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전 - 모두 나를 칼이라 했다
박애진 지음 / 페이퍼하우스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초인간적인 도술(道術)에 능한 주인공의 도술적인 행각을 통하여 줄거리를 전개시키는 소설(小說)”인 “도술소설(道術小說)(네이버 발췌)” 이라 일컫는 고전(古傳) 소설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바로 <홍길동전(洪吉童傳)>, <전우치전(田禹治傳)>, <박씨전(朴氏傳)> 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이웃 중국과 일본에도 <봉신연의(封神演義)>나 <서유기(西遊記)>, “환주루주(還珠樓主)”의 <촉산검협전(蜀山劍俠傳)>, <음양사(陰陽師)>, <백귀야행(百鬼夜行)>등 많은 작품을 찾아볼 수 있다 -. 서양(西洋)에는 “마법(魔法,Magic)"이 있다면 동양(東洋) - 도교(道敎)의 영향을 받은 “한중일(韓中日)”, 즉 동아시아만 해당되겠지만 - 에는 “도술(道術)”이 있다고나 할까? 최근 장르 문학계에서 판타지 소설과 더불어 양대 장르라 할 수 있는 “무협소설(武俠小說)”에도 이런 “도술소설”들의 전통이 이어져 왔겠지만 무협소설계를 은퇴(?)한지 오래라 기억에 남는 작품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데, 최근에 멋진 도술 소설 한 편을 만났다. 바로 환상문학웹진 “'거울”의 편집장으로 이미 범상치 않은 비평과 글솜씨를 선보였던 작가 “박애진”의 첫 장편소설인 <지우전;모두 나를 칼이라 했다(地雨傳/페이퍼하우스/2011년 6월)>이 바로 그 책이다. 

시대를 알 수 없는 과거 - 조선시대 쯤으로 짐작되지만 - 어느 왕조시절, “베라”는 명령 한마디면 모든 존재의 숨을 가르는, “칼” 그 자체로 키워진 소년 “명”이 있었다. 반란군이었던 허영두의 사병들이 숨어있던 보봉산 산채를 토벌하라는 어명으로 출동했던 병사 백오십여명이 어이없게도 “명”에 의해 모두 베어지자, 임금은 명과 함께 명을 보호하던 “정태우”를 자신의 휘하로 거둔다. 오대산 산채에 숨어 있는 허영두 잔당을 토벌하기 위해 명과 정태우, 그리고 강준찬 장군을 파견하지만, 명은 산채에 몸담고 있던 자신의 친형을 만나고 산채에 투항한다. 자신을 “칼”로써가 아니라 혈육으로 대하는 형에게서 난생 처음 따뜻함을 느끼기는 했지만 형 또한 자신을 이용해 먹으려는 것을 알게 된 명은 일대 혼란을 겪게 되면서 자신을 막아서는 수많은 병사들 뿐만 아니라 당대 제일의 도사(道師) 손까지 베어버리고는 혼란 속에 여기저기를 떠돌다가 3류 도사를 만나 인성(人性)을 회복하고는 땅(地)을 피(血)가 아닌 비(雨)로 적시라는 뜻으로 “지우(地雨)”라는 이름을 하사받은 명은 그의 제자가 되어 도술을 닦게 된다. 그로부터 몇 십 년 후 임금이 애지중지하는 공주가 도사 “지우”에게 겁간을 당해 임신을 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궁궐이 발칵 뒤집히고, 세자(世子)의 호위 무사인 “춘검(春劍)의 수장 “연아”는 명을 받아 도사들과 함께 “지우”를 잡아 나서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지우”를 압송해 궁궐로 데려오지만 지우의 소행이 아님이 밝혀지면서 지우는 풀려나게 된다. 세자와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지만, 신분의 차이로 그저 호위무사로 세자의 곁에 머물 수밖에 없는 서글픈 사랑에 괴로워하던 연아는 자유로운 지우에게 서서히 끌리게 된다. 그러던 중 하늘 사슴을 잡아오라는 임금의 명에 다시 한번 도사들과 나선 연아는 지우를 다시 만나게 되고, 하늘 사슴과 그를 지키는 괴수의 딱한 사정을 알고는 도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늘 사슴을 풀어주고는 곤란한 처지에 빠지게 된다. 지우와 연아의 처사에 격분한 도사들은 자신의 스승에게 지우를 고자질하고, 지우가 몇 십 년 전 자신의 손을 베었던 그 소년이었음 - 이 때문에 몇 십 년 동안 스승은 은거할 수 밖에 없었고, 손에는 환술(幻術)로도 감출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된다 - 을 알게 된 스승은 도사들을 이끌고 해묵은 복수를 시도하고, 지우를 구해달라며 매달리는 지우 스승을 만난 연아는 지우를 구하기 위해 한걸음에 달려가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일대 격전을 벌인다. 
 

책에는 서두에서 언급했던 도술 소설 특유의 장치(Contents)들이 잔뜩 등장한다. 이름을 불러 대답하면 갇히게 되는, <서유기>에도 등장했던 동해용왕의 신물(神物)인 호리병, 말 그대로 땅을 접어 거리를 줄여 공간을 이동하는 술법인 “축지법(縮地法)”, 온갖 사물로 변신하는 “둔갑술(遁甲術)”, 역시 <서유기>의 “근두운(觔斗雲)”을 연상시키는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나는 술법 - 그저 하늘을 나는 수준이 아니라 대기권 밖까지 나가서 지구를 바라다 보는 그런 수준까지 묘사된다 -,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 편에 나오는 거대한 새 “붕(鵬)”과 “용(龍)”, 그리고 일종의 “진법(陣法)”으로 나무, 돌 등 자연 사물을 이용해 공간과 시간을 왜곡하는 “막(幕)”을 설치하는 술법, 또한 최근 영화 <전우치전>에서도 등장하는, 도술계에서는 신선(神仙) 쯤으로 여겨지고 있는 “화담(花潭)” - 작품에서는 호(號)만 등장할 뿐 “서경덕 (徐敬德)”이라는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 등등 온갖 기이한 도술들과 인물들을 선보인다. 여기에 수십 수백명을 단숨에 베어버리는 검술과 도사들도 파훼하지 못하는 지우의 막을 한 번에 베어내는 연아의 검기(劍氣), 풀잎을 밟고 뛰어가는 “초상비(草上飛)” 등 무협 소설적 장치 또한 사용하고 있어 무술과 도술이 어우러진 “기환무협(奇幻武俠)”의 장르적 특징을 충실히 구현해내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무협과 도술을 장치로 하여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모든 감정이 배제된 채 남을 죽이는 “칼”로만 살아온 “명”이 자신의 혈육인 형을 만나 잠시나마 인성(人性)을 회복하지만 이내 인간들의 욕심에 다시 피바람을 몰고 오는 장면이나 인간의 욕심에 그 누구보다도 초탈해야 할 도사들이 세상의 명리(名利)를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 등을 통해서 작가는 어쩌면 인간이라는 허울 아래 온갖 잔혹한 일을 저지르는 인간의 추악함과 함께 결국 바람처럼 흩어져 버리고 마는 인생의 “덧없음(虛無)”을 이야기하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그러면서도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지만 결국 인성의 회복뿐만 아니라 마침내 “도(道)”를 깨우쳐 죄업과 인간의 굴레마저 벗어버린 “지우”와 세자와의 이뤄질 수 없는 애달픈 사랑에 얽매이다가 마침내 그 사랑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자유로워진 “연아”를 통해서는 세속의 명리와 가치관을 초월한 “내려놓음”의 경지를 말하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삶의 기쁨을 알수록 고통도 커가는” 이라는 마지막 결전장에 등장한 화담의 일갈(一喝)이 어쩌면 삶은 기쁨과 고통이 함께 하는 “고해(苦海)”일 수 밖에 없으며, 삶이라는 굴레를 벗어날 때야 비로소 그런 기쁨과 고통을 훌훌 벗어버리는 일종의 “해탈(解脫)”의 경지에 이른다는 말로 들려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도술이 등장하는 소설에서 불교식 가르침을 떠올리다니 아전인수(我田引水)격인 해석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간만에 고전 소설의 흥취와 품격에 흠뻑 취할 수 있었던 멋진 소설을 만났다. 이 작품을 무협식으로 표현하자면 이제 검(劍)에 검기(劍氣)를 두르는 정도라고 할까? 그 정도임에도 수년간 벼르고 벼른 작가의 시퍼런 검기를 두른 칼에 가슴을 단번에 베어낸 듯한 느낌이 들었을 정도였으니, 앞으로 “이기어검(以氣御劍)”이나 “신검합일(身劍合一)”의 초절정 수준에 오른다면 과연 어느 정도 수준의 재미와 감동을 선보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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