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정원 - 어느 미술사가의 그림 에세이
정석범 지음 / 루비박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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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는 영 문외한인지라 유명 미술 전시회나 박물관에 가게 되면 천천히 음미하며 감상하기 보다는 숨은그림찾기처럼 학창시절 미술 교과서에 나온 그림이나 조각상 찾는데 그치고 만다. 그래도 신화나 전설을 소재로 한 그림들에게는 눈길이 오래 머무는 데, 활자로 대하면서 머리 속에 그렸던 이미지가 그림과는 얼마나 부합하는지 확인해볼 수 있으며, 마치 사진처럼 정지된 그림의 전 후의 상황, 즉 이야기의 얼개와 흐름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더 관심을 두게 된다. 이처럼 액자 속에 갖혀진 그림을 이야기화하여 재구성하여 이해하는 방법이 미술에 대해 전문적인 소양이 없는 나로서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 노랫말이 마치 내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 더 가슴 절절한 감동을 느끼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미술사가 정석범의 “아버지의 정원”(루비박스, 2010년 7월)은 모네, 고흐, 뭉크, 마티스 등 유명 화가들의 작품들을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을 이야기로 하여 소개하는 미술에세이로 나처럼 그림을 이야기로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안성맞춤인 그런 책이다. 
 
 책에서는 작가의 어린 시절 에피소드를 짤막하게 먼저 소개하고 그 이야기에 부합하는 이미지의 그림들을 소개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작가는 군인이었던 아버지 덕에 전국 방방곡곡을 이사 다녔던 어린 시절 전곡, 원주, 대구, 비아에서 겪었던 일화들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전곡역 바로 앞에 살았던 탓에 어린 시절 기억의 첫머리는 온통 기차의 이미지로 가득차 있다는 작가는 또래 친구들과 노는 것에는 애당초 관심조차 없었고 밥술을 놓기가 무섭게 전곡역으로 달려 나가 기차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하루종일 놀았다고 한다. 이렇게 기차에 넋이 빠져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늘 혼자 놀고 그러다 보니 말수가 줄게 되어 어머니의 수심은 깊어만 갔고, 집을 자주 방문하던 아저씨는 말없이 머리만 조아리며 인사만 하는 작가에게 “말없는 사나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셨단다. 이처럼 기차의 매력에 푹빠진 그는 2002년 봄 파리의 생 라자르 역에 갔을 때 어린 시절 전곡역에서 느꼈던 경험과는 사뭇 다른 색다른 매력을 느끼게 된다. 전곡 시절이 열차의 거대한 크기와 기적소리, 다이내믹한 움직임 등 겉모습에 국한된 것이었다면 생 라자르역은 투명 유리로 된 거대한 기차 역사 아래로 쏟아지는 한낮의 태양빛이 결합된 복합적인 매력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작가는 자신이 느낀 인상을 포착한 클로드 모네의 “생 라자르 역”이라는 그림을 소개한다. 그리고 빛과 반사광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기차역사의 환상적 스펙터클에 정신이 팔린 자신이 이제는 기차의 저돌적 움직임과 낭랑한 기적소리에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이제는 더 이상 네 살배기 꼬마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외에도 쌕쌕이라 불리던 제트기의 굉음에 놀라 누나의 치마폭에 숨던 일화와 나빙의〈창곡도>, 황금알은 아니었지만 최고의 먹거리이자 소중한 달걀을 낳아주었던 암탉의 최후와 김득신의 <파적도>, 애지중지 키우던 진돗개가 죽어버린 사연과 조슈아 레이놀즈의 <강아지를 안고 있는 보울즈양>, 돼지 도살장에서 들려오는 돼지 멱따는 소리에 대한 공포와 뭉크의 “절규" 등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과 현재의 단상, 그에 연관된 이미지의 그림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아버지의 정원“은 에필로그에서 소개하는 데 평소 동물들과 화초 키우는 것을 좋아하는 아버지께서 대대장으로 근무하던 자신의 부대에 그 당시 신문에 소개될 정도로 멋진 꽃밭, 즉 아버지의 정원을 가꾸었다는 일화와 함께 조지아 오키프의〈분홍 그릇과 녹색 잎>을 소개한다. 

작가의 추억담만으로도 어린 시절 향수를 자극하는 재밌고 감동적인 이야기인데 미술 교과서에서나 보아왔던 그림들을 작가의 어린 시절 추억들과 어우러져 읽게 되니 그림의 이미지가 좀 더 명확해지고 쉽게 이해하게 된다. 어린 아이들이 사물들을 처음 익혀갈 때 이름과 이야기를 붙여 이해하는 것처럼 그림들에 각자의 이야기를 담아내어 자신만의 감상법을 만든다면, 그리고 아울러 화가의 에피소드나 그 당시의 사회적, 역사적 배경까지 알아나간다면 어렵고 낯설기만 그림들을 쉽게 이해하게 하는 그런 공부가 될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림이 더욱 가까워지고 친숙해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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