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테 안경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조르조 바사니 지음, 김희정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30년대 무솔리니 파시스트 당이 집권하던 이탈리아의 소도시 페라라. 이탈리아가 독일 히틀러와 손을 잡은 시대에 주류사회로 결코 흡수될 수 없었던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 사람은 성공한 의사이지만 동성애자이고 또 한 사람은 앞날이 창창한 부루주아 대학생이지만 유대인이다. 동성애자와 유대인으로 대표되는 소수가 다수로부터 받는 은밀한 폭력이 시대와 결합하여 무섭게 작동하기까지의 과정을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문체로 그리고 있다.

 

나는 이미 이 끔찍한 역사를 알고 있기에 철저하게 소외당한 두 사람이 나누는 우정어린 대화가 그토록 절망적으로 느껴질 수 없었다. 전화 통화에서 동성애자인 파디가티 선생님의 마지막 말 "행운을 빌어. 너와 네 가족의......"

1937년은 이탈리아에 인종법이 시행되기 1년 전으로 마치 폭풍 전야와도 같은 불안하지만 앞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시기이다. 이런 시기에 아무 저항도 할 수 없는 외로운 한 사람이 또 다른 외로운 사람에게 건네는 이 말이 왜이리 가슴아프던지...

 

다음은 소설 초반 파디가티 선생님에 대한 묘사이다. 마지막 비극적인 그의 죽음과 대비되어 개인적으로 슬펐던 부분이다. 

 

p.9

그의 공손하고 신중한 태도, 눈에 띄는 청렴함, 가난한 환자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고귀한 정신을 사람들은 높이 샀다. 하지만 이런 이유보다도 외모에서 풍기는 인상이 먼저 그에게 호감을 느끼게 했다. 수염 없는 매끈한 뺨에 창백한 안색 위로 금테 안경이 유쾌하게 빛났고 사춘기의 위기를 기적적으로 견뎌낸 선천성 심장병 환자의 통통한 육체도 , 항상, 심지어 여름에도 부드러운 영국산 모직 외투에 싸여 있는 그 살진 몸도 전혀 불쾌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전쟁 동안 그는 건강상의 이유로 우편 검열관으로 복무해야 했다). 여하튼 분명 그에게는 뭔가 단번에 사람들을 매료하고 안심시키는 면이 있었다.

 

파디가티의 존재를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금테 안경은 그를 상징하는 물건이다. 사회적으로 존경과 사랑을 받던 사람이 다수의 그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무기력하게 짓밟히는 모습이 나중에 렌즈에 금이 간 금테 안경을 통해 슬프게 묘사된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평범한 인간들의 동성애자를 향한 혐오와 멸시가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이 아닌가...

 

이탈리아 소설은 처음이고 조르조 바사니라는 작가도 몰랐다.

1987년 영화로도 만들어 졌는데 파디가티 선생님역은 <시네마 천국>의 필립 느와레가 맡았다니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애잔함이 더욱 가슴에 스며드는 느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방구석 미술관 - 가볍고 편하게 시작하는 유쾌한 교양 미술
조원재 지음 / 블랙피쉬 / 2018년 8월
평점 :
품절


유명 화가들의 삶을 통해 그들의 작품을 쉽고 유쾌하게 설명해서 편안한 마음으로 재미있게 읽었다. 19세기 프랑스, 천대받던 발레리나들을 진정한 예술가로 대하며 그들의 아름다움과 예술을 붓으로 따뜻하게 표현했던 신사로서의 드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쾌락독서 - 개인주의자 문유석의 유쾌한 책 읽기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개인주의자 선언>으로 알려진 문유석 판사의 독서에 관한 책이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책 덕후로서의 삶을 솔직하고 유쾌하게 써내려가 즐겁게 읽었다. 호르몬 과잉 시기의 독서담은 너무 웃겨서 혼자 책을 덮고 엎드려 웃기도 했다. 그래도 판사님인데 이렇게 귀엽고 가끔은 찌질하며 응큼하기 까지 하니 급 친밀감이 들 수 밖에. 그러나 학생시절 책을 그렇게 읽으면서 그다지 열심히 공부를 안했는데도 반에서 1등을 했다는 부분에선 역시 판사님...이란 거리감이 들었다.

 

나는 이런 '책읽기에 관한 책'을 가끔 읽는데 이유는 독서 생활하는데 있어서 잊고 있던 즐거움과 새로운 자극을 주기 때문이다. 책을 좋아하다 못해 중독이 되어 재밌는 책은 모조리 읽으려고 노력한 사람의 책답게 시종일관 재밌는 책들 이야기가 자신의 삶과 함께 소개되어 읽으면서 내내 즐거웠다.

이 책의 매력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같은 것을 좋아한다는 그 자체로 즐거움을 주고, 책읽기가 습관이 안 된 사람들에게는 독서가 뭔가 피곤하고 힘든 것이 아닌 '즐거운 놀이'로서 얼마든지 우리 삶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는 점이다.

 

저자가 읽은 책들 중 꼭 읽어야 겠다고 생각한 책은 다음과 같다.

 

이문열 <황제를 위하여>

위화<인생>,<형제>

김영하 <검은 꽃>,<아랑은 왜>

스티븐 핑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을병 <이브의 건넌방>-파격적 베드신이 난무하여 저자가 호르몬 과잉 시절 침 튀기며 친구에게 자랑했다던...이 책의 영향으로 한국문학에 대한 왜곡된 생각을 갖게 되어 한국 문학 대전집을 읽게 되었다고... 야한 부분이 있나 샅샅히 뒤지며 읽는 저저의 모습이 상상이 되니 웃길 수 밖에.

근데 너무 오래되서 찾을 수가 없다.

 

하여튼 읽을 책이 참 많다. ㅠ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라진 소방차 마르틴 베크 시리즈 5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랜만에 나온 마르틴 베크 시리즈 5탄!
그냥 무조건 읽는 시리즈이다.
특히 이번 책에서는 그동안 비호감으로 그려졌던 경찰 군발드 라르손의 활약이 인상깊었다. 점점 더 짙어가는 마르틴 베크의 외로움. 사건 못지 않게 경찰들 개인의 삶 또한 이 책을 읽는 재미를 준다. 6편이 빨리 나오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Q84>를 마지막으로 하루키의 작품을 더 이상 읽지 않았다. 그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의 에세이 -<재즈의 초상>,<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 는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가 마라톤을 한다는 사실은 꽤 유명한 이야기라 이 책이 달리기에 관한 에세이라는 점이 특별히 생소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읽으면서 '하루키의 마라톤에 대한 열정과 인내가 이 정도 였나' 싶을 정도로 놀랐고 한 인간의 인내와 절제, 집중,고민하는 삶의 자세에 존경의 마음까지 품게 되었다.

 

요즘 나오는 신간 책들을 보면 '삶을 즐기면서 나 편한대로 적당히 대충하며 살자'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제목의 책들이 많다. 요즘 세상이 경쟁이 치열하고 금수저로 태어나지 않는 이상 삶에 희망은 안 보이며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살기도 버거운 세상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런 식의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는것은 왠지 모르게 불편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런 말을 하고 싶은건 절대 아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소중하고 한 번 뿐인 인생, 자기 자신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관조적인 자세는 필요하지 않나 싶다.

 

내 삶의 우선 가치를 두고 하나하나 꾸준히 실천해 나가는 자세. 별거 아닌 거 같지만 그것이 쌓여서 10년, 20년이 된다면 분명 그 인생은 적어도 하루키의 말처럼 '뒤죽박죽'은 아닐 것이다.

 

하루키는 이 책을 에세이라고 하기 보다는 '달리기라는 행위를 축으로 한 일종의 회고록'으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만큼 솔직하게 쓰려고 했고 달리는 소설가로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나를 담고 싶었다고 한다.

 

2019년을 앞두고 감동적인 자기계발서를 본 느낌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달리는 이야기인데 왜 교훈적이며 감동적인 것인지...

어제보다 더 나은 자신을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관찰하고 질문하며 노력하는 자세와 그 가운데 놓치지 않고 확실하게 누리는 소소한 행복까지...바로 이런게 '하루키스럽다' 라고 난 말하고 싶다.

 

p. 20~21

그리고 나는-그런 여러가지 흔해 빠진 일들이 쌓여서-지금 여기에 있다.

 

p.27

어제의 자신이 지닌 약점을 조금이라도 극복해 가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장거리 달리기에있어서 이겨내야 할 상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과거의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p.65

내 생각에는, 정말로 젊은 시기를 별도로 치면, 인생에는 아무래도 우선순위라는 것이 필요하다.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배분해가야 할 것인가 하는 순번을 매기는 것이다. 어느 나이까지 그와 같은 시스템을 자기 안에 확실하게 확립해놓지 않으면, 인생은 초점을 잃고 뒤죽박죽이 되어버린다.

 

p.103

마라톤 마을의 아침 카페에서 나는 마음 내키는 대로 찬 암스텔 비어를 마신다. 맥주는 물론 맛있다. 그러나 현실의 맥주는 달리면서 절실하게 상상했던 맥주만큼 맛있지 않다. 제 정신을 잃은 인간이 품는 환상만큼 아름다운 것은 현실 세계에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