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의미 발견 및 의미 부여는 독일어로 생각해 보면Sinnfindung과 Sinngebung, 다시 말해 Sinn(의미)을 주다(geben)‘ 와Sinn (의미)을 찾아내다(finden)‘ 로 Sinn은 본래 기본적으로는 방향을 의미합니다.
프랑스 어의 의미인 상스‘도 마찬가지로 방향을의미하며 상주니크(sens unique)는 일방통행 길을 말합니다. 요컨대 말의 의미란 말이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가와 같은 것입니다. 어떤 말이 이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러한 방향에 있다‘는 것이며의미를 안다는 것은 그 방향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신곡‘ 이라는 어휘를 보면, 신에 관한 또는 신성한, 신에관한 희곡 같은 것일 거라는 방향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는 ‘일의(義)‘란 ‘하나의 의미‘가 아니라 ‘하나의 방향‘으로 향하면 되는 것입니다. 방향이 틀리지 않으면 됩니다. 의미 발견이란 어떤 방향 으로 자기 스스로 향해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파악해 보면 의미의 깊이라는 것은 방향이 점점 명료해져 가는 것과 연관이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의미는 깊으면 깊을수록 신비 쪽으로 향하고 알기 어려워 - P288
지는 동시에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다의적‘ 이란 방향의 단계를 가리킵니다. 다의적‘ 이란 이런저런 다른 것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무스의 예로 말하자면 ‘집‘과 ‘영혼과 교회‘와 ‘하늘 은 안주하는 장소와 안주하는 주체 둘 다를 가리킵니다. 두 분이 지적하신 대로 언어가 다의적이란 것은 실은 한 방향으로 깊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가 이념적 가치로의 상승이라고 말한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지옥편을 마치는 시점에서 몇 가지 중요한 사항을 덧붙여, 앞으로읽어 나가는 데 흥미를 환기시키고자 합니다. 지옥편의 마지막 장에서 단테는 본래는 탈출 불가능한 지옥의 밑바닥에서 베르질리오의 안내를 받아 연옥으로 옮겨 갑니다. 이 부분을 보면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을 만큼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과황폐한 풍경밖에 없었던 지옥으로부터 도망쳐 나올 때, 실로 인상적인아름다운 시구로 끝을 맺습니다.
야마카와의 아름다운 번역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길잡이와 나는 선명한 세계로 돌아가고자, 은밀한 그 길로 들어섰나니, 잠시 쉴겨를조차 얻지 못하였노라우리가 둥그런 한 구멍으로 하늘이 옮겨 가는 아름다운 것들을 볼 수 있는 곳에이를 때까지, 그가 앞서고 나는 뒤따르니그리하여 그곳을 벗어났노라, 다시금 별들을 보기 위하여 (지·34·13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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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 dici ed io per quel cammino ASCOSO 길잡이 스승과 나는 비밀의 길을
intrainmo a ritomar nel chiaro mondo; 더듬어 밝은 세상으로 돌아가고자휴식 따위는 염두에도 없었고,
e, sanza cura aver d‘alcun riposo, 길잡이 스승이 앞서고 내가 뒤따라
salimmo su, ei primo e io secondo, 올라가니 한 둥근 구멍으로
tanto ch‘i‘ vidi delle cose belleche porta ‘l ciel, per un pertugio londo, 하늘의 아름다운 것이 보이기 시작하네그곳을 나서, 다시금 우러러보는 별 e quindi uscimmo a riveder le stelle, (IntXXXIV. 133-139)
덧붙여 말해 두자면 단테는 별이 없는 것을 지옥의 상징으로 삼았다. 앞에서도 서술했듯이 지옥에서는 별이 보이지 않는다. 지하세계는하늘이 가로막혀 있기 때문이다.
그곳이 희망이 없는 나라였다는 말은별이야말로 명확한 희망의 상징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단테는 별(lestelle)‘ 을 중요시해서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 모두 마지막은 별 (stellie)로 끝맺는다. 나중에 보게 되겠지만, 내 번역은 그 점을 의식해서 ‘우러러보는 별‘, ‘지향하는 것은 별‘, ‘수많은 별‘ 이라는 식으로 각 편의말미를 별‘로 맺는다.
지옥편을 읽어 보면 단테가 ‘3‘ 이라는 숫자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있다는 것은 누구나 눈치 챌 수 있다. 왜냐하면 시는 모두 3행으로 구성된 연(스텐가, staniza) 단위로 썼고 각각의 행은 11음절이므로 각 연은 모두 33음절이다.
게다가 『신곡』 전체는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으로 구성되었고, 각 편이 신곡 총서인 지옥편의 제1곡을 제외하면 모두33곡(칸토, Cants)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그토록 3에 집착한 이유는 분명 삼위일체 (trinitas)인 신의 본성의 자취를 따르기때문일 것이다. 지옥편은 방금 말했듯이 제1곡이 proemio generale(총 - P290
서)이므로 제2곡부터 지옥편의 서(序, proemio del inferno)가 시작되고이를 포함한 33 곡으로 끝나므로, 지옥편의 노래(칸토) 수는 34가 되고 지옥편 마지막 노래는 제34곡이다.
여기에 연옥편과 천국편의 각 33곡을 덧붙이면 34곡과 66곡이므로 정확히 100곡이 되고, 이 100은 완전수라고 일컬어지므로 『신곡』은 성스러운 숫자 3과 완전수 100으로 구성되는 것이다.
수적인 구조성에 대한 단테의 집착은 그 밖에도 여러가지가 있는데, 1999년에 미르코 만골리니(Mirko Mangolini)가 저술한Danite et la quête de l áme("단테와 혼의 연구』)라는 연구서에서는 도저히 평범하다고 볼 수 없는 3이라는 숫자의 질서를 발견해 냈다.
신곡에서 베아트리체가 단테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연옥편의 제30곡인데, 그 앞에는 63(63의 구성 6 +3=9)곡이 선행하고, 그 후로는 36(36의 구성 3+6=9)곡이 이어진다.
또한 그녀가 단테 앞에서 이름을 밝히는 부분은 제30곡의 73행째인데 그 앞에 72행이 선행하고 그 뒤로 72행이 이어지며, 72라는 숫자의 구성은 7+2=9‘ 인 것이다(연옥편 제30)곡의 행수가 145행이므로 그렇게 구성할 수 있다.) (같은 책, 20쪽). 이처럼만골리니는 숫자가 감춰진 구성을 그 밖에도 많이 찾아냈다.
철학의 흐름에는 소크라테스의 말의 로고스 인간과의 대화에 의한 인간의 철학 와 피타고라스의 질서의 로고스 - 우주 침묵의 관조에 의한 우주의 철학 - 두 가지의 계통이 있다.
전자에서는 물음을 통하여 인간적의식의 변증법적 전개가 현상을 지배하는 실재의 구조적 형식으로서의 이데아에 다가가려고 하는 데 비해, 후자는 실재 그 자체가 숫자로써 인간이 이해 가능한 차원으로 자기 본질을 개시하는 것을 관조의 침묵에 있어서 투영하는 것이다. 그리고 철학(pidooovla)이라는 고귀한술어를 누가 이 세상에 가져온 것인가라고 물을 때, 적어도 지금까지소크라테스 또는 피타고라스 두 사람 외에 지명된 사람은 없다. 단테는 - P291
아리스토텔레스 · 토마스 아퀴나스 계통에 속하는 스콜라 철학을 계승했다고 일컬어지는데(예를 들면 에티엔느 질송의 Dante Philosophe), 그에게는또한 이처럼 피타고라스의 수의 신비주의를 그것과는 다른 형식으로발전시킨 측면도 있다.
그리고 이런 형식성이 작시 기법의 하나의 근거가 되었다는 점에서는 폴 발레리의 오래전 선구자가 되는 셈이다. 연옥편의 끝부분 즉 제33곡 139행, 4740행(이는 원서의 오류로, 4749행이 맞다~ 옮긴이)부터 시작하는 연은 아래와 같다.
ma, perchè piene son tutte le carte두 번째 노래에 마련해 둔ordite a questa cantica seconda, 종이는 다 채웠다. 이보다 앞은non mi lascia più ir lo fren dell‘arte. 예술의 고삐가 당겨 멈춰 세웠다. 이렇게 쓴 이유는 『지옥편이 4720행이므로 연옥편은 이보다 조금많은 4755행으로 멈춰, 이어지는 『천국편』 4758행에 미치지 않게 하려는 것으로 밸런스를 중히 여기는 증거이다. 기교(arte)의 고삐로서 숫자를 활용했다.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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