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렌디피티 - 위대한 발명은 ‘우연한 실수’에서 탄생한다!
오스카 파리네티 지음, 안희태 그림, 최경남 옮김 / 레몬한스푼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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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4년, 영국의 작가이자 미술사가인 호레이스 월폴 Horace Walpole 은 우리가 무언가를 찾다가 실수로 다른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을 묘사하기 위해 '세렌디피티 serendipity'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p. 8)'

<세렌디피티 Serendipity>는 엄청난 성공을 거둔 유명한 음식과 음료에 관한 이야기다. 실수나 착오, 사고를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얻은 위대한 발견으로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들었는지 48편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브라우니는 초콜릿 케이크 반죽에 효모 넣는 것을 깜박한 파티시에 덕분에 탄생했다. 아이스크림 서빙용 접시가 동이 났지만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줄지 않았다. 옆 부스의 요리사 함위가 잘라비아를 콘 모양을 말아서 건넸다. 원뿔 모양의 아이스크림콘은 뾰족한 끝까지 다 먹을 수 있어서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다.

'"가나슈 Ganache!" 어느 유명한 제과 장인이 초콜릿 조각이 담긴 그릇에 무심결에 끓는 우유를 쏟아부은 한 순진한 견습생을 향해 내지른 소리였다. (p. 178, 초콜릿 가나슈)'

콩국을 만들다가 실수로 천일염을 넣는 바람에 두부를, 아몬드 케이크를 바쁘게 만드느라 밀가루를 빼고 만들어 카프리 케이크가 이 세상에 선보였듯 위대한 발명은 우연한 실수나 부주의에서 탄생했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쓰는 동안 '궁극의' 세렌디피티가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세렌디피티는 아마도 인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있다. (p. 9)'

만약 세상에 모든 것이 완벽했다면 어땠을까? 지루할 것이고 성장을 위한 자극제도 없었을 것이라는 게 이 책의 저자인 오스카 파리네티의 생각이다. 불완전함이 더 나은 것을 만든다. 우리 인간도 이를 증명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다. 우리가 세렌디피티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왜 언제부터 우리가 두발로 서서 걷는 것을 선택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로 인해 허리 통증, 요통, 신경통 등 여러 통증을 겪게 됐다. 상체를 세움으로써 드러난 머리를 지탱하는 목의 경동맥과 장기가 있는 부드러운 복부는 우리를 잡아먹으려는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동물들이 노리는 치명적인 약점이 돼버렸다. 출산의 고통도 얻었다. 직립보행은 대표적 불완전함이다.

하지만 직립보행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적응한 결과는 엄청나다. 장거리 달리기에 적합하고 손과 팔을 자유롭게 만들어 도구를 다룰 수 있게 됐다. 돌연변이도 DNA의 입력 오류라 할 수 있지만 돌연변이가 없었다면 진화도 없었을 것이다.

'자연의 우연이 우리를 창조했고, 이제 우리는 우연을 이용해 자연을 이해합니다. (p. 408)'

인간만이 스스로 불완전하다는 것과 스스로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안다. 불을 발견해 익혀 먹는 등 문화나 기술 발명으로 유전자를 바꾸기까지 했다. 인간이 지닌 가장 매혹적인 세렌디피티다.

'세상이 거꾸로 뒤집힌 셈이죠, 문화가 먼저, 생물학이 그 뒤를 따른 겁니다. (p. 411)'
어쩌면 우리 몸에 좋지 않은 지방과 당분도 적응해 우리 몸에 이롭게 만들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 인류의 세렌디피티는 예상치 못한 상황 속에서도 두려워 벌벌 떠는 대신 실수에서 배움을 얻는 열린 마음을 가진 결과다. 공동선을 우선으로 했고, 섣부른 확신보다는 포기하지 않고 의심을 거듭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불완전하지만 세렌디피티를 거듭해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우리, 지금 직면한 기후 위기는 어떤 세렌디피티로 인류 스스로를 구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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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집중력 (아이스 에디션) - 집중력 위기의 시대,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법
요한 하리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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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삼성은 임원들의 주 6일 근무를 공식화했다. 주말에 출근해 무슨 일을 할까? 일상 업무가 아니라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업무를 고민하는 시간으로 활용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직원들 없이 임원 혼자 출근해 그런 업무를 할 수 있을까? 창의, 도전이라면 집중력이 필요한 일인데 과연 가능할까?

그런가 하면 지난해 윤정부는 주 69시간(6일 기준)을 허용하는 근로시간 개편안을 입법예고했었다. 다행히 제동이 걸렸지만, 주 5일에서 주 4일 근무로 움직이는 흐름에 역행하는 발상이다.

240명이 일하는 회사 퍼페추얼 가디언의 대표 앤드루는 주 4일 동안 일하도록 바꾸면 어떻게 될지 궁금했다. 한 달의 준비 시간을 준 다음 시행한 결과 직원들의 '정신 산만'을 보여주는 모든 징후가 급격히 줄었다. 소셜미디어를 하는 시간이 35퍼센트 줄었다. 참여도와 협동력은 30~40퍼센트 증가했고, 스트레스는 15퍼센트 하락했다.

'그는 추가로 생긴 휴식 시간이 직원들에게 두 가지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먼저 이 시간은 "미쳐 날뛰는 현대 생활에서 사라졌던 타인과의 관계를 다시 맺을 수 있게 했다. (...) 둘째로, "직원들은 본인들이 '나만의 시간'이라 부르는 것이 생겼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p. 297)'

이런한 연구와 사례가 수두룩함에도 삼성과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 사례를 볼 때 일하는 방식을 바꾸기란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다시 말해 개인의 힘으로 맞서는 건 달걀로 바위치기란 생각이 든다.


2023년 최고의 화제작이며 세계적으로 찬사가 쏟아진 <도둑맞은 집중력>은 집중력을 상실한 이유와 그 집중력을 어떻게 하면 다시 찾을 수 있는지를 다룬 흥미로운 분석이 담긴 책이다. 요한 하리는 집중력을 잃게 된 원인의 책임을 개인이 아닌 시스템에서 살펴본다.

무엇 때문에 우리는 집중력을 도둑맞았을까? 요한 하리는 그 원인으로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다는 착각, 잃어버린 몰입의 즐거움, 떨어진 수면의 질, 스크린에 빼앗긴 소설 읽기 능력, 딴생각을 할 수 없는 상황, 무한 스크롤로 우리들을 통제하는 거대 테크 기업의 권력, 분노에 빠지게 하는 알고리즘, 과도한 노동시간, 값싸고 형편없는 식사, 놀이를 빼앗아 간 학교 교육 등을 꼽는다.

'사람들이 꼽은 집중력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핸드폰이 아니었다. 응답자의 48퍼 센트가 지목한 가장 큰 원인은 스트레스였다. 두 번째 이유는 출산이나 노화와 같은 생활 변화로, 이 역시 48퍼센트의 지목을 받았다. 세 번째는 43퍼센트가 선택한 수면의 어려움 및 수면 방해였다. 핸드폰은 37퍼센트의 선택을 받아 4위에 올랐다. (p. 270)'

이 모든 원인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배후에 사회적 시스템이 있다. 시스템 권력을 개인을 설득하기 위해 잔혹한 낙관주의를 들고나왔다.

'잔혹한 낙관주의는 비만이나 우울, 중독처럼 우리 문화에 근본 원인이 있는 거대한 문제와 관련해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언어로 단순한 개인적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을 말한다. (p. 233)'

저자는 '잔혹한 낙관주의'는 얄팍한 해결책으로 '문제는 시스템에 있는 게 아니라 네 안에 있어'라고 우리에게 속삭인다고 말한다. 그래서 집중력을 되찾으려면 개인이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임을 인정하고, 모두 협력해서 장애 세력을 하나씩 해체할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 요한 하리는 집중력 높이기 위해 개인적으로 어떤 변화를 만들었을까? 우리도 적용할 만한 여섯 가지를 제시한다.

사전 약속으로 지나친 전환을 멈추려 노력한다. 스스로 게으르고 부족하다고 자책하기보다는 당장 할 수 있는 몰입 상태를 추구한다. 소셜미디어를 주 단위로 나누어 6개월은 사용하지 않는다. 딴생각을 하도록 생각이 배회하게 내버려둔다. 여덟 시간 잠잔다. 아이들이 마음껏 놀도록 시간을 준다.

도둑맞은 집중력을 되찾기 위해 함께 싸워서 얻어야 할 것도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알고리즘에 중독된 이상 집중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를 통제하는 감시 자본주의를 금지해야 한다. 앞서 이야기했던 주 4일 제도도 도입해야 한다. 늘 탈진 상태에 있는 한 주의를 기울일 수 없다. 아이들의 건강한 집중력 발달을 위해서는 자유롭게 놀 수 있는 어린 시절을 아이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지금 꼭 집중력을 회복해야만 할 이유가 있다고 강조한다. 기후 위기, 깨끗한 녹색 에너지로 사회에 동력을 공급하려면, 정신없이 3분마다 작업 전환을 하고 알고리즘이 주는 분노로 서로 다툴 시간이 없다. 집중해서 분별력 있는 대화를 나누며 명료하게 사고할 수 있어야 기후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

'제임스 윌리엄스가 한 말을 떠 올렸다. "나는 중요한 정치적 투쟁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었는지. 어쩌면 인간 집중력의 해방이 우리 시대를 정의하는 도덕적, 정치적 투쟁일지 모른다. 이 투쟁의 성공이 선행되어야만 사실상 다른 모든 투쟁이 성공할 수 있다." (p. 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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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매일매일 - 빵과 책을 굽는 마음
백수린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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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카페 앞에 베이커리라는 글자가 붙은 곳이 생기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카페가 많던 시절엔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보곤 했다면, 이제는 베이커리 카페에서 요리조리 살피며 고른 빵과 음료를 놓고 책을 읽거나 책 이야기를 나눈다.

'이 작은 책에 실린 글들과 소개된 책들이 한 덩이의 갓 구운 빵처럼 당신의 마음속 허기를 조금이라도 채울 수 있기를 (p. 7, 새로 쓰는 작가의 말)'

<다정한 매일매일>은 빵을 핑계 삼아 책을 소개하는 백수린 작가의 서평집이다. 빵에 대한 백수린 작가의 TMI를 더하자면, 빵을 좋아하긴 하지만 찾아다닐 만큼은 아니라고 한다. 다만 빵 만드는 건 좋아하고 나름 철학이 있다.

'손으로 반죽하고, 부풀어 오르길 기다리는 시간을, 실패해도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질 수 있는 그 시간을 허락하는 일이 바쁘고 각박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내게는 꼭 필요한 일이다. (p. 6, 새로 쓰는 작가의 말)'

느긋하게 기다릴 수 있는 시간, 비단 작가에게만 필요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조금이라고 짬이 나면 뭔가 꼭 채워 넣어야 안심이 되는 세상, 우리 모두에게 반죽이 부풀어 오르길 기다리는 여유가 필요하다.


빵 냄새가 나는 글, 그리고 여러 작가의 작품에서 고소하고, 달콤하고, 향긋한 빵 냄새를 찾아내고야 마는 백수린 작가, 각양각색의 빵 냄새만큼이나 다양한 작가의 묘사는 모두 필사해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다른 이들의 아우성에 가려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채 불안과 두려움의 파도에 쉽게 휩쓸려버리는 시기가 이십 대이기도 하니까. (p. 54)'

우리 집의 이십 대 두 아이는 부모의 아우성을 어떻게 처리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는지 궁금하다. 이십 대였던 적이 있었던 나와 아내는 분명 그때 그 아우성을 소음이라 여겨 귀를 틀어막았을 텐데. 누구나 누려 할 행복과 불행의 몫이 있듯이 이십 대도 그 시절에만 누릴 수 있는 몫이 있다. 주변의 아우성에 휩쓸리면 누리지 못하고 지나쳐 버릴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11월은 이상한 달이다. 마음이 온통 스산해지곤 하기 때문이다. (...) 헐벗은 나무, 매섭게 추워지는 공기,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달력의 뒷장. (p. 81)'

11월이 왜 유독 공허한지 그 이유를 알겠다. 열두 달 가운데 빨간 날이 없는 달. 마지막 달 12월보다 11월은 남은 한 달이 있어 더 초조했던 것이다.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기에도 어정쩡한 11월, '얼마 남지 않는 달력의 뒷장' 느낌이 딱 맞다.


표현할 말이 마땅치 않아 어딘가 처박아 놓았던 기억을 백수린 작가의 글로 인해 찾을 수 있었다.

'그런 단어가 있다. 별다른 추억이 생기기도 전에 이미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단어들. 내게는 '다방'이 그렇다. 똑같이 커피와 차를 마시는 공간을 가리키는 단어지만 '커피숍'이나 '카페'와 달리 '다방'이라고 발음할 때만 환기되는 향기와 공기의 질감이 있다. (p. 172)'

커피숍, 카페, 다방 모두를 겪어본 나는 안다. 향기와 공기의 질감이 어떻게 다른지 말이다. 취업한 후 첫 맞선 장소였던 인천의 다방. 담배 냄새와 커피, 쌍화차 등이 섞인 쾌쾌한 공기가 일상이었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영화의 한 장면으로나 보고 그 냄새를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1호선을 타고 멀리멀리 가기 때문에 알게 된 기쁨도 있다. (...) 책을 읽다 보면 공기가 바뀐 것이 느껴질 때가 있다. 이것은 비 냄새야. 고개를 들어보면 아니나 다를까, 열린 지하철 문 너머에서 비가 내리고 있다. (p. 204, 205)'

1호선을 타고 대학교를 다녔던 터라 이 글을 읽으며 대학 생활 4년을 통째로 살려낼 수 있었다. 공기가 다른 느낌, 난 안다. 심지어 역마다 냄새가 달랐다. 1호선 소나기 냄새는 온갖 생각을 떠올리게 했다. 캠핑 중에 만난 소나기, 바닷가를 거닐다 만난 소나기까지도. 그 냄새도 서로 달랐다.


백수린 작가와 달리 나는 빵을 무척 좋아하고 빵 만드는 건 자신 없다. 고등학생 시절엔 돈이 없어 양껏 먹고 싶었지만 구색으로 빵 몇 개만 앞에 놓고 여학생을 만났다. 지금은 여기저기에 근사한 베이커리 카페가 많다. 그곳엔 내가 좋아하는 빵 냄새와 함께 각양각색의 빵들이 즐비하다. 이젠 당연히 고등학생 시절보다 여유가 있으니 빵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

빵 고르듯 읽는 책 <다정한 매일매일>이다. 백수린 작가 써서 보내는 편지글에는 고소하고, 달콤하고, 향긋한 빵 냄새가 난다.

'소설가가 된 이후, 이따금씩 친구의 그 말이 떠오를 때가 있다. 나에겐 찻집도 없고, 편지를 보내오는 사람도 없지만, 나는 어쩌면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향해 계속 답장을 써 보내는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p. 262, 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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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다정한 책장들 - 24개 나라를 여행하며 관찰한 책과 사람들
모모 파밀리아 지음 / 효형출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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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사는 가난한 작가 헬레인(앤 밴크로프트)은 우연히 영국 런던 '채링크로스 84번가'에 있는 헌책방을 알게 되고, 동네 서점에서 구하지 못한 책 목록을 적어 구해달라는 편지를 그 책방으로 보낸다. 헌책방 직원 프랭크(안소니 홉킨스)는 목록의 책들을 열심히 찾아 헬레인에게 보내준다. 20여 년간 책을 보내며 프랭크, 서점 직원들 그리고 프랭크의 가족까지 헬레인과 편지로 서로 안부를 묻고 일상을 공유하며 선물도 주고받는 각별한 사이가 된다.

헬레인은 런던의 중고서점을 몇 번이나 방문하려 했지만 사정이 생겨 계획이 무산된다. 결국 세월이 흘어 프랭크가 죽고 '채링크로스 84번가' 책방이 문을 닫은 다음에야 헬레인은 그곳을 방문한다. 요정 윤미 작가의 가족 모모 파밀리아(남편과 두 아들)의 <유럽의 다정한 책장들>을 읽다가 영국 책방 사진을 보는 순간, 영화 <84번가의 연인>에서 헬레인이 프랭크를 생각하면서 문 닫은 서점을 쓸쓸히 둘러보는 장면이 떠올랐다.

책으로 맺어진 가난한 작가와 프랭크를 비롯한 채링크로스 84번가 헌책방 가족들 사이에 우정을 감동으로 그려낸 영화다. 윤미 작가와 나의 우정도 책으로 맺어졌다. 윤미 작가의 가족들도 24개국 113개 도서관과 책방을 여행하며 책을 매개로 잊지 못할 우정을 맺었다.


'우리가 책을 사랑하는 최고의 이유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p. 294)'

노벨 박물관에서 "미래에 노벨 수상자가 될 아이로구나!"라는 덕담과 함께 초콜릿 메달을 쥐여주는 박물관 직원. 이 우정으로 준모와 모건은 노벨상을 꿈꿀지도.

포르투갈의 국민 동화 작가 아델리아 카르발류가 운영하는 파파 리브로즈에서 그녀의 품에 안긴 두 아이는 친필 그림 사인 동화책을 언제까지 간직하며 카르발류를 생각할까? 두 아이도 동화 작가 되는 건 아닌지.

스카티스파르시 서점에서 1유로짜리 중고책을 사고 나서는 아이들을 불러 세워 연필 두 자루를 선물로 주는 주인 할아버지. 따뜻한 웃음과 차별화된 눈인사를 가슴에 품은 채 준모와 모건은 엄마의 바람대로 텅 빈 캐리어 끌고 우정을 찾아 이곳에 다시 올 것이다. 그리고 책을 한가득 싣고 뒤뚱뒤뚱한 걸음을 할아버지에게 보여줄 테고.


이 책을 먼저 읽은 아내는 윤미 작가의 가족이 너무 부럽단다. 아이들이 어릴 때 우린 왜 이런 생각을 못 했을까 아쉬운 마음을 드러낸다. 여러 가지 장애물이 있었을 테고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더라도 그 장애물을 넘을 자신은 없지만 부러운 건 어쩔 수 없다. 책 끄트머리에 두 아이가 써 내려간 글, '생각거리'를 읽고 부러움과 아쉬움이 더 짙어지는 모양이다.

'여행을 하고 있는 내가 연필을 꺼내 들어 여행에 대해 글을 쓴다. 여행은 많은 소통으로 제작된 놀이이다. 집중력을 가지고 사람과 시간과 일어나는 일들을 관찰하는 과정이 여행이다. - 준모
여행은 한 번 즐기면 계속 계속 즐길 수 있게 된다. - 모건 (p. 452 여행)'

'사랑은 부모님뿐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 선생님, 친구 등 주변의 모든 사람과 만들 수 있는 감정이다. - 준모
사랑은 쉽게 생길 수 있다. 사랑을 가질 준비를 하고 사랑을 받으면 바로 사랑이 생겨난다. - 건모 (p. 453 사랑)

하지만 모모 파밀리아의 130일 유럽 책장 여행기를 읽은 사람 가운데 많은 이들은 우리처럼 아쉬움으로 마무리하지 않고, 용기 내어 10년 후를 계획하며 또 다른 책장 여행과 더불어 그곳을 지키는 사람들과 우정을 쌓으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 <유럽의 다정한 책장들>이 헬레인과 채링크로스 84번가 헌책방 가족들 사이에 우정을 만들어준 헬레인의 고전과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 된다.


'공간보움, 우리의 목적지가 유럽 책장 곁이 되도록 영감을 주신 노원구 공릉동 공간보움 '내곁에 서재'에 하릴없는 감사를 전합니다. (p. 455 Thanks to.)'

윤미 작가가 여행을 떠나기 전 이곳 공유 서재 '공간보움'을 들렀던 인스타그램 피드가 기억난다. 또 '공간보움' 지기 내곁에서재 님이 이 책을 읽고 울컥했던 최근 피드도 기억나고. 서로 갖게 된 의미 있는 우정도 책과 이 공간 덕분일 것이다. 공유 책방 '공간보움'도 많은 책 친구들의 우정을 쌓아주고 있으니 채링크로스 84번가 헌책방과 다름없다.

'유럽의 책장으로 떠나기 전 처음 했던 생각이 있다.
"책이 우리를 지켜줄 거야. 나태함으로부터, 무관심으로부터, 우매함으로부터, 편협함으로부터, 몰상식으로부터, 소매치기로부터...."
인간이 책을 지키고, 책이 인간을 지키는 한 책은 영원할 것이다. (p. 437)'

그리고 덧붙이자면' 나와 요정 윤미 작가 그리고 많은 책 친구들의 우정을 맺어주고 지켜주는 한 책은 또 영원할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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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를 사랑하는 일 - 흔들리고 아파하는 너에게 전하는 가장 다정한 안부
사과이모 지음 / 책과이음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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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자신을 객관화해서 보기 위한 좋은 방법은 그때의 나를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p. 25)'

사과이모는 과거의 자신을 '작은 사과'라고 부른다고 한다. '나는 직장인이었던 나를 뭐라 불러볼까?'라는 생각만으로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삐 출근하는 내가 보였다.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자신을 뿌듯하게 여기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가족 속에 '나'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뒤돌아보니 어떤 선택을 할 때 가족을 위한 것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 회사를 위한 것이었다. 이사할 때도 출퇴근 거리를 고려했고, 옷도 회사에 입고 가기에 적당한 것을 골랐다. 건강도 회사를 위해 챙겼다. 피곤해서 회사 일이 잘못되면 안 되니까 쉬어야 했고, 내일 아침 출근을 생각해서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모임에서 일찍 빠져나와야 했으니 말이다.

퇴직한 다음 달라진 것 가운데 하나가 판단이나 선택의 기준이 내가 됐다는 것이다. 이제는 좀 나를 위해서 살아야지 하고 마음먹은 결과였다.

시간을 내게 써보자는 생각을 먼저 했다. 타인의 기분보다는 내 기분을 더 소중히 여겼다. 그렇게 정리하고 나니 타인에 의해 나의 감정이 좌지우지되는 상태가 줄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는 약속을 잡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과감하게 거절했다. 이전의 '나'와는 다른 '나'가 우뚝 서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은 자주 울고 웃고 불안해하고 행복해하는 평범하고 귀한 당신에게 부치는 사과이모의 편지입니다. 소중한 당신께 잘 도착했나요? (p. 243)'

마음담다 컨설팅 대표이자 저자인 사과이모는 진로 상담사로서 독서모임 운영자로서 만났던 사람들과 '마음공부'를 하며 진짜 '나'와 만난 이야기를 <결국 나를 사랑하는 일>에 담았다.

행복한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걸 저자가 찾았는데 그건 '자기 자신을 사랑했다'라는 것과 '지금 여기에 몰입하는 것'이었다.

'서운하다는 건, 사랑받고 싶다는 내 안의 작은 속삭임이 아닐까요. 실망한다는 건, 사랑받고 싶다는 간절한 외침이 아닐까요. 절망한다는 건, 사랑받고 싶다는 깊은 절규가 아닐까요. 결국 다 사랑이 문제고, 결국 다 사랑에 답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p. 120)'

그렇다면 그간 내가 그리 행복하지 못했다는 건, 대상은 약간 어긋났지만 그래도 직장에서 그날그날 몰입했으니 하나는 만족했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 부족했던 셈이 된다. 서운했고, 실망했고, 절망했던 나, 모두 다 사랑이 문제였다. 결국 나를 사랑하는 일이 문제였다.


'결국 삶이란 '지금 여기'에 펼쳐진 내 삶을 사랑하는 '자기 사랑'의 여정(p. 244)'이라는 사과이모의 결론. 퇴직한 다음 마음먹은 '이제부터라도 남은 시간을 나를 써보자, 그리고 내 기분을 소중히 여겨보자'라는 결심에서 '자기 사랑'이라는 여정을 시작하려 한다.

나의 행동이 아내를 가족을 친척을 친구를 불편하게 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내게 생길 테지, 하지만 그럼에도 '결국 나를 사랑하는 일'을 나의 모든 선택과 판단의 기준으로 삼으려고 한다.

"어떻게 괜찮겠어?" "일어설 수 있겠어?" "참을만해?" "누군가에게 도와 달라고 해볼까?" "혼자 있으려고? 자리 피해줄까?"... 내게 안부를 물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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