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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곰배령, 꽃비가 내립니다 - 세쌍둥이와 함께 보낸 설피밭 17년
이하영 지음 / 효형출판 / 2010년 2월
평점 :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이 더 편한 곳, 더 세련된 곳, 더 복잡한 곳으로 끊임없이 나아간다. 더 좋은 직업, 더 좋은 학군을 찾아 끊임없이 거처를 옮긴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문명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호젓한 곳을 찾는 '특별한' 사람의 이야기는 늘 있어 왔다. 책을 읽어도 TV를 봐도 희귀한 삶을 다루듯 그들의 일상을 조명한다. 왜? 말 그대로 희귀하니까. 앞으로 나아가기에도 바쁜 세상에 당당히 뒤켠에 조용히 물러설 줄 아는 그들의 용기에 약간의 동경의 시선을 보내면서.
그러나 그 동경의 시선은 다소 이중적이다. 호젓한 그들의 삶을 부러워하면서도 자신은 그러지 못하는 것은 용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많은 것들을 버리고 싶지 않은 욕심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를 벗어난 호젓한 자연속의 삶에 대한 향수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심지어는 도시에서 나서 쭉 도시에서 자란 사람들조차도. 자연을 갈구하는 인간의 심리는 인간이 완전한 자연의 일부였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오래된 본능이 아닐까.
<여기는 곰배령, 꽃비가 내립니다>는 자연을 향한 인간의 갈망을 자극하는 에세이다. 서울에서 대학까지 나온 저자는 세 쌍둥이와 함께 강원도 한 산골에서 17년 째 삶을 꾸려가고 있다. 반지하로 갈 수 없어서, 차선으로 선택된 산골 생활이지만 결국 산골이 주는 수많은 혜택에 동화되어 성공적으로 산골에 정착한다. 그리고 지금은 자연이 주는 즐거움을 누구보다도 잘 누릴 줄 알고 그 삶에 감사할 줄 아는 행복한 곰배령 아줌마가 되었다.
이 책의 곰배령은 완전한 생활의 공간이다. 아름다운 자연을 완상하며 느긋한 삶을 살아보자는 식상한 구호의 나열이 아닌 것이 마음에 들었다. 저자는 생활 속의 자연을 말하며 자연에 대한 애정과 거기서 얻는 기쁨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한다. 콩을 삶아 메주를 쑤고, 호미를 들고 나물을 캔다. 벌과 강아지를 키우기도 하고, 자연에서 얻은 갖가지 재료들로 맛있는 밥상을 차리기도 한다. 저자는 이렇듯 철저하게 경험을 바탕으로 산골의 사시사철 나날들을 구체적으로 감칠맛나게 묘사한다.
오늘날 도시 삶을 버리고 자연으로 회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을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사회가 어려울수록 자연으로 도피하려는 것은 비단 오늘날의 일만은 아니다. 조선시대 강호가도를 노래하는 시가에서도 자연은 도피와 위안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가 말해주는 수많은 자연의 혜택을 보고 있자면 자연이 단지 도시 삶의 고단함을 떨쳐 버릴 수 있는 일시적인 도피처로 여겨지는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자연이 실패로부터의 도피처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삶의 일부가 되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자연의 혜택을 누리며 살 수 있는 날들이 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