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의 ˝자유의지˝

그리고 의미 발견 및 의미 부여는 독일어로 생각해 보면Sinnfindung과 Sinngebung, 다시 말해 Sinn(의미)을 주다(geben)‘ 와Sinn (의미)을 찾아내다(finden)‘ 로 Sinn은 본래 기본적으로는 방향을 의미합니다. 

프랑스 어의 의미인 상스‘도 마찬가지로 방향을의미하며 상주니크(sens unique)는 일방통행 길을 말합니다. 요컨대 말의 의미란 말이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가와 같은 것입니다. 어떤 말이 이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러한 방향에 있다‘는 것이며의미를 안다는 것은 그 방향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신곡‘ 이라는 어휘를 보면, 신에 관한 또는 신성한, 신에관한 희곡 같은 것일 거라는 방향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는 ‘일의(義)‘란 ‘하나의 의미‘가 아니라 ‘하나의 방향‘으로 향하면 되는 것입니다. 방향이 틀리지 않으면 됩니다. 의미 발견이란 어떤 방향 으로 자기 스스로 향해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파악해 보면 의미의 깊이라는 것은 방향이 점점 명료해져 가는 것과 연관이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의미는 깊으면 깊을수록 신비 쪽으로 향하고 알기 어려워 - P288

지는 동시에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다의적‘ 이란 방향의 단계를 가리킵니다. 다의적‘ 이란 이런저런 다른 것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무스의 예로 말하자면 ‘집‘과 ‘영혼과 교회‘와 ‘하늘 은 안주하는 장소와 안주하는 주체 둘 다를 가리킵니다. 두 분이 지적하신 대로 언어가 다의적이란 것은 실은 한 방향으로 깊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가 이념적 가치로의 상승이라고 말한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지옥편을 마치는 시점에서 몇 가지 중요한 사항을 덧붙여, 앞으로읽어 나가는 데 흥미를 환기시키고자 합니다.
지옥편의 마지막 장에서 단테는 본래는 탈출 불가능한 지옥의 밑바닥에서 베르질리오의 안내를 받아 연옥으로 옮겨 갑니다. 이 부분을 보면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을 만큼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과황폐한 풍경밖에 없었던 지옥으로부터 도망쳐 나올 때, 실로 인상적인아름다운 시구로 끝을 맺습니다. 

야마카와의 아름다운 번역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길잡이와 나는 선명한 세계로 돌아가고자, 은밀한 그 길로 들어섰나니, 잠시 쉴겨를조차 얻지 못하였노라우리가 둥그런 한 구멍으로 하늘이 옮겨 가는 아름다운 것들을 볼 수 있는 곳에이를 때까지, 그가 앞서고 나는 뒤따르니그리하여 그곳을 벗어났노라, 다시금 별들을 보기 위하여 (지·34·133-1.39)


- P289

lo dici ed io per quel cammino ASCOSO 
길잡이 스승과 나는 비밀의 길을

intrainmo a ritomar nel chiaro mondo; 
더듬어 밝은 세상으로 돌아가고자휴식 따위는 염두에도 없었고,

e, sanza cura aver d‘alcun riposo,
길잡이 스승이 앞서고 내가 뒤따라

salimmo su, ei primo e io secondo,
올라가니 한 둥근 구멍으로

tanto ch‘i‘ vidi delle cose belleche porta ‘l ciel, per un pertugio londo, 
하늘의 아름다운 것이 보이기 시작하네그곳을 나서, 다시금 우러러보는 별
e quindi uscimmo a riveder le stelle,
(IntXXXIV. 133-139)

덧붙여 말해 두자면 단테는 별이 없는 것을 지옥의 상징으로 삼았다. 앞에서도 서술했듯이 지옥에서는 별이 보이지 않는다. 지하세계는하늘이 가로막혀 있기 때문이다. 

그곳이 희망이 없는 나라였다는 말은별이야말로 명확한 희망의 상징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단테는 별(lestelle)‘ 을 중요시해서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 모두 마지막은 별 (stellie)로 끝맺는다. 나중에 보게 되겠지만, 내 번역은 그 점을 의식해서 ‘우러러보는 별‘, ‘지향하는 것은 별‘, ‘수많은 별‘ 이라는 식으로 각 편의말미를 별‘로 맺는다.


지옥편을 읽어 보면 단테가 ‘3‘ 이라는 숫자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있다는 것은 누구나 눈치 챌 수 있다. 왜냐하면 시는 모두 3행으로 구성된 연(스텐가, staniza) 단위로 썼고 각각의 행은 11음절이므로 각 연은 모두 33음절이다. 

게다가 『신곡』 전체는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으로 구성되었고, 각 편이 신곡 총서인 지옥편의 제1곡을 제외하면 모두33곡(칸토, Cants)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그토록 3에 집착한 이유는 분명 삼위일체 (trinitas)인 신의 본성의 자취를 따르기때문일 것이다. 지옥편은 방금 말했듯이 제1곡이 proemio generale(총 - P290

서)이므로 제2곡부터 지옥편의 서(序, proemio del inferno)가 시작되고이를 포함한 33 곡으로 끝나므로, 지옥편의 노래(칸토) 수는 34가 되고
지옥편 마지막 노래는 제34곡이다. 

여기에 연옥편과 천국편의 각 33곡을 덧붙이면 34곡과 66곡이므로 정확히 100곡이 되고, 이 100은 완전수라고 일컬어지므로 『신곡』은 성스러운 숫자 3과 완전수 100으로 구성되는 것이다. 

수적인 구조성에 대한 단테의 집착은 그 밖에도 여러가지가 있는데, 1999년에 미르코 만골리니(Mirko Mangolini)가 저술한Danite et la quête de l áme("단테와 혼의 연구』)라는 연구서에서는 도저히 평범하다고 볼 수 없는 3이라는 숫자의 질서를 발견해 냈다. 

신곡에서 베아트리체가 단테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연옥편의 제30곡인데, 그 앞에는 63(63의 구성 6 +3=9)곡이 선행하고, 그 후로는 36(36의 구성 3+6=9)곡이 이어진다. 

또한 그녀가 단테 앞에서 이름을 밝히는 부분은 제30곡의 73행째인데 그 앞에 72행이 선행하고 그 뒤로 72행이 이어지며, 72라는 숫자의 구성은 7+2=9‘ 인 것이다(연옥편 제30)곡의 행수가 145행이므로 그렇게 구성할 수 있다.) (같은 책, 20쪽). 이처럼만골리니는 숫자가 감춰진 구성을 그 밖에도 많이 찾아냈다. 

철학의 흐름에는 소크라테스의 말의 로고스 인간과의 대화에 의한 인간의 철학 와 피타고라스의 질서의 로고스 - 우주 침묵의 관조에 의한 우주의 철학 - 두 가지의 계통이 있다. 

전자에서는 물음을 통하여 인간적의식의 변증법적 전개가 현상을 지배하는 실재의 구조적 형식으로서의 이데아에 다가가려고 하는 데 비해, 후자는 실재 그 자체가 숫자로써 인간이 이해 가능한 차원으로 자기 본질을 개시하는 것을 관조의 침묵에 있어서 투영하는 것이다. 그리고 철학(pidooovla)이라는 고귀한술어를 누가 이 세상에 가져온 것인가라고 물을 때, 적어도 지금까지소크라테스 또는 피타고라스 두 사람 외에 지명된 사람은 없다. 단테는 - P291

아리스토텔레스 · 토마스 아퀴나스 계통에 속하는 스콜라 철학을 계승했다고 일컬어지는데(예를 들면 에티엔느 질송의 Dante Philosophe), 그에게는또한 이처럼 피타고라스의 수의 신비주의를 그것과는 다른 형식으로발전시킨 측면도 있다. 

그리고 이런 형식성이 작시 기법의 하나의 근거가 되었다는 점에서는 폴 발레리의 오래전 선구자가 되는 셈이다. 연옥편의 끝부분 즉 제33곡 139행, 4740행(이는 원서의 오류로, 4749행이 맞다~ 옮긴이)부터 시작하는 연은 아래와 같다.

ma, perchè piene son tutte le carte두 번째 노래에 마련해 둔ordite a questa cantica seconda,
종이는 다 채웠다. 이보다 앞은non mi lascia più ir lo fren dell‘arte. 예술의 고삐가 당겨 멈춰 세웠다.
이렇게 쓴 이유는 『지옥편이 4720행이므로 연옥편은 이보다 조금많은 4755행으로 멈춰, 이어지는 『천국편』 4758행에 미치지 않게 하려는 것으로 밸런스를 중히 여기는 증거이다. 기교(arte)의 고삐로서 숫자를 활용했다.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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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시 읽는 법

실은 단테는 자기 시를 이러한 것들을 생각하며 읽어 주기 바란다는글을 남겼다. 만년의 단테를 위해 유력한 보호를 지속해 준 롬바르디아베로나의 명문가 영주인 칸그란데 델라 스칼라(Cangrande della Scala))1세에게 단테가 『신곡』 천국편의 일부를 올렸을 때 함께 첨부한 편지가 남아 있다. 이에 관해서는 신빙성을 의심하는 경향도 적지 않다. 홈스(George Holines)는 회의론자들 대부분이 『신곡』을 교회의 지탄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우의의 다의성으로 의미를 명료하지 않게 하려 했다.
고 생각한다면서, 의혹에는 충분한 근거가 없다고 보았다(조지 홈스, 다카야나기 순이치高柳俊一, 미쓰모치 이쿠에光用行江 옮김, 『단테」, 교문관敎文館,
85쪽).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는 그다지 밝히지 않고, 어쨌든 그 내용으로 보아 단테적이므로 믿기로 했다고 말한다. 편지의 해당 부분은 다음과 같다.

"이 작품의 의미는 일의적(一)이지 않다는 것을 알아 주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복수의 의미가 있는 다의적 작품이라고 말씀 드려야 마땅할것입니다. 첫째 의미는 문자로 전달되는 의미이지만, 두 번째 의미는 문자가 의미하는 것으로써 전달하는 의미입니다." 라고 씌어 있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비둘기‘와 ‘매는 비둘기‘ 가 가지는 평화 이미지, 매 가 가지는 전투 이미지가 가미되어 평화론자에게는 비둘기파, 싸우는 사람에게는 매파라고 쓴다. 이처럼 문자 상으로는 비둘기나매라는 구체적인 새지만, 그 동물이 나아가 의미하는 바를 생각해 봐야한다. 단테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점이다.
- P272

전자는 문자 자체의 의미지만, 후자는 알레고리 또는 신비적 의미라 불립니다. 신곡은 문자 그대로 이해하면 사후 영혼의 상태입니다.
.... 그렇기는 하나 알레고리로 보면 이 작품의 주제는 자유의지를 행사한 이후의 공죄(功罪)에 따라 정의의 손에 상벌을 심판받는 인간인것입니다." 이 작품이 단순히 사후의 영혼 상태의 기술명제로 읽혀서는 곤란하다. 

여기에는 생애의 행위의 기술명제에 대한 도덕상의 가치판단이라는 판단명제가 세워지며, 따라서 그 상벌이란 그 사람에 대한신의 심판(giudizio), 즉 판단으로서의 사상명제(思想命題, senténza) 인것이다. 중세 스콜라 학의 논리적 성과로서 일찍이 내가 명확하게 구별했던 기술명제, 판단명제, 사상명제의 구별이 바로 단테의 알레고리의근거였다.


앞에 나온 베르트람 달 보르니오의 "머리 없는 인간이 제등처럼 머리를 들고 걸어간다. 그리고 그 머리가 ‘아, 나를(보시오) 이라고 말한다.
는 모습도 문자 그대로 단순히 잔혹한 묘사라고 볼 것이 아니라, 그것이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절단된 머리는 본래 하나였던것이 둘로 갈라진 상태이다. 

그것은 가깝고 일체를 이뤘던 사랑을 배신한 자의 벌이며, 그것은 스스로의 책임으로 자유의지를 사랑 즉 신의은총‘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행사한 것에 대한 신의 판결로서의 사상명제(sententia), 다시 말해 베르트람 달 보르니오에게 내려진 엄격한 신의판결의 알레고리인 것이다. 알레고리를 이해하지 못한 채 문자 자체에머물러 버린다면 고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어떻게 14세기 시인단테의 손을 잡고 격려해 줄 수 있겠는가. 아니 그것보다도 오늘날까지어떻게 『신곡』을 조금씩이라도 읽어 올 수 있었겠는가. 지옥문이 현실세계에 그러한 형태로 서 있지 않고 그러한 글귀가 적혀 있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임에도 지옥문의 비명에서 깊은 감명을 받는 이유는 - P273

무엇일까. 이렇게 생각해 보면 칸그란데에게 단테가 보냈다고 여겨지는편지 내용은 단계적이므로 그 편지를 위서(僞書)라고 볼 필요는 없을 것이며, 또한 알레고리 이해는 편지가 첨부된 천국편만이 아니라, 전편에걸쳐 필요할 것이다. 게다가 『신곡』 전편의 이해는 대부분 조금만 깊이생각해 보면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생겨날 수 있게 쓰였다.
-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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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신곡 강의 - 서양 고전 읽기의 典範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 안티쿠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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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과 분석의 차이

단테의 시는 의미를 깊이 생각하면서 읽어야 한다. 머리 없는 몸뚱이가나왔다고 해서 단순하게 무섭다느니 단테가 너무 잔혹한 표현을 했다고거칠게 읽어 버릴 게 아니라 거기에 담긴 의미를 잘 생각해 봐야 한다.
해석(解釋)‘은 ‘문장을 풀어헤쳐 의미를 명확하게 하는 것‘ 이다. 그런데 그걸로 설명이 충분할까. 주의해야 할 것은 해석 (interpretatio)은분석(analysis)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말의 의미를 풀어헤쳐 분석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분석‘ 이지 해석‘ 이 아니다. interpretatio는 사이로들어가서 설명하다‘ 가 원래 뜻으로 통역, 번역, 연주의 의미이다.

 음악에서 interpretatio는 연주 그 자체를 가리킨다. 악보에 써서 표현한 것을 소리로 통역한다. 마찬가지로 의미를 알 수 없는 외국어를 그 사이에서 알 수 있게 하는 일이 통역이다.
문학 작품에서 interpretatio 란 먼저 그 작품의 언어를 분석 해서 문법적 사전적 의미를 이해한 연후에 그 의미가 무엇을 지시하고, 또는 - P269

가르치는가 를 번역‘ 하는 것이다. 문자의 의미 그 자체를 아는 것은분석‘ 에 지나지 않는다. 외국어 문법의 기초를 배우고 그 나라 사전을펼치면 그 문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작품의 번역이 되지 않는다.

나와 청강자 여러분 대부분에게 모국어인 일본어에서도 마찬가지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하쿠닌잇슈(百人一首)』(백 명의 가인이 읊은 와카 한 수씩을 골라 엮은 가집 옮긴이) 중 후지와라노 가네스케(藤原兼輔)의 작품 「미카 들판을 가르며 흘러가는 이즈미 강 언제 만났기에 이리도 그리울꼬(人)原 文流6 3LOLCULT bt 미카노하라 와키테나가루루이즈미가와 이쓰미키토테카 고히시카루라무) 라는 와카에 관해서 생각해 보자. 

이 노래를 분석 적으로파악해 보면 미카 들판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흐르는(또는 미카 들판에서 샘솟아 흘러내리는) 아름다운 강이 있다. 

언제 처음 그 사람을 만났기에 이리도 그리울고 정도가 된다. 문자의 의미만을 파악한다면 강과 여성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 단지 그것뿐이다.
한편 ‘해석‘ 의 눈으로 이 노래를 보면 문자의 의미가 의미하는 점‘
을 파악하게 된다. 예를 들면 ‘이즈미 강‘ 이라는 고유명사의 이즈미(泉)‘와 ‘언제 만났기에(何時見, 이쓰미)‘의 ‘이쓰미‘ 가 중첩되어 언어의 리듬을 만들고, 언제 처음 만났던가 하며 그리워하겠지. 라는 순서로 노래한다. 이것은 단순히 경치가 아름답다고 노래하는 게 아니라,
여기에는 아름다운 경치, 아름다운 강 물결, 그리고 그에 부응하듯 눈앞에 떠오르는 청초하고 아름다운 연인이 배치되어 있다. 이렇게 이해해 가면 1단계 해석은 성공한다. 분석으로는 이것이 나올 수 없다. 그러면 미카 들판 은 무엇일까. 미카 들판‘ 은 기즈가와(木川, 교토 남부를 가로질러 요도가와流川로 흘러드는 강 옮긴이) 상류에 있다. 그런데 - P270

미카 들판‘ 이 왜 여기에 나올까. 발음이 아름다우며 기즈가와의 흐름이 아름답기 때문에 그 상류에 있는 ‘미카 들판 을 썼다. 나아가 좀 더생각해 보면 술을 따를 때 쓰는 잘쪽하고 아가리가 좁은 독을 미카(술독)‘ 라고 부른다. 바로 이런 점으로 인해 사람들이 미카 들판‘ 이란 말을 듣고 떠올리는 이미지는 민듯한 어깨를 늘어뜨린 가냘프고 아름다운 미인의 모습이다. 

만약 가메(, 항아리)‘ 라고 썼다면 씨름꾼처럼떡 벌어진 어깨를 가진 건장한 남자를 표상하겠지만, ‘미카‘ 는 매끄러운 어깨를 늘어뜨린 가냘프고 젊은 여인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가까워지는 계기가 생기는 무렵부터 갖가지 연정은 맑은 샘물에서 시작된 가느다란 실개천이 차차 강으로 불어나듯 점점 깊어진다. 그것은 또한 용솟음치는 사랑스러움과 젖어드는 물의 엔고(張語한 작품 안에서 관련성 있는 표현들을 다양하게 도입하는 기법 옮긴이)를 연상시킬 뿐만 아니라, 이로부터 성교 이미지로 팽창할 가능성까지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처녀를 처음 만났을 무렵의 청순함과 맑음은 그대로이나 미카 들판의 샘물이 이윽고 기즈가와의 흐름을 이루듯이, 성장하고 깊어 가는 사랑의 역사가 떠오른다. 바로 그런 까닭에 대체 언제 처음 보았기에 이리도 그립고 사랑스럽단 말인가, 라고 노래 부르는것이다. 그리고 이 노래는 31자로 된 단가인데, 그중 아홉 음이 맑고 강한 이며, 이와 별도로 어두운 음과 음이 똑같이 아홉 음을 차지하고있어서, 회상하는 전망에 떠오르는 명암의 풍경이 사랑의 심경과 하나로 어우러지는 완벽한 구성이다.


그러한 것들까지 다양하게 고려해 보면, 이 노래가 가진 이미지도깊어져서 ‘언제 만났기에‘, 즉 언제 처음 그 사람을 만났기에, 라는 의미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시간적인 깊이도 공간적인 이미지도 상당히기복이 풍부하고 구조가 복잡한 훌륭한 노래임을 알게 된다. 이것이 단테와 어떤 연관이 있을까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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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신곡 강의 - 서양 고전 읽기의 典範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 안티쿠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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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의 위대함이란 무엇일까요🌸

스즈키

위대한 시인들에게 공통적인 위대함은 무엇일까요. 이마미치 선생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이마미치 

저는 전부터 세 가지 점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첫째는 인간의 고귀함과 나약함, 다시 말하면 휴머니티의 빛과 그림자, 인생의행복과 적막 양면을 두루 살피고 인간에 관한 사상을 형성하는 시각이위대한 시인에게는 반드시 있다고 봅니다. 둘째로, 전통과의 대결이 엿보인다는 점입니다. 그때까지의 전통을 내부에 지니고 있긴 하지만, 전통을 받아들여 이어 갈 것인가 아니면 뒤엎을 것인가는 사람에 따라 다르기도 하겠으나, 

거대한 전통과 대결하는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호메로스의 경우 전통과의 대결은 오랜 세월 이어져 온 그리스신화의 전통을 딛고, 그때까지 그리스 신화에 없었던 것들을 만들어 갑니다. 본래 신화에서는 오로지 강하기만 했던 아킬레우스가 기품까지갖춘 인간으로 변한 것입니다. 셋째로, 시는 언어예술이기는 하나, 어떤 시인은 음악과 상당히 관련 깊은 음악성이 있고 어떤 시인은 이미지 - P68

가 풍부해서 회화 조각적이며 어떤 시인은 연극성이 있듯이, 물론 한사람이 모든 예술 요소를 다 가진 것은 아니지만, 시가 언어예술이라고해서 언어에만 한정시키는 게 아니라 다른 예술적 요소를 다분히 포함 시킵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이상 세 가지 요소가 고전적이라 일컬어지는 거장 시인들의 공통되는 성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요소들의종합적인 결과가 만인이 즐길 수 있는 대단한 사상을 형성하는 게 아닐까요.
그중 하나만 꼽아야 한다면 맨 처음 말씀드린, 인간의 고귀함과 나약함을 두루 겸비한 인간론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우리는 나약함을보면서 공감하고, 고귀함을 통해서 동경을 불러일으킵니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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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단테 연구의 의미나는 10대 중반 무렵부터 이쿠타 초코(生田長江)가 번역한 『신곡을읽으며 언젠가는 반드시 단테를 공부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런데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던 20대에 이탈리아 어 원전을 발견해『신곡 Drivina Commedias을 열심히 읽던 중, 고전철학과 관련해 더없이 훌륭한 가르침을 주신 지도교수 이데 다카시 선생님에게서 "자네는 우선아리스토텔레스에 전념하게" 라는 말을 듣고 서글퍼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순종적인 학생으로 아리스토텔레스에 몰두했고 덕분에 철학의기초를 공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무렵부터 토요일 밤마다 남몰래지하운동을 하듯 50년 넘도록 혼자서 『신곡』을 공부해 왔다. 이를 눈치챈 분들의 배려 덕택에 단테 관련 연속강의 형태로 이야기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자, 그럼 오늘은 제1강 서문 및 호메로스 Oumpos (Homeross)‘ 라는제목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우리가 지금으로부터 육백 수십 년도 - P13

이전의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teri, 1265-1321)라는 시인을 연구하는 의미는 대체 어디에 있는가, 우선 이에 관해 생각해 보자.

-고전에서 배운다.

단테의 『신곡』을 읽는 일은 우선 첫째로 ‘클래식을 공부한다‘는 의미가 있다. 아니 오히려 클래식 에서‘ 배운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겠다.
‘을‘ 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대상‘이 되기 때문에 그것과 자신과는 거리가 있게 된다. 물론 단테‘를 공부하는 것이긴 하지만, 동시에 단테에게 배운다, 즉 자기 자신이 그 속으로 들어가 공부하고 참여한다는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단테를 공부하는 것은 이처럼 고전‘에서 배우는 일의하나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단테에게 배우는 것이다.

그런데 고전‘ 이라는 어휘는 본래 어떤 의미를 가진 말이었을까.
‘고전‘ 은 영어로는 ‘클래식(classic)‘ 인데, 그 밖의 유럽 언어도 대부분맨 첫 글자나 맨 마지막 글자만 다를 뿐 발음은 모두 클래식‘ 이다. 클래식‘은 라틴 어 클라시쿠스(classicus)‘에서 유래했는데 이 말은 형용사이며 처음부터 ‘고전적‘ 이라는 의미가 있었던 건 아니다. 클라시쿠스는 사실 함대(艦隊)‘라는 의미를 가진 클라시스(classis) 라는 명사에서 파생된 형용사이다. 함대‘ 라는 말은 군함이 적어도 두세 척 이상은 있다는 뜻이다. ‘클라시스‘는 ‘군함의 집합체‘ 라는 의미였다. ‘클라시쿠스‘ 라는 형용사는 로마가 국가적 위기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국가를 위해 군함을, 그것도 한 척이 아니라 함대 (클라시스)를 기부할 수있는 부호를 뜻하는 말로, 국가에 도움을 주는 사람을 가리켰다.(로마에는 징세 제도가 있었지만, 군함은 세금이 아니라 기부를 모아 만들었다.)덧붙여 국가가 위기에 직면했을 때, 자기 자식 자식은 ‘프롤레스 - P14

(proles)‘ 라고 한다. 밖에는 내놓을 게 없는 사람, 국가에 헌상할 것이라곤 프롤레스뿐인 사람을 ‘프롤레타리우스(proletailus)‘ 라고 불렀다.

따라서 ‘클라시쿠스‘가 재산이 있어서 국가를 위해 함대를 기부할 수있는 부유층을 가리킨 데 반해, ‘프롤레타리우스‘는 오직 자기 자식을내놓는 것밖에 할 수 없는 가난한 사람을 의미했다. 바로 이 라틴 에프롤레타리우스‘ 에서 빈곤한 노동계급을 의미하는 ‘프롤레타리아트라는 독일어가 생겼고, 그 후 유럽 전역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오늘날 클라시쿠스는 고전적‘, 프롤레타리아‘는 ‘노동계급‘ 을 의미하는말이 되어 이 두 단어가 아무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옛 로마 문화에서는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진 단어였으며, 생각해 보면 ‘프롤레타리우스‘라는 형용사는 서글픔이 깃든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국가적 위기에 함대를 기부할 수 있는 상황을 인간의 심리적 차원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인간은 언제든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있는데 이러한 인생의 위기에 당면했을 때, 정신적인 힘을 주는 책이나 작품을 가리켜 ‘클래식‘ 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이는 중세의 비교적 이른 시대, 즉 교부시대부터 그러한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


따라서 무엇보다 먼저 밝혀 두어야 할 것은 클라시스는 원래 함대 라는 의미였으며 클라시쿠스‘는 국가에 함대를 기부할 수 있다는의미에서 애국자이기도 하고 재산을 가진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것이 변화하여 인간의 심리적 위기에 진정한 정신적 힘을 부여해 주는책을 일컬어 ‘클래식‘ 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비단 책뿐만 아니라, 회화든 음악이든 연극이든 정신에 위대한 힘을 주는 예술을 일반적으로 클래식‘ 이라 부르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클라시스 에서 유래한 ‘클래식‘을 ‘고전‘ 이라번역한다. 이는 오래전부터 소중하게 여겨온 서적(典], 요컨대 고전이 그러한 - P15

교화력을 가졌다는 점에서 ‘클래식‘ 의 번역어로 선택된 것이다. 典은 상형문자로 인데, 다리가 달린 책상 위에 옛 책의 형태인 두루마리를 소중히 올려놓은 것을 의미한다. 책상 위에 올려 둔다는 것은 읽지 않고 쌓아 두기만 한다‘ 는 뜻이 아니라, 소중히 여기고 늘 열심히읽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고전‘은 ‘클래식‘의 번역어로서는 참으로적절한 말이라 여겨진다. 그러한 고전‘에서‘ 배우는 것이 단테 연구의첫 번째 의미일 것이다.


인문주의 · 고전연구의 체득단테 『신곡』 연구의 두 번째 의미는 휴머니즘(humanism)을 체득하는 데 있다. 휴머니즘 이라고 하면 흔히 ‘인간주의‘ 혹은 ‘인간애‘ 라고 옮기는데, 원래는 그런 뜻이 아니고 ‘휴머니즘은 휴먼인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휴먼‘ 은 라틴 어로 ‘후마누스(humanus)‘ 이며 후마누스는 물질인 물이나 동물인 개와는 달리 인간에게 고유한 것, 즉 ‘인간적‘ 이라는 뜻이다.

인간적‘ 이라는 형용사는 일본에서는 다르게 쓰이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내가 학생과 술을 마시고 취해서 "아, 내일은 학교 가기 싫다" 라고 말하면 "선생님도 꽤 인간적이시네요. 너무 좋아요" 라고 말한다. 평소 잔소리 심한 선생인데 알고 보니 말이 꽤 통한다고 칭찬을 했을 테지만, 술에 취하는 것은 전혀 인간적인 일이 아니며 오히려 동물이 된 경우이다. 노(能, 일본의 가장 오래된 무대예술이며 일종의 가면극옮긴이) 성성이>에서 볼 수 있듯이 원숭이도 술에 취하기 마련이고, 소세키(石) 작품(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말함-옮긴이) 속의 고양이도맥주를 마시고 취한다. 인간적‘ 이라는 말은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만 - P16

의 특징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바로 ‘언어를 이해하고, 언어를 사용하고, 언어로써 살아간다.
는 것이다.
인간 이외의 다른 동물에게도 언어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동물에게는 음성기호가 있을 뿐이며 엄밀한 의미의 언어는 없다.

분명 동물들도 명확한 의미를 가진 음성기호를 사용해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인간도 그 동물의 음성기호를 알면 이를 이용해 동물과 어느정도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 또한 동물에게는 듣기 능력이 있어서인간의 단순한 명령을 음성적으로 듣고 음성기호로 파악해 그대로 행동한다. 개나 고양이를 길러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음성기호와 언어는 엄연히 다르다. 일본원숭이 연구가에 의하면, 일본원숭이는 식별 가능한 26가지 음성기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새끼를 밴 암컷 원숭이 한 마리를 무리에서 떼어 내 격리시키고, 그암컷 원숭이가 갓 낳은 새끼원숭이와 어미원숭이의 관계를 관찰해 본결과, 위에서 말한 26가지 음성기호의 교환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한동물의 음성기호는 본능적인 것이며 그 음성기호를 어떤 상황에 낼 것인가는 경험을 통해 배워 가겠지만, 필요한 음성기호 자체는 본능적으로 지니고 있다.(이타니 준이치로 伊谷純一郎, ‘일본원숭이의 음성과 생활.
『언어생활, 1995)인간도 그러한 음성기호를 가지고 있다. 젖먹이를 떠올려 보면, 태어날 때 모태 안에서 갑자기 공기 중으로 나오면 충격에 놀라 울음을 터뜨린다. 기저귀가 젖었을 때 내는 울음소리, 배가 고플 때 내는 울음소리, 기분이 좋을 때 내는 소리, 통증으로 인해 불에 덴 듯 우는 소리, 몸이 약해졌을 때 힘없이 우는 소리 등 다양한 소리를 내는데, 이는 모두 - P17

음성기호이며 각각 다른 소리를 각각의 상황에 맞게 본능적으로 낸다.
이처럼 본능적 음성기호는 인간을 포함해 모든 동물이 가지고 있다.

그에 반해 인간의 언어는 일생 동안 배우고 터득해 가는 것이다. 사전이 없는 인간의 일생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또한 사색이 깊어지면 사전에는 없는 새로운 술어를 만들기도 한다. 우리는 평생에 걸쳐언어를 습득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언어적 이라는 것이 가장 인간적인 것이다. 

따라서 ‘휴머니즘의 첫 번째 의미는다름 아닌 인문주의‘, ‘고전주의‘ 라고 할 수 있다.
휴머니즘‘은 비교적 새로운 말이며 그 기원은 ‘후마니스무스(Humanismus)‘ 라는 독일어이고, 1800년에 프리드리히 니트함머(Friedrich Niethammer)라는 사람이 처음 만든 말이다. 

이 단어는 인간애를 의미하는 필란트로피스무스(Philanthropismus)‘ 와 대립되는 단어였다. 어찌된 영문일까. 예를 들면 추운 날 돌계단 위에 잠든 사람에게 뭔가 따뜻한 먹을거리라도 건네는 행위는 필란트로피스무스 (인간애)이다. 그에 대하여 후마니스무스‘, ‘휴머니즘 이란 ‘고전 연구를통해 언어를 익히고 숙달해 가는 것‘ 이 본래 의미이다. 언어를 익히고숙달해 가는 것‘ 이란 언어 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 에 걸맞도록 살아가는 것, 그리고 자기 자신이 한 말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그에 맞게 행동하는 것까지도 포함한 말이다. 

따라서 휴머니즘 은 고전연구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는 이번에 단테를 공부함으로써서양의 대표적인 고전을 배우고, 또한 휴머니즘의 인간, 바로 휴머니스트가 되는 것이다. 단테 직후에 이탈리아에서는 ‘우마니스타(Umanista)‘라 불리는 고전 연구 인문주의자 그룹이 나타났는데, 그들의 운동이 바로 19세기 이래의 휴머니즘을 선도했다.(T. Immamichi,
Betrachtungen über das Eine, p.25) - P18

호메로스는 그 노래를 사람의 언어로 번역하는 일을 한다. 이에 반해베르길리우스는 스스로 내가 노래한다‘ 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는 시인의 시대적 의식 차이도 보이지만, 신화를 스스로 창조한다는 진정한문학가, 진정한 시인 의식이 드러난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신화(미토스)를 자기 좋을 대로 만들었느냐 하면그렇지는 않다. 트로이 전쟁 이야기를 Musa mihi causas memora ‘뮤즈의 여신(Musa)이여, 내게 일의 연유(causa, 영어로는 cause)를 떠올리게 하소서‘ 라고 간청한다. 나는 지금부터 로마 건국을 노래할 것인데,
제멋대로 노래하는 게 아니라, ‘뮤즈여, 부디 내게 역사에일어난 갖가지 사건의 형상을 가르쳐 주소서, 떠올릴 수 있게 하소서‘ 라고 말한다.


요컨대 여신이 보여주는 신화를 기반으로 해서 내가 새로운 신화를창조한다, 노래한다는 것이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입장이다. 이렇게 해서 베르길리우스는 로마 신화를 새롭게 만들었다. 로마는 더 이상 늑대가 키운 불쌍한 고아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후예인 야만인이 아니다. 신의 사생아 중 하나라는 의미에서 하늘과 이어진 영웅 아이네아스, 그리스의 비열한 계략 때문에 패하긴 했으나 곧바로 나라를 세우기 위해 이탈리아로 떠난 아이네아스, 그러한 영웅이 세운 나라이므로 그리스 인보다 자기네가 에토스(윤리)에 있어서 상위라는, 로마의 민족의식과 같은 것을 『아이네이스」라는 시로 창작해 낸 것이다.


단테는 신의 노래를 그대로 번역한 호메로스가 아니라 베르길리우스의 입장, 즉 스스로 미토스를 창조하면서도 뮤즈의 여신에 의지해 노래한 위대한 시인을 모범으로 삼는다. 우리는 이와 같이 서양서사시의전통을 따라 한 발 한 발 단테로 향하는 길을 찾아가는 것이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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