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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도둑 - 예술, 범죄, 사랑 그리고 욕망에 관한 위험하고 매혹적인 이야기
마이클 핀클 지음, 염지선 옮김 / 생각의힘 / 2024년 9월
평점 :
'기묘한 절도와 기묘한 사랑, 기묘한 인생에 관한 아주 흥미진진한 이야기. 하지만 이 책에 '소설 같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소설보다 훨씬 더 기묘하기 때문이다. - 장강명(소설가)'
별의별 사람, 온갖 삶이 다 있다지만, 스테판 브라이트비저라는 사람과 그의 삶은 소설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게 아닐까? 아니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삶이 실제 있었다. 믿기 어려운 논픽션이다.
저널리스트인 마이클 핀클은 10년 넘게 스테판 브라이트비저의 이야기를 모았다. 그는 스무 살이 채 되지도 않았던 1994년부터 200여 차례에 걸쳐 예술품 300점 이상을 훔쳤다. 돈으로 그 가치를 환산하면 약 2조 원에 달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박물관 경비원으로 일했다. 그 덕분에 경비원들은 사람들을 눈여겨볼 뿐 전시물의 작은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는 허점을 알아냈다. 또 하나 도둑이 갖춰야 할 장점이 브라이트버저에게 있었다. 머뭇거리지 않는다. 보통 도둑은 망설이다 잡힌다.
'브라이트비저는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예술품을 훔쳤다고 주장한다. 아름다움에 둘러싸여 마음껏 즐기고 싶었다. 지금까지 미학을 논한 예술품 도둑은 없었다. (p. 35)'
그는 도둑이 아닌 예술 수집가로 여겨지기를 원한다. 돈 때문에 예술품을 훔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자신을 도둑 취급하는 사람들을 미학적으로 무지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술품으로 마음속 공간을 채우려 했지만 아무리 훔쳐도 공허함은 여전했다.
'그의 말마따나 "예술은 영혼의 식량"이지만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과하면 탐욕이 된다. "예술을 향한 브라이트비저의 열정은 모든 것을 넘어섰어요..." (p. 116)'
탐욕에 이른 결과 경찰에게 덜미가 잡혀 재판을 받고 형을 살고 나왔지만 예술품 훔치는 일을 멈추지 못했다. 어머니도 사랑스러운 연인의 외면도 그의 도둑질을 막지 못했다. 이미 늦었다.
'이번에는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이미 잃어버린 시간을 되돌릴 수 없어 슬프다. 도둑질을 하던 시간이 아니라, 도둑질을 멈췄던 시간이 아깝다. (p. 288)'
내가 도둑질을 했던 적이 있었던가? 일고여덟 살 때로 기억한다. 가끔 아버지 서랍이 잠겨있지 않을 때 동전 하나씩을 훔쳐 군것질을 하곤 했다. 들킬까 긴장됐지만 나름 스릴 있었다. 여느 때처럼 서랍을 열어 동전을 손에 쥔 순간 쌔한 느낌이 들었다. 창문 너머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버렸다.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다. 침묵이 더 무서웠다. 그 이후 이걸 도둑질이라고 해야 하나 싶은 도둑질을 몇 번 했던 것 같다.
'삶에서 브라이트비저가 만난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이상하리만큼 그의 도둑질에 관대했다. 어머니와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메쉴르, 그리고 앤 캐서린도 모두 그랬다. 관대한 정도가 아니라 브라이트비저만큼 예술을 사랑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던 듯하다. 예술 전문 기자 노스는 "이 무리에는 부모 역할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지적한다. "'도둑질을 멈춰라', '작품을 돌려놓아라', '어른답게 행동해라'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바로 이 점이 브라이트비저의 문제였다." (p. 280)'
도둑질에 대한 주변의 관대함, 타고난 도둑질 솜씨 그리고 예술에 대한 욕망을 삐뚤어진 방법으로 채운 결과, 브라이트비저의 삶은 도둑으로 기억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늘 하던 대로 판매대 위치를 확인하고 경비원과 손님의 동향을 살핀다. 보안 카메라가 있는지도 살핀다. 없다. 브라이트비저는 4달러짜리 안내 책자 한 권을 슬쩍 들고는 유유히 문을 빠져나온다. (p. 288, 289 마지막 글)'
나는 박물관에서 경비원이나 보안 카메라를 살피지 않는다. 그리고 안내 책자가 필요하다 싶으면 돈을 내고 산다. 훔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나는 어릴 적 창문 너머에서 나를 바라보던 아버지의 눈빛을 생각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