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의 풍토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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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스마일 카다레의 작품집이다.

각 작품이 40년의 간격을 두고 쓰여져 작품마다 작가의 다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죽은 군대의 장군>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 읽고 있다가 우연히 중고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구입,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읽기 시작했다. 알바니아라는 나라에 대해서도 모른채 그저 제목과 표지가 주는 으스스함에 끌려서 읽었는데 작가의 다른 작품을 먼저 읽고 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첫 작품 <광기의 풍토>는 2004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알바니아에 공산 정권이 들어서는 전후 시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정권이 바뀌는 혼란스러운 시대에 한 아이의 시선을 통해 본 가족, 학교, 사회의 모습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쓸쓸함을 풍긴다. 공산정권이 들어서는 불안한 현실이지만 천진난만한 아이가 느끼기에 공산주의라는 유령은 전혀 무섭지도 재밌지도 않고 시시할 뿐이다. 아이의 눈에는 스탈린도 엔베르 호자(엄격한 스탈린주의,폐쇄정치로 유명한 알바니아 독재자)도 그저 별볼일 없는 나약한 인간으로 보인다. 반면 외할아버지 바바조는 알바니아 국가의 창건자라 믿는 둥 그 나이 아이답게 엉뚱한 상상을 하기도 한다.

이데올로기로 인한 가족 간의 갈등, 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혼란이 어린 아이의 눈을 통해 형상화 되는데, 제목이 말해주듯 그 밑바닥에는 보이지 않는 광기가 깔려있음을 느낄 수 있다. 알바니아의 역사를 전혀 모르는 나로서는 아이의 시각으로만 그려지는 세계가 이해가 안가 인터넷을 찾아가며 읽었는데, 결론적으로 알게 된 것은 '아, 이 나라도 참으로 고난한 역사를 가졌구나...' 였다.

 

<광기의 풍토>가 공산주의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낸 시기였다면, 두 번째 작품 <거만한 여자>는 공산주의 정권이 이미 들어서서 그 세력을 떨치던 시기로 정권교체로 몰락한 구세대와 새로운 사회에 주축으로 등장한 신세대 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과거의 영광은 뒤로한 채 초라한 시골에서 살아야 하는 구시대 고급 관리의 아내였던 노파 무하네즈는 딸을 공산당 소위와 결혼시켜 다시 한번 새로운 삶을 꿈꾼다. 그러나 알레코는 몰락한 관리의 딸과 결혼한다는 이유로 당에서 축출되고 군에서도 쫓겨나지만 예정대로 결혼식은 올린다. 어느 쪽에서 봐도 이해가 안가는 결혼이지만 알레코는 장작 저장소 하급 일자리를 얻어 특유의 성실함과 처세술을 이용, 살벌한 공산주의 사회에서 그 능력을 인정받게 된다. 하지만 차가운 장모와는 갈수록 그 갈등이 깊어지고 급기야 서로를 향해 폭언까지 하게 되는데, 마지막 반전은 몰락한 구세대가 지닌 가족에 대한 가치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알레코가 공산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펼치는 온갖 술수와 처세가 재미있으면서도 애달프고, 장모와 사위와의 대립 또한 흥미롭고 긴장감있게 그려진다. 무엇보다 인물의 심리묘사가 뛰어나 러시아 소설을 읽는 느낌이었는데 뒤에 옮긴이의 말에서도 '탁월한 러시아 사실주의 소설의 뉘앙스를 전해주는 작품'이라는 설명이 나와 내가 잘못 읽은 건 아니구나 싶어서 살짝 기분이 좋았다.

 

세 번째 작품 <술의 나날>은 1962년 작품으로 이 책의 세 작품 중 가장 먼저 쓰여졌다.

'사는 게 지겨워진' 나와 친구는 삶에 변화를 꾀하던 차에 강의 중 우연히 알바니의 위대한 시인의 작품이 소실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 나서기로 결심한다. 계획도 없이 무작정 N시로 떠나고 그곳에 사는 친구의 숙부집에 머물게 된다. 애시당초 아무런 계획도 없이 무작정 떠난 여행이기에 어디로 가야할지, 왜 찾아야 하는지, 강한 의지가 보이지 않는 두 사람. 결국엔 숙부집에서 '권태로 죽을것만 같'은 두 사람은 급기야 숙부와 싸우고 집을 나온다. 호텔에 머물며 술과 담배를 피워대고 가는 곳마다 사람들과 싸우고 결국엔 교회에 침입, 난동까지 부리게 된다. 결국 문화유산 약탈자라는 비난을 받으며 쫓겨나듯이 도시를 떠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위대한 삶을 시작해야 한다는 조바심'과 지루한 삶으로부터 탈출하고 싶다는 꿈이 두 젊은이를 지배하고 있지만 그들의 젊음은 무기력하고 심하게 낙관적일 뿐이다. 권태로운 세상에서 어찌보면 술 마시는 일 밖에 할게 없는 젊은이들, 젊은이를 이렇게 만든 건 무엇일까...1960년대 알바니아에 짙게 깔린 권태란 어디서 온 것일까...두 청년의 어이없는 행동과 여정이 마냥 웃기지만은 않다.

 

낯선 나라의 낯선 사람들의 삶을 담은 낯선 분위기의 작품이었다.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카다레의 작품을 처음 만나서 뿌듯하고 이해가 잘 안되서 두 번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재미있었다. 역사적 배경을 알고 읽었더라면 글 사이사이 감춰져 있는 작가의 메시지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도 남는다.

그의 첫 작품<죽은 군대의 장군>을 시작으로 다른 작품들도 조만간 읽어 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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