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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의 결탁 - 퓰리처상 수상작
존 케네디 툴 지음, 김선형 옮김 / 도마뱀출판사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 읽기의 성패는 작가가 창조해 낸 인물에 얼마만큼 동조할 수 있는가에 결정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물론 그 동조는 동정적인 공감의 형태로도, 냉소적인 비판의 형태로도 나타날 수 있다. 인물에 대한 입장이 분명한 입장은 그 인물의 운명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으로 이어지게 되고, 그 소설은 상당한 흡인력을 획득하게 된다. 존 케니디 툴의 <바보들의 결탁>과 같이 인물의 성격화에 특히 공을 들인 소설은 인물에 대한 입장 정하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소설에는 여느 소설에서도 볼 수 없었던 거대한 육체를 지닌 반사회적 동물-작가 자신도 '앞발'이라는 용어를 서슴없이 사용한다-이 등장한다. 객관적이고 상식적인 선에서 평가하자면 이그네이셔스라 불리는 이 반사회적 인물은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의 무자비함에 깊이 실망하여 자발적 은둔을 선택한 냉소적인 지식인이다. 그러나 이그네이셔스는 상식과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그려진다. 실상은 자본과 노동의 가치를 우습게 알며 무위도식하는 삶을 최선으로 생각하는 한량이며 중세 암흑기를 이상적인 사회상으로 생각하는 현실성 없는 궤변론자이다. 엉터리 신념을 관철시키기 위해 사고란 사고는 있는대로 치고 다니는 안티 히어로를 자처하는 이 인물에게 반감을 갖지 않기란 힘들다. 그러나 형편없는 이 인물에 대해 가차 없는 비판의 시각을 드러내기에 작품 전반을 싸고 도는 짙은 페이소스를 무시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그네이셔스 뿐 아니라 다른 인물들에 대해서도 입장 정하기가 곤혹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 소설에는 숱한 인물들이 나오는데 이들은 한결같이 사회 부적응자이며 사회체제에 대한 깊은 불신과 피해망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다. 권위가 떨어진 경찰, 패배의식에 사로잡힌 흑인, 약아빠진 주점의 여주인, 엉터리 프로이드적 신념을 가진 자본가의 아내 등. 이들 대부분은 존재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비주류의 삶 속에 내던져져 있지만 좌절이나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타락한 사회에 대한 부당함을 목놓아 외치고 자신이야 말로 가장 고결한 존재임을 끊임없이 증명하려 든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거의 전부가 자아도취병에 걸려 자기 목소리만 내던지고 있는 꼴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인물간의 대화는 이오네스코의 부조리극 처럼 계속해서 핀트가 어긋난다. 현실성이라고는 없는 사고뭉치 이그네이셔스와 현실적인 낭만주의자 라일라 부인, 상대방은 너무나 원치 않는 일을 호의랍시고 베풀며 자기만족에 빠지는 리바이 부인, 이해관계가 얽혀 한 지붕 아래서 일하면서도 약점 잡을 구실만 서로 엿보는 존슨과 레이나까지. <바보들의 결탁>은 다양한 인물군상들이 한 무대 위에서 펼치는 동상이몽의 향연이다.  

이 소설 속에서 실속 있는 행동을 하는 인물이라고는 없다. 모든 인물들의 행위나 존재가치는 공중에 붕 뜬 채 공허하게 떠돌고 있다. 작가는 인물들의 희화화를 통해 사회에 대한 풍자를 시도한다. 낙오된 지식인 이그네이셔스는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회를 향해 호소하는 것을 낙으로 삼는다. 이 현학으로 가득찬 어설픈 권위를 흉내내는 글쓰기에는 젠체하는 지식인들에 대한 조소가 묻어 난다. 무모한 행위를 수습하기 위한 궤변들은 말의 타락이 가져오는 위험성에 대해 경고한다. 타락한 세상을 한탄하지만 그 자신도 타락한 부적응자에 지나지 않는 이 모든 인물들은 우스꽝스럽고 비상식적인 행위를 통해 그들의 오류를 속속들이 드러낸다.  

그러나 한편, 대체로 사회적 약자이거나 실패자로 드러나는 인물들에 대한 연민의 시선을 내려놓을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저돌적이고 무대포격인 인물들의 행위가 냉철한 이성을 통해 보여지기 보다, 피식거리는 유머에 의해 묘사되는 탓이다. 정체 모를 거대 패러다임에 맞선 한 개인의 작은 부르짖음은 체제를 바꾸어 놓기에는 한없이 작은 움직임이기에 더욱 공허하다. 그래서 이 소설은 부조리한 행위를 벌이는 인물들과 그들을 수용하지 못하는 체제 양자에 대한 비판을 모두 끌어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공감과 비판 사이에서 인물들에 대한 뚜렷한 입장을 정하는 것을 더욱 힘들게 만든다. 장면의 효과적인 활용과 각 장면들의 절묘하고 유기적인 결합 등 이 소설에 활용된 뛰어난 기법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독창적인 캐릭터 창출의 효과이겠지만, 캐릭터에 대한 지나친 과장은 작품에 감도는 이질성을 상쇄시키기에는 오히려 역부족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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