶을 만나면, 우리가 산 삶은 지우개로 북북 지우고 싶어진다! 그가 살아온 험하고도 아름다운 삶을 들으면 문득 그를 닮고 싶어진다!

 

 

라고 평했다고 한다. 험하고 고통스럽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그의 예술에 대한 열정이 바로 그가 우리의 아픔과 슬픔을 달래주는 우리 시대의 “광대”로서 앞으로도 늘 함께 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절로 들게 만든다. 물론 그도 시절이 하 수상한 지금, 정치(政治)에 나설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꿈꾸는 광대”라는 그의 꿈과 열정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만큼은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처럼 장관의 자리에 올랐던 “누구”를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물론 이 책의 작가가 전혀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누구”의 자서전을 읽지 않아 그가 어떤 예술적 삶을 살아왔는지 모르겠지만 20여년을 수더분하고 착한 시골 청년의 이미지로 살아온, 그리고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를 소개하는 지적인 모습을 보여준 그가 갑작스레 - 물론 그를 아는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하지만 - 정치 일선에 나서서 지극히 권위적이고 위압적인 모습을 보여주자 그를 좋게 봐온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는 충격과 함께 “배신감”마저 들었었다. 아직도 정권에 머무르고 있는, 또한 이번 총선에 국회의원으로 나선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누구”에게 묻고 싶다. 언젠가 모든 자리에서 떠나 다시 무대로 돌아왔을 때 그를 반겨할 사람들은, 또한 그의 진정성을 믿는 사람들이 과연 있을까? 또한 “누구” 때문에 가슴 속에 깊은 생채기를 입은 어떤 이들의 상처는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누구”도 “넓고 큰”이라는 의미의 “광대”의 뜻을 지금이라도 다시 한번 되새겨 보길 바래본다. 괜히 이런 글 썼다가 사달 - 인터넷 검색해보니 사고나 탈을 의미하는 단어는 “사단”이 아니라 “사달”이 맞는 표현이란다 - 이 날까 걱정이 되긴 하지만 한때나마 그를 좋아했던 팬으로서 안타까움에 해보는 넋두리 쯤으로 여겨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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