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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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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인조의 첫째 아들 소현 세자는 이정환의 '국치비가(國恥悲歌)' 두 수에서 언급되어 그 비극적 운명의 일면만을 짐작할 수 있을 뿐, 역사의 중심부에 서 보지 못한 채 뒤안길로 사라져 간 인물이다. 길지 않은 일생에서 10여년 세월을 적국의 땅에 볼모로 잡혀 살았으며, 환국한 지 2달여만에 의문의 죽음을 맞았으니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였던 숱한 왕족들 중에서도 치욕적이고 고독한 삶을 살았음이 분명하다. 이 비극의 인물이 소설가 김인숙을 통해 새로이 생명력을 부여받았다.

소설 <소현>은 수많은 문학작품의 모티프가 되었던 병자호란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누구도 깊이 관심을 두지 않았던 소현 세자에게 포커스를 맞춘다. 왕족이고 세자의 삶을 살았으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리고 만 인물의 고독한 내면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 팩트가 작가적 상상력으로 확장되는가하면, 작가의 말에 이르러 다시 역사적 팩트로 되돌아 온다. 작가는 어디까지나 최종판단은 유보하고 있지만, 결국 소현 세자의 죽음을 둘러싼 자신의 역사적 입장을 작품 속에 드러낸다. 물론 이 소설은 소현 세자의 죽음에 대한 역사적 입장을 드러내기 위해 쓰여진 것은 아니다. 작품은 소현 세자가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간 세월과 환국 후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삶의 모습을 그리면서, 조선 권력층들의 충의와 청나라를 향한 이중의 시선을 드러내는데 치중한다. 

조선의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장면의 하나로 꼽히는 병란의 전쟁 당시의 처참함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지만, 패전이 가져온 고난의 세월이 10여년 이상이나 지속되었음에 대한 비장함이 소설 속에는 더 잘 드러난다. 왕에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패전이 가져온 절망과 혼돈이 작품 곳곳에 그려진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결국 소현 세자의 고독한 내면으로 집중된다. 조선을 향한 그리움과 임금을 향한 충의만으로 버텨왔던 굴욕의 시간은 권력층의 야욕과 사대를 강요하는 적국에 의해 무위로 돌려진다. '희생'이라는 말에는 작은 것을 버림으로써 큰 것을 얻어간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소현 세자의 희생은 굴욕과 상처만이 남았고, 적을 더욱 완전하게 만들어 주었을 뿐이다. 결국 위대한 희생조차 될 수 없었던 소현의 일생은 변방의 나약한 소국으로서 겪어야했던 서러움을 응축한 국치비가(國恥悲歌)인 것이다.

소설 <소현>은 소현 세자의 고독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다양한 주변인물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소설적 재미를 더하고 있다. 위로는 왕에서부터 아래로는 투전판을 들락거리는 역관과 무녀의 이야기까지 두루 포용하고 있다. 이 모든 인물들이 하나의 서사 줄기로 수렴됨은 물론이다. 소현과 봉림, 인조, 도르곤 등의 역사적 실존 인물에 만상, 막금과 같은 가공의 인물들을 첨가해 고루한 사실의 나열에 그칠 수 있는 역사소설의 한계를 극복한다. 또한 부분부분 추리적 기법을 첨가해 긴장감을 불어 넣으며, 역사적 격동기 속에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각 인물들의 충의와 가치관을 잘 드러내고 있다.

역사적 한계의 재해석 작업은 사료적 한계와 관점의 편협함에 따른 비판 등으로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그러나 역사의 재해석이라는 대범한 작업은 또한 소설이라는 장르적 이점을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소설 <소현>은 역사적 팩트를 전아한 문체와 섬세한 필치를 통해 소설적 재미를 최대한 살려 그려내고 있으므로, 비판적 독서만 잘 이루어진다면 의미 있는 독서 체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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