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로 산다는 것 - 우리 시대 작가 17인이 말하는 나의 삶 나의 글
김훈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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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로 산다는 것 (우리 시대 작가 17인이 말하는 나의 삶 나의 글)      -김훈 외<문학사상>
2018.11.30  ****



 소설가들은 어떻게 소설을 쓰는거지? 늘 이야기를 짓는 사람들이 부러웠고 그들을 동경해왔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해내는 것이다. 창조라는 것은 뼈와 살을 깎는 고통이라고 한다. 그런 고통을 이겨낸 사람만이 진정한 소설가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고 그것이 진정한 창조라고 믿어왔다. 그렇다면 소설가들은 어떻게 창작을 하는 것인가? 방법론이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17인의 소설가들이 저마다 자신만의 창작론에 대해 말한다. 내가 보기에 남자와 여자의 생물학적인 차이가 글에도 잘 나타나 있었다. 남자는 대체적으로 이성에 근거하여 논리를 강조하며 썼고 여자들은 특유의 감성을 예리한 관찰력으로 잘 묘사했다. 남성들은 이성에 근거한 감성을 주로 썼는데 강인하고 외로운 감성이 느껴지는 반면, 여성의 글에서는 보송보송하고 아기자기한 따뜻한 감성들이 느껴졌다. 가수들이 저마다의 음색이 다르듯이 소설가들도 저마다의 문체가 확연히 드러났다. 그런 것들이 자기 고유의 소설을 지켜주는 무기가 아닌 가 싶다. 소설가 성의 한글 자음 순으로 역어졌다.

# 작가, 화자, 주인공  -김경욱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일본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와 미시로 유키오를 내세워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다자이 오사무는 화자 즉 작가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자기 고백의 사소설을 썼다. 주인공이 자신이기에 누구보다도 작가는 주인공에 대해 너무 잘 안다. 이런 자기 고백 소설은 누구나가 작가가 될 수 있다.
"작가는 화자와 주인공의 타자성을 선선히 받아들여야 한다. 타자성을 획득할 때 비로소 화자와 주인공은 주어진 내면이 아닌 창조된 내면을 갖게 될 것이다. 이 때 작가는 비로소 타자가 된 화자, 주인공과 대화할 수 있을 것이며....(중략)....대화를 종결시키는 자는 작가도 화자도 주인공도 아닌 독자가 될 것이며, 왜소해진 문학에 풍성한 육체를 부여하는 것은 '경험의 잉여'도 '식견의 잉여'도 아닌 '해석의 잉여'가 될 것이다."    -본문 24~25쪽
 요즘 서점에 가보면 예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낸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하는 사소설을 쓰면서 인기를 얻자 우후죽순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이에 김경욱 소설가는 그것에 대한 우려를 이 글에서 쓰고자 한 것 같다. 소설이란 당연히 작가가 화자와 주인공을 타자화했을 때 궁극의 의미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 여름의 풍속  - 김애란
 그녀는 7~8년 전 자신이 산 '언어학사'라는 책이 어떻게 자신의 손으로 들어왔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초여름에 학교 휴게실에 늘 있던 고동색 3인 소파에 앉아 있다가 까칠한 선배에게 헌책방에 가려면 어떻게 가야하는지 물어보았다. 까칠한 선배의 도움을 받아 헌책방 나들이를 그와 함께 동행하게 된다. 그곳에서 늘 마음속에서는 이 책은 꼭 읽어봐야하는 책이라는 마음의 의무감으로 여러 권의 책을 구입하고 집으로 온다. 책을 열어보자 그곳에 끼어있던 수강신청서가 눈에 띈다. 남자것 하나, 여자 것 하나. 김애란 작가는 수강신청서 하나로 여러가지 상상의 나래를 펴고 나름 논리적으로 그둘의 관계와 성적 등을 추측해본다. 그리고 궁금증에 남자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건다. 그녀의 글은 인조가죽 소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내일부터 정말 추워질 거라는 말에 이런 여름은 다시는 오지 않을 거 같은 예감에 코 끝이 시큰해진다. 오랜 친구는 그녀에게 그런 느낌은 앞으로도 마흔여덟 번은 더 있을 테니 걱정말라고 위로한다. "나는 내가 쓸 다른 이야기들에 대해 생각했다. 소설 바깥의 이야기와 입장들에 대해서도. 그러니 서둘러, 너무 많은 것을 회고하지는 않기로 한다. 여름과 작별하는 일은 마흔 여덟 번도 더 남아 있을 테니까. 세상에는 내가 하루 한 번씩 앉아도 전부 앉아보지 못할 만큼 많은 소파들이 있을 테니까 말이다."     -본문 41쪽
 이야기의 소재가 이제 떨어지면 어떡하지? 하는 조바심이 느껴진다. 이런 감성과 느낌들이 이제는 더는 내 안에서 풍성해지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느껴진다. 더 늦기전에 이런 관찰과 느낌과 감성을 기록해야 되는데...하는 조급함도 느껴진다. 관찰과 감성이 그녀가 말하고 싶은 소설의 창작론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 썬더버드, 만투스, 바스, 끌로드 샬  -김연수
 "하나의 소설을 시작하기 전에 노래를 찾아헤매는 습관은 오래됐다. 자료를 다 들여다보고 나면 서사 구조는 대부분 완성된다. 그때 내가 찾아헤매는 것은 디테일이다. 디테일은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을 설명한다. 자료로는 디테일을 만들 수 없다. 디테일은 오직 나의 내면을 통해 주인공의 내면을 추측할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중략).... 소설가라고 그 모든 일들을 다 경험할 수는 없다. 그때 내게는 수많은 음악들이 있다....(중략)...음악은 내 마음속에 감춰졌던 그 모든 감정들을 끌어내므로."     -본문 49~50쪽
# 북경 골목에서 퍼즐을 맞추다  -김인숙
 "나는 어쩌다 떠나지만, 그것은 무엇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곳에 머물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삶을 살아가는 나의 방식이거니와 글을 쓰는 나의 방식이기도 하다."    -본문 57쪽
"거기에 그냥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거기에 살았을 것 같은 사람이 보이고, 거기에 살았을 거 같은 사람이 거기에서 했을 거 같은 일들이 보일 거라고 믿는다. '믿는다'라는 말의 과장법을 이해하시라. 달리 방법이 없으니 믿는 척이라도 하지 않을 수 없다."      -본문 58쪽
 소설가들은 관찰력과 상상력이 셜록 홈즈 못지 않아야겠다. 이미 일어난 과거의 일들을 마치 내가 그 곳에 있었던 양 상상해보아야 이야기를 만들 수 있으니 말이다. 자료에도 한계가 있다. 마치 퍼즐을 맞추듯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단서들을 찾아서 드러나 있지 않은 주인공의 내면을 꿰뚫어보아야 한다.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조각들이 어디에 위치해야 되는지 알 수 없지만 게으르다는 것은 소설가로서 기다림을 견딜 수 있게 하는 좋은 자질이다. 그래서 그녀는 아직은 기다릴 수 있다.
# 소설가 십 년차의 풍월   -김종광
"소설가는 제도적으로 정년퇴직도 명퇴도 없어 최고의 평생직장처럼 보이지만, 빛 좋은 개살구여서, 절대 다수가 자진 은퇴 형식으로 일찌감치 조기 퇴출된다.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소설에 발전이 없어서, 독자도 출판사도 알아주지 않아서, 스스로 쓰지를 못해-따지고 보면 다 같은 말이겠지만- 등등 이유는 많을 테다."             -본문 67쪽
 독자가 만나는 소설가들은 대개 소설이 성공적이어서 유명한 소설가의 반열에 오른 작가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을 쓴다는 것이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그리고 오래도록 쓸 수 있다는 장점때문에 사람들이 장및빛 직업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의 글에서 소설가로서 사는 삶이 그리 녹록지만은 않음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다. 주목받지 못한 소설가가 어떻게 소설가로서 명맥을 이어갈 수 있을까. 고뇌하고 절망하지만 그는 다시 한 번 자신을 다독이면서 소설가로서의 각오를 확실히한다.
 
# 강물이나 바람, 노을의 어휘 몇 개  -김 훈
 한국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작가, 김훈. 그가 전하는 창작론은 다소 무겁다. 글 잘쓰기로 유명한 작가가 아직도 자신은 3인칭 주어를 쓰기가 낯설고 무섭다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꽃이 피었다'와 '꽃은 피었다'를 놓고 고민한다.
"언어는 이 세계의 불완전성의 소산일 뿐이다. 그래서 모든 언어는 다른 언어에 의해 부정당해 마땅한 것이고 부정당하기를 거부하는 언어는 이미 언어가 아닐 것이다. 언어에게 소통 기능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부정당하는 운명을 수락하는 그 불완전성 안에 있는 것이 아닐까. 듣는 자가 없다는 시대의 말하기란 말이 아니라 재앙이다. 내가 부릴 수 있는 몇 개의 영세한 어휘들은 사전에서 가져온 것이 아니라 강물이나 바람이나 노을 속에서 얻은 것이다. 얻었다기보다는, 얻었다는 몽상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본문 86쪽
 소설가는 언어에 대해 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 말이 어떻게 해서 나왔는지에 대해 항상 의문을 갖고 자료를 찾아보고 복수명사를 쓸 때에도 그것의 내용과 실체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에 대해서도 깐깐히 따져보아야 한다. 실로 사람의 신경을 예민하게 만들고 집착하게 하는 직업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런 꼼꼼한 덕분에 그의 소설이 더욱 핍진성을 갖는 게 아닐 까 싶다.

#점점점点点点   -박민규
 그의 소설은 언제나 신선하고 재미있다. 어디로 튈 지 모른다. 그의 창작론은 어디로 튈지 모는 그의 소설처럼 생각의 흐름을 따라 자유롭게 풀어낸다. 그의 엉뚱한 생각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그의 글은 아쉽게도 끝이 난다.
"심심하다. 정말 할 일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할 일을 떠올리지 못하다 나는 문득 '소설'을 떠올린다. 맞다 참, 그러고 보니 소설이란 게 있었지. 얼마나 심심했던지 나는 그때부터 부랴부랴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문득 그런 게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도 드는데, 그런 게 없어도 또 다행 아니겠냐고 나는 비로소 생각하는 것이다. 점점점点点点"             -본문 111쪽
 역시 그다운 말이다. 그의 엉뚱발랄 기발한 생각들이 그의 독창적인 소설의 영역을 일구었다고 생각한다. 누구도 하지 않았던 일을 하는 사람으로써 그는 소설가내에서도 유일무이한 존재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어릴 적에 엄마 속을 꽤나 많이 썩였겠구나. 그리고 지금의 내 아들이 속을 좀 썩이더라도 잘 참아내야지 하는 즐거운 각오가 생긴다.
# 어둠 속의 기억들   -서하진
 그녀는 지인의 결혼 이십 오주년 파티에 초대된다. 프랑스 식당에는 다른 열한 쌍의 부부들도 초대되었는데 마침 그녀의 옆에 앉은 아저씨가 말을 걸어온다. 무슨 소설을 썼느냐면서 계속 질문공세다. 카뮈라는 작가가 나오자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교지 편집실에서 갇혀있던 무섭고 막막했던 그 때 그 느낌이 떠오른다. 옴베르토 에코의 소설 이야기에 결혼 초 유학중인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떠나서 타국생활을 했을 때가 떠오른다. 어느 날 남편과 싸워서 밖으로 나왔는데 남편이 문을 열어주지 않고 미안하다는 말조차 꺼내지 않아 자존심이 강해져서 누가 이기나 보자라는 식으로 밖에서 오돌오돌 떨다가 깜빡 잠이 든 일이 떠오른다. 그때 느꼈던 사람에 대한 실망과 자기 존재의 대한 가여움 등등 억울함과 분함이 교차하는 그런 감정들로 가득찼던 일이 말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원칙주의자인 남편, 그가 정해놓은 규정들, 어둠 속에 홀로 남았던 기억들, 그런 것들이 제 소설 쓰는 힘이 아닌가, 싶어지네요."           -본문 125쪽
 일상적으로 느끼는 감정은 흔하디 흔해 기억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인생의 단 한 번 느꼈을 공포나 무서움, 사람에 대한 배심감이나 실망감, 억울함과 분함이라는 감정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세월이 지나서 다 잊혀진 감정인 줄 알았으나 그런 기억들이 새록새록 또 떠오르면 그때 감정이 또 다시 새것처럼 나타난다. 여러가지 감정들은 소설의 주인공들을 더욱 더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그들이 실제 존재하는 것처럼(핍진성) 느껴진다.

# 은둔과 무의식의 영역에 깃든 다섯 별 때문에    -심윤경
 그녀는 내가 왜 소설가가 되었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니 이 모든 알 수 없는 일들이 사십 년 전 어느 여름날의 아침, 얄구제도 은둔과 무의식의 영역에 숨어서 수상쩍게 수군거리던 다섯 별들 때문이라고 생각해 두는 것은 어떨까? 아마추어 점성술사에게 결코 호락호락하게 속내를 보이지 않는, 은근하면서도 집요한 그 별들의 조홧속 때문이라고 말이다."           -본문 141쪽

# 만약에? 왜? 과연?      -윤성희
 " 토크쇼 진행자가 스티븐 킹에게 어떻게 글을 쓰냐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한 번에 한 단어씩 쓰죠.'"           -본문 144쪽
 그녀는 소설을 쓸 때 컴퓨터에 쪽지를 엄청 띄운다. 주로 느낌표와 물음표가 있는 문장이 대부분이다.
"소설가들에게는 소설을 쓸 때 자주 던지는 질문들이 필요하다. 그 질문들이 소설의 질을 결정할 때가 있으니까...(중략)....질문 자체가 곧바로 철학이 되는 그런 질문들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중략)....적어도 이런 패턴의 질문들이 소중하다는 것ㅇ르 알아차렸으니까. '만약에~? 왜~? 과연~?'."              -본문 150쪽
"작가로서 양궁선수가 되고 싶다. 하루에 화살 백 개씩을 쏘아대는 선수. 그렇게 연습을 해대지만 막상 시합에 나가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시위를 당겨보는 것처럼 당황해하는 선수. 화살도 한 번에 하나씩밖에 쏠 수 없다.....(중략)....작가는 세상에 떠도는 이야기를 귀담아들을 책임이 있다. 활로 그 이야기들을 맞혀 과녁에 꿰어 두어야 하고 단어로 그 이야기들을 엮어 묶어두어야 한다. 그러면 독자들이 그 이야기들을 다시 세상 밖으로 떠돌게 할 것이다. 잊지 말자! 써야 할 많은 이야기들이 허공에 떠다니고 있다는 것을."            -본문 154쪽

# 가장 아릅다고 행복한, 그러나 팔자에 없는    -윤영수
"다른 이에게 자신의 괴로움을 털어놓는다 해서 소설 쓰기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음을 선배도 나도 너무나 잘 안다. 어차피 혼자만의 작업이다. 혼자만의 체력으로 혼자만의 역기를 들었다가 얌전히 다치지 않게 내려놓는 것만이 작가의 할 일인 것이다."                  -본문 170쪽

# 삼백년 전 소년이 그려낸 '은비령'     -이순원
"저는 소설을 글로 짓는 집이라고 생각합니다. 집의 소재, 집을 짓는 재료에 따라서 초가집을 짓는 것과 기와집을 짓는 것과 양옥을 짓는 것, 또 아파트를 짓는 것들은 저마다 공법이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나무로 짓는 집과 천막으로 짓는 집과 돌로 짓는 집들이 다 어떻게 같은 색깔로 지을 수 있을까? 그리고 작품마다 이것은 이순원 작품이다 하고 표가 딱딱 나야만 할까?"                  -본문 182쪽

# 가만히 말을 걸어보다   -이혜경
"글을 쓸 때, 나름대로 구성을 하고 시작하긴 하지만, 쓰다 보면 삼천포로 빠질 때가 많다. 조금 쓰다 보면 생각이 다른 길로 갈래를 치며 나아간다. 그럼 그 길을 따라가본다. 그러다가 다시 샛길이 나타난다. 그 무수한 샛길들 속에서 해매기 일쑤다...(중략)...이거다 싶은 순간이 온다. 그동안 헤메던 길들 사이에서 내가 가야 할 길이 선명하게 보이는 순간이. 그 순간의 기쁨은, 마약을 해본 적은 없지만 거의 그것과 비슷하리라는 짐작이 들 정도다."        -본문 191쪽
"책을 비교적 성실하게 읽는 시기엔 숙련된 농부가 심은 모처럼 뿌리를 내린다."    -본문 199쪽
"책을 읽다가 내 마음의 현을 오래, 그리고 깊게 퉁긴 이들이 서로 교분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 때의 기쁨은, 아름다운 문장을 만났을 때의 기쁨보다 한결 천진한 데가 있다."      -본문 199쪽

# 율려와 은유    -전경린
 전남대 교수로 재직해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창작론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들이 많으셨을 거 같다. 그녀의 제자들에게 수없이 강조했던 것들이리라. 소설의 본질과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방법론의 조화를 잘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해하기 쉽고 어렵지 않게 설명하고 있어 눈에 쏙쏙 잘 들어왔다.
"더 중요한 것은 생각을 끌고 가는 의문과 유혹과 몰입이다. 사실 창작방법이나 플롯, 주제의식 같은 것은 분명히 필요하지만, 그것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소설이 쓰이는 과정 속에서 발휘되는 잠재적 역량이다. 알아야 하고 갈고 닦아야 하지만 뱃속에 삼켜야 하는 능력인 것이다."                    -본문 208쪽
"말하자면 소설의 힘은 이야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를 쓰는 과정의 현재성에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삶이 그렇듯 소설 역시 발밑의 심연을 두려워하며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과정 자체의 아름다움인 것이다. 실패할 수도 있고 중단할 수도 있고 완성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쓰는 것이다. 두려워하면서도 내 의도를 지나가, 잠재되어 있었던 가능성의 끝까지 가야 한다. 이렇게 해서 겨우 초고가 생겨난다."                    -본문 209쪽

# 끝없는 이야기를 위한 주문 거울아, 거울아      -하성란
"나는 본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본문 217쪽
 그녀는 어릴 적에 <세계 어린이 명화>에서 본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 대해 설명해준다. 거울을 통해 새로운 수수께끼가 풀린다. 그것은 결국 거울에 비친 왕과 왕비의 초상화라는것을.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고 넘어가는 모든 사람들을 주목하고 관찰하고 묘사하고 설명한다. 빛이 들어오는 각을 통해 그 시간을 추정한다. 달리도 자신의 뮤즈 갈라의 초상화를 여러가지 거울을 통해서 그렸다. 비교적 현실에 가장 가깝게 비춰주는 거울이 주는 이야기. 그녀는 그림들이 하는 말을 듣고 이야기들을 쌓아간다. 그림을 보고 풍경을 보고 사물을 본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에게 해줄 이야기들을 기다린다. 그리하여 처음에 그녀가 썼던 나는 본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가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 내가 돌아온 곳     -한창훈
"물소리를 꿈꾸기에 최적의 장소는 사막입지요. 그러면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는 더 이상 묻지 않는다. 하긴, 바다를 배경으로 한 소설들은 주로 내륙에서 썼다. 갈증은 무언가를 하게 만드는 법이라서 그런가."          -본문 239쪽 
     
# 한 줄기 바람처럼, 천 개의 고원처럼    -함정임
"미리 틀(플롯)을 정해놓고, 그 길로 똑바로 나아가는 창작 방식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누구도 끝을 알 수 없는, 한 편의 미지의 소설을 향해 길을 떠나는, 떠나는 중에 하나의 흐름이 이루어지는 것을 나는 최고의 미덕으로 여긴다."              -본문 258쪽



 결국 소설가는 자신의 감성과 언어로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야기를 창조해야 한다. 작법, 창작론 같은 것은 허구다. 사람들의 성격과 얼굴이 다르듯이 이야기 속의 인물들이 진짜 현실속에서 살아있는 듯한 핍진성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감성과 언어로 현실의 허공에서 날아다니는 이야기들을 잘 관찰하여 활을 쏘아서 잘 꿰어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참....말로 하니 쉬운데 과연 이렇게 말처럼 이야기를 창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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