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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어리의 웅변
빌 프랑수아 지음, 이재형 옮김 / 레모 / 2022년 7월
평점 :
'바닷속 생물들은 어떻게 소통할까? 세계를 어떤 감각으로 받아들일까? 우리의 삶, 우리의 감정과 비슷할까? 나는 이 수수께끼를 풀고 싶어서 과학자가 되었다. (p. 11, 12)'
어린 시절 빌 프랑수아는 바다가 들숨을 쉴 때, 파도 가장자리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한 줄기 빛이 눈길을 사로잡았고 궁금해서 그 물체에 다가갔다. 정어리를 만났다. 정어리와의 만남은 빌 프랑수아에게 바닷속 생물들의 삶에 얽힌 신비로움을 향한 열정은 물론 더 먼바다로 이끌었다. 그리고 지구의 70퍼센트나 차지하는 바다, 그곳에 사는 매력 넘치는 생명체들이 그에게 다가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프랑스 최고의 이야기꾼이자 과학자 빌 프랑수아의
'<정어리의 웅변>은 바다와 역사, 과학과 전설의 세계 저 깊은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내려갈 것이다. (p. 13)'
스펙터클한 바닷속 영상의 자막은 향기의 언어로 작성된다. 잠수하면서 코를 막아 바다 가득한 그 냄새를 우리가 맡지 못할 뿐이다. 해양생물들의 대화는 색깔, 전자기장, 물의 진동, 페로몬 등 다양한 파동과 경로를 통해 이루어진다. 바다가 침묵하는 줄 알지만, 많은 소리로 가득 차 있다. 물은 공기보다 밀도가 높아 소리가 더 잘 전달되고 상상 이상으로 그 소리는 멀리 간다.
'비늘은 물고기의 역사다. (...) 물고기의 비늘에는 그가 살아온 삶이 요약되어 있다. 만일 비늘 하나가 뽑히면 제로 상태에서 새로운 비늘이 자라기 시작한다. 이 비늘은 물고기의 역사를 다시 시작한 다음, 자신의 과거를 베끼지 않은 속편을 써나갈 것이다. (p. 53)'
신비로운 삶을 간직한 물고기들
물고기들에게 서식하는 기생충과 죽은 피부, 식사 찌꺼기를 제거하는 청소놀래기는 새로운 고객과 단골을 구별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청소하러 온 물고기의 대기 줄이 길 때는 처음 온 고객과 오랫동안 청소하지 않은 고객을 먼저 청소해 줌으로써 단골을 만들어 간다.
지구에 사는 동물 가운데 가장 똑똑한 문어는 생존 방법을 교환하는 등 평생 지식을 축적하고 서로 공유하기도 한다. 아쉽게도 이들은 공유한 지식을 다음 세대에 전할 수 없어 인류에 견줄만한 문명을 이루지 못했다. 알을 낳아 보호하던 암컷은 새끼가 부화하기 직전에 쇠약해져 죽음으로 새끼에게 자신의 지식을 전하지 못한다. 어린 문어는 모든 지식을 스스로 발견해야 한다.
'8세에서 12세 사이의 어린이 910명에게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는 심지어 그들 중 20퍼센트가 텔레비전에서 본 물고기라 불리는 동물과 접시에 담긴 생선가스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p. 136)'
투명한 팩에 담긴 생선 덩어리에만 관심이 있을 뿐, 그 생선이 바다 어느 곳에서 왔는지, 어떻게 살아가는지 생각해 본 지 오래다. 바다 생물과의 관계가 끊어져 간다.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아이들에게 물고기 이야기를 못하게 한다.
현대 과학과 리얼리즘은 실제로 존재했을지도 모를 전설적인 바다 생물들을 우리의 상상 속에서 낭만 속에서 쫓아낸다. 지식이 쌓일수록 말이다. 은빛 피부에 푸른색 반점 그리고 용의 돌기 같은 것이 삐죽삐죽 솟아난 산갈치. 11미터까지 자랄 수 있고 수직으로 헤엄치는 산갈치가 전설 속의 큰바다뱀이었을지도 모른다.
'혀의 법칙'을 동맹의 조건으로 한 인간과 범고래가 펼치는 고래사냥, 먹히지 않으려는 정어리 떼와 이를 먹으려는 참치들이 벌이는 바닷속 이야기는 한편의 대서사시다.
'바다의 거울이 되는 것. 정어리들은 그것만이 참치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점을 알았다. 풍경 속에 녹아드는 것, 그저 주위의 반영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 참치들은 방금 정밀하게 보정된 자외선 파장에서 강렬한 파란색 줄무늬를 비춰 정어리들의 시야를 흐리게 했다. 눈부신 섬광이 있었다. (p. 241)'
어쩌면 참치들의 공격을 피하려 사투를 벌이다 정어리 떼에서 떨어져 홀로됐을지도 모를 정어리, 파도가 그를 밀어내 어린 빌 프랑수아에게로 보낸 정어리...
'그리고 기적처럼 목숨을 건진 정어리가 바다의 자유와 위험을 향해 다시 떠나려는 순간, 정어리는 아이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아이가 자신을 따라오게 이끌어야겠다고 결심했다. (p. 246, 247)'
보이지 않는 곳이어서, 쉽게 갈 수 없는 곳이어서 바닷속 생명체에 무관심했다. 그들의 신비롭고 아름다움도 발견하지 못했다.
이제 정어리에게 들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주는 빌 프랑수아의 <정어리의 웅변>에서 바다와 역사, 과학과 전설의 세계 저 깊은 곳의 이야기 속으로 떠나보자.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에도 관심을 가져보자. 지구에서 같이 살아가는 더 이상 남이 아닌, 쉽게 볼 수 없는 바닷속 생명체들 세계 이야기에...
'정어리는 있는 힘을 다해 헤엄치면서 자신의 비늘에 그대로 복제해둔 장면들을 회상했다. 돌고래들의 놀이, 대형 선박의 선체, 멀리 떨어진 섬의 바위들, 기이한 바다거북들… 정어리는 너무나 많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은밀한 이야기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p. 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