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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루코와 루이
이노우에 아레노 지음, 윤은혜 옮김 / 필름(Feelm) / 2024년 10월
평점 :
데루코와 루이 모두 일흔 살이 되었다. 둘은 중학교 동창이지만 실질적으로 친해진 건 서른 살이었을 때 동창 모임에서 만난 다음부터다. 사십 년 지기인 셈이다. 어느 날 데루코는 도와달라는 루이의 전화를 받는다. 데루코는 루이와 함께할 인생의 새로운 테마 하나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다.
'데루코는 생각 끝에 최종적으로 이렇게 적었다.
"잘 있어요.
나는 이제부터 살아갈게요."
그렇게 데루코는 슈트케이스를 끌고 39년간 살아온 그 집을, 아니 45년에 이르는 도시로와의 결혼 생활을 박차고 나왔다. (p. 16)'
도시로는 아내를 섹스 기능이 추가된 가정부 취급하는 데루코의 남편이다. 그런 남자와 45년이나 산 데루코는 남편의 은색 BMW에 몸을 싣고 새로운 인생을 찾아 떠난다.
루이는 스물두 살에 열다섯 연상의 남자와 결혼했다. 딸은 하나 낳은 후 루이는 두 번째 남자를 만났고 그와 사랑에 빠졌다. 사랑을 알았을 때 남편은 좋은 사람이었을 뿐 사랑이 아니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루이는 사랑에 몸을 던졌다. 그로부터 겨우 4년 만에 그가 차에 치여 죽을 거가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그리고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모든 것을. (p. 103)'
40여 년 세월이 흘러 복권에 당첨된 루이는 여생을 보낼 실버타운에 입주하는 데 그 돈을 다 써버렸다. 하지만 그곳에는 루이가 끔찍이 싫어하는 파벌 무리가 가득했다. 루이는 그곳을 떠나려고 데루코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다.
요즘 아내가 우울해하는 횟수가 잦아졌다. 십여 일 전에도 눈물을 흘리며 신세한탄을 했다.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이 아내를 지배했다. 어찌 도와줘야 할지 난처하다. 내 나이 때 여자들 대부분 남편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삶을 살았다. 이제 스스로 껍데기만 남았다는 생각에 아내의 삶 전체가 허물어진다.
물론 소설 속 이야기지만, 일흔 살에 새로운 테마로 삶을 꾸며놓는 데루코와 루이의 마음가짐이 아내에게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내어주는 삶을 멈추고 나를 향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아니 이제까지 내어줬다고 생각하는 삶도 결국 나를 채우는 삶이었다고 생각을 전환하면 얼마나 좋을까.
데루코와 루이는 다시 시작한 첫 목적지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루이의 손녀를 만난다. 그리고 마치 일흔이란 나이가 청춘이라는 듯이 다음 목적지 또 다음 목적지를 향해 BMW를 타고 달려간다. 데루코와 루이, 이제 이 둘은 '불쌍한 나. 용기가 없어서, 스스로 자신을 묶어놓고 있던 나, 하지만 나는 이미 이전의 내가 아니야. (p. 201)'
일주일에 한 번, 자신을 위해서 외출해 줄 수 없는지 아내가 물어왔다. 그러겠다고 했다. 일주일마다, 아내와 함께하는 소풍에서 아내도 자신의 인생에서 새로운 목적지로 가는 방법을 발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삶은 일흔 살에 비로소 시작될 수도 있고, 그 이후의 삶도 여전히 반짝일 수 있으며, 맛있는 걸 먹으면 기운이 난다는 삶의 진리를 아는 그녀들을, 당신도 사랑하게 되길! (박은교, 영화 <마더>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