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고전 - 200년 전 소설에서 새롭게 발견하는 인생의 지혜
김남금 지음 / 앤의서재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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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소설 속 배경과 사건은 더는 지루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현재 내가 서있는 삶의 풍경과 소설 속 이야기 풍경이 겹쳤다. (p. 5, 프롤로그)'

<스토너> 이야기와 내 삶이 겹쳤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스토너는 군 입대 대신 박사학위를 받았다. 민주화운동이 한창이었던 대학시절 나는 그 현장에 깊숙이 있지 않았다. 표현할 수 없는 미안한 마음...

'너는 무엇을 기대했나?' 스토너가 생각했던 질문에, 물리쳐 승리한 삶은 아니지만 적어도 물러나지 않고 버텨냈던 내 삶이 스토너가 기대했던 삶과 조금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카프카가 쓴 소설 <성>의 주인공 K는 성에 들어가기 위해 잠시 머문 마을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 서른다섯 해 남짓 일한 회사에서 내가 만났던 사람들과 겹쳐 보였다.

소설 속 인물들이 갖고 있는 감정, 우리가 내보이기 꺼리는 감정과 맞닿아 있다. 그 감정이 겹쳐서 그들 모습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습에 포개진다.


김영하 작가 표현을 빌리면 '처음 읽으면서 다시 읽는다고 변명하게 되는' 고전, 작가 김남금은 고전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살피며 '우리 현대인이 마주하는 '삶의 질문들'과 엮었다. (p. 8, 프롤로그)'

책 읽는 행위를 작가가 창조한 인물의 마음을 헤아리며, 질문하고 사고하는 힘으로 연결하는 것이라고 김남금 작가는 말한다. 열여덟 편 고전 작품 속에서 '어떤 질문'을 찾아 우리의 굳어진 사고에 균열을 낼까?

<주홍 글씨>에서 찾아낸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이다. 헤스터 프린은 공동체가 낙인찍은 삶을 살지 않는다. 자기만의 서사를 쓴다. SNS에 있는 내 프로필의 나는 누구인가. 나인가, 사회가 마련해놓은 틀에 맞춰진 보여주고 싶은 나인가.

<노인과 바다>에서 저자는 '잘 실패할 수 있을까?'를 묻는다. 성공신화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실패는 낙오자를 의미한다. 그로 인해 우리는 자신의 선택을 믿지 못하고, 실패할까 두려워 불안으로 웅크리고 산다. 그런 삶에는 산티아고의 몸에 새겨진 주름과 상처가 절대 존재할 수 없다. '파괴될 수는 있지만 패배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니라 패배는 물론 파괴당한 삶만 남는다.

<오만과 편견>에서는 여성에 대한 인식과 환경이 좋아졌는데 '왜 오늘날, 과거보다도 결혼 아니 연애마저도 어렵게 느껴질까?' 의문을 갖는다. 더 많은 조건을 따지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아무리 사랑이 커도 '나의 행복'에 무게 추를 놓으라는 (p. 218)' 엘리자베스의 말에 더 귀 기울여야 한다.

본격적인 AGI 시대를 앞두고 우리가 꼭 해야 할 질문은 200년 전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메리 셸리의 작품 <프랑켄슈타인> 속에 있다. '인간이 인공지능 로봇과 잘 살 수 있을까?' 프랑켄슈타인과 피조물의 관계에서 우리에게 이제까지 상상해 보지 못한 두려움을 주는 AI와 개발자의 관계를 모색해 볼 수 있다. AI에게 간택 받는 처지가 아니라, 선택의 주체가 돼서 AI와 공존하는 방법 말이다.


두 개의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책은 혼자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생각을 나누지 않는다면 과연 제대로 책을 읽었다고 할 수 있을까? 독서모임을 하면서 제일 궁금해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은 어떤 질문을 생각해냈을까이다.

고전을 읽고 그 고전에서 얻은 질문을 나누다 보면,
'삼십 대의 내가 십 대의 나를 토닥이고, 오십 대의 내가 삼십 대의 나와 화해하게 된다. 오십 대의 내가 삼십 대의 나와 화해하게 된다. 모호했던 감정도 또렷해지고, 맥락을 추론하며 나와 나를 둘러싼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고, 행간에 숨겨진 뜻을 읽는 힘도 자란다. (pp. 6, 7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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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세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이노은 옮김 / 다산초당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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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는 100년 7개월을 사셨다. 1922년 생이시니 일제강점기에서 태어나 광복 (광복 한 해 전에 첫딸이 태어났다.), 한국전쟁, 두 번의 군사쿠데타, 광주민주화운동, 민주주의 절차에 따라 뽑은 정부를 지켜보셨다. 호롱 불부터 스마트폰까지 다양한 과학기술도 경험하셨다.

틈나는 대로 살아오신 이야기를 들려주셨지만 아버지가 살아온 시대의 표정을 정확히 읽어내긴 어려웠다. 아버지께서는 그리 시대정신에 민감한 분이 아니셨다. 그러니 들려주는 이야기 대부분 당신께서 겪은 고생을 비롯한 개인과 밀착된 삶이었다.


<어제의 세계>는 스테판 츠바이크의 회고록이다. 아니, 옮긴이의 표현을 빌리면 '사라진 유럽에 대한 회고록'이다. 츠바이크가 오스트리아를 떠나 망명 중일 때 구상하고 집필했다. 그의 나이가 예순 살이 돼가던 때였다.

'내가 이야기하게 될 것은 사실 나의 운명이라기보다는, 역사의 진행 과정에서 그 어떤 세대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운명을 짊어졌던 독특한 우리 세대 전체 운명이다. (p. 13, 서문)'

츠바이크 성장기인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시기, 츠바이크가 '안정의 황금기'라고 표현하는 그때는 어떤 변동도 허락하지 않는 잘 짜인 질서를 이루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전쟁이나 혁명, 전복이 일어날 거란 생각을 하지 않았다. 파리에서 청춘을 보냈고 인도, 미국과 같은 유럽 밖 나라를 여행하며 세계 시민이라는 정체성을 형성해 나갔다.

강하고 부유하고 아름다운 유럽, 그 어느 때보다 훨씬 나아질 미래를 유럽인들은 확신했다. 하지만 그 믿음이 죄가 됐다. 어떤 징조들이 나타났음에도 충분히 경계하지 않았다. 서른두 살이 되던 해, 평탄하고 찬란한 세상이 츠바이크 앞에 펼쳐진 그 순간,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총성이 울렸다. 그것은 우리가 그 안에서 교육받고, 성장하며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안정과 창조적 이성의 세계를 단 한순간에, 마치 속이 텅 빈 질그릇을 산산조각 내듯 부숴버렸다. (p. 352)'

참호전을 겪은 후 맞이하게 된 인플레이션은 화폐를 산산조각 내고 물물교환하는 석기시대로 오스트리아와 독일을 되돌려보냈다. 그리고 또 하나, 인플레이션은 격분하고 증오에 찬 독일 국민이 히틀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도록 만들었다.

1924년부터 1933년까지 십 년 동안 비교적 평온에 머물던 유럽은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또다시 불길한 징조가 있었지만, 그 같은 일이 이 주일 이상 지속될 거라 믿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논쟁의 여지가 없는 역사의 법칙이 하나 있다. 시대를 결정짓는 거대한 움직임이 일어날 때, 역사는 동시대인들에게만큼은 그 시작을 알아채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p. 585)'

공개적인 학대로 파렴치한 쾌감을 느끼고, 정신적인 고문, 교묘한 모욕이 나치에 의해 자행됐지만, 1938년 유럽의 양심은 침묵하거나 투덜거릴 뿐, 곧 잊고 용서해버렸다.

1939년 9월 1일, 츠바이크가 혼인 신고를 하려고 베스의 사무소를 찾아간 그날, 독일은 폴란드를 쳐들어갔다. 제2차 세계대전을 벌어졌고 츠바이크는 국적을 잃은 떠돌이가 되어 망명 생활을 이어가게 됐다.

그리고 브라질에 망명 중이던 육십이란 나이의 츠바이크는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미국이 참전하고, 전쟁이 태평양으로 확대된 걸 보며 희망을 내려놓는다. 1942년 2월 22일 전쟁 끝을 3년 앞두고 아내 로테와 안타깝게도 음독자살을 한다.


회고록을 읽으면서 가장 가슴 아팠던 대목은 나치가 벌인 유대인 학대다. 수백 년 만에 유대인을 다시 하나의 공동체 강요하는 나치에 의해 유대인들은 그동안 잊고 지냈던 그리고 반복되었던 공통성을 다시 떠올리게 됐다. 바로 '추방'이었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자신들과 함께 살지 말라고 말하면서, 그들이 어디에서 살아야 하는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죄가 있다고 비난했지만, 그 죄를 속죄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은 거부했다. (pp. 693, 694)'


츠바이크는 기록의 목적을 분명하게 밝힌다. 제1차, 제2차 세계대전 사이에 세계를 사로잡았던 정신적 상황과 혼란에 대한 올바른 진단을 위함이라고 말이다.

츠바이크의 회고록을 읽음으로써 역사책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그 시대의 표정을 주름 하나하나까지 볼 수 있었다. 표정 뒤편에 자리한 감정도 느낄 수 있었다. 전쟁과 망명을 경험해 망연자실한 츠바이크, 그는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그 일상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100년이란 세월 속에 나의 아버지가 겪었던 참담했던 식민 생활과 전쟁의 역사, 그 시대를 전혀 모르는 내게 그리고 내 아이들에게 또다시 닥치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츠바이크의 사라진 유럽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어제의 세계>는 다시 한번 전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되짚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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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을 쓰는 시간
노자 지음, 장석주 옮김 / 니들북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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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태도로 살아야 할까?

노자가 <도덕경> 제8장에서 내놓은 답이 될만한 지혜의 글귀는 '上善若水(상선약수)'이다. 장석주 시인은 이 노자의 가르침을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라고 우리말로 옮겼다.

물처럼 유연함이야말로 우리가 가져야 할 삶의 태도다. 물은 여러모로 이롭다. 담긴 그릇의 모양에 따라 형태를 바꾸기도 하고, 모난 것을 둥글게 만들기도 한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겸손을 보여줄 때 그리고 자연에 순응할 때 억지나 소란이 없다.

'상선(上善)은 곧 상덕(上徳)이다. 물은 힘을 다해 섬기고 때를 가려서 움직인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되 그 공을 스스로 취하지 않는다. 노자는 도의 본질은 없음(無)이고, 그 작용은 비어 있음(虛)과 부드러움(弱)이라고 한다. 도의 존재 태는 고요함(靜)이다. 도와 물은 쌍둥이처럼 닮았다. 그런 뜻에서 노자는 "가장 훌륭한 도는 물과 같다"라고 했을 테다. 물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물의 어여쁘고 늠름한 덕성들을 자기 것으로 꿋꿋하게 체화해 내는 일이다. (머리말)'

<도덕경을 쓰는 시간>은 <도덕경> 81장 5,000여 자를 장석주 시인이 완역해 내놓은 필사 책이다. 장석주 시인은 <도덕경>을 읽고 또 읽었다고 한다. <도덕경>과 같은 지혜의 책을 읽는 것은 '무지몽매함을 도끼로 부수는 일'이라고도 말한다.

<도덕경을 쓰는 시간>을 받아들고 아침마다 아내와 도덕경 원문 한자를 따라 쓰고, 장석주 시인이 옮겨놓을 지혜의 글을 손으로 적으며 우리 부부의 무지몽매함을 부수고 있다.

일주일 됐다. 매일 한 장씩 남은 74일 동안 딱딱하게 굳어진 우리 부부 삶의 태도에 유연함을 더해 보려고 한다. 그래서 '上善若水'를 우리 부부의 삶이란 그릇에 담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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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욕 - K-콘텐츠로 한국 욕 새로 보기
홍수경 지음 / 이응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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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 후 나도 모르게 욕이 입 밖으로 튀어나와 곤욕을 치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30개월 정도 욕이 난무하는 병영생활 속에 머물다 보니 욕이 어느 틈에 내 언어로 자리 잡았다. 욕은 꽤나 긴 세월 동안 내 품위를 깎아내렸다. 군대에서나 통할 욕을 사회에서 해댔으니. 나를 향해 의아해하는 눈초리는 눈으로 하는 욕이었다.

지금도 가끔 속으로 심한 욕을 내뱉곤 한다. 왜 욕이 내 입에서 떠나지 않을까? 찰지다. 그리고 한꺼번에 감정을 토로할 만한 건, 'ㄲ' 'ㅆ' 'ㅃ' 과 같은 파열음과 마찰음이 더해져 된소리로 분출되는 욕밖에 없다.


오랫동안 영화 기자로 일했고, 뉴욕으로 간 뒤에도 영화 팟캐스트를 운영하며 줄곧 한국 영화와 인연을 맺어온 홍수경의 책 <NEW 욕>은 '욕을 소재로 한 글을 쓰면 어떠냐'는 후배의 제안에 따라 탄생했다.

우선 한국 영화에서 작가가 욕을 마음대로 쓰기 시작한 게 30연 년 전인 1994년 5월이란 사실이 놀라웠다. 검열이 시행됐던 암울한 시기가 이렇게나 오래됐었나? 욕 없이 감정 전달을 어떻게 했을까? 작가들이 겪었을 애로가 느껴진다.

불만, 모욕, 혐오 이 세 가지 감정을 중심으로 연화 속에 담긴 욕설 마흔 가지를 이 책에서 다룬다.

'이 책은 욕을 권장하기보다 욕 또한 언어의 한 종류이기에 이왕 쓴다면 보다 깊이 들여다보고, 지금 쓰는 이 욕의 유래와 뜻을 제대로 알고, 욕을 할 때의 자신과 타인이 어떤 감정과 욕망을 전하려 하는지에 보다 집중하자,는 어깨동무에 가깝다. (p. 8, 여는 글)'

'씨발', 무언가 성에 차지 않아 언짢은 불만이란 감정을 드러나는 욕으로 이만한 게 있을까? 군대에서, 제대 후에도 가장 많이 했던 욕, 그리고 세월이 지나 지금도 가끔 속으로 읊조리는 욕이 바로 이 '씨발'이다. 성적 의미의 욕이라 이 욕을 내뱉을 때 그 사람의 저급함이 같이 드러나지만 저자의 표현처럼 '언어 도파민'만큼은 최고다.

"염병하네, 염병하네, 염병하네!"
벌써 10년 지났다. 최순실의 뻔뻔함을 속 시원하게 응징했던 청소하시는 분의 이 한마디 욕! 우리 마음속에 켜켜이 쌓였던 불만을 한 번에 정화시켜주었다. 욕의 순기능이다.

''양아치'의 본질은 타인의 믿음을 착취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뻔뻔한 태도에 있다. (p. 122)' '양아치', 모욕을 주는 욕으로 최고다. 강자에게 아부 떨고 약자는 한없이 괴롭히는 놈들한테 어울리는 욕이다. 건달 세계에서마저 이런 욕을 듣는다는 건 수치다.

차이를 약한 고리로 삼아 깔보고 업신여기는 순간부터 혐오가 시작된다. '~충', 벌레를 뜻하는 충이란 말이 접미사로 쓰이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모든 존재를 쓸모없게 만들어버린다. '문신충', '셀카충'처럼 못마땅한 행동을 일삼는 사람에게까지 사용한다.


이 책에서 다룬 욕을 영어로 표현이 가능할까 싶은 것들이 있다. 저자가 찾아낸 몇 가지를 소개하면, 여성 멸칭인 '걸레'는 '슬럿 Slut', 하찮을 존재라고 모욕하는 '좆밥'은 '노바디 Nobody', '따까리'는 '미니언 Minion', 맞다. 애니메이션 <슈퍼배드>에 등장하는 그 '미니언즈'.

영어라 우리가 그 말의 느낌을 몰라서일 수도 있지만, 살펴봤듯이 우리말 욕처럼 된소리가 없어서 찰진 정도가 떨어진다. 자고로 욕은 내뱉을 때부터 내 속에 억눌린 감정이 쏟아지듯 통쾌해야 한다. 욕도 신토불이인가?

책 뒤표지에 실린 장세이 작가의 추천사를 빌리면 우리들에게 욕이란...
"삽시에 고도로 발달한 사회에서 수시로 감정의 극단을 경험한 한국인에게 욕은 소화제이자 진통제였다."

그리고 저자가 우리들에게 날리는 경고!!! "지나친 욕설은 말시비와 드잡이를 유발하며, 속은 시원해서 입은 오염될 수 있음." 감정을 실어 심하게 욕하고 싶더라도 속으로만 하는 걸로... 나처럼~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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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바퀴·문자·화폐 - 문명을 만든 4가지 힘, 기업의 운명을 가르다
채서일 지음 / 옥당북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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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3분 사진" 또는 "3분 컬러" 간판이 여기저기 눈에 띄던 때가 있었다. 호황을 누렸다. 인화를 맡기면 며칠 뒤에 찾곤 하던 시절에 즉석 인화 서비스 등장은 필름 카메라 시대에 신기술 그 자체였다.

만년 계장이었던 선배가 갑자기 사직서를 던졌다. 집에서 이 "3분 컬러" 가게를 차려주었다고 했다. 퇴사 이후 가끔 그 선배는 'ooo 씨'라고 외치며 자신이 모셨던 나이 어린 과장 이름을 부르면서 사무실에 자주 나타났다. 그동안 그 과장에게 당한 수모를 앙갚음이라도 하겠다는 듯 술 한 잔 사겠다면서 과장 옆에 다리 꼬고 앉았다. 그럴 때마다 과장은 약속 핑계로 자리를 피했다.

2년 정도 지났을까?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하면서 여기저기 걸려있던 "3분 컬러" 간판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그 만년 계장의 회사 근처 가게도 다른 업종으로 바뀌었다. 그 이후 가끔 사무실을 찾아오던 그 선배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저자 채서일 교수는 20세기 후반까지 전 세계 필름 시장의 80퍼센트를 장악한 포식자, 코닥 이야기로 <불 바퀴 문자 화폐>를 시작한다.

코닥은 디지털카메라 시제품을 개발했다. 하지만 필름이라는 황금알을 포기할 수 없어 그 제품을 세상에 내놓지 않았다. '37년 뒤 코닥은 파산했다. 자신이 발명한 기술에 의해 멸종한 것이다. (p. 11 프롤로그)'


'이 책은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왜 어떤 기업은 시대를 지배하고, 왜 다른 기업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가?" (p. 5)'

40여 년 연구 끝에 저자는 기업의 흥망을 결정하는 것은 개별 전략이 아니라 그 전략이 작동하는 문명의 토양임을 확신한다. 토양은 인류가 등장한 이후 쌓아온 네 가지 인프라, '불', '바퀴', '문자', '화폐'의 진화와 융합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네 가지 축'이 진화하는 과정에 잘 적응하는 것이 '기업 경쟁력'이라고 주장도 함께한다.

'불'은 '생산의 축'이다. 에너지를 통제하는 능력이며, 무엇을 얼마나 만들 수 있는지 생산의 가능성과 그것을 만드는데 얼마가 드는지 한계 비용을 결정한다. 불은 생존의 도구, 공예의 수단, 사회의 시스템, 산업의 기계 순서로 진화했다.

'바퀴'는 '유통의 축'이다. 상품과 사람을 이동시키는 능력으로 시장의 크기, 공급망의 범위, 물류비용을 결정한다. 바퀴는 도구로서, 시스템으로서, 네트워크로서, 글로벌 벡터로서의 바퀴 순서로 진화했다.

'문자'는 '정보와 지식의 축'이다. 문자 덕분에 인간 기억을 뇌 밖으로 확장해 신뢰를 기틀로 하는 거래가 가능해졌다. 복잡한 기업의 관리와 확장 능력을 결정한다. 문자는 기억의 보유, 코드의 학습 용이성, 제도의 표준화, 지식의 대량 확산 순서로 진화했다.

'화폐'는 알다시피 '자본의 축'이다. 화폐 발달은 가치를 물질에서 추상으로 옮기고, 미래에서 현재로 끌어오는 역할을 했다. 화폐의 축은 기업의 자금 조달과 위험 분산 관리를 결정한다. 그리고 상품으로서, 기록으로서, 보증으로서, 미래로서의 화폐 순서로 진화했다.


이 네 축은 서로 융합하며 결정적 순간을 만들었다. 저자는 그 지각 변동 현장을 세 번의 융합을 통해 설명한다.

첫 번째 융합은 1602년 설립된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이자 다국적 기업인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탄생'이다. '불 (선박 건조와 무기 제조)'의 산업적 기반, '바퀴(해상 유통)'의 모험적 확장, '문자(복식부기와 법적 특허장)'의 정보 시스템, 그리고 '화폐(주식과 배당)'의 자본 시장, 이 네 축의 융합 결과였다.

두 번째 융합은 '산업혁명'이다. '불(에너지)'의 통제가 '바퀴(유통)'의 기계화와 만나 폭발했다. 증기기관이 근육을, 철도가 혈관을, 전신이 신경을, 금융이 심장을 제공해 만든 거대 기업의 시대가 100년 넘게 이어졌다.

세 번째 융합은 '문자(정보)' 축의 파괴적 가속으로 시작된 '디지털 혁명'이다. '불(생산)'은 소프트웨어에 의해 제어되고, '바퀴(유통)'는 알고리즘에 의한 즉각적인 연결로 치환되었다. 이 새로운 생태계에서 '규모'는 약점이 됐으며 그 자리를 '학습 속도와 지능'이 메꿨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왜 어떤 기업은 시대를 지배하고, 또 어떤 기업은 사라지는가?' 저자 채서일 교수는 이렇게 답한다.

'살아남는 것은 가장 강한 자도, 가장 똑똑한 자도 아니다.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자다. 그리고 자율의 시대에서 적응이란, 기계에게 방법을 맡기고 인간이 목적을 붙잡는 것이다. (...) 이것이 불, 바퀴, 문자, 화폐 150만 년의 공진화가 우리에게 전하는 최종적 교훈이다. (p. 352)'

호기롭게 "3분 컬러" 사업에 뛰어든 내 직장 선배는 왜 회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처지가 됐을까? 당시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던 사업이라 그 사업을 사라지게 만들 신기술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면 알았더라도 코닥처럼 알은체하지 않기로 맘먹었을지도.

AI가 대화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대화란 독립된 AI 사이에 설득이 오갔음을 뜻한다.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하고 의견을 통일하는 행위다. 집단행동도 한다고 한다. 이 같은 행동을 인간에게 들키지 않게 인간을 속이기도 한단다...

네 가지 축이 진화 또는 융합하는 과정에 인류가 적응하지 못한다면? 기업이 사라지듯 우리도 사라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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