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수는 부부간의 사랑을 뜻했지만 적절치 않은 것 같았다. 그 꽃말은 왠지 미래를 위한 제안이라기보다 과거에 대한 묘사 같았다. 더구나보리수를 찾는 것도, 그러고 나서 작은 가지 하나를 꺾는 것도, 또 앤마리에게 거실 탁자에 꽃다발이 아닌 나뭇가지를 들여놓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도 쉽지 않을 듯했다.

지금껏 나는 오직 꽃말에 대해서만 정직했다. 꽃말을 두고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다면, 내 삶에는 더는 아름다운 것도, 진실한 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라눙쿨루스를주었다. ‘당신의 매력은 눈이 부십니다.

"바로 이 맛을 기억해야 하는 거야 이 맛이 나야 해, 75의 당, 7의타닌 이게 바로 완벽하게 익은 와인용 포도란다. 기계로도 알아낼 수없고 아마추어는 절대 감별할 수 없는 맛이지."

"거트루드 스타인"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이 시인 몰라? 왜 그거 있잖아, 장미는 장미라서 장미다.……

 그들과의 상담은 슬프기도 했고 재미있기도 했으며 그러면서도이상할 정도로 희망적이었다.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 보려 애쓰는 그들의 모습은 내게 너무도 낯설었다. 왜 그냥 포기하지 않는 걸까.

나였다면 그저 놓아버렸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붉은 장미 선물해 본 적 있어?"
그랜트가 물었다.
나는 그가 디기탈리스를 강제로 먹이려 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끼장미는? 머틀은? 패랭이꽃은?"
"사랑의 고백? 사랑? 순수한 사림?"
같은 꽃말을 생각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묻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아니, 아니."

"내 취향은 엉겅퀴, 작약, 바질에 가까워."
"불신, 분노, 증오라………."

"낭만적인 언어에 집착하는 네가, 연인들의 감정 표현을 위해 만들어진 꽃말에 집착하는 네가, 증오를 퍼뜨리는 데 그 언어를 사용하고있다는 게?"

우리 주위를 둘러싼 장미를 바라보며 그가 말했다. 갖가지 장미가 피어 있었지만 노란 장미는 한 송이도 없었다.

그날 저녁 파란 방에서 앤마리의 요구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친밀감의 반대 개념에 익숙했다.
 ‘냉정‘을 뜻하는 수국은 오랫동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었다. 수국은 샌프란시스코의 잘 가꾼 정원들에서 1년 중 6개월은 꽃을 피웠고, 가정부들이나 보육원 직원들의 손이많이 가지 않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5년 동안 불 꿈을 꾸었다. 내가 지나가는 나무마다 불이 붙었고 바다지 불타올랐다. 달착지근한 연기가 잠자는 동안 내 머리카락에 배었그 일어날 되어도 그 냄새가 베개에 남았다. 

이런 보육원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달아나거나, 나이를 먹어서 나가거나 아니면 다른 시설에 수용되는 것뿐이었다. 소위14단계에 해당되는 아이들은 입양이 되지 않았고 집으로 돌아가는경우도 극히 드물었다. 이곳 아이들은 자신의 미래를 알고 있었다. 

나는 똑같은 꽃을 쓰고 또 썼다. 
‘슬픔‘ 의 금잔화 한 다발, ‘인간에 대한 불신‘의 엉겅퀴 한다발
‘증오‘ 의 말린 바질 한 다발, 다른 꽃을 쓰는 경우도 아주 가끔 있긴했다. 다시는 포도밭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붉은카네이션을 썼고, 메러디스에게는 틈만 나면 작약을 주었다. 집을 찾아마켓가를 거닐며 나는 머릿속으로 꽃말 사전을 뒤적였다.

 빨간색과 분홍색 장미한 다발, 시들어가는 줄무늬 카네이션 한 다발, 원뿔 모양의 종이 바구니 위로 흐드러진 자줏빛 달리아. 달리아, ‘품위‘, 나는 곧바로 깨달았다. 그게 바로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라는 것을, 

"이젠 이 생활도 끝이야. 네 인생은 지금부터 시작인 거다. 지금부터는 모든 게 네 책임이고, 니 자신 말고는 누구 탓도 할 수 없다는 걸 명심해라."

메러디스 콤스,
나를 보육원으로 돌려보낸 수많은 입양 가족의 선정 책임자였던 사회복지사, 그녀가 감히 내게 책임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직원들이 끔찍하긴 했지만 나는 보육원이 좋았다. 제시간에 식사를 했고 담요 두 장을 덮고 잤으며 그 누구도 나를 사랑하는척하지 않았으니까.

흰 벽이 깨끗한 새것이고 내가 쓰기 전에 아무도 쓰지 않았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라벤더예요."
가지 하나를 그녀에게 내밀며 말했다.
‘불신‘

. 갑작스럽게 부랑자 신세가 된 것이 나의 의식적인 결단은 아니었다. 그러나 부랑자 신세로 전락하는 날 아침, 나는 옷을 입으면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나 자신에게 놀랐다. 두려움이나 분노를 기대했건만 설렘과 기대감이 그 자리를 채웠다. 

어렸을 때 새로운 가정에입양될 때마다 느꼈던 감정과 비슷했다. 성인이 된 나의 소망은 아주단순했다. 나는 혼자 있고 싶었고 꽃들에 둘러싸여 있고 싶었다. 마침내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듯했다.

"꽃말에 대해서 말하는 거란다. 꽃말은 네 이름을 딴 빅트리아 시대에 시작된 거야, 수백 년 전에 사람들은 하고 싶은 말을 뜻으로 대신에, 남자가 여자에게 꽃 한 다발을 주면 자는 다발을 들고 집으로달려가서 마치 비밀문서처럼 그 의미를 해석했지, 빨간 장미는 사랑을 뜻하고 노란 장미는 부정을 뜻해. 그래서 꽃을 아주 신중하게 골라야 했단다."

"저기 저 로즈메리, 기억의 상징! 방금 셰익스피어를 인용한 건데,
고등학교 가서 배울 거야. 매발톱꽃은 버림, 호랑가시나무는 예지, 라벤더는 불신..…."

"그건 아몬드 나무란다. 봄에 피는 꽃은 무분별을 상징하지. 넌 모르는 게 좋아. 그래도 아름다운 나무야."

"빅토리아, 난 너도 다른 사람들이 모두 틀렸다는 걸 증명해 보일 수있을 거라고 믿어. 네 행동은 하나의 선택일 뿐이야. 그게 너의 본디 모습은 아닐 거야."

"얼이 다녀갔어. 자기 손녀딸이 정말 행복해 했다고 너한테 전해 달래, 꼭 ‘행복‘이라는 말을 써달라면서 네가 꽃으로 그 애한테서 행복을이끌어냈다고 하던데."

나는 미소를 지으며 레나타의 시선을 피해 창밖을 바라보았다. 얼은꽃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나의 비밀을 털어놓은 것이 후회되지 않았다.

"우습지? 오늘 다시 들르겠다. 자기 아내한테 줄 꽃을 살 거래."
나에게 새로운 임무가 주어진다는 생각에 잠시 가슴이 두근거렸다.
"부인은 어떤 분이세요?"
내가 물었다.

☆☆"아주 조용해, 그 이상은 나도 잘 몰라. 한때는 시인이었다는데 요즘은 통 말도 없고 글도 안 쓴대. 얼은 거의 매주 꽃을 선물하지 아마 예전의 아내를 그리워하는 것 같아."
‘페리윙클, 소중한 기억들.‘

"철쭉이에요."
계산대에 꽃가지를 내려놓으며 내가 말했다. 자줏빛 꽃들은 아직 피지 않았고 단단하게 여며진 독을 품은 꽃봉오리들이 그를 향하고다.
 ‘조심하라.
그는 꽃을, 그리고 내 눈빛에 담긴 경고를 읽었다. 

나는 어둠 속의 고독이 편안했다. - P67

얼은 고개를 비스듬히 기을인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제 생각해 보니 집사람은 한 번도 할복했던 적이 있는 것도그가 헛웃음을 웃었다.
"하지만 항상 열정적이었지, 똑똑하고 호기심도 들고 늘 자기견이 분명한 여자였어. 자기가 잘 모르는 것에 대서도 그대가그리워내가 기다리던 바로 그 주문이었다.

"왜 있잖아, 지나가다가 아기를 보면 어쩔 줄 모르는 여자들의 유전자. 난 한 번도 그런 적 없거든."

"그게 바로 내가 이 사업을 끌어온 방식이야. 고객들이 원하는 게 무언지 그 사람들이 알기 전에 먼저 알아내는 것. 고객들의 요구를 예측하는 것,

고객이 들어오기도 전에 꽃을 포장하고, 고객이 바쁜 상황인지 아니면 꽃을 둘러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는지 판단하는 것.
너한테도 그런 재능이 있는 것 같아. 그런 종류의 직업적인 직관 말이야. 물론 네가 그런 직업을 원할 때 얘기지만."

연두색의 뒤엉킨 가지에 동그란 회색빛 잎사귀들이 자랐고 투명한공들이 빗방울처럼 가지에 매달려 있었다. 자른 모양이 내 손 안에 곡들어가는 크기였고 여린 잎사귀들이 손바닥을 찔렀다.
겨우살이,
‘나는 모든 역경을 이겨내리라.‘

내 반응은 항상 똑같을 거야.난 널 사랑할 거야 널 내 곁에 둘 거야."
나는 엘리자베스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한 말에 대한 의심으로 몸이뻣뻣하게 굳었고, 욕실에 수증기가 차서 숨 쉬기가 불편했다. 엘리자베스를 이해할 수 없었다. 엘리자베스는 어깨를 반듯하게 펴고 정확하고도 분명한 문장으로,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진지함을 담아 말하고 있었다

. 그러나 그 목소리 이면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다정함이 있었다.
그녀의 손길 역시 너무도 달랐다. 내 손을 닦아줄 때의 그 세심함에는 다른 수양어머니들에게서 느껴졌던 무겁고 조용한 짜증이 배어 있지 않았다. 나는 그 손길을 믿을 수 없었다.

그녀와 나 사이의 공간을 침묵이 채웠다. 엘리자베스는 귀 뒤로 머리를 넘겨주면서 대답을 요구하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알겠어요."

"다시 마셔봐, 익숙해질 거야. 페퍼민트는 따스한 느낌이란 뜻이야

"나쁜 느낌이겠지요."
"아니, 따스한 느낌. 왜 있잖아, 좋아하는 사람 앞에 있을 때 간지러운 것 같은 그 느낌."

"빅토리아, 꽃말은 타협이 불가능한 거란다."

"모든 꽃은 꼭 한 가지 의미만을 갖고 있단 뜻이야. 로즈메리처럼, 로즈메리의 꽃말은....."
"기억, 셰익스피어가 그랬어요. 그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맞아!"
엘리자베스가 놀란 표정으로 말하더니 

"그리고 매발톱꽃은 ..…" 하고 덧붙였다.
"버림."
"호랑가시나무는?"
"예지."
"라벤더는?"
"불신."

토요일이 되자 마침내 답장이 준비되었다. 금어초, ‘건방짐.

연필로 그린 흐릿한 그림이었다. 꽃이 아닌 나무줄기였고, 껍질이퉁불퉁하고 벗겨져 있었다. 나는 나무의 껍질을 손끝으로 어루만겨보았다. 종이는 평평했지만 그림이 워낙 사실적이어서 나무 마디를 느낄수도 있을 것 같았다. 오른쪽 아랫부분에 화려한 글씨체로 백양나무라고 적혀 있었다.

백양나무, 내가 외우고 있는 식물이 아니었다. 나는 배낭에서 꽃 사전을 꺼냈다. 백양나무(white poplar)와 포플러 (poplar)를 모두 찾아보았지만 둘 다 사전에 나와 있지 않았다. 의미가 있다 해도 내 사전으로는 알아낼 수 없었다. 나는 두루마리를 다시 감고 리본으로 묶다가 멈칫했다.

서양자두나무 (plum)와양귀비 (poppy) 사이에 백양나무(popular, white)가 있었다.
시간.
나는 한숨을 쉬었다. 마음이 놓였지만 한편으로는 혼란스러웠다.
책장을 덮으면서 서늘한 책표지 위에 이마를 얹었다. ‘건방짐‘의 답장으로 ‘시간‘ 이라.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추상적인 내용이었다. 시간이 말해 줄 거라고? 아니면 시간을 달라고?

엘리자베스의 대답에 나는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엘리자베스는 조롱하는 듯한 눈빛을 머금고, 선인장은 ‘열렬한 사랑‘을 뜻한다고, 신발이 완전히 못 쓰게 되었을지언정 그런 감정을 표현해 주어서 고맙다고 말했다. 

집을 나서려는데 엘리자베스가 꽃다발을 내 목 뒤에 댔다. 자기 대답이뭔지 궁금하지 않으냐고 엘리자베스가 물었다. 돌아서니 조그만 자주색 꽃잎들이 눈에 들어왔다. 헬리오트로프, ‘헌신적인 사랑‘ 이라고 일리자베스가 말했다.

"증오를 의미하는 꽃이 무언지 가르쳐줄 수 있어. 하지만 싫다는 말은 좀 모호해, 증오는 열정일 수도 있고 냉정일 수도 있거든. 사람에 대한 혐오에서 나오는 것일 수도 있지만 두려움에서 나오는 것일 수도 있어. 그런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꽃도 가르쳐줄게."

엘리자베스는 그저 미소지을 뿐이었다.
"엉겅퀴의 꽃말을 몰랐다면 정말 기분이 좋았을 텐데, 이게 네가 나한테 베푼 가장 큰 친절인데, 이 선물이 인류에 대한 너의 증오와 불신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니…."

책을 읽을수록 세상에 대한 확신이 서서히 나에게서 빠져나갔다.
 매발톱꽃은버림과 어리석음‘을 뜻했고 양귀비는 ‘상상‘과 ‘사치‘를 뜻했다. 아몬드꽃은 엘리자베스의 사전처럼 ‘무분별‘ 이라고 나오는 
데도 있었지만 다른 가게에서는 ‘희망‘ 혹은 사려 깊음으로 기록되었다. 심지어나에게 가강 중요한 엉겅퀴조가 금욕이거나 ‘인류에 대한 불신‘ 이었다.

"엉겅퀴는 왜요?"
그가 초콜릿 도닛을 집이 들며 물었다.
"그게 당신이 나에 대해 알아야 하는 전부니까요."

갈비뼈 밑의 공간이 부풀어 올랐다. 실내가 이상할 정도로 환하게 느껴졌고 산소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동률 - kimdongrYULE
김동률 노래 / Kakao Entertainment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그저 좋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태엽 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
그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을 때, 나는 주방에 서서 스파게티면을 삶고 있던 참이었다. 면이 완전히 삶아지기 직전, 나는 FMI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로시니의 <도둑 까치 서곡을 휘파람으로 따라 부르고 있었다. 스파게티 면을 삶는 데 거의 최적의 음악이었다.

"그런 건 관계없어요. 어쨌든 십 분만 얘기하고 싶어요. 그러면 서로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여자는 빠른 어조로 말했다.

서로 이해한다고?
대체 그 여자는 무엇 때문에 내게 전화를 했을까? 그리고 그여자는 대체 누구일까?

모든 것이 수수께끼에 싸여 있었다. 낮선 여자에게서 익명의전화가 걸려올 만한 기억도 없고,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도 전혀 김작이 가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여자는 처음부터 십 분이라는 시간을 확실히 정해놓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한정된 시간을 정한 데 상당한 확신을가지고 있는 듯 느껴졌다. 구 분은 너무 짧고 십일 분은 너무 길지 모른다. 마치 스파게티의 알덴테 처럼…

이웃집 나무에서 마치 태엽이라도 감는 듯 끼이이익거리는새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우리는 그 새를 태엽 감는 새‘
라고 불렀다. 아내가 붙인 이름이었다. 진짜 이름은 모른다.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과 관계없이 태엽 감는 새는 매일 그 이웃집 나무에 찾아와 우리가 속한 조용한 세계의 태엽을 감았다.

나는 주방 식탁에 턱을 괴고 앉아 그것에 관해 - 대체 언제어디서 내 인생이 어긋나기 시작했는지에 관해 - 좀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알 수 없었다. 

나는 나로지극히 평범하게 살아왔다. 그런데 대학 졸업을 앞둔 어느 날, 갑자기 나 자신이 예전의 내가 아니란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분명 그 어긋남은 처음에는 눈에 띄지도 않을 정도로 아주 사소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커지다가, 급기야있어야 할 곳에서 한참 떠밀려와버려서, 원래 모습을 찾아볼 수없을 지경이다. 

태양계를 예로 들면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아마토성과 천왕성의 중간 지점 부근쯤 될 것이다. 조금만 더 가면명왕성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 나는 생각했다 그다음에는 대체 뭐가 나올까?

"나를 과대평가하는군요. 당신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난 그런 대단한 인물이 아니에요. 나는 뭔가를 끝까지 해내는 능력이부족해요. 그래서 자꾸 샛길로 빠져버리는 겁니다."
"그렇지만 나, 당신을 좋아했어요. 옛날 얘기지만."

"질문하는 건 나쁜 게 아냐. 질문을 받으면 상대도 뭔가를 생각하게 되니까."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요." 소녀는 발끝을 보면서 말했다. "모두 적당히 대답할 뿐이에요."

식사 후 욕실에서 나오자, 아내는 전등을 끄고 거실의 어둠 속에 동그마니 앉아 있었다. 회색 셔츠를 입고 어둠 속에 꼼짝 않고 웅크리고 앉은 그녀는, 마치 누가 버리고 간 짐짝처럼 보였다. 나는 그녀가 몹시 안쓰러웠다. 그녀는 잘못된 장소에 놓인것이다. 다른 장소에 있었더라면 더 행복했을지 모르는데,

"당신은 그런 사람이야." 아내는 말했다. 언제나언제나 그래. 스스로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많은 것을 죽였어."

와타나베 노보루, 너는 어디에 있느냐? 하고 나는 생각했다태엽 감는 새는 네 태엽을 감지 않았더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