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어떤 사랑도 사랑을 대신할 수 없다."

그 후로 그는 대학 진학을 위해 읽던 수많은 철학 책을 비롯해 다른도든 책들과 완전히 결별했다. 그리고 그녀가 쓴 책 전부를 읽기 시작했다. 한 작가를 평생에 걸쳐 숭배하게 된 역사는 이 책,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에서 시작된 것이다. 오직 그녀의 글을 읽고 받아 적는 것만이 뒤라스를 향한 그의 열병을 잠재울 수 있었다.

뒤라스 사후 3년 후, 그는 그녀와의 삶을 회고하는 저서 『이런 사랑Cet Amour-lia 를 세상에 내놓는다. 그는 이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을 읽는 순간, 자신이 그 이름이고 싶었고,
그녀가 쓴 문장을 모조리 다시 옮겨 적고 싶었다고, 자신이 그녀와하나가 되어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를 옮겨 적는 손이 되고 싶었다고,

이소설에서 뒤라스는 설대적인 사람이 불가능함을 말하려 했을지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사랑 말고 달리 무엇에 의존하겠는가?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우리 시대의 가장 독창적인 작가들 중 한 사람이다. 뒤라스의 작품을 관통하는 것은, 절대적인 사랑은 필수적인동시에 불가능하다는 확신이다. 

그들이 이곳으로 휴가를 온 이유는 순전히 이곳을 좋아하는루디 때문이었다. 유서 깊은 서구 바닷가의 작은 마을, 가장 폐쇄적이고 가장 무더우며 얼마 전까지도 세계 대전에 휩쓸렸던, 역사의 풍파가 끊이지 않았던 곳.

결코 개발될 가능성 없이 철저히 외진 그것이 바로 루디가 좋다고 말하는 것이었고, 자크가 아주 싫지는 않다고 말하는 것이었으며, 사라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루디의 얘기를들으며 사라는 문득 그가 그녀에 대해 했다는 말을 떠올렸다. 여드레 전 밤이었다. 자크가 그녀와의 언쟁 끝에 그가 했다는 말을반복해서 전했다. 산에서 지뢰 폭발 사고가 일어난 것은 이 사소한 다툼 루디가 그녀에 대해 했다는 말을 듣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이 있고 난 다음 날이었다. 

그녀는 이날 아침 이전까지는 루디가 그녀를 두고 했다는 말들에 대해 미처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다. 산에서 일어난 폭발 사고 때문이기도 했고, 어쩌면 모터보트 남자의 출현 때문일 수도 있었다.

가정부가 가버렸다. 사라와 자크는 가정부에게 호의를, 나아가애정마저 느꼈다. 하지만 가정부의 언행이 자주 거슬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들 부부를 제외한 모두가 가정부를 못마땅해 했다. 가정부는 애인을 자주 갈아치웠고, 새 애인을 만날 때마다 한결같이 전적이고 맹목적인 애정을 쏟았다. 

그들 부부는 가정부의그런 점을 좋아했다. 그리고 남자를 향한 애정 못지않게 한결같은, 세상 누구에게도 주눅들지 않는 당돌함이 좋았다.

그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캐노피 안은 둘뿐이었고, 대화 사이에 스미는 침묵은 들판의 정적만큼이나 강렬했다. 남자는 30대가량 되어보였고, 혼자였으며, 멋진 배의 주인이었다. 휴가객들 중 아직 아무도 그의 배를 타 보지 못했다. 그들 모두, 특히 루디와 아이가그의 배를 열렬히 타 보고 싶어했다. 무더위도 한몫했고, 휴가였다. 모두가 바다와 해수욕과 요트로 물살을 가르기를 갈망했다.

모두의 성향은 제각각일지라도 그곳은 휴가의 열풍이 휘도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남자의 몸은 매끈해서 다소 연약해 보이기까지했지만, 그을린 갈색 피부가 바다와 잘 어울렸다. 보트와 함께 여전히 혼자 있었던 이틀 전 그때, 그는 벼락처럼 사라의 존재를발견했다. 오늘 아침에도 사라의 존재는 같은 강도로 다가왔다.

무더웠고, 그들은 캐노피 안에서 단 둘이었다. 사라는 그의 눈동가가 자유를 갈구하는 초록빛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말했다.

지나는 루디와 거의 비슷할정도로 키가 컸다. 굉장히 아름다웠고, 루디 식대로 표현하면 한없이, 화를 내거나 절망에 빠졌을 때도 기쁨으로 빛날 때처럼 아름다웠다.

"아무리 늦어져도 결국 수영은 하게 되겠지. 난 그전에 캄파리 한잔이 절실해."
사라는 말했다. "일단 시작하면 멈출 수 없어. 안 돼."

여하튼 자크는 사라가 온 것이 기뻤다. 그들 부부는 지난 7년 동안 서로를 사랑해 왔다. 같은 욕망이 첫날과 똑같이, 언제나 변함없이, 그들을 결합시켰다. 다이아나는 사라를 기다렸고, 그들은 함께 바위에서 내려왔다. 

사랑뿐만 아니라 욕망 또한 그토록 변치 않고 오래간다면, 그 역시 
절망이 될 수도 있으리라. 누가 알겠는가?

"전 누가 좋으니 그르니 하는 판단을 아예 자제하려 하죠."
남자는 말했다. "어렵군요. 우리는 코끼리가 아니고 사람이니."

다이아나는 말했다. "부부가 갖고 있는 서로에 대한 지식, 아마그게 제일 형편없는 지식일걸."

사라는 말했다. "오직 한 남자하고만 섹스하고 싶다는 건, 섹스를좋아하지 않는다는 거야."
다이아나는 말했다. "내 생각도 같아."

식료품상은 말했다. "그래요, 내 아내가 카운터에서 죽어 있는 걸발견했소, 즉음은 언제나 불행이죠. 언제나, 망자와 함께 산 세월이 아무리 고달팠어도 말이오."

안될 게 뭐요? 설사 그 이상이 된다 한들 안 될게뭐냐고? 누구나-자기가 원하는 대로 고통을 당할 권리가 있는 거요

다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이제 누구에게도 화가나 있기는 않았다. "아니, 대체 비는 언제 오는 거야? 간절하게 원한다고 해서 사람이 바위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언제가 됐든 결국은 움직여야지."

정말이지 누가 됐든 이제 더는 가게의 까다로운성미로 인해 괴로워하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간절했다. 호텔에선, 그녀로 인해 괴로워할 사람은 없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까다로운 성미는 그 어느 곳보다 호텔에서 활개를 활짝 된다. 자크는 그물을 던지는 어부의 동작에 완전히 몰입했다. 그는 말했다.

까다로운 성미도 마찬가지이다. 때때로 성미를 드러내고 수다는 욕구가 불끈거린다. 그리고 호텔은 그러기에 적격인 곳이다.

"어쩌다 홧김에 한 번 당신에 대해 그런 말을 했다고 싫어진다면,
그건 당신이 그 친구를 애초에 좋아하지 않았다는 거야."
"누가 알아? 어쩌면 정말 루디를 애초에 좋아하지 않았는지도."

루디는 당시 그런 말이 나올 기분이었어. 또 나는 당신한테 그말을 전할 기분이었고, 그 모든 게 아무것도 아냐. 당신이 더 잘알잖아."

"난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혼자서 알아맞히려고 이리저리 머리 굴리는 게 싫어. 상대방이 날 도와주지 않으니까..…."
"왜 상대방이 슬픈지, 아니면 또 어떤 기분인지 기를 쓰고 알려고 하는 건데?"

"내가 당신 기분이 어떤지 더 이상 관심 없게 되면, 그땐 내가 더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거야."

"저는 너무 유난떠는 사람들이 싫어요. 그냥 남들하고 똑같이 하면 그만이잖아요. 불행을 당했다고 해서 유난을 떨어도 되는 건아니죠."

"따지고 보면 세상에 서로가 서로에게 안 갇혀 사는사람이 어디 있겠어?"

사라는 말했다. "아무것도요. 루디는 보통 이렇게 얘기해요. 아시다시피, 저는 세상 모든 것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입니다."

자크는 대답했다. "잘은 모르지만, 어쩌면 그가 갖가지 엄청난 경험을 했으면서도 어린애 같은 면을 잃지 않아서가 아닐까."
"그 경험이란 건 어디서 비롯된 건데? 그 경험이란 것도 실은 경험이 전혀 없다는 데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다이아나가 거들었다. "우린 언어 전문가들이거든요.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사라가 이어받았다. "우리들이 공통적으로 엄격한 분야가 있는데 그게 언어예요."

다이아나가 말했다. "그리고 그 공통점이 우리가 서로 간에 느끼는 차이를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만들어 주죠."
사라는 계속했다. "또한 보시다시피 우리를 이토록 친밀하게 어울리게 만들어 주고요."

다이아나가 이어받았다. "잘못된 언어 사용은 범죄예요."
루디가 끼어들었다. "고약한 여자들이에요.. 저 두 여자 말 듣지말아요."
지나도 나섰다. "기분 나쁘게 듣지 마세요, 말을 만들어 내느라고 저러는 거니까."
자크도 거들었다. "우린 말하기를 즐기거든요."

루디는 보충했다. "모쪼록 오해 없으시길, 혹여 우리가 악의가 있다고 생각하진 마세요. 아! 그건 원치 않아요."
사라가 말했다. "난 저분이 느낀 그대로 생각했으면 좋겠어."

다이아나가 말했다. "그건 불가능해, 우리가 그러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테니까."
자크가 말했다. "이 모든 말들이 다 우리가 선생한테 호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나온 걸 거예요."

자크는 말했다. "우리도 다른 사람들 못지않게 바보죠. 다만 우리는 똑같은 바보짓을 하도록 타고났다고 할까요. 그래서 이렇게잘 어울릴 수 있는 겁니다."

자크도 말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세상이 바뀌기를 바라는걸.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사람 중에 세상이 바뀌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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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은 누구보다 논리정연하고 체계적인 두뇌를 타고났고, 정보를 저장하는 능력도 뛰어나지. 다른 사람에게는 누구나 각자의 분야가 따로있지만 형의 전문 분야는 모든 걸 환히 꿰뚫는 것이라네."

마이크로프트 홈즈는 셜록보다 훨씬 키가 크고 체격도 좋았다. 몸은뚱뚱하고 얼굴은 큼직했지만 표정은 동생과 마찬가지로 날카로웠다.
연회색의 물기 어린 두 눈에는 먼 곳을 응시하는 듯 자기 성찰적인 느낌이 있었는데, 이것은 셜록이 전심전력으로 집중할 때에나 볼 수 있는 눈빛이었다.

"이건 시골길에서 트램을 만나는 것과 같아. 형한테는 자기 궤도가 있어서 그 궤도만을 따르지. 펠 멜 거리의 하숙집과 디오게네스 클럽, 화이트 홀만 맴도는 거야. 형이 여기 온 것도 한 번, 딱 한 번뿐이야. 도대체 어떤 큰 일이 있어서 형이 궤도를 벗어난 걸까?"

"행동을 해야지, 셜록, 행동을!" 마이크로프트가 벌떡 일어서며 외쳤다.
"내 직감에 따르면 이 설명은 완전히 틀렸어. 네 능력을 발휘해 봐! 범죄 현장으로 달려가!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 보고! 모든 가능성을 파헤쳐야 해! 네가 일하면서 조국에 봉사할 수 있는 이렇게 좋은 기회는 다신 오지 않을 거라고!"

그는 그림을 등지고 돌아서며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웃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나는 그의 웃음소리를 자주 듣지 못했는데, 그가 웃는다는 것은 항상 누군가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긴다는 의미였다.

내가 말했다. 홈즈, 자네는 범인이 빠져나가지 못할 그물을 쳤네. 그리고 무고한 사람의 생명을 구했어. 이미 교수대에 선 사람의 목줄을 죄여 오던 밧줄을 끊어 준 셈이야. 이제 모든 사실이 어디를 가리키는지알겠어. 범인은…."
"존 터너 씨가 오셨습니다." 그때 호텔 웨이터가 응접실 문을 열면서외쳤고, 방문객이 안으로 들어왔다.

9월 저녁이었고, 아직 7시도 되기 전이었지만 날은 벌써 스산했다. 도시 전체가 축축하고 부슬부슬한 안개에 뒤덮여 있었다. 흙빛 구름이우중충하게 내려앉은 거리는 쓸쓸해 보였다. 희부연 얼룩처럼 보이는스트랜드 대로의 가로등 불빛이 깜빡거리며 진흙투성이 도로를 흐릿하게 비췄다. 상점 창문의 노란 불빛이 뿌옇고 축축한 대기를 가로질러 혼잡한 거리에 어두컴컴한 불빛을 던졌다. 

가느다란 빛줄기 속을끝없이 스쳐 가는 얼굴들의 끝없는 행렬에 유령같이 으스스한 기운이도사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슬픈 얼굴, 기쁜 얼굴, 화난 얼굴, 즐거운 얼굴, 모든 사람이 그렇듯 그들 역시 어둠에서 빛으로 흘러나왔다가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네 개의 서명 (1890)

그가 말했다. "아주 흔해 빠진 살인 사건이야. 내 생각에 자네가 더 나은 사건을 물어 온 것 같군. 자네는 범죄 사건을 물어 오는 바다제비잖나, 왓슨,

"빅터 트레버 이야기는 한 적이 없지?" 그가 물었다.
"트레버는 내가 2년 동안 대학을 다니면서 유일하게 사귄 친구일세.
나는 원래부터 별로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었네, 왓슨, 언제나 방에 틀어박혀서 나만의 생각 체계를 가다듬는 데 집중하느라 또래 친구들과 별로 어울리지 못했지. 펜싱과 권투 말고는 운동에 취미도 없었고, 내가 하는 공부도 다른 학생들과 꽤 달라서 함께 어울릴 일도 없었지. 트레버는 내가 사귄 유일한 친구였는데, 그것도 어느 날 아침 교회에 가는 길에 그의 수컷 테리어가 내 발목을 물고 늘어지는 사고가생겼기 때문이지. 우정을 쌓는 방식치고는 지루했을지 모르지만 효과는 좋았어."

"참 희한하다니까. 자네가 보여 주는 엄청난 활력과 의욕이 게으른 상대와 번갈아 가면서 나티난다니."
"맞아. 나는 이주 게으른 동시에 활력이 넘치기도 하지." 그가 대꾸했다.

마지막 사건 1893)
"자넨 영국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네, 왓슨."
"왜?"

"앞으로 내가 자네에게 더욱 위험한 동행이 될 것이기 때문이지. 저 남지는 모든 걸 잃었어. 런던으로 돌아가면 파멸하겠지. 내가 그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한 거라면 그는 있는 힘을 다해 내게 복수하려 할 걸세.
예전에 잠깐 만났을 때도 그렇게 말했는데, 그게 진심이었다고 생각하네. 자네는 본업으로 돌아갈 것을 권하는 바네."
그의 오랜 친구이자 산전수전 다 겪은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였다.

"잠깐만요. 당신은 내 친구 왓슨과 비슷하군요. 왓슨에게도 거꾸로 결말부터 이야기하는 안 좋은 버릇이 있거든요." 홈스가 웃으면서 말했다.

1903년 9월 초의 어느 일요일 저녁이었다. 나는 홈즈 특유의 짤막한메시지를 받았다.
"별일 없으면 당장 올 것. 별일 있어도 와야 함."

깊어 가는 어둠 속에 나란히 앉아 있는데 홈즈가 내게 말했다. "오늘밤 자네에게 함께 가자고 하기가 망설여지는군. 이건 분명히 위험한일이니까 말이야."

"내가 도움이 되겠나?"
"자네가 있으면 큰 도움이 되지."
"그렇다면 같이 가야지."
"경말 고맙네."

"이보게, 왓슨, 자넨 아주 피곤해 보이는군, 여기 소파에 눕게. 내가 잠들게 해주지."
그는 구석에서 바이올린을 집어 들었고, 내가 소파에 눕자 감미롭고나지막한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가 직접 지은 곡이 틀림없었다. 그는 즉흥 연주 실력이 무치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의 길쭉한 팔다리와 진지한 얼굴, 활이 오르내리는 모습이 희미하게 잦아들었다. 나는 부드러운 소리의 바다를 타고 꿈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꿈속에서메리 모스턴의 아름다운 얼굴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넨 일을 아주 형편없이 처리했네. 그가 집으로 돌아가자 자넨 그가누군지 알고 싶어 했지. 그런데 런던의 부동산 소개소를 찾아가다니!"
"그럼 내가 어떻게 했어야 하지?" 내가 발끈해서 외쳤다.

"가장 가까이 있는 술집에 갔어야지. 시골에서는 술집이 소문의 중심지야. 거기 가면 사람들이 집주인은 물론이고 설거지하는 하녀의 이름까지 다 알려 줬을 거라고."

"난 어림짐작 같은 건 하지 않는다네. 그건 논리적 능력을 파괴하는 금찍한 습관이니까."

셜록 홈즈는 너무 애가 타서 대화를 할 수도 없고, 너무 불안해서 잠을이룰 수도 없었다. 내가 그의 곁을 떠날 때, 그는 검고 짙은 눈썹을 찌푸리고 긴 손가락으로 초초하게 안락의자의 팔걸이를 툭툭 두드리며줄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이 사건의 가능한 모든 해결책을곱씹어 보고 있을 것이었다.

마지막 사건 (1893)
"이건 자네와 나의 결투일세, 홈즈, 자네는 나를 피고석에 세우고 싶겠지. 하지만 내가 피고석에 서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 날 이기고 싶겠지. 하지만 자넨 결코 날 이길 수 없어. 자네가 나를 파멸시킬 수 있을만큼 영리하다면 나 또한 자네 못지않다는 걸 명심하게."

홈즈가 말했다. "내게 여러 가지 칭찬을 해 주었군, 모리어티. 나도 한마디 하지. 자네를 파멸시킬 수만 있다면 대중의 이익을 위해 나 자신의 파멸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네."

"어떤 가설을 세웠나 보군요. 베인스 경위?"
"네. 그리고 직접 조사해 볼 겁니다. 홈즈 선생님, 오로지 제 명예를 위해서요. 선생님은 이미 이름을 널리 알리셨지만 전 아직 아닙니다. 나중에 선생님의 도움 없이 사건을 해결했다고 말할 수만 있다면 정말기쁘겠네요."

네 개의 서명 (1890)
홈즈와 함께 자리에 앉아 말없이 담배를 피우다가 내가 말했다. "그래,
우리의 드라마도 이렇게 막을 내렸군. 그런데 아쉽지만 내가 자네의수사 기법을 연구할 기회는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네. 영광스럽게도모스턴 양이 나를 그녀의 남편으로 받아 주겠다고 했거든."
그는 안타까운 듯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를 축하할 수 없을 것 같아 유감이군." 그가 말했다.
나는 조금 씁쓸했다.
"내 선택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라도 있나?" 내가 물었다.
"전혀 없네. 모스턴 양은 내가 본 여성 중 가장 매력적인 아가씨고, 우리가 하는 일에도 큰 도움이 됐지, 그녀는 분명 이런 쪽에 재능이 있어. 아버지가 남긴 수많은 문서 중에 아그라 요새의 도면을 보관하고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하지만 사랑이란 감정적인 것이네. 감정적인 것은 무엇이든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냉철한 이성을 거스르지,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 난 평생 결혼하지 않을 걸세."


"난 내 이성이 사랑이라는 시련 속에서도 살아남을 거라고 믿네." 나는웃으면서 말했다.

"왓슨, 이 중요한 두 가지 사실을 만족시킬 가설을 찾는 건 인간의 능력으로 불가능할까? 이상야릇한 글귀가 적힌 의문의 편지까지 설명할수 있다면 잠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텐데 말이지. 앞으로 밝혀질새로운 정보들도 모두 그 가설에 부합된다면 정답이 되겠지."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맥도날드가 조금 퉁명스럽게 물었다.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죠. 아무 소리도 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요."
홈즈가 대꾸했다.

"나는 아이를 관찰해서 부모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 필요한 실마리를얻은 적이 여러 번 있다네."

다섯 개의 오렌지 씨앗 (1891)
"가엾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건 1885년 1월입니다. 그 뒤로 2년8개월이 지났지요. 그동안 저는 호셤에서 행복하게 지냈고, 우리 집안에서 저주가 사라졌다는 희망을 품기 시작했죠. 아버지 대에서 끝났다고 생각한 거예요. 하지만 그건 섣부른 생각이었습니다. 어제 아침우리 아버지를 덮친 모습 그대로 불행이 찾아왔으니까요."

마자랭의 다이아몬드 (1921)
백작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한 손을 등 뒤로 가져갔다. 홈즈는 실내복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뭔가를 반쯤 끄집어냈다.
"넌 곱게 죽진 못할 거다, 홈즈."
"나도 종종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지. 그런데 그게 뭐 대수인가? 어차피 당신 앞길도 순탄하지는 못할 것 같은데 말이지."

"사람을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한 건 개개인에게 편견을 갖지 않는 거야. 내게 의뢰인은 사건의 한 단위이자 요소일 뿐이네. 감정에 휩쓸리면 이성적인 추리를 하는 데 방해가 되지. 내가 봤던 가장 매력적인 여자는 보험금을 타내려고 세 아이를 독살시킨 죄로 교수형을 당했다네.
그리고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험상궂게 생긴 사람은 런던의 빈민층에 거의 25 만 파운드를 기부한 자선가였지."

"자넨 이제 뭘 할 생각이지?" 내가 물었다.
"담배를 피우겠네. 이건 딱 파이프 세 대짜리 문제야. 미안하지만 앞으로 50분 동안은 내게 말을 걸지 말아 주게." 홈즈가 대꾸했다.

입술 뒤틀린 사나이 (1891)
그는 코트와 조끼를 벗고 헐렁한 푸른색 실내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러고는 방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침대에서는 베개를, 소파와 안락의자에서는 쿠션을 가져 왔다. 그걸 갖고 낮고 긴 동양식 좌식 의자 같은것을 만들었고, 그 위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그 앞에는 섀그 담배와성냥갑을 1온스 챙겨 놓았다.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왓슨, 도저히 안 되겠네! 같이 절벽을 산책하며 화살촉이 있는지 찾아보세. 이 문제의 단서보다 그걸 찾는 게 더 쉽겠어. 충분한 자료도 없는데 두뇌를 굴리는 건 엔진을 헛돌게 하는 거나 마찬가지라네. 그럼 엔진도 산산조각 나고 말겠지, 바닷바람, 햇빛,
인내심. 이것만 있으면 다른 건 저절로 따라올 거야, 왓슨"

신문에 난 기사 가운데 그의 분석 능력에 도전장을 던질 수 있는 사건은하나뿐이었다. 웨식스 배 경마 대회의 우승 예상 마의 기이한 실종과,
그 기수의 비극적인 살인 사건이었다. 따라서 그가 불쑥 극적인 사건 현장으로 출발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내가 이미 예상하고 바라던 바였다.

9월 하순이었고, 추분이면 몰아치는 강풍이 유난히 세차게 불었다. 바람은 온종일 아우성을 쳤고 빗줄기가 창문을 내리쳤다. 거대한 인공 도시 런던의 심장부에서 판에 박힌 일상에 파묻혀 살아온 우리도 잠시나마 퍼뜩 정신이 들어 거대한 자연의 힘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대자연은 우리에 갇힌 야수처럼 문명의 창살 사이로 인간을 향해 울부짖었다.

날이 저물면서 폭풍우는 더욱 거세어졌고, 바람은 굴뚝 속에서 흐느껴울었다. 셜록 홈즈는 침울하게 벽난로 한쪽 옆에 앉아 사건 기록에 대한색인을 만들었고, 나는 맞은편에서 클라크 러셀이 쓴 위대한 해양 소설에 푹 빠져 있었다. 어디서 불어오는지 알 수 없는 돌풍이 책 속으로 넘나들고, 쏟아지는 빗소리는 파도가 밀려오는 소리처럼 들렸다.

얼룩 띠의 비밀 (1892)
깊은 밤의 정적을 깨뜨리며 난생 처음 들어 보는 처절한 비명이 들렸다. 고통과 두려움, 분노가 뒤섞인 섬뜩한 비명은 점점 더 커졌다. 사람들 말에 따르면 그 소리는 마을을 지나 멀리 떨어져 있는 교회에까지 들렸다고 한다. 침대에 잠들어 있는 사람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심장이 싸늘하게 얼어붙는 것 같았다. 소리의 마지막 여운이 고요 속으로 잦아들 때까지 나와 홈즈는 서로 얼굴만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이게 무슨 뜻이지?" 나는 숨을 헐떡거리며 물었다.
모든 게 끝났다는 거지. 어쩌면 이게 최선일 거야." 홈즈가 대꾸했다.

추리 과정이 너무 간단해서 나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내가 말했다. "자네 설명을 듣고 보면 모든 게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단순해서 나도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네. 하지만 매번 새로운 사례를 접할 때마다자네에게 설명을 듣기 전까지는 난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니까."

3바람이 거세게 불던 10월의 어느 날 아침이었다. 나는 옷을 갈아입으면서 뒤뜰을 장식한 플라타너스에서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이파리 몇장이 떨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나는 아침 식사를 하러 내려가면서내 친구가 우울한 표정으로 앉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여느 위대한예술가처럼 그는 주변 상황에 아주 민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는 식사를 거의 다 마쳤고, 기분도 유난히 밝고 즐거워 보였다.
그가 기분이 좋을 때면 나는 늘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사건이 들어왔나, 홈즈?" 내가 물었다.
"추리력에는 확실히 전염성이 있나 보군."
토르 다리의 문제(1922)

"이걸 보게." 홈즈가 의미심장하게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나는 전등 불빛 아래 적힌 글을 보고 소름이 끼쳤다. 네 개의 서명.‘
"맙소사,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지?" 내가 물었다.
"살인 사건이라는 뜻이지."

홈즈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가 말했다.
"지금까지 저는 조사를 이 세계에 국한시켜 왔습니다. 기껏해야 악의무리에 맞설 뿐이었고요. 악의 근원 자체를 뿌리 뽑겠다는 건 지나치게 야심만만한 생각이죠."

"잘 가고 있군." 그가 창밖을 내다보고 시계를 확인하더니 말했다. "지금 시속 88m로 가고 있어."
"400m 푯말을 못 봤는데." 내가 말했다.
"나도 못 봤어. 하지만 이곳에는 전신주가 55m 간격으로 서 있어서 계산이 간단하지."

홈즈가 내 팔을 잡았다.
"이 친구가 같이 가 주겠다고만 하면 경이 곤경에 처해 있을 때 이보다더 믿음직한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건 제가 누구보다 자신 있게 말할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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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첫 주에 내 친구는 하숙집을 자주, 그리고 오랫동안 비웠다. 나는그가 사건을 맡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사이 인상이 험한 남자여럿이 찾아와 배질 선장의 거처를 물었고, 나는 홈즈가 자신의 가공할 만한 정체를 숨기기 위해 예전에 수없이 그랬듯 변장을 하고 가명을 쓰면서 일하고 있음을 눈치 챘다.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대체로 그런 광기 속에 홈즈만의 방식이 숨어 있으니까요." 내가 말했다.
"어떤 사람은 그 방식 속에 광기가 있다고 할지도 모르죠."

홈즈는 자리에서 일어나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말했다. "정말이지 왓슨, 자네에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군, 자네가 여태까지 모든 걸 훌륭히 설명했다고 말해야겠네. 자넨 내 보잘것없는 성공에서 큰 역할을했어. 그런데도 습관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해 왔지. 

자네는직접 빛을 내지 못할지 몰라도 빛을 끌어당길 수 있는 사람일세. 천재성을 타고나지는 않았지만 천재를 자극하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는사람들이 있지. 고백하건대, 왓슨, 나는 자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네."

짓눌린 잔디를 내려다보는 홈즈의 진지한 표정과 눈빛을 보니 그가 많은 정보를 파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홈즈는 냄새를 쫓는 개처럼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어떤 사실이라도 불확실한 의혹에 시달리는 것보단 낫죠."

"이 사건에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불가사의한 면이 있습니다. 원래 상상력이 없으면 공포도 느낄 수 없죠."

그가 말했다. "이봐, 왓슨, 나는 여러 미덕 중에 겸손을 높이 사는 사람들에게 동의하지 않네. 논리가라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해.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그걸 과대평가하는 것만큼이나진실을 멀리하는 행위지. 그러니까 우리 형이 나보다 관찰력이 뛰어나다고 내가 말한다면 그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그가 말했다. "나 자신을 좀 더 믿어야 했습니다. 어떤 사실이 기나긴추리 과정을 거친 결과와 맞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려야 했어요."

식탁의 저녁 식사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허기를 채우고 파이프에 불을 붙인 그는 반쯤은 익살스러우면서도 온전히 철학적인 태도를 취할준비가 되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으레 취하는 태도였다.

"사실을 솔직히 말하면 우리가 도와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를 속이려고 하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그가 타고난 열정과 지혜를 법을 수호하는데 쏟아붓는 대신 법과 맞서는 쪽을 택했다면 얼마니 끔찍한 범죄자가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홈즈의 존재는 극적인 순간에 더욱 돋보였다. 홈즈가 이 엄청난 소식을 듣고 흥분하거나 충격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과장일 터였다. 그것은 타고난 성격이 무신경해서가 아니라 오랜 세월 과도한 자극을 받다보니 성격이 무뎌졌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감정이 둔해졌을지는 몰라도 인지 능력은 지나칠 정도로 활발했다. 조금 전 들은 말에 나는 공포를 느꼈지만 홈즈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그는 포화 상태의 용액에서 결정이 형성되는 것을 지켜보는 화학자처럼 침착하면서도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 친구는 깜짝 놀랐다. 그는 차갑고 창백한 얼굴 아래 활활 타오르는영혼이 감추어져 있음을 보여 주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요?"

"탐정에게는 모든 지식이 유용한 법이죠."

"선반에서 내 인명 색인 좀 내려 주게."
그는 의자에 몸을 파묻고 시가 연기를 구름처럼 내뿜으며 느릿느릿 책장을 넘겼다.

그가 말했다. "내 목록 중에서 M 항목은 제법 괜찮지. 모리어티만으로도 눈에 띄는데, 독살범 모건에 으스스한 기억의 메리듀, 체어링 크로스 역 대합실에서 내 왼쪽 어금니를 부러뜨린 매슈스까지 있으니까."

"세상은 명백한 것들로 가득 차 있지만 누구나 그걸 볼 수 있는 건 아니지."

"자네가 권총을 가져가는 게 좋겠어. 강철 부지깽이를 엿처럼 휘어 놓는 사람과 상대하는 데는 ‘엘리 2호‘가 제격이지. 그리고 칫솔만 챙기면 될 거야."

"과거와 현재는 내 조사 범위에 속하지만, 한 인간이 미래에 어떻게 할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답하기 어렵군."

나는 내가 주변 사람보다 멍청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셜록 홈즈와함께 있으면 언제나 나 자신이 어리석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자네는 보긴 하지만 관찰하진 않아. 보는 것과 관찰하는 것은 전혀 다르지. 예를 들어 보세. 자네는 복도에서 이 방으로 오르는 계단을 수도없이 봤겠지."
"물론이지."
"몇 번이나 봤지?"
"수백 번은 넘을걸."

그렇다면 계단이 몇 개인지 알고 있나?"
"몇 개냐고? 모르겠는데."
"그렇다니까! 자넨 관찰을 하지 않아, 눈으로 보긴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게 바로 그거라네."

홈즈가 말을 이었다. "이 모든 게 잘 이해가 되지 않으실 겁니다. 여러분은 수사를 시작할 때부터 여러분 앞에 제공된 유일한 진짜 단서의중요성을 파악하지 못했으니까요. 저는 요행히 그 단서의 의미를 알아차렸고, 그 이후부터 발생한 모든 일은 세가 세운 최초의 가설이 옳다.
는 것을 확인해 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논리적인 절차를 따른 결과이기도 하지요."

셜록 홈즈는 피살자의 시계태엽을 감아 봄으로써 피살자가 태엽을 감은 지 두 시간이 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었다. 따라서 피살자가 잠자리에 든 지 두 시간이 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냈고, 그것이사건을 해결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다.

5푹푹 찌는 8월의 어느 날이었다. 베이커 스트리트는 찜통 같았고, 길건너편의 노란 벽돌에 내리쬐는 햇볕에 눈이 아플 정도였다. 저것이겨울날의 안개 속에 그토록 음침한 빛이 서렸던 바로 그 벽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블라인드는 반만 쳐져 있었고, 홈즈는 소파에 웅크리고 누워 아침 우편으로 받은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나는 인도에서 군 복무를 하던 시절 추위보다는 더위를 더 잘 참을 수 있도록 훈련을 받은 덕분에 32℃ 정도의 더위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왓슨, 우리가 캐루더스 대령을 교도소에 보내고 난 뒤 내가 얼마나 지루해하고 있는지는 자네도 알잖아. 내 정신은 헛도는 엔진 같아. 머리는 일하라고 있는 건데 할 일이 없으니 터져 버릴 지경이라고, 일상이따분하고 신문을 읽어도 아무 재미가 없어. 범죄 세계에서도 대담무쌍한 사건이나 가슴 설레는 로맨스가 아예 사라져 버린 모양이야. 그런데도 내게 새로운 사건을 맡을지 말지 묻는 건가? 아무리 하찮은 사건이더라도 말이야."

8월 2일 밤 9시 정각, 역사상 가장 끔찍한 8월이었다. 타락한 세상에이미 신의 저주가 내렸다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후텁지근하게고여 있는 대기 속에 무시무시한 정적과 희미한 기대감 같은 것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인류학 박물관이든 선생님과 같은 두개골 모형을 가져다 놓으면훌륭한 장식이 될 겁니다. 듣기 좋은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의 두개골은 정말 탐이 나는군요."

셜록 홈즈는 이 특이한 손님을 자리에 앉게 했다. "자신의 생각에 푹빠지면 걷잡을 수 없어지는 분이군요. 저도 그렇긴 합니다만."

"이런! 이번 사건은 생각보다 더 위험하겠어. 영리한 사람이 범죄자가되면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지."

"왓슨, 지금은 이야기할 때가 아니라 관찰할 때일세. 우린 적국에 쳐들어온 스파이나 다름없으니까."

"난 자네 집 침실 창문이 거울 앞에 섰을 때 오른쪽에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어. 하지만 레스트레이드는 이렇게 명백한 사실도 알아차리지 못할 걸세."
"어떻게..."

"왓슨, 난 자넬 잘 알아. 자네는 전직 군인답게 깔끔한 사람이지. 매일아침 면도를 하는데, 이런 계절에는 햇빛을 조명 삼아 면도를 할 거야.
그런데 얼굴 왼쪽으로 갈수록 면도 상태가 부실해지더니 왼쪽 턱 아래는 통 깔끔하지가 않아. 얼굴 왼쪽이 오른쪽보다 햇빛을 덜 본 게 틀림없어. 양쪽이 똑같이 빛을 받았다면 자네 같은 사람이 이렇게 면도할리가 없지. 난 지금 관찰과 추리를 통해 알아낼 수 있는 아주 사소한걸 이야기했을 뿐이야.

"별난 것과 불가사의한 것을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때로는 가장 평범해 보이는 범죄가 가장 불가사의한 사건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 사건에는 추리를 이끌어 낼 만한 새롭거나 특이한 점이 없기 때문이지요.

이번 사건도 시체가 평범하게 길거리에서 발견되었다면, 다시 말해 사건을 주목할 만한 것으로 만드는 기이하고 충격적인 장치가 없었다.
면 무척 해결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이 사건의 기이한 세부 사항은 사건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과는 거리가 멀답니다. 특이한 요소는 사건을 더욱 어렵게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사건을 더 이해하기 쉽게 만들었지요.

☆"자넨 내 규칙을 적용하지 않을 작정이군. 내가 여러 번 말하지 않았니? 불가능한 것들을 제거했을 때 남아 있는 건 아무리 더무니없이 보여도 진실인 법이라고." 그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래 봐야 자네도 내 의견을 따르게 될 걸세. 그렇지 않다면 산더미같은 증거를 들이밀 테니까. 그러면 결국 자네의 이성도 무릎을 꿇고내 말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고 말겠지."

"왓슨, 내가 보기에 지금까지 다룬 사건 중 이보다 더 기묘한 사건은없었던 것 같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다섯개의 오렌지씨앗

"당신은 세계 최초로 추리를 정밀과학의 경지로 끌어올렸습니다."
내 친구는 진심 어린 나의 칭찬을 듣자 기뻐하며 얼굴을 붉혔다. 나는홈즈가 다른 건 몰라도 수사 방식에 쏟아지는 찬사에 대해서만큼은 소니가 예쁘다는 칭찬을 들을 때처럼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관찰을 하고 인과 관계를 재빨리 분석하면서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사건은 대체로 중요하지 않은 사건들이더군. 더 큰 범죄일수록 단순한경향이 있지. 그럴수록 동기가 더 명백하게 드러나니까."

"아니, 홈즈 씨 아니세요! 세상에! 어떻게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겠습니까? 거기 가만히 계시는 대신 앞으로 나와 내 턱이라도 한 방 먹였다.
면 당장 알았을 겁니다. 아, 홈즈 씨는 정말 재능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 권투 실력이면 틀림없이 성공했을 텐데요."
"들었지, 왓슨, 다른 모든 일이 잘 안 풀려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하나가 남아 있는 셈일세."

"부족한 자료로 섣부른 가설을 세우는 일은 우리 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독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대체로 기묘해 보이는 일일수록 막상 파고들면 별로 까다롭지 않네.
정말 알쏭달쏭한 건 평범하고 특징이 없어 보이는 범죄일세. 평범한얼굴이 가장 알아보기 힘든 것처럼 말이지." 홈즈가 말했다.

그가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부류 중 하나가 친구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여자야. 그런 여자는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가끔은아주 큰 도움이 되기도 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도록부추기기도 하지."

나는 셜록 홈즈와 오랫동안 친분을 쌓아 왔지만 한 번도 그가 자기 친척이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입에 올리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렇지 않아도 그는 다소 비인간적인 사람으로 느껴졌는데, 자기 이야기를 극도로 삼가는 탓에 나는 이따금씩 그를 속세와 동떨어진 인물, 지적으로 뛰어나긴 하시만 동정심이 결여되어 심장 없이 두뇌만 있는 존재로까지 여기게 되었다. 

여성을 혐오하는 것이나 새 친구 사귀기를꺼려하는 것 역시 삭막한 그의 성격을 잘 드러내지만, 가족에 대해 일체의 인급을 삼가는 데 비하면 그것은 차라리 약과였다. 결국 나는 그가 일가친척 하나 없는 고아로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어느 날무척 놀랍게도 그가 형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탐정의 기술이 안락의자에 앉아 추론하는 것에서 시작하고 그걸로 끝난다면 형은 사상 최고의 범죄 전문가가 됐을 거라네. 하지만 형에게는 그럴 야망도, 열정도 없지. 심지어 자신의 해답을 확인하러 나가는것조차 귀찮아 할 거야. 자신이 옳다는 걸 애써 입증하느니 차라리 틀린 것으로 치고 말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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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이 - 정규 7집 Da Capo
토이 (Toy) 노래 / 스톤뮤직엔터테인먼트(Stone Music Ent.)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모든 곡이 좋다.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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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즈는 보석을 들고 불빛에 비춰 보았다. 그가 말했다. "아주 아름답군이 광개를 보게, 이건 물론 범죄의 핵심 표적이겠지. 모든 보석이 그렇다네, 보석은 악마가 즐기 쓰는 미끼이, 크고 오래된 것일수록 보석의단면 하나하나가 피로 얼룩지 있지."

이 낡은 대저택에서 30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사람들이 태어나고 떠났다가 돌아왔으며, 무도회와 여우 사냥도 수없이 펼쳐졌을 것이다. 저 고색창연한 벽 너머로 이제 와서 그토록 끔찍한 음모의 그림자가 드리웠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한편으로는 기이하고 뾰족하게 생긴 지붕과 예스럽게 달려 있는 박공이 우울하고 잔인한 사건에잘 어울리는 듯했다. 벽에 깊숙이 박힌 창문과 물에 비치는 암울한 빛깔의 저택 정면을 바라보니 비극에 이처럼 어울리는 배경도 없겠다는생각이 들었다.

물론 사소한 일이지만, 사소한 것들만큼 중요한 것도 없죠.

"저 사람은 아주 똑똑한 것 같군. 하지만 아주 건방지기도 해."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항상 손을 제일 처음 되야 하네 왓슨그 다음에 옷소매, 바지 무릎 그리고 신발을 보는 거지."

"홈즈 씨를 보니 에드거 앨런 포의 뒤편이 떠오니다. 소설 기도실게로 그런 인물이 존재하는 줄은 몰랐네요."
설록 홈즈는 자리에서 일어나 파이프에 불을 붙였다. 그가 천천의 달했다.

"저를 뒤팽과 비교하신 건 칭찬이겠지만 내가 보기에 뒤평은 무척 수준 낮은 친구입니다. 15분이나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그럴 듯한 말을하여 친구들의 생각을 뒤깁는 것은 겉보기에는 화려하지만 착한 스법입니다. 물론 그에게 천재적인 분석 능력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그는 포가 머릿속에서 구상했을 경이로운 인물은 절대 아니죠."

지난 사흘 동안 일어난 중요한 일은 딱 하나 뿐인데, 그건 바로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거야."

홈즈는 모든 위대한 예술가가 그렇듯 자신의 예술을 위해 살았다. 홀더니스 공작 사건을 제외하고는, 값을 따질 수 없는 그의 노력에 대해 큰 보수를 요구한 적이 없는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그는 물욕이없는 데다가 기분파여서 자신의 감정에 호소하지 않는 문제는 아무리권력과 재력이 강한 사람이 의뢰를 해 와도 마다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기묘하고 극적인 성향을 띄고 있어 그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능력을시험하게 하는 사건이라면 아무리 가난한 의뢰인들에게라도 몇 주씩대단한 열정을 바치곤 했다.

"자넨 사소한 것을 파악하는 재능이 아주 탁월해" 내가 말했다.
"사소한 것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지."

그의 무지는 그의 지식만큼이나 남다른 데가 있었다. 그는 현대 문학과 철학, 정치학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내가 토마스 킬라일을 언급하자 그는 칼라일이 누구이며 무슨 일을 했느냐고아무렇지도 않게 되물었다. 

우연히 그가 코페르니쿠스의 이론과 태양계의 구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의 놀라움은 절정에 달했다. 19세기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을 모른다는 사실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사건은 신문에도 여러 차례 실린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모든 사실을 한꺼번에 뭉뚱그려 내놓은 서너 줄짜리 기사보다는, 사건을 전개과정에 따라 완만하게 서술하고 새로운 발견을 하나씩 보태면서 차근차근 수수께끼를 풀어 마침내 진실에 이르는 내 방식이 훨씬 더 흥미로울 것이다.

"드디어 추리 이야기가 나왔군요. 가설과 상상을 펼쳐 비약하지 않고서는 사실을 다루기 어렵다는 거야 나도 압니다, 홈즈." 레스트레이드가 내게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맞습니다. 사실을 다루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죠." 홈즈가 점잖게 대꾸했다.

나는 레스트레이드가 흘즈를 존경 어린 눈빛으로바라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가 홈즈와 일하게 된 뒤로 출즈에게서 얼마나 배운 게 많았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나는 실리즈의자인레스트레이드가 추론가인 홈즈의 가설을 얼마나 무시했는지 생생하게기억했다.

홈즈는 복도 한쪽 끝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순경들은 왜 이런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쓴웃음을 지었고, 레스트레이드는 놀라움과 기대, 조롱이 뒤섞인 얼굴로 홈즈를 처다보고 있었다. 홈즈는 공연을 선보이려는 마술사처럼 우리 앞에 섰다.

"정말 훌륭합니다. 선생님이 맡은 사건을 여럿 봤지만 이처럼 완력하게 해결한 사건은 처음 봅니다. 우리 런던 경찰국에서는 전쟁을시샘하지 않아요.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그릴 이아니지만 혹시 내일 경찰국에 들러 주시면 가장 신인 순경부터 가고참인 경위까지 모두 선생님께 악수를 청하고 싶어 할 겁니다. 레스트레이드가 말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홈즈가 말했다. 돌아선 홈즈의 표정은내가 지금까지 본 어느 때보다 부드러웠고 감동이라도 받은 것 같아다. 하지만 그는 이내 냉철하고 실용적인 추론가의 모습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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