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어드 1 - Call me Transer
김상현 지음 / 시공사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지금으로부터 10 여 년 전인 1999년, 도서대여점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판타지 장르 소설들이 처음 태동하던 그 시절 놀라운 소설을 만났었다. 22세기 미래 시대의 프로게이머 이야기와 영혼이 에뮬레이터된 존재가 들려주는 가상의 이야기가 액자소설 형식으로 구성되었던 이 책은 독특한 세계관과 서로 다른 이야기가 전혀 어색함이나 치우침 없이 조화를 이룬 짜임새 있는 전개, 그리고 마지막 충격적인 결말이 인상적이었던 이 책은 사람의 말이 만들어내는 마법이라는 독특한 설정 때문에 “철학 판타지”라 불리울 정도로 높이 평가를 받아 판타지 장르소설 1세대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독자들이 추천하는 책이다. 바로 김상현의 “탐그루”(전 12권, 명상, 1999년)가 그 책인데, 꽤나 인상 깊었던 작가의 후속 작품들은 그 후로 아쉽게도 접해보지 못했다가 최근에 역사 팩션 소설인 “이완용을 쏴라”(우원북스, 2010년 4월)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그를 다시 만나고는 여러 가지 면에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우선 탐그루 출간 이후 판타지에 한정되지 않고 SF, 추리, 역사물 등 다양한 장르로 작품의 외연을 넓혀온 점이 놀라왔고, 생경한 역사 팩션 장르에서도 한층 진일보한 필력과 스토리 구성으로 놀라운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역시 놀라웠다. 그의 작품을 이렇게 10여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니 그동안 소식이 없던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나는 것 같아 절로 기쁜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탐그루”에서 느꼈던 색다른 재미와 감동을 이제는 다시 맛볼 수 없게 된 걸까 라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그러던 중 그의 초창기 장르 소설 중 가장 인기가 있었고, 재출간 요청이 가장 많이 쇄도했었다는 SF소설 “하이어드”가 재출간된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하고 기쁜 마음에 읽게 된 “하이어드”(시공사, 2010년 7월) 1,2권에 대한 첫 소감은 아직도 불모지나 다름없는 우리나라 SF소설 장르에서 이렇게 놀라운 성취를 보여준 작품이 이미 10년 전에 선보였었다는 것에 대한 경탄이었다.  

   작품의 배경은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인 지구를 연상케 하는 "어스(Earth)”를 무대로 하고 있다. 대기권을 탈출하는 기술보다 자신들의 별을 100번 박살낼 수 있는 기술을 먼저 만들어낸 어스의 종족 “휴먼 레이스”들은 결국 “최종 전쟁”이 일으키고 결국 종말의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다. 전쟁이 끝난 후 그동안 어스 주변에서 휴먼레이스들을 지켜보고 있던 외계종족들이 어스에 나타나고, 휴먼레이스를 용병으로 고용하여 종족간의 우주전쟁에 내모는 한편, 행성 어스를 중립지역으로 선포하여 온갖 외계 종족들의 망명지이자 피난처로 만들어 놓는다. 어스 행성의 돔형 도시 “푸우순”시의 돔 밖 마을에 살고 있는 메이런과 아이란은 16세가 되어 학교 과정을 마치고 이제 진로를 결정하는 인터뷰를 앞두고 있다. 성적이 우수했던 아이란은 도시로의 입성을 원하지만 평범한 능력의 메이런은 농사꾼으로 마을에 남을 것으로 예상이 되었지만, 메이런이 외계종족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대화를 하는 능력인 “트랜스”능력이 있다는 것을 선생에게 발각되어 트랜서로 추천을 받지만 어머니의 바램대로 능력을 감추어서 마을에 남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외계 종족에 의해 마을이 쑥대밭이 되면서 그의 바램은 물거품이 되고 외계 종족들이 의뢰한 일을 해결해주는 ‘하이어드’ 쿨란과 함께 트랜서로 일하게 된다. 1권에서는 만티드 레이스(곤충형 외계 종족) ‘시크사’가 ‘갈색의 여왕’이라는 비밀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왕가의 보물을 훔쳐 행성 어스로 오게 되고 사라져버린 그를 찾기 위한 쿨란과 메이런의 활약이 펼쳐지고, 2권에서는 1권의 사건이 종결된 지 3년 후 웨이팅 하우스 시의 경찰이 된 아이라가 라디오 방송국 회장 포레스트의 명령에 따라 직할반 특임조에 차출되어 도난당한 비밀문서를 회수하라는 임무를 맡게 되고, 트랜서로서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지만 트랜스로 인한 부작용인 “미싱”의 위기에 직면해 심한 두통에 시달리는 메이런이 연방 수사국의 의뢰로 쿨란과 함께 웨이팅하우스 시로 파견되어 아이라와 만나서 사건을 해결하게 된다. 그러나 사건 이면에 숨겨진 음모로 인해 다시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1권과 2권, 각 권마다 사건이 일단락되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1권에서는 이 작품의 배경인 어스 행성의 역사가 소개되고 이제 막 트랜서로 첫발을 내딛은 메이런의 활약이 펼쳐지고, 2권에서는 친구였던 아이라와 메이런이 서로 다른 도시에서 활동하다가 사건 때문에 같은 곳에서 만나 사건을 해결하는 활약을 그리고 있다. 지구라고 직접적으로 명시하고 있진 않지만 지구임에 분명한 행성 어스에 대한 설정, 시각적 이미지로 명확하게 형상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외계 종족, 그리고 일종의 해결사인 “하이어드”란 직업과 텔레파시와는 차원이 다른 능력인 “트랜스”에 대한 묘사 등 SF로서의 전혀 손색없는 기발하면서도 독특한 설정과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미국을 연상케 하는 “로즈웰형 외계인”, 베트남을 연상케 하는 “락벳 행성”이나 흑백 차별을 떠올리게 하는 “만티드 레이스”의 해방운동과 같은 사건과 배경들은 작가가 탐그루에서 보여줬던 정치 현실에 대한 신랄한 풍자가 여전히 녹슬지 않았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이미 “철학 판타지”라 평가받았던 탐그루를 통해서 묵직한 주제의식을 보여줬던 것처럼 이 책에서도 주인공인 메이런과 아이라가 성장하면서 겪는 삶에 대한 고뇌와 번민들을 밀도있게 묘사하고 있어 흥미위주의 가벼운 장르소설의 한계를 벗어나 품격 있는 SF소설로서의 풍취를 한껏 나타내고 있다. 장르소설로서의 재미, 그리고 진지한 고민과 현실에 대한 풍자가 잘 어우러진 이 책이 10년 전에 출간되었던 책이라니 그저 놀랍기만 하다. 비록 출간 당시 접하지 못하고 10년이 지나서야 만나게 되었지만 1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게 지금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스토리와 재미, 그리고 뛰어난 성취를 보여주는 이 책을 놓치지 않게 된것은 어쩌면 나에게는 행운과 같은 일이었다는 생각에 즐거운 마음이 절로 들게 한다. 8월에 출간 예정이라는 메이런의 전쟁이 다뤄질 3,4권에서는 어떤 재미와 감동을 주면서 결말을 맺게 될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작가 김상현, 아무래도 그의 작품들은 계속 찾아 읽게 될 것 같은 그런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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