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급생
프레드 울만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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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32년 2월에 내 삶으로 들어와서 다시는 떠나지 않았다.' 라는 인상적인 문장으로 시작하는 <동급생>은 프레드 울만 (Fred Uhlman 1901~1985) 의 중편소설이다. 작가는 독일 출생이지만 히틀러가 집권한 후 독일을 떠나 몇 군데를 전전하다가 영국에 정착한 화가이다. 이 작품은 작가가 1971년 노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처음에는 주목받지 못하다가 1977년 재출간되면서 큰 화제가 되었다. 


<동급생>은 1930년대 초 독일 서남부 슈투트가르트를 배경으로 유대인 소년과 독일 귀족 소년 사이의 순수하면서도 낭만적인 우정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유대인 의사의 아들인 한스 슈바르츠는 16살로, 어느 날 그가 다니는 학교에 귀족 집안의 소년이 전학을 온다. 그의 이름은 콘라딘 폰 호엔펠스. 그는 한스가 이상형으로 꿈꾸던 바로 그런 친구였다. 한스는 '그의 당당한 자세, 예의 바름, 우아함, 잘생긴 용모에 끌렸'고, 친해지기 위해 서서히 다가간다. 


한스의 뜻대로 두 소년은 친구가 되어 함께 기차 여행도 하며 시도 읊고, 삶과 종교에 대한 진지한 대화도 나누며 둘만의 우정을 키워 나간다. 

그러나 그 누구도 방해하지 못할 듯 보이던 이들의 우정도 시대를 뒤덮고 있는 광기 앞에서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한스가 처음에 콘라딘을 보고 강하게 끌린 것은 그가 '우리 역사의 일부'인 호엔펠스 가문이었기 때문이다. 이 명문가가 배출한 인물들을 한스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그들이 바로 자신의 나라 독일을 빛낸 인물들이었기에 한스는 그들의 후손인 콘라딘과 그토록 친구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또한 한스의 아버지는 합리적인 인물로 '유대인들과 기독교도들에게서 동시에 존경 받는 평판 좋은 의사'이다. 그는 동화된 유대인으로서 시온주의자를 혐오한다. 이스라엘이 2천년이나 지난 지금 팔레스타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이탈리아인들이 로마 시대에 한 때 독일을 점령했다는 이유로 독일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터무니 없는 짓'(p.82)이라고 생각한다. 


한스와 한스 가족은 자신들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이 중요하지 않다. 혈통만 유대인일뿐 그들은 조국인 독일을 사랑하고 독일을 위해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는 독일의 국민이다.

그러나 이들을 둘러싼 세계는 더 이상 그들이 알던 세계가 아니며 그것은 한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토록 친해지고 싶었던 친구와의 반짝이던 우정도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소용돌이 속에서 그 빛을 잃어가고 한스와 콘라딘은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평온하던 시절 한스와 콘라딘은 매일같이 고민하며 이야기했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무슨 목적을 위해? 우리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인류의 이익을 위해? 어떻게 해야 이 잘 안 되는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을까?' (p.70)


이 책의 잊을 수 없는 마지막 문장은 두 소년이 함께 나누던 이런 고민들을 떠올리게 하고 이 책을 다시 읽게 만든다. 영어 제목인 <Reunion> 처럼 이들이 다시 만나 이야기 나누는 그 내밀하면서도 소중한 순간들이 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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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3-26 2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얇은데 참 울컥한 작품이죠. 전 이 책 다 읽고 팔아야지 했었는데 아직 갖고 있네요. ㅎㅎㅎ

coolcat329 2021-03-27 06:59   좋아요 0 | URL
네...가슴이 미어진다는게 이런 상황이 아닌가 싶어요. 참...ㅠㅠ

han22598 2021-03-30 0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책. 작년에 읽었는데, 지금도 그때의 느낌을 잊을 수 없어요. 아마도 앞으로도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아요. 이런 책들...참 대단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coolcat329 2021-03-30 13:31   좋아요 0 | URL
읽으셨군요...맞아요. 이 책의 처음과 끝은 참...잊을 수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