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도키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9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문승준 옮김 / 비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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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을 잇는 또 하나의 히가시노게이고 발(發) 휴먼드라마 [아들 도키오]를 읽었다. 히가시노 게이고하면 살인사건 추리소설만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꼭 만나봐야겠다. 아버지를 향한 아들의 끝없는 사랑의 눈빛과 아버지의 실패한 사랑과 오래된 절망으로 인한 후회와 시간의 소중함에 대해서 세밀하게 알아 낼 수 있다. 

 

첫장면은 두 부부가 단장을 끊어내는 슬픔을 드러낸다. 불치의 병으로 죽어가는 아들의 병실 앞에서 부부는 하릴없이 울고 있다. 거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와중에 의사의 부름만이 남아있는 상황, 갑자기 남편이 아내에게 말한다. 20년전에 아들이 자기를 찾아왔었노라고. 믿지못하는 아내에게 들려주는 다쿠미의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다쿠미의 젊은 날은 아주 찌질했다. 여자친구가 간간이 주는 용돈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백수로, 어렵게 구한 일자리에서는 화를 참지 못해 박차고 나오기 일쑤다. 이런 찌질한 다쿠미에게 젊은 남자애가 등장, 다쿠미의 신상정보를 줄줄 꿰더니 친척이라고 말한다. 이름은 도키오. 다쿠미가 미래에 낳을 아들이자 오늘 죽어가고 있는 고등학생 남자애.

다쿠미는 어릴 때 부모가 자기를 버렸다는 것을 비관하며 아무렇게나 자신을 방치하고 있었다. 급기야 본인이 입양아임이 밝혀지고 그동안 좋았던 양부모와의 관계도 소원해졌다. 상처는 이해하지만 너무 깊은 시름에 빠져 자신을 돌보지 않는 다쿠미에게 다가와 자꾸 바른소리만 해대는 이상한 녀석 도키오. 그런데도 그가 싫지 않다. 며칠을 데리고 먹고 자고 하는데 돌아가라는 말도 하지 않는 이상한 행보를 보이는 다쿠미.

그러던 어느날 다쿠미의 여자친구가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하고 사라진다. 그 후 조폭같은 남자들이 찾아와 여친의 행방을 묻고 거금을 주면서 여친을 찾는 즉시 연락달라고 한다. 그녀가 위험에 빠진 것 같은 다쿠미는 여자친구를 찾아나서기로 한다. 도키오는 여자친구를 찾으러 오사카에 가는 길에 다쿠미의 생모를 만나러 가자고 조른다. 다쿠미는 다짜고짜 생모타령을 하는 도키오를 이해할 수가 없다. 그 때부터 두 사람의 여행이 시작된다. 쫓고 쫓기는 숨막히는 추격전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동행, 그리고 서서히 풀려가는 도키오의 정체와 다쿠미의 미래. 정말 과거는 바로잡을 수 있을까?
 
타임슬립은 추리소설 작가들이 가끔 쓰는 기법이다. 귀욤뮈소는 타임슬립을 너무 즐겨써서 좀 식상했던 적도 있다. 내가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 중에서는 이 책이 유일하게 주인공이 직접 타임슬립을 경험하는 내용을 갖고 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서도 시간차 공격은 있지만 드라마 <시그널>처럼 우체통이라는 통로를 통해 편지로 연결된다. 말하자면 편지가 시간여행을 다니는 셈.

이런 기발한 생각 속에 막연히 판타지라고 차치하기 보다는 왜 이런 글이 인기가 있고, 쓰여지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일단 재밌다, 그리고 특별하다. 우리는 가보지 못한 세계. 과거로는 절대 갈 수 없다. 그런데 간다. 작가가 과거로 가는 길목에 우리를 보란듯이 떨어뜨려놓고 쏟아낸 이야기를 가슴으로 담게 한다. 그리고 감동으로 마무리 한다. 책 표지에 '웃음과 눈물, 스릴과 미스터리, 추리 등 히가시노 게이고 월드의 집대성' 이라고 돼 있는데 그 말이 맞다.

 

그리움은 손에 잡을 수 없다. 그리움은 자주 후회를 동반하는데, 과거의 누군가에게 후회가 남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리움이 된다. 그리고 때로는 아픔이 된다. 미야모토 다쿠미처럼 말이다.

다쿠미가 끝내 생모를 용서하지 못하고 살았다면 그의 인생은 매번 낙심과 절망과 불만 속에 비참하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그것이 그를 누르는 가장 큰 고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쿠미는 미래의 아들인 도키오를 만나면서 인생이 변한다. 도키오로 인해 상처를 마주하고 붕대로 싸매고 기다리는 법을 알게 된다. 그래서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엄청난 인생의 시련을 만났을 때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앞으로 나갈 용기를 갖는다. 어렵게 구한 알바자리에서 자기맘에 들지 않는다고 욕하고 때려치우는 자세보다는, 누군가 폭력으로 시비를 걸었을 때 실컷 맞아주고 끝내버리는 비겁함 보다는 훨씬 나은 인생이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우리도 모르게 인생의 경로가 어떤 누군가에 의해서 바뀐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도키오가 나타나 더 나빠질 뻔한 상황을 좋은 상황으로 바꿔줬을지도 모른다. 그게 미래의 누구라고 할 수는 없지만 (없으리란 보장도 없고) 인생의 조력자는 희한한 포인트에서 등장하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나 혼자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니요, 지금의 성공이 있는 것도 아닐테다. 그러니 히가시노의 글은 막연한 판타지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인생이다. 다만, 그럴지도 모르는 기이한 누군가의 조력을 깨닫지 못한 채로 '그럴일은 절대 없어'. '내 일은 무조건 내가 결정해.' 라고 생각하기 보단 어떠한 미지의 선행이 지금 나를 도와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도 그런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봐야 한다.

 

벼랑 끝에서 만난 또 하나의 손길을 잡을 수 있는 것도 용기다. 상처로 꽁꽁 뭉쳐서 자격지심으로 포장해 허세로 리본을 달은 다쿠미가 끝내 도키오의 말을 듣지 않았더라면 끝내 이룬 감동은 없을 것이다. 설령 도키오의 엄마를 우연히 만났다더라도 어려움 앞에 실망하고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때로는 내 상처를 들키지 않으려 과대로 포장을 하더라도 정말로 견디기 힘들 때는 타인의 손을 잡는 것도 인생을 현명하게 일구는 용기가 아닐까 생각해봤다.
두께가 꽤 된다. 그렇지만 단숨에 읽었다. 도쿄에서 오사카로 가는 신칸센처럼 빠르게 달려나가기도 했고, 골목골목 만나는 극한 상황에서 다혈질 끝판왕 같은 다쿠미를 슬슬 진정 시키는 도키오의 참된 사랑에서 흔히 부모의 자식사랑이 아니라 다 큰 자식이 어린 부모를 선도하는 희한하지만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그래서 단숨에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정말 재밌게 잘 읽었다! 히가시노는 가가형사는 그만 쓰고 이렇게 따뜻한 글만 써주면 좋겠다 (그동안 많이 썼잖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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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모토 다쿠미씨, 당신 아들이야. 미래에서 왔어. - P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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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노벨레 문지 스펙트럼
아르투어 슈니츨러 지음, 백종유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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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추어진 욕망, 거의 예상치 못했던 욕망.

 

나는 이 책을 읽고 주인공이 그런 곤경에 처한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마치 순수한 어떤 남자가 우연히 곤란한 일에 휘말린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사실 주인공 프레돌린은 내가 생각할 때 순결한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프레돌린은 의사다. 아내와 아이들과 살고 있다. 그러던 중 왕진 요청이 와서 다 저녁에 나간다. 연로한 환자는 숨을 거두었다. 친척들이 오기 전에 유가족인 딸과 한 방에 있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그녀가 갑자기 프레돌린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그에게 안긴다. 허허. 알고보니 불륜지간.

그녀는 약혼자도 있는데 프레돌린을 잊지 못한다. 프레돌린은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있지만 그녀의 사랑을 거부하지는 않는다. 이런 나쁜 사람.

책이 워낙 얇아서 이 여자와의 관계가 욕망을 상징하나 했더니 아니었다. 충격적이게도 프레돌린은 우연히 귀족들이 참여하는 무도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곳에 참여하고 싶어한다. 피아니스트인 친구를 설득해 암호를 얻고 몰래 그곳에 잠입했는데 얼굴에 가면은 썼지만 몸은 나체인 아주 저속한 파티였다. 심지어 여자들만 벗고 있.....

읽으면서 짜증이 확 밀려왔다. 우스운건 프레돌린을 사람들은 금방 알아봤다는 것이다. 그의 정체도 금방 눈치 챘을뿐더러 입구 암호 말고 실내 암호를 대라고 하자 알턱이 없는 프레돌린은 바로 그들의 심판대에 선다. 그들은 몰래 들어온 프레돌린을 범죄자 취급을 하고 망신을 주기 위해 가면을 벗기려고 한다. 그러자 한 여자가 와서 그를 구명한다. 대신 자기를 벗기라고 한다. 나체의 그 여자는 얼굴을 가린채지만 가면을 벗기는 순간 신분이 드러나게 돼 있다. 여자는 프레돌린에게 빨리 이 곳을 벗어나라고 한다. 프레돌린은 여자를 제물로 넘기고 간신히 집으로 돌아온다. 그는 미칠듯한 죄책감에 휩싸인다. 자기 때문에 망신당해 사회적으로 매장될 여자 생각에 미치도록 미안하지만 그녀의 이름은커녕 얼굴도 모르는 상태에서 찾아서 사죄할 길은 없다.

프레돌린은 그 집을 다시 찾아나선다. 들어갈 용기는 없지만 이대로 있을수는 없어서다. 그런데 갑자기 하인이 나오더니 쪽지를 건넨다. 쪽지에는 더이상 이 일을 조사하지 말라고 적혀있다. 어디선가 누군가가 프레돌린을 감시하고 있다. 대단히 색정적인 그 파티에서 얼굴이 까발려지는 것을 막고자 한 여자를 희생시켰는데 이미 자기의 신분이 다 노출된 것 같아서 그는 공포에 떤다.

집으로 돌아왔더니 아내가 꿈이야기를 들려준다. 꿈 속에서 나타나는 남편의 부정은 현실세계랑 닮았다. 아내는 꿈으로 욕망을 드러내고 프레돌린은 실천으로 욕망을 드러냈다. 이제 이 부부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소설의 서사는 굉장히 재밌었으면서도 전통적 방식을 따랐다. 우연한 일을 맞딱뜨렸을 때 문제적 주인공은 탐욕을 선택했고 그것이 나비효과가 돼서 인생 전반을 뒤흔든다. 19세기 작품이다보니 여성을 성적인 도구로 이용하고 있는 점에서 좀 나하고는 안 맞지만 욕망을 저지하지 못한 인간에게 닥칠 파멸에 관해서는 시대를 막론하고 산교훈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여전히 신선한 소재라고 볼 수 있겠다. 영화로 만들어져도 재밌겠다!

재밌게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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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와 톨킨의 판타지 문학클럽 - 더 옥스퍼드 잉클링스
콜린 듀리에즈 지음, 박은영 옮김 / 이답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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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와 톨킨의 판타지 문학클럽 책을 읽게 됐다. C.S루이스와 J.R.R 톨킨은 유명한 판타지 작가다. [나니아연대기]는 이름만 들어봤고, 그 유명한 판타지 영화 <반지의 제왕>이 원래 책이었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안 나로서는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작품들이 외계의 언어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아름다웠다. 가보지 못한 세계를 그림처럼 유려한 문장으로 실존화 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그들의 문학클럽 '잉클링스' 였기 때문이다. 나는 실제로 이런 클럽을 굉장히 사랑하는 바이며, 실존했던 클럽의 역사를 이야기 형태로 듣는 것을 완전히 사랑하기 때문이다.

백탑파의 간서치들이 궤짝에 서로 적은 글귀를 넣어두고 수 많은 미시들을 만들어낸 것처럼 나도 그런 모임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엄청나게 상상했더랬다. [건지감자껍질파이 북클럽] 에서 처럼 전쟁 중에서도 서로에 대한 신의와 독서로인한 기쁨을 서신으로 나누는 것에 대해 존경해 마지않았던 나였다.
그러기에 판타지의 거장들이 모인 이 잉클링스 클럽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메이징한 이 작품들이 쏟아져 100년이 임박한 지금도 사랑받고 있다는 것이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닌가.

사실 서두에서 밝혔듯이 거론되는 작품들을 거의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좀 어려웠고 더뎠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한참 읽다보니 사진이 나왔다. 내가 상상했던 이미지와는 좀 달랐지만 루이스와 돌킨이 사진으로 나와서 반가웠고 , 그들이 머물렀던 펍이 현존하고 있다니 가보고 싶다. 유럽은 이런게 잘 보존돼 있어서 부럽다.

또 , 잉글링스 회원들이 그저 말장난이나 유치한 공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와 철학, 세계 신화, 역사 등에 관심을 가지고 열띈 토론을 거듭했다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 회원모집은 주로 루이스가 했다는데 모두 굉장한 지성인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나는 감히 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판타지는 조예가 없다ㅎㅎ)

나는 가끔 내 글에 심한 부끄러움을 느낀다. 창작물은 더 그렇다. 그래서 쉽게 내 보이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잉클링스에서는 서로 낭독도 하고 인물의 본성이나 설정 등을 심도있게 토론했다고 하니 굉장히 열린 사고요, 자존감이 높았던 클럽이 아니었나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도전과 꾸준한 노력이 판타지의 거장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하고 지금껏 읽히는 저력을 발휘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 부끄러워도 자꾸 공개하고 자꾸만 지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삐거덕거리는 순간도 있었다. 다이슨이라는 사람은 낭독을 거부하기도 했다고 한다. 늘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만 있으면 발전이 없는 게 아닐까. 그런 면에서는 이런 사소한 부딪침도 모두 창작의 동력이 될 수 있다.
실존하는 친구를 모델링해서 작품세계에 반영했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원래 소설가의 곁에 있는 그 누구도 인물 설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만 이 책을 쓴 저자 콜린이 무수한 자료를 바탕으로 그것을 유추해 냈다는 것에도 박수를 보낸다. 정말 대단하다. 전문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잉클링스가 중요 활동을 하던 시기는 세계대전 당시이다. 물론 전후에도 활동이 이어지긴 했지만 정말 폭발적으로 활발했던 것은 전시이다. 그러나 낭독회는 멈추지 않았고, 전시 체제와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도 심도있는 토론을 이어갔다. 굳이 좀 투덜거려본다면 먹고 살기에 전혀 지장이 없고, 전쟁에도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배부른 금수저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나 싶기도 해서 입이 좀 삐죽 나왔다. ㅎㅎ

아무튼 이 책은 정말 좋은 책이었다.
너무나 아쉬웠던 것은 내가 아는 작가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아니 그 책이라도 하나 읽어봤으면 반가워도 하고 장면이 생각나 이해도 팍팍 됐을텐데 너무나 아쉬웠다. 독서모임이 됐든 창작 모임이 됐든 모여서 한 두가지 주제로 같은 텍스트를 놓고 이야기 한다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지 특히 꾸준히 한다는 것의 아름다움과 범접할 수 없는 그 시간의 크기가 작품이라는 결실로 돌아올 때의 그 거룩함을 나도 꼭 체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물론 지금도 하고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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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 최신 버전으로 새롭게 편집한 명작의 백미, 책 읽어드립니다
조지 오웰 지음, 신동운 옮김 / 스타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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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가 사람인지, 사람이 돼지인지

도무지 분간 할 수가 없었다."

p.199

 

유쾌하지만 냉철한 정치 풍자 문학의 백미 조지오웰의 [동물농장] 을 읽었다.

스탈린주의를 비판한 최초의 문학이라는 수식어 없이도 이 우화가 인간의 권력욕과 자유의지의 허망한 몰락 내지는 배신을 풍자하고 있다는 것은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가 있다. 우리나라 신소설 [금수회의록] 보다는 더 우스꽝스럽지만 그저 웃을수만은 없는 블랙코미디의 진수 [동물농장]을 스타북스 판본으로 처음 만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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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더더욱 평등하다?"

 

 

메이너 농장의 주인은 존스다.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부농이다. 돼지도 여러마리 있고, 말에 양에 개, 고양이, 여러마리의 닭 등 하여튼 많은 동물을 키우고 산다. 어느날 존경받는 노인 돼지 메이저가 연단에 선다. 그리고 자유를 찾을 것을 촉구한다. 노인돼지의 말을 새겨들은 젊은 돼지들은 메이저 사후 3개월이 지나 반란을 일으킨다. 인간인 존스가족을 내쫓고 농장을 장악했다. 이 들은 크게 기뻐하며 계명도 붙이고 유토피아 건설을 위해 각자 노력한다. '네 다리는 옳고 두 다리는 나쁘다' 는 사상을 필두로 인간이라면 이를 간다. 그러던 어느날 우유 문제가 붉어지고 우유는 분배되지 못한 채 슬그머니 사라진다.

이미 권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유를 위해 인간의 억압에서 벗어났다더니 슬슬 힘의 논리를 들먹이며 다른 동물들을 억압하고 있는 돼지들을 마주치게 된다. 어째 이렇게 인간을 닮았는지.

또, 글을 읽을 수 있는 동물과 문서작업까지 가능한 동물들이 자연스럽게 우와 열로 나뉘어지면서 집단간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우' 의 집단이 '열' 의 집단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그 때까지도 우매한 대중들은 돼지가 시키는대로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 존스가 다시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동물들은 긴장하고 돼지를 위시한 힘센 동물들은 무력으로 농장을 지키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가장 진취적이었던 나폴레옹과 스노볼은 의견 충돌을 겪는다. 나폴레옹은 식량 수급에 열을 올려야 한다고 하고, 스노볼은 전기의 공급을 위해 풍차를 세워야 한다고 한다.

원래 알파 수컷이 둘일 수는 없는 법. 결국 나폴레옹은 개들을 이용해 스노볼을 내쫓는다.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나폴레옹의 독재가 시작된다.

 

지도자가 큰 뜻을 품고 혁명을 일으키는 경우는 역사에서 부지기수다. 난세에 영웅이 나오기 마련인데 문제는 그 영웅의 변절이다. 처음에는 자유와 행복을 위해 행했던 혁명이 목적을 이룬 후에 방향성을 상실하고 한 번 맛 본 권력의 맛은 사그러들지 않아서 결국 독재로 이어진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있었으니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달전에 봤던 영화 <남산의 부장님들> 이 생각났다. 주인공 김재규가 대통령 박을 암살하기까지 번뇌하는 과정 속에 자기들은 더 나은 나라를 만들기위해 혁명을 진행했는데 주동자였던 박이 권력에 욕심을 품어 그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고자 별짓을 다하자 자기가 정의의 사도가 돼서 살인을 저지르는 내용이다. (물론 김재규가 정당한 혁명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를 영웅시하지도 않고, 그 감독의 사관에 대해 찬성하는 바는 아니다.)

아무튼 그들이 처음에 품었던 그 혁명의 마음은 더이상 미국의 손에 놀아나는 우리 나라가 완전한 독립을 하게 하기 위해서였을런지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그 권력 유지를 위해 온갖 불법적인 악행을 자행했었다. 지도자의 잘못된 판단이 대중들을 더욱 파멸로 이끌뿐만 아니라 획득한 국가까지도 위험에 처하게 하는 무시무시한 결과를 가져옴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 작품이 1945년에 만들어졌으므로 그 당시는 그런 권력자가 더 횡행하던 시대인데 작가가 무척이나 용감하지 않았나 싶기도 했고, 시대의 문제를 반영해야 하는 작가로서의 올바른 소명을 잘 따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이 작품에 무한한 존경의 마음을 보내는 바이다.

 

결론을 내리지 않는 결말도 마음에 들었고, 충성스러웠지만 멍청했던 부하의 토사구팽이나 법이 자꾸 바뀌는 점, 인간 싫다고 난리법석을 치더니 결국 인간과 같아지는 돼지들을 보면서 참 세심하게도 잘 썼다 하는 생각도 얹었다.

참 좋은 기회에 잘 읽게 돼서 기쁘다. 명작은 괜히 그런 것이 아니다!

다른 판본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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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눈
딘 쿤츠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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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전 코로나 19를 예견한 소설이라길래 전염병 이야기 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실망은 아니었는데 뒤로 넘어갈 장수가 몇 장이 남지 않았는데도 코로나 이야기가 없자, 응? 속았나? 생각했었다.

ㅎㅎ 예측은 맞는데 그래서 신기한데 예비독자는 책의 전반적 내용과는 그다지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알고 읽으시길 바란다.

 

그래서 결론은 뭐다? 재밌었다는 것! 그거면 됐지 뭐 ㅎㅎ

스릴러 공포 서스팬스 소설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좋아할 것 같다.

폴터가이스트 현상을 믿는 사람이라면 더욱 더 흥미로울지도 모른다.

나는 그다지 믿지는 않지만

소설은 이야기로서 완벽하게 빠져드는 아주 쉬운 독자의 특성상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끌고 가는 그 힘에 박수를 보내며

다소 두껍지만 탄탄한 스토리로 흥미롭게 잘 읽었다는 간단한 평을 남겨본다.
 
딘쿤츠의 소설은 처음인데다가 이 소설이 40년전 소설이라는 것에 사뭇 놀랐다. 책을 읽을 때는 40년전까지는 생각이 안들고 스마트폰을 이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지금보다는 좀 됐겠거니 싶었었다. 만약 시대적배경이 요즘이었다면 벌써 잡혀서 죽었겠다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공간적 배경은 라스베이거스. 그 화려하고 번화한 그 곳에 티나가 살고 있다. 1년전 12살짜리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고 남편하고도 이별했다. 혼자 원래 살던 집에 살면서 화려한 쇼공연 기획자로 대성공을 앞두고 있다. 아들을 잃은 시름에 잠겨있지만 일도 놓칠 수 없어서 애를 쓰며 사는 티나 앞에 놀라운 일들이 벌어진다. 자꾸만 악몽을 꾸고 도둑이 든 것 같기도 하다. 아직 죽은 아들 방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그 방에서 기이한 일이 벌어지는데 갑자기 온도가 차가워지면서 물건들이 널을 뛰고 이젤 칠판에 '나는 죽지 않았어' 가 반복적으로 적히는 것. 아마 폴터가이스트 현상이 아닐까 싶다.
 
티나는 어떤 파티에서 변호사 앨리엇을 만나게 되고 서로 호감을 느낀다. 앨리엇은 티나가 마음에 들어 저녁에 그녀의 사무실을 찾고 그녀는 며칠째 이상한 현상에 시달리다가 마침내 사무실에서도 이상한 현상을 만나고 있었다. 켜지도 않은 컴퓨터에서 종이가 출력되고 컴퓨터 화면에 '나는 죽지 않았어' 라는 말이 반복해 출력된다. 티나는 이 모든 일이 누군가 자기를 괴롭히려고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때 앨리엇이 티나를 찾아왔던 것. 앨리엇은 티나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고 둘은 가까운 사이가 된다. 그리고 앨리엇은 생각한다. 티나에게 아들의 죽음을 인정시켜야겠구나. 그러려면 아들의 무덤을 열어야겠구나. 그래서 앨리엇은 엄청 친한 판사 케네백에게 전말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요청한다. 케네백은 집에 가 있으면 답을 주겠다고 하고 집에 있던 앨리엇은 무장 괴한의 침입을 받는다. 이전에 육군정보부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앨리엇은 그들을 간신히 소탕하고 이상한 낌새를 느낀다. 티나네 집으로 달려간 앨리엇은 폭발 직전에 티나를 구출한다. 티나의 집은 산산조각이 난다. 둘은 그 때부터 이 모든 일이 석연치 않음을 파악하고 티나의 아들인 대니를 구출하러 떠난다.

 

쫒고 쫒기는 숨막히는 여정 속에 대니는 계속 구조요청을 보내오는데 이 모든 것은 과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하다. 과연 그들은 구출에 도달할 수 있을까, 과연 그들은 구원의 천사를 만날 수 있을까?

 

거대 악과 싸우는데 그 두 사람은 너무 약하다. 그러나 사랑으로는 누구 못지 않은 파워를 지녔다. 남편의 외도 속에서도 끝까지 가정을 지키려 했던, 그리고 아들을 포기하지 않았던 엄마 티나, 전처를 병으로 잃었지만 다시는 잃고 싶지 않은 여자를 만나게 된 앨리엇. 이 두 사람의 강인한 사랑은 독자의 가슴에 감동과 재미의 불을 붙인다.

 

결론적으로 두 사람의 과업은 성공할 것이다. 스포를 최소한 하고 있지만 나의 스포일러와는 별개로 독자라면 누구나 결말쯤은 유추할 수 있다. 문제는 거기까지 어떻게 가냐는 것이다. 이것은 먼저 읽은 내가 말할 수 없으니 각자 읽어서 확인하기 바란다.

 

내가 나누고 싶은 것은 결말이다. 솔직히 나는 결말 이후의 삶을 원했다. 그들이 뭔가 더 행동하기를 원했는데 그냥 열린 결말로 끝내버린다. 그리고 악당을 소탕함에 있어서 좀 미지근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좀 더 강력한 처벌을 원했나 ㅎㅎ

읽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그런 소설이었다.

 

띠지에 속아서 선택하긴 했지만 읽길 잘했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렇지만 예견이라는 말은 매우 적확한 말로 신기하기는 했다. 정말 중국발 우한 바이러스가 단시간내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는 설정은 내가 봐도 신기했다. 소설이 전반적으로 신기하고 기이한 현상을 다루므로 더욱 소름이다. ㅎㅎ 딘쿤츠의 다른 소설도 찾아 읽어보고 싶다.

특별히 다산북스에서는 띠지에 공을 들인 것 같다. 띠지 날개에 보면 두 개의 스티커가 붙어있다. 요즘같은 시기에 힘이 되는 스티커이니 어딘가 붙여두어도 재밌을 것 같다. 띠지에 속았지만 띠지스티커 선물을 받게 되니 좋기도 하다. ㅎㅎㅎ

 

대중적인 소설이고 영화로 만들어져도 재미 보장이다. 어떤 배우가 어울릴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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