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법 - 생존을 위한 두 가지 요건에 관한 이야기
장혜영 지음 / 궁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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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법, 모양새로 보면 이 둘은 거리가 있어 보인다. 아니 양극단에 가깝다. 하지만 17년 7개월가량 검사로 일했던 장혜영 변호사는 이 책 <사랑과 법>에서 이 둘을 묶었다. '검사로 일하는 동안 '남의 일'에 대한 나의 경험과 생각이 '나의 일'이 되는 과정 (p. 8)'을 일곱 개의 주제로 풀어낸다.

자살이나 고독사로 인한 죽음의 원인이 사랑의 부재가 아닐지.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 결정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책임이 없고, 책임이 없으면 형벌을 받지 않는다. 사랑에서도 그럴까? 사랑에 필요한 책임능력을 저버리고 사랑하는 대상과 스스로를 책임지지 않는 경우, 사랑으로부터 면제부를 받을 수 있는가 말이다.

사기꾼을 진심으로 믿어 사기를 당했다면 나는 피해자가 아니다. 나 자신을 자책할 필요가 없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에 착오가 있었더라도 나의 사랑을 비난할 수 없다.

아이의 성공을 위해서라는 미명 아래 아이를 사교육 현장에 밀어 넣는다. 학대 범죄를 저지르면서 이를 사랑이라고 치장하고 있지 않는가. 가정의 경제 형편, 아이의 재능, 건강 등을 무시한 채 능력주의가 팽배한 사회에 적합한 인간을 만드는 것이 자녀를 사랑하는 올바른 방법이라고 여긴다.

사랑의 유대가 형성된 친족 간의 성범죄에서 피해자인 미성년자를 대리해 제3자가 처벌불원서와 함께 합의할 경우 피해자는 피해를 당한 고통에 사랑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음을 확인하는 고통이 더해진다.

즐거움을 얻는데 효율을 따지자면 강한 약물을 사용하는 것이 최고다. 하지만 중독돼서 투약이 계속될수록 그 효율이 떨어져 즐거움이 줄어든다. 사랑은 어떨까? 들이는 시간과 정성에 비해 비효율적이다. 효율이 없어 반복하더라고 효율이 떨어지지 않아 즐거움도 감소하지 않는다.

우리 법은 소멸시효 제도로 가해자의 가벌성에 기한을 정한다. 하지만 공소시효로 정해진 시간은 피해자와 가해자에게 서로 다르게 흘러간다.
'살인죄의 피해자 유족이 살인자를 상대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고통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때, 그 고통이 소멸시효 기간을 지난다고 해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고통의 기한은 사랑의 기한이기도 하다. (p. 204)'

이렇듯 법에 사랑을 가져오면 생각거리가 많아진다.


사랑이란 친밀감은 신뢰를 만들어 상대방의 허물을 덮어줄 수 있다. 하지만 이 사랑에 법이라는 정의가 없다면 부패가 파고든다. 우리는 지금 최고 권력자에게서 잘못된 사랑에 법마저 사라진 부패를 지켜보고 있다. 반대로 사랑은 없고 법이라는 정의만이 남았을 때 세상에 공포가 가득해진다. 우리는 지금 국민을 향한 사랑이 없이 차별적 법에 의한 지배(Rule)를 일삼는 독재 정권을 직접 보고 있다.

검사로 일했던 저자 장혜영이 생각한 사랑과 법은...
'사랑과 법은 사람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하다. (p. 207)'
'법은 사랑이 지속 가능하도록 뒷받침한다. (p. 207)

사랑만 필요한 것이 아니고, 법만 필요한 것이 아니고 둘 다, 어쩌면 양극단에나 존재할 법한 사랑과 법, 둘의 조화가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 그래야만 우리가 더 이상 비질란테에 열광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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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루코와 루이
이노우에 아레노 지음, 윤은혜 옮김 / 필름(Feelm)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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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루코와 루이 모두 일흔 살이 되었다. 둘은 중학교 동창이지만 실질적으로 친해진 건 서른 살이었을 때 동창 모임에서 만난 다음부터다. 사십 년 지기인 셈이다. 어느 날 데루코는 도와달라는 루이의 전화를 받는다. 데루코는 루이와 함께할 인생의 새로운 테마 하나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다.

'데루코는 생각 끝에 최종적으로 이렇게 적었다.
"잘 있어요.
나는 이제부터 살아갈게요."
그렇게 데루코는 슈트케이스를 끌고 39년간 살아온 그 집을, 아니 45년에 이르는 도시로와의 결혼 생활을 박차고 나왔다. (p. 16)'

도시로는 아내를 섹스 기능이 추가된 가정부 취급하는 데루코의 남편이다. 그런 남자와 45년이나 산 데루코는 남편의 은색 BMW에 몸을 싣고 새로운 인생을 찾아 떠난다.

루이는 스물두 살에 열다섯 연상의 남자와 결혼했다. 딸은 하나 낳은 후 루이는 두 번째 남자를 만났고 그와 사랑에 빠졌다. 사랑을 알았을 때 남편은 좋은 사람이었을 뿐 사랑이 아니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루이는 사랑에 몸을 던졌다. 그로부터 겨우 4년 만에 그가 차에 치여 죽을 거가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그리고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모든 것을. (p. 103)'

40여 년 세월이 흘러 복권에 당첨된 루이는 여생을 보낼 실버타운에 입주하는 데 그 돈을 다 써버렸다. 하지만 그곳에는 루이가 끔찍이 싫어하는 파벌 무리가 가득했다. 루이는 그곳을 떠나려고 데루코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다.


요즘 아내가 우울해하는 횟수가 잦아졌다. 십여 일 전에도 눈물을 흘리며 신세한탄을 했다.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이 아내를 지배했다. 어찌 도와줘야 할지 난처하다. 내 나이 때 여자들 대부분 남편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삶을 살았다. 이제 스스로 껍데기만 남았다는 생각에 아내의 삶 전체가 허물어진다.

물론 소설 속 이야기지만, 일흔 살에 새로운 테마로 삶을 꾸며놓는 데루코와 루이의 마음가짐이 아내에게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내어주는 삶을 멈추고 나를 향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아니 이제까지 내어줬다고 생각하는 삶도 결국 나를 채우는 삶이었다고 생각을 전환하면 얼마나 좋을까.

데루코와 루이는 다시 시작한 첫 목적지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루이의 손녀를 만난다. 그리고 마치 일흔이란 나이가 청춘이라는 듯이 다음 목적지 또 다음 목적지를 향해 BMW를 타고 달려간다. 데루코와 루이, 이제 이 둘은 '불쌍한 나. 용기가 없어서, 스스로 자신을 묶어놓고 있던 나, 하지만 나는 이미 이전의 내가 아니야. (p. 201)'

일주일에 한 번, 자신을 위해서 외출해 줄 수 없는지 아내가 물어왔다. 그러겠다고 했다. 일주일마다, 아내와 함께하는 소풍에서 아내도 자신의 인생에서 새로운 목적지로 가는 방법을 발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삶은 일흔 살에 비로소 시작될 수도 있고, 그 이후의 삶도 여전히 반짝일 수 있으며, 맛있는 걸 먹으면 기운이 난다는 삶의 진리를 아는 그녀들을, 당신도 사랑하게 되길! (박은교, 영화 <마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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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탤지어, 어느 위험한 감정의 연대기 - 인간은 왜 경험하지 못한 과거를 그리워하는가
애그니스 아널드포스터 지음, 손성화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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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탤지어는 "어떤 지나간 시절이나 되찾을 수 없는 상태로의 귀환, 또는 그에 대한 그리움이나 과도하게 감상적인 동경"의 감정이다. (p. 14)'

내가 고향을 떠난 건 열두 살, 그러니까 국민학교 5학년 1학기를 마치고서였다. 인천으로 이사했다. 지금 기억하기로 그때는 고향 친구들이 무척이나 그리웠다. 사람을 잘 사귀지 못하는 편이어서 새로 다니게 된 학교도 교회도 적응하는 데 애를 먹었다. 그래서 방학이 시작되면 고향 고모님 집에서 머물며 놀다 오곤 했다.

오십여 년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계절의 어떤 특징적인 날씨를 마주할 때마다 그 날씨의 고향을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열두 살 때만큼 고향에 가고 싶은 마음이 짙지는 않다. 그냥 추억으로 소비할 뿐이다.


<노스탤지어, 어느 위험한 감정의 연대기>는 역사학을 전공한 감정사학자 애그니스 아널드포스터가 노스탤지어라는 감정의 역사를 파헤친 책이다. 400년 동안 존재한, 그렇지만 그 누구도 설명한 적 없는 노스탤지어란 감정을 다각적이고 풍부한 연구를 통해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과학적으로 그려낸다.

'노스탤지어의 사연은 17세기에 시작된다. 1688년 스위스의 의사 요하네스 호퍼 Johannes Hofer가 노스탤지어라는 용어를 만들어내면서부터다. 호퍼는 그리스어 노스토스 nostos(귀향)와 알고스 algos(고통)에서 착안해, 고향으로부터 멀리 떠나온 곳에서 싸우던 유럽의 용병들을 괴롭히는 장애를 노스탤지어라고 최초로 명명했다. (p. 26)'

언어가 다르면 인식하는 감정도 다르듯 노스탤지어의 감정은 다양한 형태를 취했다. 또한 노스탤지어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아주 많이 변했다.

노스탤지어는 우울증, 수면 장애 등 정신 증상을 일으키는 치명적인 질병이었다. 유럽 전역으로 퍼졌고 노예들과 함께 이 질환은 북아메리카로 건너갔다. 1900년대 집단 이주의 시기를 맞아 군인들은 식민지로, 난민들은 전쟁과 학살, 역병을 피해 새로운 안식처를 찾아 떠났다. 이 같은 집단 이동은 숭고한 질환인 향수병을 불러왔다.

20세기 들어서면서 노스탤지어는 별것 아닌 엄살로 치부되었다.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자유로운 이동은 국경을 느슨하게 하며 세계화되는 세상을 만들었다. 사람들에게 고향을 묶어주는 감정은 묽어져갔다. 육체와 정신에 더는 위협적이지 않은 노스탤지어가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는 걸 광고 책임자들은 간파했다. 지갑을 열어 물건을 사게 하는 힘이 노스탤지어에 있었다.

이렇듯 노스탤지어란 감정이 개인의 감정을 유쾌하게 했지만 정치 사회적으로는 그렇지 못했다. 좌파든 우파든 노스탤지어를 자극해 표심을 이끌어내는데 활용하고 남용했다. 21세기에 노스탤지어는 포퓰리즘과 무지성에 관련 지어졌다.

올리버 색스는 노스탤지어의 새로운 전기 열어주었다. 병을 회복하는데 관여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노스탤지어는 이제 더 이상 질병이 아니었다.

'노스탤지어는 자존감을 북돋고, 삶에 의미를 더하며, 사회적 유대감을 키우고, 문제가 있을 경우 도움과 지지를 구하도록 사람들을 독려하며, 심리적 건강 및 안녕을 증진하고, 외로움이나 권태, 스트레스, 불안을 줄일 수 있다. 나아가 현재는 노인들의 기억력을 유지하고 향상시키며, 심리적 안녕을 강화하고 우울증을 개선하는 중재술로도 쓰일 정도다. (p. 368)'


1990년대 후반에 태어난 우리 두 아이는 서울 등촌동에서 6~7년을 살았다. 그 후 이사한 곳에서 초등학교 5, 6학년까지 그리고 지금 이곳으로 이사 와 쭉 살고 있다. 그 아이들에게 노스탤지어를 느낄만한 곳은 어디일까? 없지 싶다. 언젠가 아이들이 다니던 초등학교 앞을 지나치며 기억을 더듬어준 적이 있었다. 별로 감흥이 없었다.

우리 세대가 흐트러진 감정을 추억 소비로 추스른다면 우리 아이들은 다른 방식으로 감정을 다스리지 싶다. 우리 세대는 과거의 경험을 불러내는 노스탤지어의 힘으로 외로움을, 현재의 불만을, 미래의 불안을 잠재운다. 아이들은 과거의 것을 그대로 가져오기엔 경험한 추억이 빈약하다. 그래서 아이들은 노스탤지어를 재창조한다. 뉴트로, 자신들에게 맞게 재해석해 불러오는 뉴트로를 즐긴다.

힙지로라 불리는 을지로가 그 한 예이다. 기존의 노포를 그 아이들의 새로움으로 더해 놓고 그곳에 모인다. 그들의 노스탤지어는 '과거를 재정립하고 변화에 대한 지지를 얻는 데 쓰이는 도구 (p. 413)'이다. 지금 노스탤지어를 질병으로 여기는 사람은 없다. 어리석거나 유아적인 감정이라고 보지도 않는다. 우리 아이들에 의해서 노스탤지어는 변화무쌍하고 다종다양한 형태로 계속 그 놀라운 힘을 보여주며 행복감을 높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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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도둑 - 예술, 범죄, 사랑 그리고 욕망에 관한 위험하고 매혹적인 이야기
마이클 핀클 지음, 염지선 옮김 / 생각의힘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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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절도와 기묘한 사랑, 기묘한 인생에 관한 아주 흥미진진한 이야기. 하지만 이 책에 '소설 같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소설보다 훨씬 더 기묘하기 때문이다. - 장강명(소설가)'

별의별 사람, 온갖 삶이 다 있다지만, 스테판 브라이트비저라는 사람과 그의 삶은 소설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게 아닐까? 아니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삶이 실제 있었다. 믿기 어려운 논픽션이다.

저널리스트인 마이클 핀클은 10년 넘게 스테판 브라이트비저의 이야기를 모았다. 그는 스무 살이 채 되지도 않았던 1994년부터 200여 차례에 걸쳐 예술품 300점 이상을 훔쳤다. 돈으로 그 가치를 환산하면 약 2조 원에 달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박물관 경비원으로 일했다. 그 덕분에 경비원들은 사람들을 눈여겨볼 뿐 전시물의 작은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는 허점을 알아냈다. 또 하나 도둑이 갖춰야 할 장점이 브라이트버저에게 있었다. 머뭇거리지 않는다. 보통 도둑은 망설이다 잡힌다.

'브라이트비저는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예술품을 훔쳤다고 주장한다. 아름다움에 둘러싸여 마음껏 즐기고 싶었다. 지금까지 미학을 논한 예술품 도둑은 없었다. (p. 35)'

그는 도둑이 아닌 예술 수집가로 여겨지기를 원한다. 돈 때문에 예술품을 훔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자신을 도둑 취급하는 사람들을 미학적으로 무지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술품으로 마음속 공간을 채우려 했지만 아무리 훔쳐도 공허함은 여전했다.

'그의 말마따나 "예술은 영혼의 식량"이지만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과하면 탐욕이 된다. "예술을 향한 브라이트비저의 열정은 모든 것을 넘어섰어요..." (p. 116)'

탐욕에 이른 결과 경찰에게 덜미가 잡혀 재판을 받고 형을 살고 나왔지만 예술품 훔치는 일을 멈추지 못했다. 어머니도 사랑스러운 연인의 외면도 그의 도둑질을 막지 못했다. 이미 늦었다.

'이번에는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이미 잃어버린 시간을 되돌릴 수 없어 슬프다. 도둑질을 하던 시간이 아니라, 도둑질을 멈췄던 시간이 아깝다. (p. 288)'


내가 도둑질을 했던 적이 있었던가? 일고여덟 살 때로 기억한다. 가끔 아버지 서랍이 잠겨있지 않을 때 동전 하나씩을 훔쳐 군것질을 하곤 했다. 들킬까 긴장됐지만 나름 스릴 있었다. 여느 때처럼 서랍을 열어 동전을 손에 쥔 순간 쌔한 느낌이 들었다. 창문 너머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버렸다.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다. 침묵이 더 무서웠다. 그 이후 이걸 도둑질이라고 해야 하나 싶은 도둑질을 몇 번 했던 것 같다.

'삶에서 브라이트비저가 만난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이상하리만큼 그의 도둑질에 관대했다. 어머니와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메쉴르, 그리고 앤 캐서린도 모두 그랬다. 관대한 정도가 아니라 브라이트비저만큼 예술을 사랑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던 듯하다. 예술 전문 기자 노스는 "이 무리에는 부모 역할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지적한다. "'도둑질을 멈춰라', '작품을 돌려놓아라', '어른답게 행동해라'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바로 이 점이 브라이트비저의 문제였다." (p. 280)'

도둑질에 대한 주변의 관대함, 타고난 도둑질 솜씨 그리고 예술에 대한 욕망을 삐뚤어진 방법으로 채운 결과, 브라이트비저의 삶은 도둑으로 기억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늘 하던 대로 판매대 위치를 확인하고 경비원과 손님의 동향을 살핀다. 보안 카메라가 있는지도 살핀다. 없다. 브라이트비저는 4달러짜리 안내 책자 한 권을 슬쩍 들고는 유유히 문을 빠져나온다. (p. 288, 289 마지막 글)'

나는 박물관에서 경비원이나 보안 카메라를 살피지 않는다. 그리고 안내 책자가 필요하다 싶으면 돈을 내고 산다. 훔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나는 어릴 적 창문 너머에서 나를 바라보던 아버지의 눈빛을 생각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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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I 시대와 인간의 미래 - 챗GPT 이후의 삶, 일자리 그리고 교육
맹성현 지음 / 헤이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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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9월 12일 OpenAI에서 새로운 모델 o1 프리뷰가 출시됐다. 이번 모델은 답을 내놓기 전에 생각이라는 과정을 거친다. 생각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도록 설계되어 있어서 복잡한 작업을 추론하고 과학, 코딩, 수학 분야에서 이전 모델보다 더 어려운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고 한다. o1의 출시는 기존 GPT 시리즈와 다른 새로운 AI 모델 시리즈의 시작을 뜻한다.

내 스마트폰에도 chat GPT와 Copilot가 깔려있다. 이는 AI를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AGI(A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시대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시그널이다. 미국 정보 보고서는 그때를 2028년으로 예측한다. AI 기술이 인류의 삶에 어떻게 공헌할지 기대가 되는 반면 AI 능력의 끝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어 두렵고 불안하다.


맹성현 박사의 <AGI 시대와 인간의 미래>는 두렵고 불안하기만 한 AGI 시대를 준비하는 '생존 지침서'다. 약 7만 년 전 '인지혁명'이 언어를 매개체로 한 인류 문명의 발전이었다면, 현재 진행 중인 AI를 매개로 한 기술발전은 '정신노동을 자동화'하는 '제2의 인지혁명'이라고 저자는 정의한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AGI 시대에 일자리 3억 개가 증발할 것이라 예상한다. 산업혁명으로 육체노동 기반의 일자리가 없어졌다면 이번 제2의 인지혁명은 정신노동 기반의 일자리를 사라지게 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대학의 학과나 전문가 양성 계획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세계적인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 학교교육에 대해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교사가 학생에게 전수해야 할 교육 내용과 가장 거리가 먼 것이 바로 더 많은 정보다.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은 정보를 이해하는 능력이고,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의 차이를 식별하는 능력이며, 수많은 정보 조각들을 조합해서 세상에 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이다.' (p. 320)'

AI가 인간 영역을 침범해오는 시점에 AI와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AI를 새로운 존재로 인정해야 한다. 그런 다음 우리가 할 질문은?
'AI 시대가 열린 이 시점에 인간과 AI가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그리고 AGI 시대의 도래를 눈앞에 두고 어떻게 공진화 co-evolution할 것인가 묻는 것은 실존적 질문이다. (p. 305)'


'공진화는 AI에게 양보할 것과 인간의 몫으로 남겨야 할 것을 조화롭게 정의하면서 어떻게 협업하는지를 판단해가는 과정이다. (p. 317)'

AGI 시대에 생존하기 위해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할까? 저자는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능력을 세 가지 범주로 아홉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범주는 인간과 AI가 모두가 잘 하는 분야이지만 인간이 소홀히 할 수 없는 문해력, 통찰력, 창의력이다. 둘째 범주는 새롭게 주목받는 분야로 AI 리터러시, 기술 변화 적응력, 지식정보 가치 판단력이다. 셋째 범주는 인간만 가능한 분야로 공감 기반 협업 능력, 경험 체화 능력, 정서적 인간다움이 여기에 속한다.


성큼성큼 필연적으로 다가오고 있는 AGI 시대를 가늠할 수 없는 미래라고 해서 두려워 떨고 있을 수만은 없다. 인간과 AI의 공통점을 분명히 알고 차별화하여 인간다움을 극대화하는 것이 공존하고 공진화하는 유일한 길이다. AI의 변화 속도가 워낙 빨라 그 대처가 미흡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갖춰야 할 능력을 키워 그 충격을 최소화하는 것이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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