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럼 펀치
엘모어 레너드 지음, 최필원 옮김 / 그책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제목으로도 유명한 “펄프픽션(Pulp Fiction)"은 원래 20세기 초반에 유행했던 싸구려 소설 잡지인 ”펄프매거진(Pulp Magazine)"에 실린 대중소설을 일컫는 말로 잡지가 값싼 갱지(Wood Pulp Paper)로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에 "펄프 (Pulp)"란 이름이 붙었으며, 펄프 매거진에 실린 소설 또는 잡지 자체를 펄프 픽션 (Pulp Fiction)이라 부른다고 한다. 우리 말로는 “싸구려 가판 소설”이라고 번역되기도 하는 데, 주로 장르소설이 대부분으로 판타지, 갱, 미스터리, 추리물, SF, 어드벤처, 서부물, 스포츠 등 다양하다고 하며, 많은 작품들이 드라마나 영화화되었다고 한다(출처 인터넷 위키백과). 펄프 픽션이라는 명칭은 익히 들어봤지만 아직 정식 소설로는 접해보지 못했었는데, 이번에 본격 펄프픽션을 읽어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재키 브라운”의 원작 소설이자 작가 이름 앞에 "범죄 소설계의 알렉산더 대왕, "펄프 픽션의 제왕", "하드보일드의 거장", "디트로이트의 디킨스”등 온갖 요란한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는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 엘모어 레너드의 “럼 펀치(그책, 2010년 8월”이 바로 그 책이다.
마흔 네 살의 미모의 여성 재키 버크는 멕시코와 미국를 오가는 노선의 항공기 승무원이다. 그녀는 무기밀매업자인 오델이 멕시코에 숨겨둔 무기판매대금을 미국으로 몰래 가져다주고 수수료를 받는 일을 한다. 오델의 돈 5만 달러를 들고 입국하던 재키는 신고하지 않은 거액 소지와 자신도 알지못하는 코카인 소지죄로 긴급 체포되게 된다. 오델은 보석 보증인 맥스 체리에게 보석금을 위탁하여 그녀를 보석으로 풀려나게 한다. 재키는 자신의 집에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던 오델에게 멕시코에서 50만 달러를 밀반입 시켜주는 대신 자신에게 수수료를 지불하고, 자신이 체포될 경우 오델에 대해 침묵하는 대신 10만 달러를 지불하라고 제의하고, 오델은 그 제안에 찬성한다. 또한 재키는 자신을 체포했던 수사관 레이에게도 오델의 범죄사실을 알리고 오델을 체포하기 위한 함정 수사에 동참하는 대신 자신의 죄를 없애줄 것을 제의하고, 레이도 이 제안에 찬성하고 함정 수사를 꾸민다. 위험천만한 쌍방 제의를 성사시킨 재키의 속내는 사실 오델의 50만 달러를 가로채고, 자신의 죄 또한 없애려는 것이다. 또한 이런 재키의 음모에 보석 석방 시키면서 그녀의 매력에 반한 보석보증인 맥스가 동참하게 되고, 그녀가 들고 온 50만 달러가 담긴 쇼핑백에 오델과 수사관들의 전 시선이 집중된다. 50만 달러를 멋지게 빼돌린 그녀는 자신의 돈을 찾기 위해 혈안된 오델을 잡기 위한 마지막 함정을 벌이고, 재키의 속임수로 맥스의 사무실에 나타난 오델은 그녀에게 총을 겨누고 돈을 행방을 다그친다.
미국 범죄영화의 단골 소재들인 무기밀매, 마약, 돈세탁, 은행 강도, 인종차별, 흑인 갱, 음모와 배신 등을 총망라한 이 책은 대중 소설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부담 없이 술술 읽히는 흥미진진하고 재밌는 소설이다. 특히 살인을 일삼는 흉악무도한 무기밀매업자와 날카로운 감시를 펼치는 미국 경찰 수사망을 멋지게 속여 넘기는 재키의 활약은 여느 추리소설 못지 않은 플롯과 반전의 재미를 안겨준다. 엘모어 레너드 책은 이 한 권 밖에 읽지 않았지만 복잡하지 않은 사건 전개, 독특한 개성의 등장인물 -“내 작품에서는 플롯보다 인물이 우선한다”는 엘모어의 말처럼 저마다 서로 다른 개성과 강렬한 인상을 주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엎치락 뒤치락하는 음모와 배신, 그리고 예기치 않은 반전 등을 느껴보니 그에게 헌정된 여러 수식어들이 결코 허명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책은 분명 쉽고 재밌게 읽히지만 그동안 익히 보아왔던 미국 범죄영화 수준 그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어서 개인적으로는 나에게 썩 맞는 그런 취향의 소설은 아닌 것 같다. 다만 이름으로만 알고 있었던 펄프 픽션이 어떤 류의 소설이라는 것을 알게 된 점만큼은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그렇다면 과연 펄프픽션 소설들은 우리나라에서도 대중적인 인기를 끌 수 있을까? 이번에 동시 출간된 이 책과 다른 두 권 “표적", "로드 독스"가 판매량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신선하고 재밌다는 평들이 눈에 띄이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는 인기 있을 만한 그런 장르라고 생각된다. 책 내용 외에 책의 구성은 좀 불만인데, 홍보글에서 말한 대로 펄프 픽션 특유의 맛을 살리기 위해 일부러 본문 용지에 중질 만화지 - 우리가 보통 “갱지”라고 부르는 그런 종이 - 를 선택해 거칠고 낡은 듯한 느낌을 살렸다니 싸구려틱한 종이 문제는 그렇다 하더라도 눈 나쁜 사람들은 잘 읽지도 못할 정도로 깨알 같이 작은 글씨는 읽는 내내 불편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