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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보보라는 분의 추천서였다. 정확히 추천서라고 말할 수 있지는 않다. 그냥 지나가는 말같이 이번 주말에는 이런 이런 책이나 읽으면서 보내야겠다는 식의 툭 던지는 멘트였을 뿐이었다. 그중의 한권이었다.
의사가 직업인 작가는 경제에도 웬만큼 도통해서,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도 유명한 주식 전문가라고 한다. 그런데, 솔직히 난 박경철씨나 시골의사라는 이름은 들어본적이 없는 주식시장의 문외한이라, 그럴려니 하지만, 저자의 글솜씨에는 혀를 내두렀다.
형용의 수식을 최대한 줄이면서, 아주 쉽게도 하고픈 말을 잘 전달하는 솜씨는 웬만한 전문작가들의 솜씨에 전혀 뒤지지 않았다. 그래서 알아보았더니 실은 이미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1,2'를 내놓았던 경험이 있는 분이었다. 어쩐지... 예사롭지 않더니만...
사실 난 최근의 재테크 관련 책들에는 별 눈길을 주지 않았다. 대부분, 부동산 투자를 적극적으로 권하거나, 주식 시장에서의 특정 종목 추천이나, 단타 투자의 요령등을 다루면서, 그것도 아주 자극적인 제목으로 유인하는 듯한 품새가 영 탐탁치 않았던 탓이었다. 하지만, 이책은 큰 틀에서의 경제를 설명하는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다.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역시 '부자'에 대한 작가의 견해이다.
"부자란, 더 이상 자산을 늘리는 것에 연연해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표현은 정말로 딱 이거라는 정의이다. 부자와 빈자의 차이는 보유재산의 절대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지적은 정말로 맞는 말이잖는가? 흔히들 얘기하는 꿈과 현실의 차이가 실망으로 나타나듯, 연연해 하지 않을 만큼의 재산과 실제 재산과의 차이가 클 수록 빈자이고, 그 차이가 적을 수록 부자에 가깝다. 아주 연연해하지 않는 상태에 이르면 정말로 부자가 된 것이다. 정말로 그렇다. 그러면서 나도 많은 생각을 하게된다. '난, 정말로 가난한 사람인가? 아니면 난 부자인가? 그리고 정말로 내가 원하는 연연해 하지 않을 만큼의 재산은 얼마인가? 10억? 아님 100억? 난, 왜 그돈을 필요로 하는가?' 등등 말이다.
문득, 얼마전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출근길, 행복하세요?"란 제목의 책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런 구절이 나온다.
한 어부가 있었다. 그는 아침에 느즈막하게 일어나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고기잡이를 시작한다. 조금 늦은 점심을 먹고, 이른 오후에 그물을 거두어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나면 집으로 돌아가 마을 사람들과 담소의 시간을 보내고, 아내와는 감사한 식사를 한다. 그리고 나서 조금 이른 잠자리에 들어가는 것이 그의 일과였다. 그런데, 어느날 한 성공한 사업가가 그 어부가 일찍 그물을 걷는 것을 보고는 "아니 지금 도대체 뭐하는 거죠? 왜 이렇게 일찍 그물을 걷나요?" 어부는 말하기를 "내게 필요한 만큼의 물고기는 이미 잡았습니다." 그러자 그 사업가는 "당신이 지금 제정신이예요? 당신이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저녁늦게 까지 일을 하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어요." "그래서요?" '그러면, 당신은 배를 한척 더 살수 있고, 그렇게 몇년을 하다보면 선단을 가진 사장이 될 수 있어요." "그래서요, 그런 다음에는요" "그러면 당신은 아침에 느즈막히 일어나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편안히 일을 시작하고, 일찍 일을 마치고, 저녁에는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죠..."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도 비슷한 구절이 나온다.
한니발보다 조금 이른 시대의 유명한 장군이었던 피로스 왕은 스타르타의 요청을 받고 로마를 공격하기로 한다. 그의 참모는 말한다. "왕이시여, 왜 지금 굳이 로마를 공격하려고 하십니까?" 피로스 왕은 "로마를 정복하고, 그리고나서 그 다음에는 시칠리아 섬을 정복하고, 그 다음에는 카르타고까지 점령하려고 한다." 참모는 다시 묻는다. "그 다음에는요?" "그 다음엔, 맛있는 맥주나 실컷 마시면서 석양이나 감상해 볼까..." 그러자 참모는 "그 일을 지금 그냥 하면 안될까요?"
행복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듯, 부자의 기준도 사람마다 다른 모양이다.
재테크, 그 달콤한 유혹으로 부터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부자가 아닐까 한다. 재테크는 돈을 좀더 벌어보겠다고 시작했다가, 잃은 돈을 만회하기 위해서 계속 하는 부자들의 머니 게임이라는 것이 작가의 지적이고 보면, 그 많은 전문가들이 피터지게 경쟁하는 그 속에서 나는 승리할 수 있다는 착각의 유혹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진정한 재테크 전문가가 아닐까?
가장 큰 재테크의 수단과 투자는 자기 자신의 일로 승부하는 것이라는, 그러니까 사업에서의 승리가 결국 가장 큰 부를 안겨다주는 재테크라고 말하는 작가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작가의 경제 지식 또한 나무랄데 없다. 너무 어려운 개념들만을 다룬 것도 아니고, 너무 쉽고 가벼워 식상한 것도 아닌, 적당한 수준의 경제 지식 설명은 작가의 의도와도 너무도 잘 맞는다. 부동산에 대한 견해, 금리에 대한 견해, 주식시장에 대한 견해등은 많은 사실적이고도 논리적인 근거들을 바탕으로 아주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감히, 말하자면, 2006년도 하반기의 책들 중 최고였다고 말하고 싶다. 그의 나머지 책들이 욕심이 날 정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