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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의 등
아키모토 야스시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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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죽음이란 본인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닥치지 않는 한 그 실체를 실감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죽음이 본인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 되었을 때 사람들은 누구나 당혹해한다. 자신이 6개월 후에 죽는다는 사실을 안다면 무엇을 해야할까? 아키모토 야스시의 소설 <코끼리의 등>은 누구나 생각해 봤을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이다. 

두 자녀를 둔 평범한 가장이자 회사원인 40대의 한 남자가 말기암으로 6개월의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일상의 모든 것이 바뀐다. 최초의 충격과 혼돈이 지나가고 나서, 남자는 자신의 인생과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 마지막 인사를 전하는 것으로 남은 삶을 정리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렇게 하여 그는 중학교 때의 첫사랑 여자, 하찮은 일로 절교한 뒤 20년 넘도록 만나지 못한 친구, 젊은 시절 사랑했으나 결혼하지 못했던 여자를 만나 각각의 방식으로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의절했던 형제들과 사랑하는 여인,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가족들을 향해 남은 애정을 퍼붓는다. 두려움과 슬픔을 극복하고 차근차근 인생을 반추해 가는 이 남자의 이야기는 죽음을 앞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모범답안을 제공한다.

이 소설은 남자가 자신의 죽음을 알게되는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를 그리고 있다. 만약 이 소설이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지켜보는 누군가를 서술자로 설정했더라면, 지독한 신파 드라마가 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죽어가는 인물을 1인칭 서술자로 설정하고 있기 때문에, 죽음에 이른 주인공 이후의 어떤 후일담도 덧붙이지 않는다. 따라서 한 사람의 인생 자체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다. 이것이 흔한 소재와 예측 가능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감동적일 수 있는 이유이다.

그러나 투병과정의 묘사에 있어 치열함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가 말기암 환자의 고통을 직접, 혹은 가까이에서 겪어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면 섣부른 판단일까? 6개월이라는 숫자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제시함으로써 투병과정에서 일어나는 여러 변수들을 고려하지 않는 등 말기암 환자의 상황에 대한 구체성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물론 이야기가 말기암 환자의 투병기이기보다, 죽음을 앞둔 남자가 인생을 되돌아본다는 내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니 병리학적인 문제를 걸고 넘어지는 것이 지나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황에 대한 구체성이 보장될수록 소설은 개연성을 확보하게 되고 한층 드라마틱해질 수 있는 것이므로 이 점은 여전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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