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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 - 제1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임영태 지음 / 뿔(웅진)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이미 귀가한 사람들이 집집마다 불을 밝히는 시간에 종종걸음 치며 바삐 걸어가는 몇몇 사람들만 남은 거리를 홀로 걸어본 적이 있는가? 임영태의 <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에서는 그런 텅 빈 거리를 헤매는 듯한 쓸쓸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그 순간 문득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 줄 것 같은 안도감 또한 느낄 수 있다. 인간이란 타인의 위안이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가.

소설은 지극히 단조로운 일상에서 시작해 몽환적인 세계를 헤매다 다시 일상으로 정착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주인공의 직업은 대필작가다. 남의 인생을 누구보다도 속속들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직업이다. 그 때문인지 도시를 하염없이 배회하는 그에게는 다른 이들의 인생이 보이기 시작한다. 작품에서는 그것을 죽은 사람이라고 표현 하고 있다. 주인공의 눈에 비친 죽은 사람들은 도시 곳곳을 하염없이 헤매며 생전에 이루지 못했던 무언가를 간절히 찾아 다닌다. 이런 죽은 사람들의 모습은 거리를 배회하는 주인공 자신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산 자나 죽은 자나 모두 그만의 삶의 무게를 지고 있으므로.

소설은 아내를 잃은 한 대필작가의 일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홀로 사는 중년 남자의 일상이란 예상하는 대로 조금은 힘들고 조금은 쓸쓸하다. 작품 전반에 애잔한 슬픔이 감돈다. 그러나 작가는 남자가 느끼는 공허감과 슬픔을 지나치게 부각하지 않고 일상에서 나타나는 허전함으로 이를 대신한다. 도시 곳곳을 헤매며 외로운 영혼들과 대면하고, 기억 곳곳을 배회하며 자신의 삶이 서성거리는 위치가 어디쯤인지 가늠해 본다. 기억 속은 또렷하지 않고 몽환적이다. 때로는 자신의 기억을 타자가 되어 들여다 보기도 하고, 때로는 타인의 기억 속을 탐색하기도 한다. 그의 기억은 후회로 가득 차 있다.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기억들이지만 타인의 영혼과 독특한 교감을 이루어내며 그 안에서 위안을 찾는다.

잔잔한 물결같이 특별한 변화 없는 일상을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음에도 작품 전반에 걸쳐 긴장감이 감도는 것이 이 소설만의 장점이다. 많은 사건이 벌어지고 숨가쁘게 전개되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작품 전체를 애잔한 슬픔과 공허함이 감싸고 있지만 결코 감정에 매몰되는 법이 없다. 수많은 상징들이 감추어져 있고, 풀릴듯 하면서 풀리지 않는 실마리들이 끊임 없이 흘러 나오며 끝까지 서사의 긴장을 유지한다. 이야기는 기억과 현실을 바삐 오가며 지치고 외로운 삶을 보듬는다. 삶에 지친 모든 사람들을 위한 잔잔한 위로같은 소설이다.

중앙장편문학상은 <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을 제1회 수상작으로 선정함으로써 강한 실험 정신과 넘치는 패기보다 삶에 대한 좀 더 깊이 있고 진지한 접근을 선호하는 쪽으로 그 성격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최근 장편 문학상의 트랜드가 '참신한 발상' 혹은 '대중성'으로 확연히 양분되어 있는 것에 비하면 아주 소신 있는 선택인 것 같다. 깊이 있고 진지하면서 삶의 대변이라는 소설의 본연의 역할을 매우 훌륭하게 해내는 작품들이 많이 발굴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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