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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몰리션 엔젤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28
로버트 크레이스 지음, 박진재 옮김 / 비채 / 2011년 7월
평점 :
“폭발물”을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는 자주 접해봤지만 소설로는 <퇴마록>으로 유명한 작가 “이우혁”의 <파이로 매니악(미컴/1998년 7월/절판)>이 거의 유일하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작품도 미완(未完)된 작품 - 작가가 인터뷰(2011.4.28. 동아일보)에서 “이미 글은 다 써놓았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으니 조만간에 다시 나올 듯 하다 - 이니 온전히 읽어본 작품은 없는 셈이다. 서구권 추리 소설이나 스릴러 소설에는 익숙한 소재라고 하는데 서구권 작품들을 별로 즐겨 읽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대규모 폭발 장면은 영상(映像)으로는 멋진 볼거리이겠지만 활자(活字)로는 머릿속에 제대로 그려내기 힘들다는 선입견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이런 폭발물을 소재로 한 스릴러 소설 한 편을 만났다. 바로 미국 스릴러 작가 “로버트 크레이스”의 <데몰리션 엔젤(원제 Demolition Angel / 비채 / 2011년 7월)>이 바로 그 작품이다. 영화에서처럼 대규모 폭발 장면은 없었지만 연쇄 폭파범과 이를 잡으려는 여주인공간의 숨 막히는 대결이 마지막 페이지까지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제대로 된” 스릴러 소설이었다.
소설의 첫 장면(Prologue)은 LA 폭발물 처리반 소속 "찰리 리지오"가 캘리포니아 주 실버레이크 거리 대형 쓰레기 수거함에 놓인 종이 상자 속에 담긴 폭발물 해체를 시도하던 중 그만 폭발로 인하여 살해당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3년 전 폭발물 처리반에서 일하던 당시 폭발물 해체에 들어갔다가 실패해서 연인이었던 동료를 그 자리에서 잃고, 자신 또한 심장이 멈추는 “죽음”을 경험하고는 LA 경찰 범죄음모수사과로 자리를 옮겼던 “캐롤 스타키”는 아직도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신과 치료를 계속 받고 있지만 쉽게 떨쳐 내지 못하고, 술과 담배, 진통제에 찌들어 살고 있다. “찰리 리지오”가 죽던 사건 당일 날도 정신과 상담 중이었던 스타키는 “켈소” 경위에게서 사고 소식을 듣고 현장으로 급히 달려가게 되고, 동료들과 함께 수사팀을 꾸린 스타키는 수사에 나서게 된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단순 사건으로만 여겼던 이 폭발 사건이 ATF((Bureau of Alcohol, Tobacco, Firearms and Explosives; 미국 주류·담배·화기 단속국) 특수요원 “잭 펠”이 개입하면서 이미 수차례 폭발 사건을 저질러 FBI 수사선상에 오른 연쇄폭파범 “미스터 레드”의 소행으로 의심되는 사건으로 밝혀지게 된다. 그런데 폭발물 제조 방식이 기존 “미스터 레드”의 작품과는 미묘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스타키는 미스터 레드를 모방한 또 다른 범인이 저지른 짓임을 직감하고 수사망을 LA 경찰 내부로까지 확대한다. 한편 자신을 모방한 폭발 사건이 LA에서 발생했음을 알게 된 미스터 레드는 모방범을 응징하기 위해 LA로 잠입하게 된다. 스타키의 끈질긴 수사 덕분에 마침내 폭발 사건의 범인과 미스터 레드의 정체가 밝혀지지만 찰리 리지오를 살해한 범인은 체포하기도 전에 미스터 레드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ATF 요원인줄 알았던 잭 펠이 사실은 몇 년 전 미스터 레드의 폭발 사건으로 부상을 당해 실명(失明) 위기에 처하고 ATF까지 그만 둔 채 사적 복수를 위해 미스터 레드를 추적중이라는 사실을 밝혀지면서 스타키 또한 LA경찰국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게 된다. 미스터 레드는 그런 그녀를 없애기 위한 새로운 폭탄과 함정을 준비하면서 결말은 점입가경으로 치닫게 된다.
그동안 폭발물 소재 영화를 보면 정형화된 공식 2개 정도를 꼽을 수 있는데, 먼저 도시 곳곳에서 벌어지는 동시다발적인 폭탄 테러나 또는 도시 전체를 화약에 휩싸이게 할 만한 가공할 만한 대규모 폭발 장면, 즉 시각적(visual)적인 효과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마지막 폭발물 해체 장면에서 어떤 방법 - 영화에서는 색깔이 다른 전선 중 어느 전선을 선택하느냐 하는 장면으로 묘사된다 - 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폭발과 해체, 결과가 달라지는 장면 - 때로는 해체했다고 안심하다가 범인이 숨겨 놓은 이중 트릭에 의해 결국 폭발하고 마는 경우도 있다 - 이 주는 긴장감과 스릴을 꼽을 수 있겠다. 먼저 첫 번째 공식 면에서는 이 책에서 등장하는 폭발 장면이라고는 프롤로그에서의 찰리 리지오를 살해하는 장면과 후반부에 이르러 미스터 레드에게 폭발물 재료와 스타키의 정보를 제공했던 또 다른 등장인물의 감옥에서의 폭발 사고, 미스터 레드에 의한 찰리 리지오 살해 범인에 대한 폭발 장면, 그리고 마지막 스타키와 미스터 레드와의 결투 장면 등 몇몇 장면에 지나지 않으니 시각적인 효과로는 다소 미흡하다고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너무 요란스러운 폭발 장면이 쉴새없이 등장한다면 오히려 “현실성(Reality)"면에서는 더 떨어지겠지만 이런 폭발 장면을 기대하는 독자라면 다소 실망스러웠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또한 처음 만나는 폭발물 소재 스릴러 소설인지라 좀 더 현란한 폭발 장면들을 기대했었는데, 초반 폭발 사건 이후 이렇다할 추가 사건 없이 스타키의 수사가 계속되는 중반부까지는 다소 지루하기까지 느껴졌었다. 그러나 이런 지루함도 잠시 미스터 레드가 자신의 모방범을 처단하기 위해 LA로 잠입하는 장면부터는 긴장이 다시 고조되면서 찰리 리지오 살해 범인과 미스터 레드의 정체가 밝혀지고, 스타키와 미스터 레드의 최후의 대결이 펼쳐지는 장면까지는 눈 돌릴 새가 없이 이야기가 폭풍처럼 휘몰아친다. 특히 두 번째 공식은 마지막 스타키와 미스터 레드 대결 장면에서 잘 나타나는데, 폭발 시간(Timer)이 0초에 다다를 때까지도 계속되는 위기와 또 다른 반전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멋진 스릴과 재미를 선사한다.
책에서 두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캐롤 스타키”와 “잭 펠”은 천재적인 두뇌 회전과 화려한 액션을 구사하는 그런 “완벽한” 캐릭터들이 아니라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그것 때문에 인간관계나 사랑에서도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어딘가 부족하기만 한 캐릭터로 그려진다. 또한 두 주인공과 대적하는 악역인 “미스터 레드”도 피를 갈구하고 폭발이 주는 특유의 쾌감 때문에 연쇄 폭탄 테러를 저지르는, 특유의 악마성(惡魔性) 보다는 단지 “FBI 10대 지명 수배자 명단”에 오르기 위한, 즉 “자기과시(自己誇示)” 때문이라는 설정은 다소 엉뚱하기까지 느껴진다. 그러나 이러한 캐릭터 설정이 이 책의 재미와 스릴을 배가시키는 장점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동안 여러 영화들에서 볼 수 있었던 완벽하기만 한 수사관들과 악마 그 자체인 범인의 대결이었다면 식상했을 이야기였겠지만 캐릭터들의 복잡 미묘한 심리묘사와 불완전하지만 현실성이 뛰어난 관계 설정 및 전개로 읽는 동안 쉽게 캐릭터들에게 감정이입할 수 있게 하고, 이야기 전개에 따라 긴장감과 재미를 더욱 고조시키는 훌륭한 장치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앉아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무더운 여름이다 보니 책도 무더위를 잠시 잊게 할 만한 재미와 스릴 만점의 그런 책들만 골라서 읽게 된다. 최근 들어 한여름 무더위를 잊게 할 만한 멋진 책들을 여럿 만났었는데, 폭발물이라는 흥미로운 소재, 불완전하지만 오히려 더 뛰어난 현실성과 감정이입을 가능케 하는 캐릭터 설정, 중반 이후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속도감 있는 이야기 전개 등 400 페이지 넘는 분량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몰입감과 재미를 선보이는 이 책 또한 2011년 그 어느 때보다 무더운 여름 더위를 잊게 하는 멋진 “피서(避暑)”용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