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 신곡 강의 - 서양 고전 읽기의 典範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 안티쿠스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해석과 분석의 차이

단테의 시는 의미를 깊이 생각하면서 읽어야 한다. 머리 없는 몸뚱이가나왔다고 해서 단순하게 무섭다느니 단테가 너무 잔혹한 표현을 했다고거칠게 읽어 버릴 게 아니라 거기에 담긴 의미를 잘 생각해 봐야 한다.
해석(解釋)‘은 ‘문장을 풀어헤쳐 의미를 명확하게 하는 것‘ 이다. 그런데 그걸로 설명이 충분할까. 주의해야 할 것은 해석 (interpretatio)은분석(analysis)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말의 의미를 풀어헤쳐 분석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분석‘ 이지 해석‘ 이 아니다. interpretatio는 사이로들어가서 설명하다‘ 가 원래 뜻으로 통역, 번역, 연주의 의미이다.

 음악에서 interpretatio는 연주 그 자체를 가리킨다. 악보에 써서 표현한 것을 소리로 통역한다. 마찬가지로 의미를 알 수 없는 외국어를 그 사이에서 알 수 있게 하는 일이 통역이다.
문학 작품에서 interpretatio 란 먼저 그 작품의 언어를 분석 해서 문법적 사전적 의미를 이해한 연후에 그 의미가 무엇을 지시하고, 또는 - P269

가르치는가 를 번역‘ 하는 것이다. 문자의 의미 그 자체를 아는 것은분석‘ 에 지나지 않는다. 외국어 문법의 기초를 배우고 그 나라 사전을펼치면 그 문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작품의 번역이 되지 않는다.

나와 청강자 여러분 대부분에게 모국어인 일본어에서도 마찬가지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하쿠닌잇슈(百人一首)』(백 명의 가인이 읊은 와카 한 수씩을 골라 엮은 가집 옮긴이) 중 후지와라노 가네스케(藤原兼輔)의 작품 「미카 들판을 가르며 흘러가는 이즈미 강 언제 만났기에 이리도 그리울꼬(人)原 文流6 3LOLCULT bt 미카노하라 와키테나가루루이즈미가와 이쓰미키토테카 고히시카루라무) 라는 와카에 관해서 생각해 보자. 

이 노래를 분석 적으로파악해 보면 미카 들판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흐르는(또는 미카 들판에서 샘솟아 흘러내리는) 아름다운 강이 있다. 

언제 처음 그 사람을 만났기에 이리도 그리울고 정도가 된다. 문자의 의미만을 파악한다면 강과 여성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 단지 그것뿐이다.
한편 ‘해석‘ 의 눈으로 이 노래를 보면 문자의 의미가 의미하는 점‘
을 파악하게 된다. 예를 들면 ‘이즈미 강‘ 이라는 고유명사의 이즈미(泉)‘와 ‘언제 만났기에(何時見, 이쓰미)‘의 ‘이쓰미‘ 가 중첩되어 언어의 리듬을 만들고, 언제 처음 만났던가 하며 그리워하겠지. 라는 순서로 노래한다. 이것은 단순히 경치가 아름답다고 노래하는 게 아니라,
여기에는 아름다운 경치, 아름다운 강 물결, 그리고 그에 부응하듯 눈앞에 떠오르는 청초하고 아름다운 연인이 배치되어 있다. 이렇게 이해해 가면 1단계 해석은 성공한다. 분석으로는 이것이 나올 수 없다. 그러면 미카 들판 은 무엇일까. 미카 들판‘ 은 기즈가와(木川, 교토 남부를 가로질러 요도가와流川로 흘러드는 강 옮긴이) 상류에 있다. 그런데 - P270

미카 들판‘ 이 왜 여기에 나올까. 발음이 아름다우며 기즈가와의 흐름이 아름답기 때문에 그 상류에 있는 ‘미카 들판 을 썼다. 나아가 좀 더생각해 보면 술을 따를 때 쓰는 잘쪽하고 아가리가 좁은 독을 미카(술독)‘ 라고 부른다. 바로 이런 점으로 인해 사람들이 미카 들판‘ 이란 말을 듣고 떠올리는 이미지는 민듯한 어깨를 늘어뜨린 가냘프고 아름다운 미인의 모습이다. 

만약 가메(, 항아리)‘ 라고 썼다면 씨름꾼처럼떡 벌어진 어깨를 가진 건장한 남자를 표상하겠지만, ‘미카‘ 는 매끄러운 어깨를 늘어뜨린 가냘프고 젊은 여인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가까워지는 계기가 생기는 무렵부터 갖가지 연정은 맑은 샘물에서 시작된 가느다란 실개천이 차차 강으로 불어나듯 점점 깊어진다. 그것은 또한 용솟음치는 사랑스러움과 젖어드는 물의 엔고(張語한 작품 안에서 관련성 있는 표현들을 다양하게 도입하는 기법 옮긴이)를 연상시킬 뿐만 아니라, 이로부터 성교 이미지로 팽창할 가능성까지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처녀를 처음 만났을 무렵의 청순함과 맑음은 그대로이나 미카 들판의 샘물이 이윽고 기즈가와의 흐름을 이루듯이, 성장하고 깊어 가는 사랑의 역사가 떠오른다. 바로 그런 까닭에 대체 언제 처음 보았기에 이리도 그립고 사랑스럽단 말인가, 라고 노래 부르는것이다. 그리고 이 노래는 31자로 된 단가인데, 그중 아홉 음이 맑고 강한 이며, 이와 별도로 어두운 음과 음이 똑같이 아홉 음을 차지하고있어서, 회상하는 전망에 떠오르는 명암의 풍경이 사랑의 심경과 하나로 어우러지는 완벽한 구성이다.


그러한 것들까지 다양하게 고려해 보면, 이 노래가 가진 이미지도깊어져서 ‘언제 만났기에‘, 즉 언제 처음 그 사람을 만났기에, 라는 의미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시간적인 깊이도 공간적인 이미지도 상당히기복이 풍부하고 구조가 복잡한 훌륭한 노래임을 알게 된다. 이것이 단테와 어떤 연관이 있을까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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