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취향 - 일상이 풍요로워지는 특별한 책 읽기
고나희 지음 / 더블:엔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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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취향(일상이 풍요로워지는 특별한 책읽기)             -고나희
2018.12.12  ***



 가끔 책을 많이 읽고 사유한 사람들이 추천한 책을 읽고 싶을 때가 있다. 그 책을 읽고 내가 알지 못했지만 숨겨진 보물 같은 책들을 종종 발견하기 때문이다. 나의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은 수많은 책중에서 나와 코드가 잘맞는 보석같은 책을 찾아내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사람들이 많이 읽은 책이 아니고 소수의 사람들이 애정하는 책들을 발견하면 그건 더욱 더 큰 기쁨으로 다가온다. 마치 보물이 표시되어 있는 보물지도를 소수의 몇 명만이 비밀스럽게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번에도 그런 마음으로 이 책을 골랐다.
 책은 4파트로 나누어진다. 읽는 이의 취향, 여행하는 이의 취향, 쓰는 이의 취향, 품은 이의 취향.



 사실 책은 개인의 취향과 관심을 잘 나타내주는 지표이다. 나와 코드가 맞지 않는 책이나 서평을 읽으면 어떠한 감흥도 느껴지지 않고 책의 매력도 또한 떨어진다. 이 책의 서평을 어떻게 써야할까. 고민이 좀 되었다. 솔직히 그렇게 마음에 와 닿은 책도 없었고 저자의 글도 그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아마 저자와의 주파수가 맞지 않아서 일지도 몰랐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저자는 왠지 나이가 많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30대 초,중반. 읽으면서 저자의 나이를 괜시리 짐작했다.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우리는 코드가 잘 맞는 친구와 자연스럽게 친해진다. 그것처럼 책도 저자와 나와의 대화와 소통이다. 그런데 코드가 잘 맞지 않으면 저자가 하는 말이 지루하게 느껴지고 깊은 공감도 나오지 않는다. 책을 읽는 내내 그런 느낌이 들었다.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느낌.
 흥미있게 다가온 책들은 몇 권 있었다. 조지 오웰이 이런 소설도 썼구나 하면서 생소하게 다가온 소설이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조지 오웰이 실제로 그런 생활을 체험하면서 쓴 르포르타주이다. 실제로 그 생활로 들어가서 직접 경험한 것이기에 아마도 생생하게 남겼을 것이다. 인간은 삶이 극단적으로 변화를 겪게 되면 혼란한 감정들이 마음을 어지럽히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진정한 가치와 소중한 것들 그리고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을 다시 한 번 사유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어느 정도 허구적인 르포르타주임에도 이 책을 긍정하고 싶은 이유는 그 시선과 방식 때문이다. 변두리 삶과 그 안의 인물들 밖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닌 그 안에서 자신과 다름없는 대상으로 대하고 보았던 움직임(시선)이었다. '다름'이 주는 곁눈질을 경계해야 한다. 변두리를 대하는 시선이 자신과 다르고 동떨어진 것이라는 인식에서 시작된다면, 그 인식과 시각에는 선입관과 편견이 들어서게 된다. ....(중략)....그런 까닭에 그의 시선이 머문 자리를 따라 눈이 움직였고, 그가 비추는 방식에 따라 마음이 움직였다."            -본문 44~45쪽


 카롤린 봉그랑의 '밑줄 긋는 남자'이다. 주인공 콩스탕스는 자신의 취향에 따라 책을 읽고 좋아하는 작품과 작가를 지닌 감성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독자다. 그녀가 사랑하게 되는 사람은 '밑줄을 긋는 남자'이다. 그 남자는 책에 밑줄을 그으며 텍스트를 과감하고 자의적으로 읽어내는 독자다. 밑줄 긋는 남자를 콩스탕스는 뒤쫒고 콩스탕스를 사랑하게 된 클로드는 개성과 취향이 분명한 독자이다. 이들 셋 모두 밑줄 긋는 것을 통해 텍스트를 재해석하고 새로이 배치하면서 새로운 텍스트를 만들어낸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점은 이들의 텍스트 훼손이 아닌 텍스트(책)를 대하는 태도와 텍스트를 이끄는 방식이다. 게다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을 때 앞선 독자의 밑줄이 성가실 때가 많긴 하지만, 때로는 그 밑줄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밑줄 그은 이의 감각과 수준이 나보다 우위에 있다면 그 도움은 더욱 커진다."              -본문 172~173쪽


 우리에게는 '비포 선라이즈'의 잘생긴 청년으로 기억되는 에단 호크이다. 그는 작가로서 세 권의 책을 냈는데 '이토록 뜨거운 순간', '웬즈데이', '기사의 편지'이다. 


"배우,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 그리고 그 너머의 복합적 크리에이터로서 호크의 행보는 여러 분야의 창작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자신이 다루고 대하는 텍스트를 경계 없이 자유로이 인식하고 해석하며 고정된 자리에 멈춤 없이 창작자의 지평과 포부를 넓히는 태도는 글과 책, 영상과 영화, SNS 등 텍스트의 상호 혼용과 혼재가 일반적인 지금에 창작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와 에디터 그 너머의 크리에이터로의 욕구와 바람 때문에 에단 호크의 태도에 그렇게 집중했던 게 아닐까."           -본문 203쪽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셰익스피어&컴퍼니)' 제레미 머서의 책이다. 셰익스피어&컴퍼니는 분명 서점이지만 일반적인 서점과는 다르다. 도서관처럼 운영되기도 하고, 많은 작가가 그곳에 머물려 숙식도 하고 작품도 쓴다. 머서도 서점에 머무른 작가 중 한 사람이었다. 숙박비는 자서전을 쓸 것, 하루에 책 한 권 읽을 것, 서점 일을 조금 돕는 것이었다. 


"이 공간에서의 삶이 머서에게 모험이 아니면 무엇일지. 그리고 낯선 곳, 낯선 사람, 낯선 삶의 방식은 어른도 어린아이로 만들어버리는 법이다."             -본문 219쪽


"서점에서의 생활이 글쓰기에 완벽하거나 그에 가까운 환경을 제공하지는 않지만, 공동생활이라 신경 쓰일 것도 많지만 그는 자신을 돌아보고 '다시 쓰게' 된다. 글을 쓰는 이에게 멈춰선 펜을 다시 잡게 되는 것만큼 의미 있고 큰 변화는 없다. 그 변화는 곧 그의 재기를 의미한다. 낡은 서점에서의 여행이 그를 작가와 인간으로서 다시 나아가게끔 한 것이다."                 -본문 220쪽
 
 이제는 서점이라는 공간이 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책을 읽고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는 소통의 장으로 바뀌어야 겠고 책을 팔기도 하고 도서관처럼 빌려주기도 하는 유연한 운영방식을 택하는 것도 참으로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책만 사러 오는 것이 아닌 책을 읽다가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보증금과 약간의 대여료를 받고 빌려가고 그들이 또 다시 반납하러 오면서 책을 놓지 않는 좋은 환경과 습관을 만들어주는 것도 참 괜찮은 방식인 거 같다. 내가 그런 서점을 하나 차리고 싶다. 사람들이 점점 책을 사랑하게 만드는 서점을 말이다.

 이 책은 나중에 다시 읽어봐야 할 것 같다. 내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깊은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은 건지 아니면 단순히 내 취향이 아닌었던 건지 말이다. 나중에 읽으면 뭔가 또 새롭고 생각이 달라지겠지? 하는 여지를 남기고 서평을 끝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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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힘드냐고 니체가 물었다 - 피할 수 없는 내 운명을 사랑하는 법
박찬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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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힘드냐고----- 니체가 물었다 (피할 수 없는 내 운명을 사랑하는 법)        -박찬국<21세기북스>
2018.12.9 *****


 책 제목이 탁월하다. 요즘은 정말 사는 게 힘들다고 살 맛 안난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사는 게 힘드냐고 묻는 것도 이제는 진부해질 정도다. 그런데 그것을 니체가 물어본다면? 머릿속에서 여러가지 생각들이 떠오를 거 같다. 내가 왜 힘들까? 그런 마음이 드는 건 사회탓일까? 아니면 내 탓일까? 단지 Yes, No의 단답형으로 끝내질 거 같지 않다. 왜냐하면 주저리 주저리 답을 하면 니체가 훌륭한 해결책을 조목조목 제시해 줄 것만 같은 기대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은 2014년에 이미 [초인수업]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한 바 있다. 제목을 고쳐서 개정판으로 나온 것이다. 제목 하나로 이렇게 책에 대한 매력도가 달라지니 제목을 지은이는 정말 탁월한 선택을 한 것이다.
 내가 니체에 대해서 아는 것은 그가 독일의 철학자이고 [짜라투스트라는 말했다]의 저자로 '신의 죽었다'라고 표현했다. 고작 이 정도이다. 그런 내가 이 책을 통해 니체의 사상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고 그의 사상과 사유들을 좀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저자는 니체의 사상을 알기 쉽게 잘 풀었고 그것을 현대인들의 삶에 적용해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니체가 시대적으로도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이고 그의 철학은 나와 더더욱 먼 이야기같았는데 이 책은 니체와 나를 묶어주는 하나의 튼튼한 가교의 역할을 하였다. 니체라는 철학가와 그의 생각들을 알고 싶어졌다.
 

#심리학
 나는 모든 책은 프롤로그에서 내가 재미있게 읽을 책인지 아닌지가 판가름 난다고 생각한다. 프롤로그는 이 책의 맛보기, 샘플링이라고 할 수 있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장영희 씨가 [노인과 바다]에 대해 쓴 글을 언급한다. 장영희씨는 가장 유명한 구절은 물고기와 싸우면서 노인이 되뇌는 말,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저자는 이 소설에서 니체를 떠올렸다고 한다. 여기서 니체의 핵심철학이 등장한다.


"저는 니체가 생각하는 운명과 우리 자신 사이의 바람직한 관계, 인간들 사이의 바람직한 관계는 '사랑의 투쟁'이라는 말로 묘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운명과 투쟁하고, 다른 사람들과 투쟁하는 과정속에서 자신을 강화시키고 고양시킬 수 있습니다...(중략)...인간과 운명 사이의 바람직한 관계는 노인과 물고기 사이의 관계처럼 '사랑의 투쟁'이 행해지는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투쟁이란 사람들이 서로 투쟁함으로써 서로를 고양시키고 상대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품게 되는 관계를 말합니다. 니체가 염두에 두고 있는 투쟁은 모든 것들이 서로 투쟁하는 가운데 상대를 고양시키는 사랑의 투쟁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중략)...'그대의 운명이 평탄하기를 바라지 말고 가혹할 것을 바라라'라고 외치며, 그런 운명과 투쟁하면서 장렬하게 죽을지언정 패배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중략)....강함의 염세주의는 건강한 생명력을 주체하지 못한 나머지 삶의 가혹함과 두려움을 찾아다니고, 우리의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을 자신의 힘을 시험해볼 수 있는 호적수로서 만나기를 원하는 도전적인 정신을 가리킵니다. ...(중략)..."초인이란 고난을 견디는 것에 지치지 않고 고난을 사랑하는 사람이며 고난에게 얼마든지 다시 찾아 올 것을 촉구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프롤로그에서 발췌
 

#인생고민

 니체의 정신이 어떤 것이며 우리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가 대충 감이 잡힐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삶이 힘들어질 때 니체에게 묻고 싶은 10가지 질문을 만나보자.



첫 번째 질문: "내 인생은 왜 이렇게 힘들기만 할까?"
-편안함만을 바라는 사람에게 행복은 오지 않는다.
 요즘 젊은이들은 모험을 좋아하지 않는다. 모험이란 위험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정적이고 편안한 일인 공무원 시험에 그렇게 많은 취준생들이 몰리는 것이다. 그리고 예전에는 남자들이 경쟁속에서 무언가를 성취하였는데 이제는 투쟁하지 않는 안정과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온순한 초식남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쇼펜하우어는 인생은 욕망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와 같다라고 말했다.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삶의 지친 연약자들의 넋두리라고 딱 잘라 말했다.

 "인간이 추구하는 것은 장수와 안락한 삶이 아니라 힘의 고양과 증대라는 것입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힘이 증가되고 있다는 느낌, 저항을 초극했다는 느낌을 말한다. 만족이 아니라 보다 많은 힘, 평화가 아니라 전쟁.....(후략)"                 -본문 35쪽

 오늘날의 현대인들은 안락함 삶만을 추구하고 한 순간을 즐기는 쾌락에 빠지는 병약한 인간이 되어 버렸다. 조금 힘들거나 불편하면 그만두거나 불평을 한다. 니체는 이런 인간을 말세인라고 경멸했고 '고귀한 인간', '기품있는 인간' 즉 초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을 느끼는 사람은 이 세상 또한 그렇게 본다. 이것은 예술가의 삶과 비슷한데 예술은 힘의 고양과 충만을 경험하는 도취의 상태에서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고난과 고통이 없는 삶은 행복한 삶이라고 정의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이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삶이 힘들다고 느끼는 것이다. 삶이 고난과 고통의 연속임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인 평정과 충일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진정 행복한 사람이다. 


두 번째 질문: "삶의 의미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의미를 찾지 않을 때 의미 있는 삶이 된다.
니체는 인간의 정신을 낙타, 사자, 아이에 비유했다. 낙타의 정신은 사회의 가치와 규범을 절대적인 진리로 알면서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정신을 뜻한다. 사자의 정신은 기존의 가치를 파괴하지만 새로운 가치를 장초하지는 못한다. 아이의 정신은 니힐리즘(허무주의)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활력을 회복한 정신의 단계이다. 낙타의 정신에서 사자의 정신으로 발달되면서 우리는 니힐리즘을 경험한다. 그러면서 인생의 무의미함을 느끼고 죽음을 생각한다.
"염세주의의 극한적인 형태인 본래적인 니힐리즘의 출현은 경우에 따라서는 결정적이고 가장 본래적인 성장, 즉 새로운 존재 상태에로의 이행이 될 수 있다."           -본문  54쪽
 어떤 깨달음으로 방황을 끝내고 허무감에서 벗어나게 되면 아이의 정신으로 발전할 수 있다. 아이처럼 산다는 것은 곧 인생을 유희처럼 사는 상태를 말한다. 아이들이 놀이속에 몰입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 때 그들은 과연 놀이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놀까? 아니다. 인생도 마찬가지로, 인생이 하나의 재미있는 놀이라고 여겨지는 사람은 '이 놀이를 계속해야 하는지' 묻지 않는다.

"'인생의 의미'에 대한 물음은 그런 물음이 제기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삶을 재미있는 유희처럼 살아갈 때에만 해소될 수 있습니다."         -본문 61쪽

"아름답게 드러나는 세계에서 매 순간 충만한 기쁨을 느끼면서 경쾌하게 사는 것, 매 순간 자체가 이미 충만한 의미를 갖고 있기에 그 순간의 충일함을 즐기면서 사는 것, 그것이 바로 니체가 말하는 '아이의 정신으로 사는 것'입니다."                -본문 68쪽


세 번째 질문: "내 맘대로 되는 일은 왜 하나도 없을까?"
-위험하게 사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

 "'운명애(amor fati)', 이것은 나의 가장 깊은 내면의 본성이다."  -본문  72쪽

 니체는 5세때 아버지를 여의였지만 예술과 학문의 천재적인 소질로 25세 약관의 나이로 스위스 바젤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그러나 교수가 된 지 10년도 채 되지않아 병이 들어 사퇴하고 학교에서 주는 연금으로 일생을 보내게 된다. 또 자신의 제자를 사랑했지만 그녀의 사랑을 얻지 못한 채 독신으로 살았다. 그가 출간한 책은 생전에 인기를 얻지 못했고 45세의 나이에 광기가 엄습해오면서 10년을 병석에서 식물인간처럼 지내다가 죽었다.
 그의 철학은 이토록 삶의 고통과 고난의 처절함 속에서 나왔다. 인간이 얼마든지 운명을 극복하면서 자신의 삶을 자신의 의지대로 만들어갈 수 있느냐는 질문에 니체는 의외의 답을 말한다. 자유의지의 철학은 사회적으로 실패한 사람을 단죄한다고 말한다. '그대가 실패한 것은 그대의 노력 부족 때문이다'라고 말이다. 지금 우리 교육도 그러지 않는가? 당신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당신이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것이라고. 그렇기에 좋은 대학을 가지못한 하위 90%의 사람들은 계속 학벌 컴플렉스에 시달리며 스펙쌓기에 여념이 없는 것이다.

"니체가 말하는 운명애는 숙명론이 아닙니다. 오히려 운명을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로 이용하고 승화시키라는 철학입니다. 특히 그는 고난의 운명이야말로 한 인간이 위대한 인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절호의 조건이라고 보았습니다."       -본문 84쪽

"악- 가장 생산적인 최선의 인간이나 민족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이렇게 자문해보라. 하늘 높이 자라려는 나무들이 과연 비바람이나 눈보라를 격지 않고 제대로 그렇게 자랄 수 있을 것인가?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불운과 저항, 증오, 질투, 불신, 고집, 냉혹, 탐욕, 폭력은 덕의 위대한 성장을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것이 아닐까? 그것들은 덕의 성장을 위해서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다. 나약한 천성을 가진 자들을 사멸시키는 독은 강한 자들에게는 강장제이다. 강한 자는 그것을 또한 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본문 85쪽


네 번째 질문: "사람들 사이의 갈등은 어떻게 풀 수 있을까?"
-고귀한 인간은 자신의 적을 필요로 한다.
 한동안 우리나라 부모들이 핀란드의 교육을 부러워했었다. 우리나라의 입시경쟁에 너무 지쳤기 때문에 경쟁이란 아이들에게 안 좋은 것이라는 이미지가 많았었다. 핀란드의 하향 평준화 교육에서는 모든 학생들이 도태되지 않고 함께 가는 것을 지향한다. 경쟁에서 뒤쳐지는 좌절감을 맞보지 않는 것이 최선의 교육이라고 생각했었다. 니체는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힘을 추구하고 자신을 강화하고 고양시키려 하기 때문에 세계에서의 투쟁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네 가지 훌륭한 태도 - 우리 자신과 친구에게는 정직하게, 적에게는 용감하게, 피정복자에게는 관대하고, 그리고 언제나 예의바르게, 이것이 우리가 따라가야 할 네 가지 주요한 미덕들이다."                 -본문 104쪽

"그리스도교가 인간들의 자연스러운 열정인 성욕이나 호승심, 소유욕, 지배욕, 복수심 등을 승화시키지 않고 악으로 단죄하면서 거세하려고 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러한 열정들은 삶의 본질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들을 뿌리 뽑으려는 조치는 결국 삶을 근절하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본문 112쪽

"경쟁과 투쟁을 제거하려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바람직한 형태를 갖도록 승화시켜야 하고, 우리 자신부터 바람직한 방식으로 경쟁과 투쟁을 해야 할 것입니다. 최소한 자신과 대등한 사람과 투쟁해야 하지 비겁하게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손쉽게 짓누르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본문 115쪽


다섯 번째 질문: "신을 믿지 않으면 불행해지는 걸까?"
-당신을 위한 신은 어디에도 없다.
니체가 한 말 중에 가장 유명한 말은 '신은 죽었다' 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교가 갖는 영향력이 중세에 비해 비약적으로 상당히 많이 줄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성경은 상징과 비유로 가득하다. 예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십자가에 자신이 못박히면서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그리스도교는 자신의 내적 평안과 평화를 지향하고 힘과 쾌락을 죄악시하며 끊임없이 회개하도록 만드는 종교이다. 초인을 강조한 니체에게 그리스도교적 신화는 인간을 약화하고 병들게 만든다.

"종교란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고 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하며, 인간을 성숙시키고 발전시키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입니다."            -본문 137쪽

"지혜는 현실에서 영악하게 자신의 이익을 챙길 수 있는 지혜가 아니라 우리 삶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하면서 정말로 중요한 것에 자신을 바칠 줄 아는 지혜입니다."                       -본문 143쪽

"니체는 그리스도교가 믿는 신이나 불교가 숭배하는 부처를 거세된 신이자 여성화된 신으로 여깁니다. 그는 그러한 이상을 초인에게서 찾았고 모든 사람이 고난과 고통을 겪을 때 인격신에 의존하기보다는 강한 정신력과 생명력을 지닌 초인이 되어 어떠한 고난과 고통도 혼연히 받아들이면서 현실을 긍정하고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기를 바랐습니다."             -본문 149쪽

"이 유성에 살고 있는 온갖 주민들 가운데서도 내게는 수목들이야말로 가장 고귀한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확실히 가장 완벽한 균형감을 표명하고 있다. 그들은 그들을 낳아준 대지 속으로 더욱 깊이깊이 빠져 들어가는 저들의 뿌리를 포기하지 않고서도 끊임없이 위를 향해 뻗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본문 156쪽



여섯 번째 질문: "신념은 꼭 필요한 걸까?"
- 신념은 삶을 짓누르는 짐이다.

"위대한 인간은 필연적으로 모든 일에 회의를 품는 사람이다. 신념에 가득 찬 사람은 필연적으로 나약한 인간인 것이다."            -본문 158쪽

"신앙을 가진 인간, 모든 종류의 '믿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의존적인 인간이며 자기 자신을 목적으로 정립할 수 없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목적을 정립할 수 없는 사람인 것이다. '신앙인'이란 자기 자신에게 속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수단이 될 수 있을 뿐이고 사용되어야 하며, 자기를 사용하고 버릴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그의 본능은 자기소멸의 도덕에 최고의 명예를 부여한다. 모든 것이 그에게 자기를 소멸시키도록 설득한다. 확신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게 만든다."              -본문 168쪽

 사람들은 인생에서 신념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일제 강점기에 독립 투사들의 확고한 신념들은 모진 고문과 탄압에도 꺾이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남겼다. 그런 역사가 있는  우리는 신념은 한 사람의 생명을 넘어설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념이 없는 사람은 주체적으로 자신의 뜻을 세우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이리저리 휘둘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니체는 여기서 신념에 대한 보이지 않는 부작용에 대해 경고한다.

"어떤 독단적인 확신에 의존할 때 우리는 확고한 삶의 의미와 방향을 갖게 되고 이와 함께 살아갈 힘을 얻지만, 그 대가로 다양한 확신들을 자유롭게 비교할 수 있는 사고의 폭과 주체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본문 170쪽

"확신은 확신에 사로잡힌 인간을 지탱해주는 기둥이다. 여러가지 사물들을 보지 않는다는 것, 어떤 점에서도 공평하지 않다는 것, 철저하게 편하적인 입장을 취한다는 것, 모든 가치를 하나의 엄격하고 필연적인 관점에서 본다는 것-이것만이 확신에 사로잡힌 인간이 존속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그러나 그 때문에 그는 진실한 인간과 진리에 반대하고 그것에 적대하는 자가 된다."                  -본문 175쪽

"어떤 독단적인 이념을 철저하게 신봉하는 사람은 진리 대신 삶의 위안을 택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만이 자신의 주체적인 사고능력을 믿는, 진정으로 강한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 176쪽


일곱 번째 질문: "왜 인생이 자꾸만 허무하게 느껴질까?"
-예술은 삶의 위대한 자극제다.
 진화론적으로 인류의 탄생을 설명하면 인간들의 삶이 단순하게 자신의 종족보존을 위해 온갖 고생을 하다가 죽어가는 것 외에는 아무런 목적도 의미도 없다. 따라서 이 이론에 빠지면 허무주의, 염세주의로 귀결된다. 니체에 따르면 근대과학은 우리에게 단지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삶을 사는 이유는 장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충만하게 사는 것이다. 니체는 이 충만함을 삶에 부여하는 것이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라고 본다. 사물을 아름답게 완전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내가 자신의 내적인 힘으로 사물을 바라보며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예술은 자기 자신을 반영한다. 인간이 아름다운 것을 경탄하고 숭배하며 바라 보는 것은 그것을 바라보며 즐기는 완전한 존재로서의 자기 자신을 경탄하고 숭배하는 것이다.

"삶의 예술가란 매 순간 도취라는 고양된 기분 속에서 삶과 세계를 아름답고 충만한 것으로 경험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니체는 생을 긍정할 수 있는 길을 궁극적으로 예술에서 발견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그 이전에 우리 각자가 예술가적인 정신 상태로 삶을 사는 데서 찾습니다."         -본문 200쪽


여덞 번째 질문:"죽는다는 것은 두렵기만 한 일일까?"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자살율 1위라는 불명예를 차지하고 있다. 아마 자살을 생각해 본 사람은 이보다 더 많을 것이다. 아직 실행에 옮기지 못했을 뿐. 삶이 고난의 연속이고 고통스러울 때 우리는 최후의 피난처로 죽음을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사람들이 죽음을 생각하고 그것을 실행해 옮기는 것은 아니다. 까짓거 죽는 셈 치고 덤벼보자고 한 사람들이 오히려 자신의 성숙과 강화를 위한 계기를 맞이하기도 한다. 우리는 삶의 고통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가지고 대하기 보다는 '뭐 그런 것 가지고 그러냐. 너는 스스로 일어설 수 있어.'라고 채찍질 하는 편이 그 사람을 훨씬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아이를 성장시킬 때에도 아이가 막 뛰어오다가 넘어지면 바로 일으켜 세워주지 않는 것이 좋다. 아이는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울 수도 있다. 그 때 부모가 '괜찮아. 씩씩하게 일어나렴. 잘했다.'라고 이야기하면 아이는 금세 평정을 되찾고 자신의 힘으로 일어서게 된다.
 니체는 죽음을 수동적인 받아들이는 것보다 어느 누구의 의해서가 아닌 주체적으로 죽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홉 번째 질문: "나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너만의 꽃을 피워라
우리 사회는 너무 획일화된 사회, 획일화된 교육, 획일화된 생각들로 가득차 있다.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 가족 중심의 문화인지라 다른 사람의 말과 생각, 행동에 좌지우지 되는 것이 많다. 그렇기에 나답게 사는 것, 나다운 것을 어른이 되어서도 알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기에 어디가 좋다하면 그것으로 사람들이 몰리고 이것이 나쁘다고 하면 여론의 마녀사냥이 시작된다.

"니체는 '그대 자신이 되어라'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성격과 적성 그리고 환경 등을 잘 고려하면서 그것을 긍정적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우리가 우리 자신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사는 주체성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남의 평가에 민감한 것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노예근성 때문이라고 니체'는 말합니다."        -본문 235, 236쪽

"사나이가 되어라! 그리하여 나를 따르지 말고 너 자신을 따르라! 너 자신을! 우리의 삶도 우리 스스로에 대해 권리를 지녀야 마땅하다! 우리도 또한 자유롭고 두려움 없이, 순진무구한 자기 안에서 자기 자신으로부터 성장하고 꽃을 피워야 한다."              -본문 244쪽


열 번째 질문 :"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자신의 성격에 스타일을 부여하라
니체는 자기 자신이 되어라라고 말하면서 자기를 극복하라고 말한다. 여기서 전자의 자기자신이란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형이 아닌 자신의 성격, 소질을 승화시킨 참된 자신을 말하는 것이고 후자의 자기는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형에 부합하려는 거짓된 자기를 가리킨다. 자기를 극복하려면 자기와의 전쟁이 필요하다.

"내가 너희에게 권하는 것은 평화가 아니라 승리다. 훌륭한 명분은 전쟁까지도 신성한 것으로 만든다고 너희는 말하려는가? 그러나 나는 말한다. 훌륭한 전쟁은 모든 명분을 신성한 것으로 만든다. (중략) 전쟁을 일으키는 삶을 살도록 하라! 오래 연명하는 삶에 무슨 가치가 있는가?"                 -본문 250쪽

"'모든 위대한 것과 충일한 힘은 끊임없는 자기극복을 통해서 형성된다'고 말한다. 더불어 그는 인간이 진실로 원하는 것은 자신이 무엇인가를 성취한 위대한 인간이 되고 충일한 힘을 갖는 것이지 본능과 욕망을 무분별하게 멋대로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고도 말합니다." 
                     -본문 252쪽

 니체는 신체를 엄격하게 단련하고 훈육해야 우리의 영혼이 강해지고 충만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모든 좋은 것은 본능이다. 건강한 본능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가볍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 보는 것을 배우는 것은 눈으로 평정을 배우는 것이다. 우리가 보는 법을 배우게 되면 사람들은 대체로 서두르지 않게 되고 쉽게 믿지 않게 되고 낯설고 새로운 것을 대할 때 평정으로 대할 수 있다. 그 다음으로 생각하고 쓰는 법인데 글을 쓸 때에 사물들이 가지는 섬세한 뉘앙스를 느끼면서 그것을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바로 예전의 우리 선비들이 그랬던 것처럼.

 니체가 88만원 세대인 요즘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외칠 것 같다.

"돈에 연연하지 말고 온 열정을 다 바쳐 그대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그리고 어떠한 곤경이 와도 그것을 자기 성장의 발판으로 삼으면서 흔쾌하게 받아들이라고. 그리하여 니체 자신이 하는 말을 건네는 공동체에 속하여 이 세계를 변혁하라고."       -에필로그 265쪽

니체가 말하는 저것들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내면의 힘을 강하게 키워야 한다. 어떤 말이나 기대에도 흔들림 없이 꿋꿋하게 가기위해서는 말이다.

"초인이란 고난을 견디는 것에 지치지 않고 고난을 사랑하는 사람이며 고난에게 얼마든지 다시 찾아 올 것을 촉구하는 사람이다."

니체가 이렇게 고귀한 사람이었구나를 새삼느꼈다. 저자는 우리가 삶에서 직면하는 철학적인 문제들을 너무나도 이해가 잘 되도록 니체의 사상을 잘 녹여내었다. 실타래처럼 엉켜보였던 내 삶도 니체의 말속에서 매듭을 잘 찾아서 풀려나가는 느낌이었다. 모든 단어, 문장들을 밑줄치고 싶을만큼 주옥같은 말들이었다. 저자는 니체를 깊이있게 연구하고 탐구해서 우리의 인생살이의 고단함을 니체의 주옥같은 명언과 냉철한 발언으로 치환해주었다.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이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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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의 미래 - 4차 산업혁명이 바꿀 삶과 산업의 풍경
이진오 지음 / 틈새책방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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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의 미래        -이진오<틈새책방>

2018112.6  ****



 2019 세계미래보고서를 읽고 충격과 경탄을 금치 못한 나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사회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9 세계미래보고서'는 책 제목에서와 같이 이런 이런 현상과 기술혁신들을 나열하고 보고하는 형식이라 전체적인 흐름이 보인다. 그 흐름들 속에서 우리 생활은 어떻게 달라지고 그 영향은 어떤 산업에 어떻게 미칠지가 궁금했다. '밥벌이의 미래'는 그 속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고 그 내막까지 통찰하려고 시도한다.
 차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자율주행,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블록체인 순이다.



 저 5가지 기술혁신을 빼놓고 미래를 논할 수가 없다.
 저자는 먼저 자율주행차의 실용성과 상용화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한다. 자율주행차가 앞으로 안전성만 확보된다면 우리는 이제 도로에서 자율주행차만 다니게 될 것이다. 자율주행차가 상용화 되기 위한 첫번째 조건은 무엇보다도 '안전'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실수로 사고를 낸 확률보다 더 낮은 확률이라면 우리는 의심의 여지없이 자율주행차를 선택할 것이다. 그 선두에는 공공의 목적으로 먼저 시행될 것이다. 버스, 택시 그리고 뒤를 이어 화물차 등등. 이제 차를 운전하는 직업은 사라질 것이다. 또한 자율주행차는 스스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굳이 차를 소유할 필요가 없다. 주차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차에 들어가는 유지비, 보험비를 내지 않아도 된다. 택시처럼 자율주행차를 부르기만 하면 어디든 데려다 주고 언제든 우리가 필요하면 사용할 수 있다. 주차공간이 없어서 몇바퀴를 돌아다니며 주차공간을 찾을 시간과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로 인해 자동차보험을 드는 개인은 현저하게 줄어들어 나중에는 거의 찾기가 힘들것이다. 그렇다면 보험은 누가 들 것인가? 바로 자율주행차를 제조하는 회사가 보험사의 고객이 될 것이다. 만약 자율주행차가 사고를 냈다면 운전자가 없기 때문에 그것을 책임질 주체가 필요하다. 책임자는 제조회사 또는 자율주행 프로그래머가 될 것이다.
 두번째 인공지능.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유명한 인공지능은 바둑에서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일 것이다. 알파고는 수십만번의 대결을 통해서 얻은 수백만개의 기보를 사용해서 학습을 했다. 그리고 인간을 이겼다. 특정 분야에서만 활동하는 인공지능을 약인공지능이라 하고 모든 분야를 아우르며 판단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강인공지능이라 한다. 여기서는 약인공지능만을 다룰 것이다. 강인공지능은 아직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학습하는 조건들이 있다. 데이터가 디지털화될 수 있어야 하며, 명확한 답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데이터가 풍부해야 한다. 그 조건에 잘 맞는 분야의 직업이 바로 의사이다. 그렇다면 이제 미래에 의사는 없어질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비행기는 자동항법장치로 움직인다. 그렇기 때문에 조종사가 직접 운전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종사 2명이 타는 이유가 무엇일까? 긴급하거나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시에 자동기계가 할 수 없는 상황인식, 판단, 통찰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의사들도 인공지능이 먼저 환자에 대해 진단을 내리면 그것을 판단하고 모든 정보를 아우르며 통찰할 수 있고 결정하는 책임자의 역할로 남을 것이다. 환자를 문진하고, 그들에게 환자의 상태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고 따뜻하게 그들을 위로하는 역할 또한 의사가 할 일이 될 것이다.

 '모라벡의 역설'이라는 말이 있다. 한스 모라벡이라는 로봇과 인공지능 전문가가 언급한 것으로 컴퓨터에게 어려운 퀴즈를 풀게 하고 체스를 가르치기는 쉽지만 어린아이 수준의 통찰력을 갖게 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흔히들 인간들에게 쉬운 것은 컴퓨터에게 어렸고, 인간에게 어려운 것은 컴퓨터에게 쉽다고 표현한다.....(중략)....실제로 인공지능 기술은 다섯 살 어린이의 공간지각력, 조정력 등을 따라 잡는 게 어렵다. 그런데 바둑이나 계산 같은 복잡한 이들을 정복하는 데에는 거침없다. 발달된 인공지능에게 사실 인간의 고차원적인 능력들은 얄팍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이런 분야부터 기계에게 자리를 내줄 가능성이 크다. 진정한 역설이다."     -본문 138~139쪽

 인공지능이라는 기술에 집중하다 보면 우리가 놓치고 가는 것들이 있다. 바로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이다. 수요가 있어야 공급이 발생하고 공급이 발생하게 되어야 비로소 기술의 발전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즉 그것이 돈이 될 거라고 생각이 드는 투자자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시장이 활성화되면 자연스럽게 우리는 기술의 혁신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의사도 마찬가지이다. 인공지능 의사가 확대되어 우리가 가정마다 인공지능 주치의를 두게 되면 병에 대한 조기발견을 할 수도 있고 그것에 따라 수명은 더욱 더 연장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가지 현상이 일어나면 그 주변에 영향을 받는 모든 것들 또한 여러가지 형태로 변형, 변화될 것이다. 우리는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 본질에 대한 통찰을 게으르지 않게 해야한다.
 세번째로 빅데이터이다. 이것은 시장의 마케팅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람들이 네트워크 상에서 하는 검색이나 글 등은 다 기록되고 남는다. 그 데이터는 방대하고 엄청난 양이다. 그 빅데이터를 모아서 전혀 상관 없을 거 같은 것들의 상관 관계를 의미있게 분석하는 것이다. 빅데이터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현대판 노다지이다. 예를 들면 기저귀가 많이 팔리면 맥주 또한 매출이 상승하였다. 이들의 상관관계는 과연 무엇일까? 분석 결과, 기저귀를 사러간 아빠들이 기저귀를 사면서 이왕 마트까지 왔으니 맥주라도 사 가야겠다는 심리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이었다. 빅데이터를 의미있게 잘 분석해서 활용하면 그 어떤광고와 마케팅을 능가할 것이다. 빅데이터는 데이터의 양이 어마어마하게 방대해야지만 그것들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기에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같은 큰 플랫폼을 형성한 대기업들만이 빅데이터를 독점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정보 독점현상은 과연 어떤 사회적인 부작용을 낳을까? 우리는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따져보아야한다.
 네번째로 사물인터넷이다. 사물인터넷이란 집을 예로 들면, 음성으로 전등을 켜고 텔레비전을 켤 수 있고 냉, 난방을 적절하게 하여 최적의 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 굳이 사람이 스스로 하지 않아도 사물들이 알아서 조절하는 것을 사물인터넷이라고 한다. 이 기술은 사실 충분히 발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전이 더디다. 이것도 우리는 잘 따져서 그 이유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기술이 발전하면 무조건 그것이 현실에 반영된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누군가 구매를 해야하고 시장이 형성되고 돈이 될 때 그것은 발전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이득이 된다고 생각할 때 소비를 한다. 소비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을 통해 큰 행복을 얻을 때, 그리고 큰 괴로움을 덜어낼 때 기꺼이 비용을 지불한다.
 제조업의 이상향은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 빅데이터로 스마트 팩토리를 만드는 것이다. 공장에서 사람은 이제 일자리를 잃게 된다. 고객이 주문하면 사물인터넷끼리 주문을 공유하고 인공지능 로봇에 의해 제조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것은 고스란히 빅데이터로 남아서 향후 고객들의 소비성향이나 취향에 맞는 다른 제품에 적용할 수 있다. 이 공장에는 결코 재고가 남지 않는다. 사물인터넷이 공공영역으로 퍼지면 스마트도시를 형성하게 된다. 신호등이 똑똑해져서 도로상황에 맞춰 신호를 주어 원활한 교통정리를 한다. 더 나아가 전력망에 첨단 정보 통신 기술을 결합시켜서 효율을 극대화한 것이 스마트 그리드이다. 전기를 안쓰면 자동적으로 절전이 되고 전력을 모아서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쓸 수도 있다. 실시간으로 전기사용량이나 금액을 표시하면 사람들은 전기를 더욱 더 절약하게 된다. 전기소비율이 적은 시간대를 알게되면 그 시간에 전기를 싸게 사용할 수 있다. 전기의 흐름을 알게되어 그 흐름속에서 적절하게 배분하여 사용할 수 있으니 지금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경제적일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려면 전력망을 구축해야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돈이 너무 많이 드는 작업이라 실행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미래의 어디쯤에서는 실행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마지막으로 블록체인. 나에게는 아직까지 어려운 개념이다. 내가 이해한 블록체인은 개개인의 새로운 정보를 블록이라는 단위로 저장해서 체인처럼 엮어 네크워크상에 복사된 블록체인 원장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해킹을 할 수가 없다. 한 사람의 컴퓨터를 해킹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컴퓨터를 다 해킹해야 하기때문에 사실상 해킹이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보안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서로 엮여있기에 잘못된 오류의 수정이나 삭제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가상화폐가 블록체인으로 안전하게 거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기술이 훌륭하고 능력이 막강할수록 파급 효과가 크다.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빅데이터 등 여태 말해온 기술들의 능력은 인간의 순진한 상상을 초월하기 시작했다. 능력이 뛰어난 것을 깨달아 갈수록 조심해야 할 필요를 느껴야 한다. 하나의 멋진 응용을 상상할 때마다 그것이 어떤 변화를 몰고 올지 예상해야 한다. 실제로 기술이 적용될 때에는 사람들이 느끼는 변화를 더욱 세심히 관찰하여야 한다. 물론 기술이 가져다 준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능동적인 사회 시스템 역시 필요하다.                    -본문 331쪽

 우리는 미래를 이야기할 때 인공지능, 자율주행, 빅데이터, 블록체인, 사물인터넷을 언급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그리고 그것이 우리 생활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우리는 그런 변화와 혁신 속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런 생각들을 끊임없이 하게끔 한 책이었다. 미래를 살아가는 우리가 꼭 읽어봐야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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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로 산다는 것 - 우리 시대 작가 17인이 말하는 나의 삶 나의 글
김훈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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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로 산다는 것 (우리 시대 작가 17인이 말하는 나의 삶 나의 글)      -김훈 외<문학사상>
2018.11.30  ****



 소설가들은 어떻게 소설을 쓰는거지? 늘 이야기를 짓는 사람들이 부러웠고 그들을 동경해왔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해내는 것이다. 창조라는 것은 뼈와 살을 깎는 고통이라고 한다. 그런 고통을 이겨낸 사람만이 진정한 소설가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고 그것이 진정한 창조라고 믿어왔다. 그렇다면 소설가들은 어떻게 창작을 하는 것인가? 방법론이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17인의 소설가들이 저마다 자신만의 창작론에 대해 말한다. 내가 보기에 남자와 여자의 생물학적인 차이가 글에도 잘 나타나 있었다. 남자는 대체적으로 이성에 근거하여 논리를 강조하며 썼고 여자들은 특유의 감성을 예리한 관찰력으로 잘 묘사했다. 남성들은 이성에 근거한 감성을 주로 썼는데 강인하고 외로운 감성이 느껴지는 반면, 여성의 글에서는 보송보송하고 아기자기한 따뜻한 감성들이 느껴졌다. 가수들이 저마다의 음색이 다르듯이 소설가들도 저마다의 문체가 확연히 드러났다. 그런 것들이 자기 고유의 소설을 지켜주는 무기가 아닌 가 싶다. 소설가 성의 한글 자음 순으로 역어졌다.

# 작가, 화자, 주인공  -김경욱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일본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와 미시로 유키오를 내세워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다자이 오사무는 화자 즉 작가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자기 고백의 사소설을 썼다. 주인공이 자신이기에 누구보다도 작가는 주인공에 대해 너무 잘 안다. 이런 자기 고백 소설은 누구나가 작가가 될 수 있다.
"작가는 화자와 주인공의 타자성을 선선히 받아들여야 한다. 타자성을 획득할 때 비로소 화자와 주인공은 주어진 내면이 아닌 창조된 내면을 갖게 될 것이다. 이 때 작가는 비로소 타자가 된 화자, 주인공과 대화할 수 있을 것이며....(중략)....대화를 종결시키는 자는 작가도 화자도 주인공도 아닌 독자가 될 것이며, 왜소해진 문학에 풍성한 육체를 부여하는 것은 '경험의 잉여'도 '식견의 잉여'도 아닌 '해석의 잉여'가 될 것이다."    -본문 24~25쪽
 요즘 서점에 가보면 예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낸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하는 사소설을 쓰면서 인기를 얻자 우후죽순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이에 김경욱 소설가는 그것에 대한 우려를 이 글에서 쓰고자 한 것 같다. 소설이란 당연히 작가가 화자와 주인공을 타자화했을 때 궁극의 의미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 여름의 풍속  - 김애란
 그녀는 7~8년 전 자신이 산 '언어학사'라는 책이 어떻게 자신의 손으로 들어왔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초여름에 학교 휴게실에 늘 있던 고동색 3인 소파에 앉아 있다가 까칠한 선배에게 헌책방에 가려면 어떻게 가야하는지 물어보았다. 까칠한 선배의 도움을 받아 헌책방 나들이를 그와 함께 동행하게 된다. 그곳에서 늘 마음속에서는 이 책은 꼭 읽어봐야하는 책이라는 마음의 의무감으로 여러 권의 책을 구입하고 집으로 온다. 책을 열어보자 그곳에 끼어있던 수강신청서가 눈에 띈다. 남자것 하나, 여자 것 하나. 김애란 작가는 수강신청서 하나로 여러가지 상상의 나래를 펴고 나름 논리적으로 그둘의 관계와 성적 등을 추측해본다. 그리고 궁금증에 남자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건다. 그녀의 글은 인조가죽 소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내일부터 정말 추워질 거라는 말에 이런 여름은 다시는 오지 않을 거 같은 예감에 코 끝이 시큰해진다. 오랜 친구는 그녀에게 그런 느낌은 앞으로도 마흔여덟 번은 더 있을 테니 걱정말라고 위로한다. "나는 내가 쓸 다른 이야기들에 대해 생각했다. 소설 바깥의 이야기와 입장들에 대해서도. 그러니 서둘러, 너무 많은 것을 회고하지는 않기로 한다. 여름과 작별하는 일은 마흔 여덟 번도 더 남아 있을 테니까. 세상에는 내가 하루 한 번씩 앉아도 전부 앉아보지 못할 만큼 많은 소파들이 있을 테니까 말이다."     -본문 41쪽
 이야기의 소재가 이제 떨어지면 어떡하지? 하는 조바심이 느껴진다. 이런 감성과 느낌들이 이제는 더는 내 안에서 풍성해지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느껴진다. 더 늦기전에 이런 관찰과 느낌과 감성을 기록해야 되는데...하는 조급함도 느껴진다. 관찰과 감성이 그녀가 말하고 싶은 소설의 창작론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 썬더버드, 만투스, 바스, 끌로드 샬  -김연수
 "하나의 소설을 시작하기 전에 노래를 찾아헤매는 습관은 오래됐다. 자료를 다 들여다보고 나면 서사 구조는 대부분 완성된다. 그때 내가 찾아헤매는 것은 디테일이다. 디테일은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을 설명한다. 자료로는 디테일을 만들 수 없다. 디테일은 오직 나의 내면을 통해 주인공의 내면을 추측할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중략).... 소설가라고 그 모든 일들을 다 경험할 수는 없다. 그때 내게는 수많은 음악들이 있다....(중략)...음악은 내 마음속에 감춰졌던 그 모든 감정들을 끌어내므로."     -본문 49~50쪽
# 북경 골목에서 퍼즐을 맞추다  -김인숙
 "나는 어쩌다 떠나지만, 그것은 무엇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곳에 머물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삶을 살아가는 나의 방식이거니와 글을 쓰는 나의 방식이기도 하다."    -본문 57쪽
"거기에 그냥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거기에 살았을 것 같은 사람이 보이고, 거기에 살았을 거 같은 사람이 거기에서 했을 거 같은 일들이 보일 거라고 믿는다. '믿는다'라는 말의 과장법을 이해하시라. 달리 방법이 없으니 믿는 척이라도 하지 않을 수 없다."      -본문 58쪽
 소설가들은 관찰력과 상상력이 셜록 홈즈 못지 않아야겠다. 이미 일어난 과거의 일들을 마치 내가 그 곳에 있었던 양 상상해보아야 이야기를 만들 수 있으니 말이다. 자료에도 한계가 있다. 마치 퍼즐을 맞추듯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단서들을 찾아서 드러나 있지 않은 주인공의 내면을 꿰뚫어보아야 한다.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조각들이 어디에 위치해야 되는지 알 수 없지만 게으르다는 것은 소설가로서 기다림을 견딜 수 있게 하는 좋은 자질이다. 그래서 그녀는 아직은 기다릴 수 있다.
# 소설가 십 년차의 풍월   -김종광
"소설가는 제도적으로 정년퇴직도 명퇴도 없어 최고의 평생직장처럼 보이지만, 빛 좋은 개살구여서, 절대 다수가 자진 은퇴 형식으로 일찌감치 조기 퇴출된다.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소설에 발전이 없어서, 독자도 출판사도 알아주지 않아서, 스스로 쓰지를 못해-따지고 보면 다 같은 말이겠지만- 등등 이유는 많을 테다."             -본문 67쪽
 독자가 만나는 소설가들은 대개 소설이 성공적이어서 유명한 소설가의 반열에 오른 작가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을 쓴다는 것이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그리고 오래도록 쓸 수 있다는 장점때문에 사람들이 장및빛 직업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의 글에서 소설가로서 사는 삶이 그리 녹록지만은 않음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다. 주목받지 못한 소설가가 어떻게 소설가로서 명맥을 이어갈 수 있을까. 고뇌하고 절망하지만 그는 다시 한 번 자신을 다독이면서 소설가로서의 각오를 확실히한다.
 
# 강물이나 바람, 노을의 어휘 몇 개  -김 훈
 한국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작가, 김훈. 그가 전하는 창작론은 다소 무겁다. 글 잘쓰기로 유명한 작가가 아직도 자신은 3인칭 주어를 쓰기가 낯설고 무섭다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꽃이 피었다'와 '꽃은 피었다'를 놓고 고민한다.
"언어는 이 세계의 불완전성의 소산일 뿐이다. 그래서 모든 언어는 다른 언어에 의해 부정당해 마땅한 것이고 부정당하기를 거부하는 언어는 이미 언어가 아닐 것이다. 언어에게 소통 기능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부정당하는 운명을 수락하는 그 불완전성 안에 있는 것이 아닐까. 듣는 자가 없다는 시대의 말하기란 말이 아니라 재앙이다. 내가 부릴 수 있는 몇 개의 영세한 어휘들은 사전에서 가져온 것이 아니라 강물이나 바람이나 노을 속에서 얻은 것이다. 얻었다기보다는, 얻었다는 몽상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본문 86쪽
 소설가는 언어에 대해 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 말이 어떻게 해서 나왔는지에 대해 항상 의문을 갖고 자료를 찾아보고 복수명사를 쓸 때에도 그것의 내용과 실체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에 대해서도 깐깐히 따져보아야 한다. 실로 사람의 신경을 예민하게 만들고 집착하게 하는 직업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런 꼼꼼한 덕분에 그의 소설이 더욱 핍진성을 갖는 게 아닐 까 싶다.

#점점점点点点   -박민규
 그의 소설은 언제나 신선하고 재미있다. 어디로 튈 지 모른다. 그의 창작론은 어디로 튈지 모는 그의 소설처럼 생각의 흐름을 따라 자유롭게 풀어낸다. 그의 엉뚱한 생각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그의 글은 아쉽게도 끝이 난다.
"심심하다. 정말 할 일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할 일을 떠올리지 못하다 나는 문득 '소설'을 떠올린다. 맞다 참, 그러고 보니 소설이란 게 있었지. 얼마나 심심했던지 나는 그때부터 부랴부랴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문득 그런 게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도 드는데, 그런 게 없어도 또 다행 아니겠냐고 나는 비로소 생각하는 것이다. 점점점点点点"             -본문 111쪽
 역시 그다운 말이다. 그의 엉뚱발랄 기발한 생각들이 그의 독창적인 소설의 영역을 일구었다고 생각한다. 누구도 하지 않았던 일을 하는 사람으로써 그는 소설가내에서도 유일무이한 존재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어릴 적에 엄마 속을 꽤나 많이 썩였겠구나. 그리고 지금의 내 아들이 속을 좀 썩이더라도 잘 참아내야지 하는 즐거운 각오가 생긴다.
# 어둠 속의 기억들   -서하진
 그녀는 지인의 결혼 이십 오주년 파티에 초대된다. 프랑스 식당에는 다른 열한 쌍의 부부들도 초대되었는데 마침 그녀의 옆에 앉은 아저씨가 말을 걸어온다. 무슨 소설을 썼느냐면서 계속 질문공세다. 카뮈라는 작가가 나오자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교지 편집실에서 갇혀있던 무섭고 막막했던 그 때 그 느낌이 떠오른다. 옴베르토 에코의 소설 이야기에 결혼 초 유학중인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떠나서 타국생활을 했을 때가 떠오른다. 어느 날 남편과 싸워서 밖으로 나왔는데 남편이 문을 열어주지 않고 미안하다는 말조차 꺼내지 않아 자존심이 강해져서 누가 이기나 보자라는 식으로 밖에서 오돌오돌 떨다가 깜빡 잠이 든 일이 떠오른다. 그때 느꼈던 사람에 대한 실망과 자기 존재의 대한 가여움 등등 억울함과 분함이 교차하는 그런 감정들로 가득찼던 일이 말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원칙주의자인 남편, 그가 정해놓은 규정들, 어둠 속에 홀로 남았던 기억들, 그런 것들이 제 소설 쓰는 힘이 아닌가, 싶어지네요."           -본문 125쪽
 일상적으로 느끼는 감정은 흔하디 흔해 기억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인생의 단 한 번 느꼈을 공포나 무서움, 사람에 대한 배심감이나 실망감, 억울함과 분함이라는 감정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세월이 지나서 다 잊혀진 감정인 줄 알았으나 그런 기억들이 새록새록 또 떠오르면 그때 감정이 또 다시 새것처럼 나타난다. 여러가지 감정들은 소설의 주인공들을 더욱 더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그들이 실제 존재하는 것처럼(핍진성) 느껴진다.

# 은둔과 무의식의 영역에 깃든 다섯 별 때문에    -심윤경
 그녀는 내가 왜 소설가가 되었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니 이 모든 알 수 없는 일들이 사십 년 전 어느 여름날의 아침, 얄구제도 은둔과 무의식의 영역에 숨어서 수상쩍게 수군거리던 다섯 별들 때문이라고 생각해 두는 것은 어떨까? 아마추어 점성술사에게 결코 호락호락하게 속내를 보이지 않는, 은근하면서도 집요한 그 별들의 조홧속 때문이라고 말이다."           -본문 141쪽

# 만약에? 왜? 과연?      -윤성희
 " 토크쇼 진행자가 스티븐 킹에게 어떻게 글을 쓰냐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한 번에 한 단어씩 쓰죠.'"           -본문 144쪽
 그녀는 소설을 쓸 때 컴퓨터에 쪽지를 엄청 띄운다. 주로 느낌표와 물음표가 있는 문장이 대부분이다.
"소설가들에게는 소설을 쓸 때 자주 던지는 질문들이 필요하다. 그 질문들이 소설의 질을 결정할 때가 있으니까...(중략)....질문 자체가 곧바로 철학이 되는 그런 질문들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중략)....적어도 이런 패턴의 질문들이 소중하다는 것ㅇ르 알아차렸으니까. '만약에~? 왜~? 과연~?'."              -본문 150쪽
"작가로서 양궁선수가 되고 싶다. 하루에 화살 백 개씩을 쏘아대는 선수. 그렇게 연습을 해대지만 막상 시합에 나가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시위를 당겨보는 것처럼 당황해하는 선수. 화살도 한 번에 하나씩밖에 쏠 수 없다.....(중략)....작가는 세상에 떠도는 이야기를 귀담아들을 책임이 있다. 활로 그 이야기들을 맞혀 과녁에 꿰어 두어야 하고 단어로 그 이야기들을 엮어 묶어두어야 한다. 그러면 독자들이 그 이야기들을 다시 세상 밖으로 떠돌게 할 것이다. 잊지 말자! 써야 할 많은 이야기들이 허공에 떠다니고 있다는 것을."            -본문 154쪽

# 가장 아릅다고 행복한, 그러나 팔자에 없는    -윤영수
"다른 이에게 자신의 괴로움을 털어놓는다 해서 소설 쓰기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음을 선배도 나도 너무나 잘 안다. 어차피 혼자만의 작업이다. 혼자만의 체력으로 혼자만의 역기를 들었다가 얌전히 다치지 않게 내려놓는 것만이 작가의 할 일인 것이다."                  -본문 170쪽

# 삼백년 전 소년이 그려낸 '은비령'     -이순원
"저는 소설을 글로 짓는 집이라고 생각합니다. 집의 소재, 집을 짓는 재료에 따라서 초가집을 짓는 것과 기와집을 짓는 것과 양옥을 짓는 것, 또 아파트를 짓는 것들은 저마다 공법이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나무로 짓는 집과 천막으로 짓는 집과 돌로 짓는 집들이 다 어떻게 같은 색깔로 지을 수 있을까? 그리고 작품마다 이것은 이순원 작품이다 하고 표가 딱딱 나야만 할까?"                  -본문 182쪽

# 가만히 말을 걸어보다   -이혜경
"글을 쓸 때, 나름대로 구성을 하고 시작하긴 하지만, 쓰다 보면 삼천포로 빠질 때가 많다. 조금 쓰다 보면 생각이 다른 길로 갈래를 치며 나아간다. 그럼 그 길을 따라가본다. 그러다가 다시 샛길이 나타난다. 그 무수한 샛길들 속에서 해매기 일쑤다...(중략)...이거다 싶은 순간이 온다. 그동안 헤메던 길들 사이에서 내가 가야 할 길이 선명하게 보이는 순간이. 그 순간의 기쁨은, 마약을 해본 적은 없지만 거의 그것과 비슷하리라는 짐작이 들 정도다."        -본문 191쪽
"책을 비교적 성실하게 읽는 시기엔 숙련된 농부가 심은 모처럼 뿌리를 내린다."    -본문 199쪽
"책을 읽다가 내 마음의 현을 오래, 그리고 깊게 퉁긴 이들이 서로 교분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 때의 기쁨은, 아름다운 문장을 만났을 때의 기쁨보다 한결 천진한 데가 있다."      -본문 199쪽

# 율려와 은유    -전경린
 전남대 교수로 재직해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창작론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들이 많으셨을 거 같다. 그녀의 제자들에게 수없이 강조했던 것들이리라. 소설의 본질과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방법론의 조화를 잘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해하기 쉽고 어렵지 않게 설명하고 있어 눈에 쏙쏙 잘 들어왔다.
"더 중요한 것은 생각을 끌고 가는 의문과 유혹과 몰입이다. 사실 창작방법이나 플롯, 주제의식 같은 것은 분명히 필요하지만, 그것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소설이 쓰이는 과정 속에서 발휘되는 잠재적 역량이다. 알아야 하고 갈고 닦아야 하지만 뱃속에 삼켜야 하는 능력인 것이다."                    -본문 208쪽
"말하자면 소설의 힘은 이야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를 쓰는 과정의 현재성에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삶이 그렇듯 소설 역시 발밑의 심연을 두려워하며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과정 자체의 아름다움인 것이다. 실패할 수도 있고 중단할 수도 있고 완성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쓰는 것이다. 두려워하면서도 내 의도를 지나가, 잠재되어 있었던 가능성의 끝까지 가야 한다. 이렇게 해서 겨우 초고가 생겨난다."                    -본문 209쪽

# 끝없는 이야기를 위한 주문 거울아, 거울아      -하성란
"나는 본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본문 217쪽
 그녀는 어릴 적에 <세계 어린이 명화>에서 본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 대해 설명해준다. 거울을 통해 새로운 수수께끼가 풀린다. 그것은 결국 거울에 비친 왕과 왕비의 초상화라는것을.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고 넘어가는 모든 사람들을 주목하고 관찰하고 묘사하고 설명한다. 빛이 들어오는 각을 통해 그 시간을 추정한다. 달리도 자신의 뮤즈 갈라의 초상화를 여러가지 거울을 통해서 그렸다. 비교적 현실에 가장 가깝게 비춰주는 거울이 주는 이야기. 그녀는 그림들이 하는 말을 듣고 이야기들을 쌓아간다. 그림을 보고 풍경을 보고 사물을 본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에게 해줄 이야기들을 기다린다. 그리하여 처음에 그녀가 썼던 나는 본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가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 내가 돌아온 곳     -한창훈
"물소리를 꿈꾸기에 최적의 장소는 사막입지요. 그러면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는 더 이상 묻지 않는다. 하긴, 바다를 배경으로 한 소설들은 주로 내륙에서 썼다. 갈증은 무언가를 하게 만드는 법이라서 그런가."          -본문 239쪽 
     
# 한 줄기 바람처럼, 천 개의 고원처럼    -함정임
"미리 틀(플롯)을 정해놓고, 그 길로 똑바로 나아가는 창작 방식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누구도 끝을 알 수 없는, 한 편의 미지의 소설을 향해 길을 떠나는, 떠나는 중에 하나의 흐름이 이루어지는 것을 나는 최고의 미덕으로 여긴다."              -본문 258쪽



 결국 소설가는 자신의 감성과 언어로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야기를 창조해야 한다. 작법, 창작론 같은 것은 허구다. 사람들의 성격과 얼굴이 다르듯이 이야기 속의 인물들이 진짜 현실속에서 살아있는 듯한 핍진성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감성과 언어로 현실의 허공에서 날아다니는 이야기들을 잘 관찰하여 활을 쏘아서 잘 꿰어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참....말로 하니 쉬운데 과연 이렇게 말처럼 이야기를 창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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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각오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5월
평점 :
품절


소설가의 각오                       -마루야마 겐지<문학동네>
2018.11.27 ***** 



 소설가는 어떤 삶을 살까? 어디서 소설의 영감을 얻는 걸까? 이렇게 재미있고 참신한 이야깃거리들과 영화보다 찬란하고 웅장한 이미지를 어디서부터 가지고 오는 걸까? 요새 글을 쓴다는 것에 관심이 많이 가자 그들이 삶이 궁금해졌다. '소설가의 각오' 라는 제목부터 벌써 묵직함이 느껴진다.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각오를 해야만 하는 걸까?
 마루야마 겐지는 낯선 이름이었다. 일본의 유명한 작가들의 이름은 얼추 들어봤는데 이 작가의 이름은 굉장히 낯설다. 그는 순수문학을 하는 작가이다. 일본의 사소설과 가벼운 소설들을 경멸한다. 그의 말투는 자못 공격적이고 날카로운 칼처럼 매섭다.
 글은 그 사람의 성격, 인성을 반영한다. 그의 글에서 나는 왠지 꼬장꼬장한 괴짜 할아버지가 열을 올리며 글을 쓰는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의 주관과 삶의 가치관이 확고하여 어떠한 틈도 허락하지 않는 정직하게 순수하게 한 우물만 파는 사람말이다.
 그의 소설가 데뷔는 자못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평소에 책 한권 읽지 않다가 국어교사인 아버지의 서재에서 우연히 발견한 '백경'이란 단 한 권의 책을 읽고 삶이 바뀌었다. 그것의 영향으로 배를 타는 선원을 키우는 고등학교로 가서 모스부호로 정보를 전하는 통신을 배웠다. 그 후로 회사 전신과에서 근무하다가 우연히 처음 쓴 소설이 아쿠타카와 상을 수상하였고 그 길로 소설가로 들어섰다. 정말 소설같은 이야기다. 그는 책이라고는 담을 쌓고 살았지만 고등학교 시절 내내 그는 영화에 빠져서 영화를 보고 이렇게 찍었으면 이 부분은 이렇게 바꾸었으면 좋겠다는 나름의 평론을 재미로 하면서 지냈다고 한다. 영화와 소설은 이야기를 만드는 도구는 다르지만 이야기라는 본질은 같다. 그렇기 때문에 고등학교 시절 보았던 영화가 그에게는 소설의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싶다.
 얼떨결에 소설가에 입문한 그는 소설가라는 테두리 밖에서 있다가 갑자기 안에 들어왔기에 아무래도 그 모임에 속해있는 사람들의 부패, 악습이 더 잘 보였던 거 같다. 어줍잖은 글로 선배나 편집자들을 줏대없이 따르고 돈에 눈이 멀어서 진정한 문학을 탐하지 않는 속물들에 질려버린다.
 그는 고등학교를 진학함에 있어서도 자신의 주관을 뚜렷이 세우고 자신의 가치관을 따라 생각하고 생활한다. 절대 자신의 생각과 다른 것에 타협하지 않으며 자신의 정한 원칙과 가치는 칼캍이 지킨다. 그것이 항상 최고 높은 곳에 위치한다. 그 당시 그는 십대였는데 어떻게 저런 가치관을 확고하게 성립할 수 있었을까? 자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 없이는 불가능하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부모와 시대로부터 폭력적인 피를 이어받지 못했다. 포식의 시대와 행복한 가정을 당연시하는 환경에서 자란 탓에 애당초 거역을 모른다.  눈앞의 이익만을 좇아 신나게 놀고 안이한 상냥함을 유일한 안식처로 삼는, 뭐라 말할 수 없이 기분나쁜 인종이 되었다. 조금만 노력하면 수중에 넣을 수 있는, 현실적이라면 너무도 현실적인 꿈밖에 추구하지 않는 여자의 삶 그대로다.                    -본문 142쪽
 한창 젊은 시절에 자신의 온 정열을 바쳐 노력을 하다니, 정말 한심스런 일이다. 이 일에 실패하면 끝장이라면서, 긴장된 나날을 보내는 것은 젊은 사람에게 어울리는 행위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중략) 이 세상이 요지부동인 것처럼 보여도 실은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둠에 지배되고 있음을 알 것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사나이는 변화의 소지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중략) 자신을 옭아매지 않는 한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것이다.                             -본문 155쪽
 제목을 '소설가의 각오'보다는 '젊은이의 각오'라도 좋을 만큼 그는 젊은이들이 어떻게 삶을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을 많이 보여준다. 취직이 안되어서 힘든 젊은이와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는 청소년들이 보면 좋겠다 싶다. 날카로운 뼈있는 말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몸이 그렇게 되자 정신도 이상해졌다. 생각은 점점 나약한 쪽으로 흐르고, 자신을 부정하는 언어들만 잇달아 떠올라, 흔히 있는, 내가 경별하는 소설가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언어에 매달려 언어로 모든 것을 이해하려는 삶이 되고 만 것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소설가의 고뇌의 원천은 일상생활의 태도에 있지 않을까. 그렇게 무질서한 생활을 하다 보면, 어떤 인간이든 기존 소설가와 비슷한 타입이 되지 않을까.                   -본문 195쪽
 나는 그렇게 살아왔다. 부모가 한마디 잔소리라도 할라치면, 나는 오히려 큰소리를 치며 반격을 했다. 여자와 부모가 하는 소리에 일일이 상대를 해보야 득될 게 없다. 그들은 늘 자신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를 주면 둘을 달라 하고, 둘을 주면 셋을 바란다.       -본문 204쪽
 그는 여자와 여자같은 남자들을 경멸하고 싫어한다. 왜 그렇게 됐을까? 지금 저자는 70대 할아버지니까 여자에 대한 불공정한 시각을 갖고 있을 수도 있겠다 싶지만 젊은이때부터 저런 확고한 생각이 있었다. 시대적인 문제인가? 가정교육의 문제인가? 여자에 대한 혐오는 엄마에게서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가장 처음으로 만나는 여자는 엄마이기에. 물론 나의 추측이지만 그의 여자에 대한 혐오는 일관성있게 지켜진다. 저자가 너무나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말을 해서 그런걸까? 대부분의 남자들이 사실은 여자에 대한 원시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데 자신의 체면과 이미지를 위해 입밖으로 꺼내놓지 않은건가?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저자는 정말 공식적으로 인쇄화되어있는 길이 길이 남을 공간에 여자, 여자같은 생각을 가진 남자, 평론가들에게 대해서 적나라하게 혐오하는 말을 서슴없이 남긴다.
 과거의 내가 그랬으니 미래의 나도 그럴 것이라는 발상으로는 그런 감동을 절대 자기화할 수 없다. 나는 미지의 존재이며 앞으로도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순간, 인생은 빛을 발하고 충만해지는 것이며, 또한 영원해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펼쳐나가는 강인함이 필요하다. 마음의 명령 따위에 일일이 따를 수가 없다.   -본문 208쪽
 출세를 하지 못해 안달복달하는 대학의 조교수들이 문학평론가라는 간판에 매달려 강단에서나 벌일 법한 저 음습한 줄다리기를 고스란히 문학판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끊임없이 살피고 상하좌우 관계를 의식하는 주제에 어떻게 평론이 가능하단 말인가. 그들이 어떻게 문학 속의 감동을 발견할 것인가. 타인의 삶을 평가하기 전에 스스로의 자세를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본문 225쪽
 유시민 작가가 이런 말을 방송에서 했다. 요즘에는 평론이 죄다 좋은 말 뿐이라고. 비평이 없어서 정말 안타깝다고 했다. 다양한 비평은 다양한 생각을 이끌어내고 다양한 시각을 보여줄 수 있다. 그리고 그로인해 작가들은 더욱 더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는 것이다.

 요즘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이십대는 친구를 필요로 하지 않는 시절로 보인다. 이십대란, 혼자서 많은 일을 해내기 위한 힘을 체득해야 하는 귀중한 시기이다. 이시기에 득도 해도 안 되는 어중간한 친구를 잔뜩 갖고 있어봐야, 그저 외로움이나 달랠 수 있을 뿐이다. 지리멸렬한 만남을 거듭한다면 자립과 독립으로부터 멀어지고 말 따름이다. 한 사람의 어엿한 남자가 될 기회를 놓치고 마는 결과가 되지 않겠는가.                   -본문 236쪽
 나의 20대를 돌이켜보면 저자의 말이 납득이 간다. 외로움과 맞닥뜨려보지 못했기에 그것의 존재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일부러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속에 숨어 있었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휩쓸려 이리저리 떠밀려 다녔던 거 같다. 그 당시에 외로움과 고독이라는 것을 마주했다면 인생이 달라졌지 않았을까 후회해본다.

 나는 심심풀이로 책을 읽는 것이 싫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오토바이를 타고 바람처럼 질주하는 편이 좋다. 그쪽이 훨씬 재미도 있고, 훨씬 감동적이다. 젊은 사람은 활자의 세계에 탐닉하는 것보다는 현실을 직시해야만 한다. 자신의 눈으로, 귀로, 온몸으로 현실이 무엇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젊은 시절부터 주위에 언어의 성을 높이 쌓아놓고 그 환상의 테두리 밖으로는 한 걸음도 나서려 하지 않으면서, 세상에 대하여 코멘트를 일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본문 246쪽
 청춘이란 달콤한 향기에 취해 천국 같은 나날을 보내는 젊은이들도 많다. 그들이라고 전혀 고뇌가 없는 것은 아니다.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 강을 건너려 하지 않는다. 가능하면 평생 건너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건너지 않으면 불필요한 고뇌가 항상 따라다닌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 고뇌의 횟수와 내용을 오히려 나날이 불어난다. 젊음에 부여된 그칠줄 모르는 체력과 한결같은 기력은 놀기에 전념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강을 끝까지 건너라고 있는 것이다.                                 -본문 251쪽
 처음에 저자의 말투가 너무 고압적이고 공격적이어서 반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의 글들을 읽다보니 좀 걱정이 되었다. 평론가나 편집장들을 이렇게 호되게 혼을 내면 어떻게 그들을 볼 수 있을까. 작가도 사람이니 사회적인 인맥이 있을텐데 말이다. 그리고 그 걱정은 다시 작가의 확고한 믿음으로 바뀌었다. 자신이 떳떳하지 못하고 정직하지 못하면 저렇게 남을 질타할 수 없다. 확고한 자기 주관이 세워져 있고 자신이 그 뜻을 토대로 삶을 살아가고 정직할 수 있다면 저런 쓴소리도 당당히 할 수 있다. 또한 작가는 일을 통해서 만나는 사람과는 친밀한 관계를 맺지 않는다. 그렇기에 저런 날카로운 비판도 얼굴 붉힐 일 없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당시 나는 벌써, 아무런 궁리도 하지 않고 이미지를 줄줄이 엮어 나가고, 설명적인 대화나 흔해빠진 심리와 정경을 묘사하는 것, 멋대로 끼워맞춘 우연이나 억지로 스토리를 늘리는 것 같은 구태의연한 방식에 매달려 있다가는 소설쓰기가 매우 힘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왜 카메라가 아니고 펜을 사용하는지, 왜 영상이 아니고 언어를 사용하는 것인지부터 다시 점검하여, 전적으로 언어가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장점을 활용하여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는 노력이 수반되지 않으면, 소설은 가까운 장래에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이라는 판단이 선 것이다.                    -본문 260쪽
 느닷없이 소설을 쓰기로 결정한 그 무렵, 나는 틀림없는 스물두살이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자본이 거의 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펜과 종이, 사전과 시간, 그리고 좋은 소설을 쓰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어떻게든 결론이 날 직종이었다. 그 점이 다른 예술과는 다른 매력이었다. 물론 재능이라고 불리는 힘도 필요하다. 그러나 요즘에는 결함이 있는 인격을 관리하여 소설로 향하게 하는, 모순된 또하나의 재능을 갖고 있어야 돌파구를 찾지 못해 자살하고 마는 비극을 맞지 않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본문 274쪽
 22살. 그 나이에 저런 깨달음이 있을수가... 범상치않다. 그는 이미 애늙이처럼 삶을 통찰하고 있던 것이다. 나는 저자가 일찍이 외로움을 직면하고 고독을 즐기는 젊은이기에 저런 통찰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집필이란 머릿속에 있는 애매모호한 이미지를 언어로 전환하는 작업이니만큼 도구인 언어는 언젠가는 반드시 녹이 슬게 마련입니다. 이미지를 백 퍼센트 언어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죠. 불가능한 일이지만 가능한 한 백 퍼센트에 근접시키기 위해 애써야만 합니다. 그 문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자신이 과연 몇 퍼센트 정도를 문자화하고 있는지,  그 인식 여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 작가가 많은 것 같습니다. 고작 이삼십 퍼센트를 문자화해놓고 백 퍼센트를 달성했다고 믿으면서 원고를 편집자에게 넘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본문 299쪽
 내게 유일한 관심사는 소설 언어라는 가장 인간적인 도구를 마음껏 구사한 소설을 통하여,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인간이란 생물의 핵심에 얼마만큼 육박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소설을 써서 내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원고료와 인세, 그리고 그 어떤 사악한 힘에도 오염되어 있지 않은 독자의 감상이다. 그 점은 지금도 변함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만약 불행하게도 내 마음에 조그마한 욕심이 생긴다면 나는 이미 소설을 쓸 자격이 없는 것이다.         -본문 318쪽
 대부분의 편집자들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면 하루라도 빨리 원고를 받을까 하는 생각밖에 없다. 그래서 어떤 거짓말이라도 서슴지 않는다. 그 거짓말을 간파하지 못하면 자기 자신을 오해하고, 자기 작품을 바로 보지 못하게 된다.      -본문 326쪽
 창작이란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쓰지 않은 소설을 지향하며 정신의 깊은 곳을 비집고 들어가는 행위이다. 당연히 바닥모를 불안감이 따라다닌다. 누군가에게 매달리고 싶고 누군가와 어울리고 싶은 기분도 든다. 그러나 그러면 끝장이다.            -본문 326쪽
 회사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무엇인가를 창조하지만, 소설은 오로지 혼자 만들어내는 것이다. '고의 자세'는 젊은 작가를 스스로 단련시키면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마음이 깊이를 그윽하게 해줄 것이다. 바늘처럼 가늘었던 감성을 창처럼 굳건하게 길러줄 것이다. 그리고 차츰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본질을 꿰뚫을 수 있는 눈을 갖게 해줄 것이다.                  -본문 327쪽
 만약 소설을 쓰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할 것이다. 우선 의지하려는 마음을 버리라고. 모든 예술이 그렇지만 문학 또한 얼마만큼 개인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에 따라 성패가 결정난다. 불안이나 고독에서 슬픔과 분노가 태어난다. 그 벽을 돌파한 곳에 나 자신의 혼이 있다. 거기에 표현할 가치가 있는 무엇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니까 불안과 고독이야말로 창조하는 자들의 보물이다.                    -본문 333쪽
 요즘에는 너도 나도 인터넷상으로 자신의 생각들을 글로 남긴다. 글을 쓴다는 것이 이제는 누군간의 독보적인 소유가 아니라 만인이 애정하는 것이 되었다. 자신의 글에 누군가가 호응해주거나 좋다고 공감을 누르면 마음이 뿌듯해진다. 그것이 마약처럼 더 좋은 글귀와 공감가는 글을 쓰려고 한다. 누구나가 손쉽게 글을 남기니 창작의 고통이니 고뇌니 하는 말들이 다 옛날 말처럼 느껴진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가 책을 출판하는 이 시대에 저자의 말은 큰 울림을 남겼다. 외로움과 고독을 극복하는 것이 바로 창작을 할 때의 고통과 고뇌가 아닌가 싶다. 사람들 속에 너무 오랫동안 있으면 잠시 혼자 있고 싶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혼자있는 시간이 어느정도 되면 다시 사람들 틈바구니에 껴서 그들과 대화하고 소통하고 싶다. 사람과 소통하지 않고 자신만의 동굴에 갖혀 있는 것 만으로도 창작의 환경이 되는 것이다. 소설을 쓰고자 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분들에게 꼭 필요한, 자신의 의지가 약해질 때마다 처방받는 약으로 약통속에 고이 모셔두어야 하는 책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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