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 1
임종일 지음 / 한림원 / 199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책에 대해 쓰기 전에 먼저...

책을 읽었던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 먼저 말하고 싶다. 8.28 신광용 만행사건 (내 스스로는 그렇게 명명한다. 절대로 잊지 못할 일이기에, 무언가 identify해 놓는 일이 필요했다.) 이후, 그 편하지 않은 시간의 흐름속에 그래도 마음 잡을 수 있도록 해준 책이었다. 대학교때 몇편의 장편 역사 소설에 흠뻑빠져 지냈던 기억을 빼면, 최근 10년정도의 시간에서는 통 역사 소설의 재미와 그 독특한 매력에 빠져본적이 없던 것 같다. 대학교 도서관에서 뻔질나게도 많이 빌려보았던 책들이 있었는데... 아 맞다. 한명회를 참 재밌게 읽었었지... 어쨌든.

 이제 책으로 돌아가자면...지은이 임종일씨는 말한다. 원래 시인이 되고 싶었던 그는 광주 민주화 항쟁의 현장에서의 엄청난 충격으로 시를 쓰지 않기로 한다. 대신 역사 의식이 담겨있는 소설을 주로 쓰고 있는 셈이다. 이책 정도전도 그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대개의 역사 소설이 그렇듯이, 사실에 기초한 fiction (** 다빈지코드 이후 요즘에는 faction이라는 말도 생겼단다. fact와 fiction의 합성어라나...) 인 faction인 것이 사실이다. 깜짝 놀랄 만큼의 방대한 사전 자료 조사와 명확한 앞뒤가 없는 뒤죽박죽 자료들의 얼개를 짜맞추는 작업부터 빈 구석에다 채워넣는 작가적 상상력까지... 역사 소설의 작가들은 그야말로 거대한 프로젝트를 완전히 혼자서 수행하는 셈일 것이란 생각이다. 임종일씨의 경우도 그렇지 않았을까? 더군다나 정도전처럼 역사상 완전히 왜곡되어 있는 인물의 경우는 정확한 사료를 찾아내는 것 부터가 어렵고, 왜곡되어 있는 부분을 가려내는 일도 만만치 않은 노력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정도전.   중학교때인가, 국사 시간에 얼핏 들어본적이 있는 듯한 인물... 아, 맞다. 그때 삼봉이라는 호도 들어본 적이 있는 듯... (정말??? 들어보았나??) 뭐했던 사람인지? 어떤 인물이었는지에 대한 것들은 잘 모르고, 그저 생각나는 건, 조선 건국의 시대에 살았던, 이성계와 동시대의 사람이라는 것 정도. 그리고, 조금 더 어렵게 중학교때의 수업 내용을 끄집어 내 본다면... 정몽주, 이색등의 당대 최고의 학자와 고려 왕조에 대한 절개를 지킨 이들의 이름과, 야심가이며 변절자의 이미지로 묘사된 정도전이 있었다는 정도... 돌아보면 참으로 무지했던 고려사와 조선의 건국 과정에 대한 이해였다.  

몇해전 아주 재미있게 보았던 TV 사극의 "왕건"이 나의 고려사의 건국에 대한 지식의 전부일 뿐더러, 왕건 이후에도 거의 500년이나 지속된 고려 왕조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조선의 건국과정및 사실에 기초한 이해도 마찬가지이다. 이성계의 4째 아들이었던 이방원이 태종이 된 후 철저히 왜곡시켜 버린 역사적 사료들에 의해 상처받아 찌그러진 고려말과 조선초의 역사적 상황들에 대해, 이제서야 비로소 조금이나마 이해를 하게 되었으니...  

작가의 시각처럼... 정도전은 왕씨 왕조를 무너뜨리고, 이씨 왕조를 세울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민중을 억압하고 군림하는 고려 대신에, 백성을 위한 천년대계를 세우려고 했던 것이었던 것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혁명은 결국은 혁명을 주도했던 사람들의 자기 모순과 이기심에 의해서 늘 본색이 퇴색된다. 정도전의 높다란 이상과 꿈과 많은 시간의 노력들은 이방원등의 이기심과 권력욕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고 다시 인간의 서글픈 모습으로 되돌아가 버린다. 이런 것이 역사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나에게 익숙했던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중 가장 놀라왔던 인물 하나는 역시 정몽주이다. 포은 정몽주. 우리 역사에서는 지조와 절개를 지는 당대 최고의 인물로 알고 있지만, 이것이 태종 이방원의 교묘한 포장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높은 학식을 지닌 당대의 학자임에는 분명하지만, 내가 알고 있었던 그러한 고결한 인물은 아니었다니... 친구도 배신하고, 자신의 잇속을 챙길줄도 알고, 권력에 대한 야망도 있었던 인물이었으니...  

고려사의 마지막 100년 이상은 몽고 왕조인 원나라의 지배를 받는다. 책 읽기를 마치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고려시대중반 이후부터 시작된 중국에 대한 무조건적인 해바라기 사대 의식은 결국 몽고족인 원나라 시대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그후 명, 청에 이를 때까지 우리는 한번도 찍하는 소리조차 내지 못했을 뿐더러, 생각도 못해본 것이었다.  

오랜만에 맛 본 역사 소설... 힘들었던 지난 주의 시간을 잘 채워주었던 손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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