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모든 것의 가격 -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가격의 미스터리!
에두아르도 포터 지음, 손민중.김홍래 옮김 / 김영사 / 2011년 5월
평점 :
편의점, 동네 슈퍼, 대형마트, TV 홈쇼핑, 인터넷 쇼핑몰 등에서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가지의 “물건”들과 그 것들에 대한 “가격(價格)”을 접하게 된다. 지금처럼 물건이 흔해진 경제발전의 시대에서 “가격”이야말로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발명품 - 물론 엄밀히 말하면 “가격”이 아니라 “돈”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 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으로 보여진다. 인간이 접할 수 있는 모든 물건에 “이름”과 함께 꼭 붙어 다닌다는 이 “가격”, 그렇다면 우리가 가치를 평가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생명”이나 “행복”,“신앙” 등에도 과연 가격을 매길 수 있을까? <뉴욕타임스>의 편집위원으로 비즈니스와 경제는 물론 사회, 심리 분야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의 기사와 칼럼을 기고하고 있는 언론인 “에두아르도 포터”는 <모든 것의 가격(원제 The Price of Everything / 김영사 / 2011년 5월)>에서 가격은 우리가 상점에서 구매하는 물건에만 붙어 있는 게 아니라 “모든 것”에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가격의 미스터리에 대해 우리들에게 낱낱이 밝히고 있다.
작가는 프롤로그 <가격은 어디에나 존재한다>에서 우리의 다양한 선택은 바로 우리 앞에 놓인 여러 대안들의 가격에 의해 결정되며 여기서 가격이란 여러 대안들이 가진 이윤과 비용을 우리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평가한 것이라고 정의하며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설때 마다 가격의 신호에 따라 이쪽이 아니면 저쪽 길을 선택하게 된다고 말한다. 결국 모든 결정은 우리가 각각의 대안에 서로 다른 가치를 할당하고, 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행위라고 다시 한번 설명하면서 우리가 각각의 대안이 갖고 있는 가격을 이해하게 될 경우 우리는 자신이 내린 결정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가격이 물건 뿐만 아니라 추상적인 개념 즉 즉 사랑이나 노력, 시간과 같은 개념 속에도 비용과 이윤이 포함되어 있다고 말한다. 즉 이 책은 “모든 것”에 대한 “가격”이 어떻게 책정되고 또한 어떠한 비용과 이윤이 수반되는지, 가격의 내력을 설명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본론에 들어가면 당연히 가격이 붙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사물”과 도저히 가격을 책정하기가 힘들 것 같은 “생명”,“행복”,“여성”,“노동”,“공짜”, “문화”,“신앙”, “미래”에 대한 가격에 대하여 본격적인 설명에 들어간다. 작가는 “생명의 가격” 편에서 먼저 사람들의 뇌리에 가장 깊게 각인된 신념 중 하나는 생명의 값어치는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테초의 늪지에서 최초의 생명이 기어 나왔을 때부터 생명에 대한 가격 책정과 재책정이 끊임없이 반복됐다는 사실을 이처럼 협소한 정의 - 우리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할 경우 그것을 모면하기 위해 세속적인 모든 소유물을 포기할 수 도 있다는 점 - 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으며 생명이 일종의 메뉴하면 거기에는 하나 이상의 가격이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작가는 생명에 대한 가격 책정의 예로 “9.11.희생자보상기금”을 든다. 당시 의회는 희생자 가족의 “경제적” 손실과 “비경제적” 손실에 기초한 엄격한 보상 지급 기준을 설정했다고 하는데 이 원칙에 따라 희생자의 삶이 가치의 척도에 놓이게 되고, 그 결과에 따라 “생명”의 가격이 결정되는 것이다. 희생자 한 명당 비경제적 손실은 25만 달러, 부양가족 한 명당 추가로 10만 달러로 책정된 것에 반해 경제적 손실을 측정하는 것은 훨씬 어려운 일이어서, 사망한 근로자가 받고 있던 임금을 기준으로 사망자의 연령과 배우자여부, 부양가족의 수에 따라 액수를 조정하다 보니 각자의 보상액에는 커다란 격차가 생길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수백만 달러의 급료를 받던 임원과 1만 7337 달러짜리 연봉을 받던 페루 출신 불법 이민자 요리사의 생명의 가치가 달리 매겨질 수 밖에 없는, 이처럼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 경험했던 불평등이 고스란히 반영될 수 밖에 없는 생명에 대한 가격 평가를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여성단체의 공분(公憤)을 살만한 “여성”의 가격에 대해서 작가는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작가는 먼저 엄격하게 일부일처제를 준수하는 경우가 역사적으로 오히려 드문 사례였고, 지금은 야만적 관습으로까지 평가받고 있는 “일부다처제”가 오히려 인간 역사 속에서 지속적으로 유행해왔으며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 벌어지는 대단히 사적인 거래에도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 즉 경제적 논리가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다윈의 자웅 도태 이론에 따르면 미래 세대에게 자신의 유전자를 계승시키는 긴급한 과제가 행동의 최우선 구동력이라고 단정했으며 그와 같은 노력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남성은 단지 소량의 정액만이 요구되는 반면, 여성은 난자를 생성하고 뱃속에서 태아를 수정하며 길러야 하는 구조이기에 부부가 비대칭적인 출산 전략을 갖게 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한다. 즉 자연계에서 가능한 많은 여성에게 자신의 씨를 뿌릴 수 있는 체계가 남성에게 가장 이상적인 체계이며, 반대로 자식을 뱃속에 품어야 하는 엄청난 비용으로 인해 출산 능력을 제한당하는 여성은 여러 남성을 활용하지 않는, 양이 아닌 질을 추구하여 다음 세대의 생존을 보장하는 데 필요한 능력을 가진 남성을 선택한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번식에 대한 암컷과 수컷의 투자 비대칭이란 관점으로 보면 남성이 임신 능력을 보여주는 척도인 여성의 몸매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반면, 여성은 자원에 대한 통제력을 나타내는 척도로서 남성의 수입에 관심을 갖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며, 인류 역사 전반에 걸친 다양한 공동체에서 여성이 한가지 가치 - 출산 - 만을 인정받아 왔던 이유도 설명해준다고 말한다.
또한 “신앙의 가격” 편에서는 17세기 프랑스 수학자이자 철학자, 도박사였던 블레즈 파스칼이 후세에 남겼다는, “신이 존재한다는 것에 내기를 했을 때 우리가 얻는 것과 잃는 것을 비교해보자. 만약 우리가 이긴다면 모든 것을 갖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진다고 해도 잃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렇다면 주저하지 말고 신에게 돈을 걸어라”라는 “파스칼의 내기”를 첫머리에 소개한다. 즉 신이 존재한다는 확률이 존재하는 한, 그 확률이 아무리 작더라도, 천국이라는 무한한 보상은 현재의 유한한 비용 - 음식과 섹스에 대한 제약은 물론 각종 희생과 금기 - 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신앙은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도 바로 “가격”이 등장한다. 대재앙에 대한 보험으로서의 종교,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신앙은 지옥이 아닌 천국에 우리의 자리를 마련해 줄 것이며, 그에 따른 프리미엄이 일부는 돈, 즉 헌금이나 십일조, 기타 등등으로 지불되고 가장 성가신 비용이라 할 수 있는 단식이나 혼외정사 금지와 같은 구속도 신앙에는 현금이나 마찬가지로 신의 자비를 얻기 위해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가격이라는 말이다.
이 글에서 소개하고 있는 이야기들은 책의 극히 일부만 소개했을 뿐 작가는 각 장마다 풍부하고 다양한 사례를 들어 모든 것에 대한 “가격”을 설명하고 있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는 가격이 과연 “물건” 뿐만 아니라 인류의 최고 가치라는 “생명”이나 “행복”, “신앙”에까지도 평가 지표로 활용될 수 있을까 의문스러웠는데 읽다 보니 이미 오랫동안 “그것”들에 대해 인간들은 어떤 식으로든 가격을 매겨 평가해왔다는 사실에 의문을 넘어 놀라움마저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은 신념이나 가치관에 의해 부정되어 왔지만 이제는 경제 논리라는 미명하에 공공연하게 “생명”과 “신앙”의 가격을 이야기하는, 가격이 지배하는 그런 세상이 한편으로는 삭막하게까지 느껴지지만 한편으로는 이미 가격이 삶을 지배한지 오래인 이상 더 이상 외면하지 말고 가격의 속성을 직시하는 것이 오히려 현명한 대처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 이러한 가격이 얼마나 크게 실패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우리의 결정과 삶이 잘못된 길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런스펀도 깨달았던 것이라는 말처럼 우리도 이제는 하루빨리 깨달아야 할 그런 순간이 아닐까?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개념은 ‘억제되지 않은 이기심’으로부터 탈피하여 상대적 부의 분배가 개인의 만족보다 더 중요할 수 도 있는 세상에 적합하도록 수정되어야 하며, 또한 사회의 생존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진화과정을 거쳐 형성된 사회 규범이 당장은 개인의 복지에 기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선호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도 고려되어야 한다는, 이처럼 세상에 대한 보다 포괄적인 이해를 제공하게 될 경제학이 탄생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가격을 토대로 내린 결정이 나쁜 길로 이어질 수 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연구하게 될 것이라는 작가의 주장이 바로 우리에게 이야기하고자 했던 핵심이었구나 하고 느껴지게 된다. 경제학, 갈수록 어려워지지만 그만큼 흥미진진해지는 그런 학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