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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아 극장
엔도 슈사쿠 지음, 김석중 옮김 / 서커스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일본 문학의 거장의 책 치고 당혹스러운 표지다. 표지에서부터 웃기기로 작정한 듯 보인다. 책에 실린 글을 하나하나 읽노라면 표지에서 의도한 대로 피식피식 웃음이 난다. 그런데 웃긴 건 분명한데, 그 간질이는 방식이 다르다. 표피보다는 내피를 간질이는 느낌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나오는 웃음도 배꼽을 잡는 웃음이 아니라 슬금슬금 새어나오는 웃음이다. 삶에 대한 애정이 빚어내는 은근한 웃음(우리 아버지 등), 기발한 상상이 만들어내는 통쾌한 웃음(마이크로 결사대 외), 조롱과 아이러니가 만들어내는 차가운 웃음(우리들은 에디슨, 동창회 등)과 같은.

수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에까지 오른 바 있는 일본 문학의 거장 엔도 슈사쿠의 작품으로는 독특한 작품집인 <유모아극장>은 작가가 다소 무겁고 어두운 느낌을 주는 고정화된 자신의 이미지를 벗어보고자 지어낸 글들이다. 어두운 이미지에서 탈피해 작가 자신의 경박한 이미지를 내보이고자 쓴 글이라고 하는데, 거장이 만들어내는 경박함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 짧고 가벼운 글 들 속에도 삶에 대한 예리한 통찰이 묻어난다.

이 소설집에는 12편의 짧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이 이야기들은 책의 표지나 제목에서 기대되는 것과 같이 엄청나게 기발하고 대담한 발상을 담고 있지는 않다. 한 편 한 편이 일상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해프닝을 그리고 있다. 거창하지도, 심오하지도 않고, 일상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을 포착하여 하나의 플롯에 담았다. 오랜만에 만난 입담 좋은 친구가 풀어내는 그간의 일들을 듣는 느낌을 준다. 때로는 허풍과 과장이 섞여 있지만 막판에는 다 함께 유쾌하게 웃을 수 있는 담백한 이야기의 모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쓰인 것이 1960년대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야기의 품격이 오늘날과 비교해서 크게 동떨어지지 않다는 것만으로도 당시에는 꽤 획기적이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사모하던 여인의 몸속에 들어가 회충과 결투를 벌인다든지,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여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엉뚱한 발명품들을 만들어낸다든지 하는 발상은 당시로서는 분명 기발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인간을 사랑하는 원숭이, 자신과 꼭 닮은 사람의 존재도 독특한 소재거리였음에 분명하다. 그러나 발상의 기발함을 차치하고, 보편적인 삶과 인간성에 맞닿아 있는 이야기들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충분히 공감할만한 세련됨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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