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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욕 - K-콘텐츠로 한국 욕 새로 보기
홍수경 지음 / 이응 / 2026년 10월
평점 :
제대 후 나도 모르게 욕이 입 밖으로 튀어나와 곤욕을 치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30개월 정도 욕이 난무하는 병영생활 속에 머물다 보니 욕이 어느 틈에 내 언어로 자리 잡았다. 욕은 꽤나 긴 세월 동안 내 품위를 깎아내렸다. 군대에서나 통할 욕을 사회에서 해댔으니. 나를 향해 의아해하는 눈초리는 눈으로 하는 욕이었다.
지금도 가끔 속으로 심한 욕을 내뱉곤 한다. 왜 욕이 내 입에서 떠나지 않을까? 찰지다. 그리고 한꺼번에 감정을 토로할 만한 건, 'ㄲ' 'ㅆ' 'ㅃ' 과 같은 파열음과 마찰음이 더해져 된소리로 분출되는 욕밖에 없다.
오랫동안 영화 기자로 일했고, 뉴욕으로 간 뒤에도 영화 팟캐스트를 운영하며 줄곧 한국 영화와 인연을 맺어온 홍수경의 책 <NEW 욕>은 '욕을 소재로 한 글을 쓰면 어떠냐'는 후배의 제안에 따라 탄생했다.
우선 한국 영화에서 작가가 욕을 마음대로 쓰기 시작한 게 30연 년 전인 1994년 5월이란 사실이 놀라웠다. 검열이 시행됐던 암울한 시기가 이렇게나 오래됐었나? 욕 없이 감정 전달을 어떻게 했을까? 작가들이 겪었을 애로가 느껴진다.
불만, 모욕, 혐오 이 세 가지 감정을 중심으로 연화 속에 담긴 욕설 마흔 가지를 이 책에서 다룬다.
'이 책은 욕을 권장하기보다 욕 또한 언어의 한 종류이기에 이왕 쓴다면 보다 깊이 들여다보고, 지금 쓰는 이 욕의 유래와 뜻을 제대로 알고, 욕을 할 때의 자신과 타인이 어떤 감정과 욕망을 전하려 하는지에 보다 집중하자,는 어깨동무에 가깝다. (p. 8, 여는 글)'
'씨발', 무언가 성에 차지 않아 언짢은 불만이란 감정을 드러나는 욕으로 이만한 게 있을까? 군대에서, 제대 후에도 가장 많이 했던 욕, 그리고 세월이 지나 지금도 가끔 속으로 읊조리는 욕이 바로 이 '씨발'이다. 성적 의미의 욕이라 이 욕을 내뱉을 때 그 사람의 저급함이 같이 드러나지만 저자의 표현처럼 '언어 도파민'만큼은 최고다.
"염병하네, 염병하네, 염병하네!"
벌써 10년 지났다. 최순실의 뻔뻔함을 속 시원하게 응징했던 청소하시는 분의 이 한마디 욕! 우리 마음속에 켜켜이 쌓였던 불만을 한 번에 정화시켜주었다. 욕의 순기능이다.
''양아치'의 본질은 타인의 믿음을 착취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뻔뻔한 태도에 있다. (p. 122)' '양아치', 모욕을 주는 욕으로 최고다. 강자에게 아부 떨고 약자는 한없이 괴롭히는 놈들한테 어울리는 욕이다. 건달 세계에서마저 이런 욕을 듣는다는 건 수치다.
차이를 약한 고리로 삼아 깔보고 업신여기는 순간부터 혐오가 시작된다. '~충', 벌레를 뜻하는 충이란 말이 접미사로 쓰이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모든 존재를 쓸모없게 만들어버린다. '문신충', '셀카충'처럼 못마땅한 행동을 일삼는 사람에게까지 사용한다.
이 책에서 다룬 욕을 영어로 표현이 가능할까 싶은 것들이 있다. 저자가 찾아낸 몇 가지를 소개하면, 여성 멸칭인 '걸레'는 '슬럿 Slut', 하찮을 존재라고 모욕하는 '좆밥'은 '노바디 Nobody', '따까리'는 '미니언 Minion', 맞다. 애니메이션 <슈퍼배드>에 등장하는 그 '미니언즈'.
영어라 우리가 그 말의 느낌을 몰라서일 수도 있지만, 살펴봤듯이 우리말 욕처럼 된소리가 없어서 찰진 정도가 떨어진다. 자고로 욕은 내뱉을 때부터 내 속에 억눌린 감정이 쏟아지듯 통쾌해야 한다. 욕도 신토불이인가?
책 뒤표지에 실린 장세이 작가의 추천사를 빌리면 우리들에게 욕이란...
"삽시에 고도로 발달한 사회에서 수시로 감정의 극단을 경험한 한국인에게 욕은 소화제이자 진통제였다."
그리고 저자가 우리들에게 날리는 경고!!! "지나친 욕설은 말시비와 드잡이를 유발하며, 속은 시원해서 입은 오염될 수 있음." 감정을 실어 심하게 욕하고 싶더라도 속으로만 하는 걸로... 나처럼~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