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사슬
프리담 그란디 지음, 맹은지 옮김 / 북캐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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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작가의 작품은 늘 긴장시킨다. 검증이 되지 않은 작가인지라 낯선 작가가 선보일 재미가 어떤 수준일지 가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의외의 재미보다는 실망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아무래도 한번쯤은 겪어본 작가들 위주로 책을 선택하게 되고 처음 만나는 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면 기대보다는 우려가 항상 앞서게 된다. 이번에 만난 “프리담 그란다”의 <영혼의 사슬(원제 A Circle of Souls /북캐슬/2011년 11월)>도 작가가 전업(專業) 작가가 아니라 아동· 청소년 담당 정신과의학 박사로 사실상 비전문 작가인데다가 사실상 첫 번 째 작품이라고 하니 역시나 걱정과 우려로 책 읽기를 시작했었다. 그런데 다 읽고 난 지금 낯선 작가에 대한 편견을 깨뜨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나름 의외의 재미를 맛볼 수 있었던 책이었다고 요약할 수 있겠다.

 

하굣길에 10세 어린 소녀 “제닛”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조용한 마을인 “코네티컷 뉴베리”가 발칵 뒤집힌다. 경찰이 수사에 나서지만 일주일 넘도록 감감무소식이자 같은 마을에 사는 유력 정치인이 FBI에 도움을 요청하고 휴가 중이던 어린이 실종 사건 전문 요원인 여형사 “레이아”가 긴급 투입되는데, 얄궂게도 레이아가 도착하던 날 실종되었던 제닛이 토막난 시체로 발견된다. 항공 촬영을 통해 조각 조각난 소녀의 사체가 발견된 지점들을 선으로 연결해보자 묘한 주술적 형태가 드러나고 레이아는 과거 사건을 조사하던 중 30년 전에 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소녀 살해 사건이 일어난 사실을 알게 된다. 한편 뉴베리 종합소아병원에서 아동 정신과 상담 및 치료를 전담하는 의사인 “피터 그람”은 몽유병 증상으로 하마터면 발코니에서 추락 사고를 당할 뻔했다가 응급실에 실려 온 일곱 살 어린 소녀 “나야 헤이스팅스”를 맡게 된다. 뇌파 측정 및 MRI 검사 등 여러 검사를 시행하지만 나야에게 딱히 이상을 발견할 수 없는데, 특이한 점은 일곱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꿈을 아주 자세하게 그림으로 그려낸다는 점이었다. 나야가 전날 꾼 꿈을 그린 그림을 보게 된 피터는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그 그림은 바로 제닛의 끔찍한 죽음을 그대로 그려낸 것이다. 소아 병동에 신문이나 TV 시청도 되지 않아 나야는 살인사건에 대한 뉴스를 전혀 들어보지도 못했을 텐데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려낼 수 있었을까? 피터가 나야와 면담해본 결과 놀랍게도 꿈에서 죽은 제닛이 조각조각 난 몸을 실로 꿰맨 채로 나야를 찾아 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은 피터는 그림을 들고 제닛의 시체가 발견된 장소이자 나야의 그림에도 그려져 있는 “코끼리 바위”를 찾아가게 된다. 그곳에서 수사를 하고 있던 FBI 요원인 레이아와 뜻하지 않은 조우를 하게 된다. 과연 30년 전과 지금 현재 어린 소녀들을 끔찍하게 죽인 범인은 과연 누구일까? 그리고 나야의 꿈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이하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추리소설인줄 알고 읽었는데 책 페이지가 넘어갈 수 록 이야기 방향이 이상하게 전개되어 당황스러움마저 느껴졌다. 어린 소녀가 끔찍하게 살해되고, 이런 사건이 30년 전에도 일어났다는 대목까지만 해도 유아 연쇄살인범을 다룬 미스터리이겠거니 했는데 소아 정신 병동에 머물게 된 소녀의 꿈에 처참하게 살해된 소녀가 나타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담당의인 피터에게 말까지 전달한다니 추리소설의 규칙을 위반한 이야기 전개가 금세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도 출신의 입양된 아이였던 나야의 친어머니 또한 나야와 비슷한 증세 - 몽유병에 예언 능력 - 을 앓고 있었고, 나야의 외삼촌이 나야와 피터가 운명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런 운명이 가문에 전해 내려 오는 예언서에 기록되어 있으며 피터의 전생(前生)이 30 년 전 살인사건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대목부터는 이제는 더 이상 추리소설이 아닌 본격 심령 공포 소설로 장르를 완전히 전환되어 버린다. 이 책이 어떤 장르인지 분명히 알게 되고 나서야 당황스러움은 사라지고 본격적으로 이야기 전개에 몰입하게 되었다. 노틸러스 북 어워드 수상, USA북뉴스 최우수도서 선정이라는 책표지 문구를 보면 분명 서구(西歐) 쪽 소설인데 그동안 “스티븐 킹” 이외에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오컬트적 요소들, 그것도 예지몽(豫智夢), 전생과 환생(還生), 예언(豫言) - 물론 범인의 엽기적 살인 동기는 자메이카 토속 신앙에서 비롯되니 동양적 요소라고 볼 수 는 없지만 - 등 동양적 정서가 다분한 이유가 과연 뭘까? 아무래도 작가가 바로 인도 뱅갈로 출신인지라 자연스럽게 인도 신앙이나 동양적 정서가 배어나온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초자연적인 요소와 추리소설로서의 스릴이 서로 성기지 않고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내어 읽는 내내 유치함이나 지루함 없이 책에서 눈길을 뗄 수 없게 만들 정도로 몰입감과 재미만큼은 뛰어난 소설이었다. 다만 아동 실종, 유괴 사건을 해결해 온 전문가로서 의욕적으로 사건 수사에 나선 FBI 요원 레이아는 결국 이렇다 할 활약을 펼쳐보지 못하고 밑도 끝도 없는 어린 소녀의 꿈에 의존해 사건을 해결하게 되고, 결말에 이르러 피터와의 러브라인을 보여 주는 역할로만 그쳐 캐릭터 설정에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추리소설을 기대했다가 심령 공포 소설 - 그렇다고 모골이 송연하고 꿈자리가 사나울 정도로 극한의 공포는 아니니 공포 소설을 꺼려하는 분들도 편한 마음으로 읽어볼 만한 수준이다 - 을 만나게 되어 당황스럽긴 했지만 이야기 설정과 전개는 꽤나 진지하고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어 읽는 내내 긴장감과 스릴을 맛볼 수 있었던 재미있는 책이었다. 다 읽고 나니 엉뚱한 궁금증이 하나 들었다. 이 책이 과연 허구(虛構)일까? 앞서 언급한 작가의 이력처럼 작가가 현재 이 책의 주인공인 “피터 그람” - 이름이 작가와 비슷한 걸 보면 자기 자신을 모델로 한 것 같다 - 처럼 아동·청소년 정신 상담 일을 하고 있다니, 그리고 전문적인 작가가가 아닌 이상 자신의 실제 경험이 녹여서 썼다고 한다면 혹 실제 경험은 아니었을까?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하다고 상상해보니 괜히 으스스 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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