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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비밀
톰 녹스 지음, 서대경 옮김 / 레드박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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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식량을 충족시키기 위한 목적이 아니면서 동족을 죽이는 유일한 종족이다. 정치나 이데올로기의 문제만으로 수많은 의미 없는 살상을 감행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 지닌 내면의 악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많이 인용된다. 제의적 이유로 벌어지는 살인도 마찬가지다. 특히 합리적 사고방식이 팽배한 오늘날에는 제의적인 이유로 벌이는 많은 일들은 무조건적인 비난의 대상이 된다. 톰 녹스의 <창세기 비밀>은 바로 제의적 이유로 벌어지는 살인인 인신공희에 본격적으로 접근한 팩션이다.

소설은 의문의 살인 사건을 조사하는 런던의 형사 포레스터의 이야기와 터키의 유적 발굴 현장을 취재하러 갔다가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기자 로브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나타난다. 고대로부터 행해졌던 인신공희의 풍습과 창세기 신화의 비밀이 날실과 씨실처럼 교차되며 접점을 만들어 간다. 현대에 일어나는 의문의 살인사건에서 시작하여, 터키의 유적, 에덴동산, 인신공희, 예지드 교, 검은책으로 끊임없이 화두는 옮겨간다. 그러는 동안에 마침내 인류의 오랜역사에 관한 창세기 비밀이 파헤쳐진다.

팩션의 매력은 숨가쁜 전개와 같은 장르소설적 재미에 지적 흥미가 더해진 데에 있다. 그러나 <창세기 비밀>은 전개가 다소 느려 팩션의 매력을 십분 살려 내지는 못하고 있다. 괴베클리 테페 유적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이나 살인이 인신공희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 설명을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소설 전반부에 쏟아 붓는 바람에 중반부를 넘어서야 비로소 주인공들이 본격적인 위기에 처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책장을 한참이나 넘겨야 긴장감을 동반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다. 추리적 기법임에도 그리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고 가속도가 붙지 않는 것은 극중 사건과 인물의 심리에 크게 몰입이 되지 않았던 탓도 크다. 또 다방면의 학문들에 대한 설명이 중간중간 삽입됨으로써 이야기의 흐름이 자꾸 끊긴다. 풀어 놓고자 하는 이야깃거리가 많을 수록 그것들을 한 방향으로 이끄는 구심력이 중요하지만, 이 책은 거기까지 독자를 배려하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세기 비밀>은 매끈하게 잘 쓰여진 팩션임이 분명하다. 지적인 동시에 하드고어적인 잔혹함이 곳곳에 배어있다. 역사, 고고학, 종교학, 심리학, 유전학, 영문학 등 다양한 방면의 학문에 대한 방대한 지식이 동원되어 수준 높은 팩션의 경지로 이끌고 있다. 결론적으로 에덴 동산에서 추방당한 인간의 이야기를 신석기 혁명에 대한 은유로 해석하는 발상도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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