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번데기 프로젝트 - 2010 제4회 블루픽션상 수상작 ㅣ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47
이제미 지음 / 비룡소 / 2010년 11월
평점 :
10대를 위한 청소년문학상 '블루픽션상' 제4회 수상작이라는 <번데기 프로젝트(이제미/비룡소/2010년 11월)>을 읽으면서 소설가(小說家)를 꿈꿨던 어린 시절 추억들이 자연스럽게 오버랩이 되었다. 책읽기를 즐겨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도 글을 쓰는 작가(作家)를 꿈꿨던 적이 있었다. 애거서 크리스티(Agatha Christie)의 추리소설에 푹 빠졌었던 중학생 시절 나도 추리소설을 써보겠다는 마음에 단편 몇 편을 써서 친구들에게 돌려 읽혔던 적이 있었다."재미없다","유치하다"라는 반응이 대다수 - 이제는 누렇게 바래 글자조차 알아보기 힘든 그 당시의 글을 지금 읽어보면 얼굴이 화끈화끈 거릴 정도니 친구들의 평이 냉정했던 것 같다 - 였지만 그래도 몇몇 친구들의 응원과 격려 덕분에 신이 났었던 기억이 난다. 대학 들어서는 그 당시 인기를 끌었던 일본 만화인 오기노 마코토의 <공작왕(孔雀王)>에 열광하여 퇴마(退魔)류 소설을 써보겠다고 도서관에서 대학노트 여러 권 분량의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습작으로 단편 몇 편을 써보기도 했었는데, 같은 시기에 출간되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우혁의 <퇴마록(退魔錄)>을 읽어보면서 이보다 더 잘 쓸 자신이 없다는 생각에 아쉽게도 꿈을 접어야 했었다. <번데기 프로젝트>는 이처럼 누구나 한번쯤은 꿈 꿔봤을 소설가가 되기 위해 열여덟 소녀가 벌이는 좌충우돌 재밌는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올해 열 여덟살 소녀 정수선은 학교 성적은 4년제 대학을 기대하지 못할 정도로 바닥이고, 스스로 왕따를 자처해 변변한 친구 하나 없는 평범한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다. 외삼촌 보증을 섰다가 홀라당 말아먹고 조그만 삼겹살집을 내신 아버지의 강압에 방과 후부터 밤늦게까지 삼겹살집에서 서빙하고 고기를 뒤집는 중노동을 고작 일당 2만원에 제공하는 현실이 싫어 종종 탈출(?)을 감행하지만 오토바이를 타고 뒤쫓아온 아버지에게 지하철 계단도 다 못 내려가 머리채를 잡혀 질질 끌려오는 일상을 반복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게시판에서 어느 대학 백일장 공고문을 본 수선은 몰래 키워온 꿈이자 지겨운 삼겹살집에서 자신을 해방시켜줄 유일한 희망이기도 하며 바닥을 못 면하는 자신의 성적에도 문학 특기자라는 대학문을 열어줄 수 있는 현실적인 방편이라고 생각해 백일장에 응모하기로 하고, 문학 담당 교사인 허무식 선생님을 찾아가 추천서를 받아 백일장에 참여하게 되는데, 그만 덜컥 입상을 하고야 만다. 별 기대하지 않았던 수선의 입상 소식에 허무식 선생은 상금 1억원의 백일장에 응모하라고 강권하며 문학 코치로 나서고, 수선 또한 각종 백일장과 문학 콘테스트 대회에 응모하기 위해 허 선생의 지도를 받으며 차근차근 준비해 나간다. 그러나 수선은 하루종일 붙들려 있는 삼겹살집의 고된 일에 소설을 쓰기 위한 짬을 내기 힘들어 하고, 허선생은 수선에게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을 공유하는 "시간일기"라는 동호회를 소개해준다. 동호회 모임에서 수선은 날카로운 인상 때문에 "치타"라고 별명 붙여준 "추지행"이라는 남자에게서 자신이 반복해서 꾸는 꿈을 소설로 만들어 줄 수 있겠냐는 제안을 받고, 꿈 내용에 자신의 상상력을 덧붙여 단편소설을 쓰게 되고, 그 소설을 다른 백일장에 응모해보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소설을 읽어본 치타는 자신이 그 소설을 돈을 주고 살 테니 어디에도 발표하지 말라는 회유반 협박반 제안을 받게 되고, 수선은 단호히 거절하고 백일장에 응모해 1등에 당선된다. 수선이 흠모하는 작가이자 백일장 심사 위원이었던 "이보험" 작가가 술자리에서 우연찮게 친구인 방송사 PD에게 수선의 소설을 이야기하고,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 PD는 수선에게 소설을 각색하여 드라마로 제작하자고 제의를 하게 된다. 수선의 소설은 미니시리즈 드라마로 방영되고, 며칠 후 그동안 잠잠했던 추지행이 방송사에 자신의 꿈이 원작이라며 저작권 문제를 시비삼고 남은 드라마를 방영하지 말라고 협박해온다. 그러나 저작권에 전혀 저촉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방송국에서는 방영을 강행하게 된다. 며칠 후 PD는 수선을 따로 불러내 오늘자 신문을 보여주고, 수선은 자신의 소설과 관련된 충격적인 기사 내용에 크게 놀라게 된다.
보잘 것 없는 10대 소녀가 "소설가"라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한발 한발 내딛는 과정을 그린 이 소설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중년인 내가 읽어도 전혀 유치하거나 억지스럽지 않은 참 재밌고 유쾌한 소설이다. 제목인 번데기는 수선이 처음 도전했던 백일장의 과제인데, 번데기가 득시글거리는 한 남자의 눈에서 나비가 나와 날아가는 내용이라는 엉뚱한 상상으로 수상한 수선의 소설이자 번데기라는 흉측한 외피를 벗고 아름다운 나비로 훨훨 날아오르게 되는, 마치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로 성장하는 동화를 연상시키는 그런 중의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중반 이후 등장하는 치타의 꿈 이야기부터는 미스테리의 전형을 보여주는데, 그 전개 과정과 마지막 반전의 재미가 쏠쏠해서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중반 이후의 책읽기에 탄력이 붙게 한다. 또한 이 책의 또 다른 주인공인 허무식 선생님도 꽤나 매력적으로 그리고 있는데, 10등 이상 학생들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는, 어쩌면 요즘 선생님들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수선의 담임과 대비하여 소설가가 되겠다는, 어찌 보면 허황된 꿈으로까지 여겨질 수 있는 수선의 꿈에 용기를 불어주고 현실로 이뤄지게끔 가르치는 모습은 요즘 만나보기 힘든 인간적이고 따뜻한 선생님의 모습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천덕꾸러기 신데렐라에서 일약 천재작가로까지 신분(?) 상승한 수선의 꿈을 이루는 과정을 청소년들에게 뭔가 희망을 줄 수 있는 그런 교훈적인 존재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너무 작위적이겠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아직 찾지 못한 채 시계추와 같이 일상을 반복하며 공부에 지쳐가는 청소년들이 자신만의 꿈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한번쯤 생각해보는 계기 - 작가 또한 소설 속 수선처럼 문학특기생으로 대학에 입학한 것을 보면 수선의 이야기가 결코 허황되거나 과장된 것이 아닌, 작가의 경험이 녹아들어간 현실적인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 로써 읽어봐도 좋을 것이고, 수선이 작가가 되기 위해 벌이는 좌충우돌 모험과 결국 그 꿈을 이뤄내는 장면은 소설가를 한번쯤은 꿈꿔봤을 성인들이라면 소설 속 주인공을 통해서 이루게 되는, 일종의 대리만족으로서의 재미와 즐거움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가슴을 울리는 큰 감동은 없었지만 청소년 대상 소설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성인들도 함께 읽어봐도 좋은 유쾌하고 재밌는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