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상위 100%
김시훈 지음 / 덤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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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이야기부터 해볼까 한다.

우선 표지 이미지. 저자 김시훈의 작품 <이따 생각 9 (p. 31)>과 <이따 생각 15 (p. 255)> 엇갈리게 놓아 만든 이미지다. 김시훈의 범상치 않은 작품처럼 비범한 표지 이미지다.

표지의 책 제목 '전 세계 상위 100%'. 잘했다는 의미인 '상위', 만족스러운 '100', 희귀하고 드묾을 나타내는 %를 뭉뚱그려 저장된 이미지를 떠올린 게 실수였다. 게으른 뇌. 뭔가 놓쳤음을 김시훈의 글을 읽고 눈치챘다.

'"당신은 전 세계 상위 100% 안에 들었습니다. 축하합니다." (...)
오! 내가 이렇게 잘했나? 전 세계에서 상위 100%라니. 뭔가 애매한 면이 있었지만, 상위 몇 퍼센트 안에 들었다는 관용구는 주로 칭찬할 때 쓰이지 않는가. (...)
상위 100%가 어느 정도 수치의 의미인지 곱씹어 보았다. 답은 나왔다. 꼴등이라는 말이었다. (p. 62)'

책에 소개한 작품을 보는 순간, 확실한 개성을 가진 작가임을 단박에 알았다. 현대미술 작가 김시훈의 이야기 <전 세계 상위 100%>다. 우리가 흔히 '쓸데없는 생각'이라 여기는 이야기들이다.


두 달 전부터 저녁에 만 걸음 정도 걷는다. 강변을 따라 아내와 걷다 보면 건강을 유지하려고 자전거를 타거나 우리 부부처럼 걷는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동네가 작다 보니 교회 사람들도 만나고,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도 만나고,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계속 마주치는 눈에 익은 사람들도 있다.

쓸데없는 생각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아내와 두런두런 이야기하면서 걷기도 하지만 각자 생각하면서 걷는 시간이 대부분인데, 가끔 아내와 똑같이 쓸데없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를테면...

요 며칠 그 나이 드신 부부가 왜 안 보이지? 날이 일찍 어두워져 걷는 시간을 옮겼나?
저분은 어디까지 갔다 올까?
저 강아지는 왜 저렇게 걷지?
저분은 왜 항상 왼쪽으로 걸을까?
어? 왜 혼자 나오셨지? 싸우셨나? 어디 아프신가? 어디 가셨나?...


'우리는 놀랍게도 움직이면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을 '할 수' 있다. 나는 안 하는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해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작업하고 있다. '끔'이라는 버튼을 '켬'으로써 끔을 켠다는 생각을 항상 견지하려 애쓰고 있다. (p. 2)'

김시훈 작가도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내가 하는 생각과는 다르다. 엉뚱하고 기발하다. 그리고 공감하게 된다. 웃음 짓게 되고, 무료함에서 벗어나는 느낌, 과하게 보탠다면 카타르시스도 느낀다.

'SF 시' 장르는 왜 없을까?
왜 어떤 사람들은 겉멋을 추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겉멋을 추구하는 이들은 비난할까.
진정한 '검술 극의'의 경지는?
남을 의식에서 롱패딩을 사 입고, 남들 다 입어서 롱패딩을 사지 않는 사람 모두 '남의 눈치'를 본다고 점에서 서로 닮았고 가까운 존재가 아닐까?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남에게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라'라는 말을 건넨다면,
어? 어떻게 저런 생각을? 난 왜 그런 생각을 못 했지? 짜증 나네. 기가 막힌 생각인데? 분하다.
뭐 대충 이런 의미가 담긴 경우가 대부분이다.

앞서 김시훈 작가의 이야기를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말한 건 내가 이런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다양하고 자유로운 생각이 부러웠고,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여기면서 공감하는 데 조금은 짜증도 나고, 게다가 글에 유머까지... 아내에게 작가의 글을 말로 옮겨 보니 웃지 않았다. 분하다. 글의 맛을 전달하는데 실패했으니 말이다.

김시훈처럼 '쓸데없는 생각'을 따라 하면 일상의 무료함을 은근히 웃음 지으며 찬란한 일상으로 바꿀 수도 있겠다. 통찰? 아니 그보다는 작은 개념, 소소한 즐거움을 가질 수도 있겠다. 그리고 김시훈의 바람대로 벌러덩 누워 김시훈을 생각을 읽고는 피식 웃고 곁에 밀어두고는 나의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생각멍을 때릴 수도 있겠다...는 쓸데없는 생각을 해본다.

'책을 읽을 때 글쓴이로서 한 가지 추천해 드리고 싶은 방식이 있다. 한 번에 다 읽기보다는,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을 때 가끔 이 책을 꺼내서 눈길이 가는 제목의 절을 찾아 읽다가 한 번씩 피식하고 웃곤 책을 다시 책장에 꽂아놓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날 때 또 책장에서 꺼내 읽는다. 마치 냉장고에 넣어 둔 음식을 꺼내 먹듯이. (p.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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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저 프렌들리 - 세상을 바꾸는 사용자 경험 디자인의 비밀
클리프 쿠앙.로버트 패브리칸트 지음, 정수영 옮김 / 청림출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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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학에 입학했을 때 당시로서는 최첨단 컴퓨터였던 VAX 11이 있었다. 교실 몇 개를 차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키펀처도 있던 시절이었다. 그때 컴퓨터는 사용자 친화(User Friendly)와 거리가 꽤 멀었다. 어떤 결과를 얻으려면 컴퓨터가 알아차리는 언어를 우선 배워야 했다. 컴퓨터 친화적이었고 컴퓨터에 쉽게 접근할 수 없었던 때였다.

'그런데 어느 눈부시게 밝은 날 캘리포니아에서 웬 똑똑한 엔지니어들이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렸어요. 컴퓨터가 이렇게 똑똑한데, 사람에게 컴퓨터를 가르치지 말고 컴퓨터에게 사람에 대해 가르쳐 보면 어떨까? 그렇게 해서 이 똑똑한 엔지니어들은 밤낮없이 일해 아주 작은 실리콘 칩에게 사람들에 대해 가르쳤답니다. (p. 14)'

이 글은 애플이 자신들이 만든 사용자 친화적인 기계를 홍보하는 광고로 '이 엔지니어들이 드디어 일을 마쳤을 때, 이들이 소개한 개인용 컴퓨터는 성격이 좋다 못해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할 정도 (p. 14)'였다며 광고를 맺는다.

이제 개인용 컴퓨터를 사용하려고 컴퓨터에 대해 배울 필요가 없다. 사용자 친화적인 컴퓨터가 우리 앞에 놓였기 때문이다. 컴퓨터가 사람에 대해 배워서 사람이 어떤 실수를 자주 하는지, 어떻게 서류를 정리하고 전화번호를 보관하는지, 사람이 일하는 방식 따위를 이미 다 안다.


루이 15세는 뻣뻣한 왕좌를 버리고 편안한 라운지 의자를 선택했다. 타자 치는 속도를 줄인 쿼티 타자기 자판 배열은 표준이 돼 지금도 사용한다. 여성이 자기발전을 추구하도록 시간을 확보해 주는 학문, 가정학은 집 안에서 효율을 추구하면서 세탁기 등 가전제품 발달의 기틀을 마련했다. 토퍼레이터 세탁기는 처리하기 어려운 이음새를 제거했고 기능을 손쉽게 이해하도록 조작부를 한곳에 모았다.

사용자가 즉각적인 만족감을 갖도록 한 폴라로이드 카메라, 인체에 맞게 디자인한 프린세스 전화기, 관절염으로 사과를 깎지 못해 쩔쩔매는 아내를 보고 만든 옥소 껍질 벗기기 칼, 그물 같은 메시 소재 의자, 아마존의 원클릭 주문, TV 등장인물이 방금 전 한 말을 묻는 현상에서 착안한 2초 되감기, 기기 하나로 여섯 개 이상의 역할을 하는 아이폰, 호감이나 반감을 곧바로 반응할 수 있는 '좋아요' 버튼...

모두 사용자가 사용자 친화적인 눈으로 관찰한 후 만든 것들이다.


<유저 프렌들리>, 이 책은 '사용자 친화'라는 개념이 어떻게 탄생했고,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다룬다. 사용하기 쉬운 제품은 무엇인지, 사용자들이 바라는 디자인은 무엇인지를 여러 제품 사례를 가지고 이야기한다. 지난 100년간 디자인 패러다임이 어떻게 바꿔왔는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고 무엇을 지나쳤는지를 살펴보면서 숨겨진 디자인 원리도 밝혀준다. 미래에는 어떤 디자인이 세상에 환영을 받을지를 가늠할 수 있는 책이다.

'사용자 경험이 생소한 독자라면, 이 책을 덮을 때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매일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여러분이 무심코 화면을 탭하고 스와이프 하는 swipe 행위 이면의 이상과 원리와 전제를 이해하게 되었으면 한다. 디자이너라면, 여러분이 매일 접하는 개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더 명확하게 이해함으로써 자신의 작업에 주입하는 가치 기준을 더욱 비판적인 눈으로 보고, 때로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가장 작게는 여러분이 읽은 이 책을 주위 사람들에게 건네주며 "이래서 사용자 경험이 중요해"라고 말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p. 17)'

책을 마치며 로버트 패브리칸트가 일곱 단계로 제시하는 사용자 중심 디자인 과정은 디자이너라면 읽고 참고할만 내용이다.


'유저 프렌들리' 시대다. 이제는 모든 기업들이 사용자 친화적 알고리즘을 최우선으로 여긴다. 유저들은 사용방법이 간단하고 편안하게 쓸 수 있는 디자인을 원한다. 아무리 좋은 상품이라도 불편하다면 사용자들은 외면하고 그 디자인은 실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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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의 방 - 내가 사랑하는 그 색의 비밀 컬러 시리즈
폴 심프슨 지음, 박설영 옮김 / 윌북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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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이사 올 때, 집이 낡아 곳곳을 고친 후 이사할 요량으로 작업할 분들을 소개받았다. 작업 전에 몇 가지 결정할 일이 있었는데 무엇보다 힘들었고 시간을 들여야 했던 건 색깔 선택이었다. 바닥, 벽지, 화장실 타일, 붙박이장... 화장실 타일을 제외하고는 흰색 계열로 결정했다. 흰색 톤인 집에서 생활하면서 제일 신경에 거슬리는 건 머리카락과 같은 먼지들이었다. 바닥이 흰색이라 눈에 너무 잘 띤다. 수시로 청소기를 돌리며 산다.


'무지개에는 얼마나 많은 색이 있을까? 아이작 뉴턴이 무지개 스펙트럼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후부터 답은 당연히 일곱이다.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까지. (p. 7)'

<컬러의 방>, 빨강, 노랑, 파랑, 주황, 보라, 초록, 분홍, 갈색, 검정, 회색, 하양 열한 개 색깔의 방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무지개색만큼이나 컬러풀하고 다채롭다. 열한 가지 색깔마다 예술, 비즈니스, 스포츠, 역사, 종교, 과학 등 다양한 곳에서 이들 색을 어떻게 사용했고,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지 풍부한 스토리가 가득하다.


'이 책은 열한 개 컬러의 방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각 컬러가 지닌 인문학적, 예술적 사유를 충분히 느끼도록 구성되어 있다. - 이소영 (미술 에세이스트, 미술 교육인)'

우선 자신이 좋아하는 색깔의 방을 먼저 열어보게 된다. 난 라벤더 꽃 색깔의 보라색.

3세기까지 보라색 염료 1온스를 얻으려면 약 25만 마리의 조개가 필요했으므로 비싼 값을 치러야 했다. 1509년에는 새 법에 따라 헨리 8세와 그의 직계 가족만이 보라색 옷을 입을 수 있었다. T.S. 엘리엇은 <황무지>에서 불운한 로맨스를 암시하는 데 보라색을 사용했다. 영국과 미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은 여성의 힘을 찬양하는데 '고귀한 색' 보라색을 복장에 넣어 입었다.

벌은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보라색을 볼 수 있다. 인상파 화가 대부분은 보라색을 어찌나 사랑했는지 비평가들은 그들은 '보라색광'이라고 비난했다. 보라색이 쓰이는 국기는 니카라과와 도미니카 연방 두 나라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록밴드 '딥 퍼플'. NFL의 미네소타 바이킹스는 보라색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빈다.


열한 개의 방 모두 색깔에 얽힌 이야기가 가득하다. 한 방을 들여다보면 다른 방도 궁금해 기웃거리게 되는 책이다. 아직 이렇다 하게 좋아하는 색이 없다면 이방 저방 둘러보고 하나를 선택해도 좋겠다. 아니면 지금 나의 컬러를 배신하고 다른 컬러로 갈아타게 되고...

우리는 특정 색깔에 왜 더 많은 의미를 담을까? 왜 연연해할까? 신비한 컬러의 세계. 지금도 컬러를 선택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인다. 그 시간은 아깝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 시간은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열한 개의 방에 들어가 그 색깔의 이야기를 듣고, 그 컬러에 나만의 이야기를 더해보자. 컬러에 흠뻑 빠져버리게 되는 책, <컬러의 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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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이커머스의 역사 - Since1996 현직자의 인사이트로 살펴본 IT 플랫폼 26년사
이미준(도그냥)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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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역사서일 수 있으나 이커머스 26년사의 흐름 중반은 사용자로, 반은 이커머스를 만드는 기획자로 현장에 있던 사람의 시각으로 해석되었다. (p. 9)'

이커머스 바닥에서 성장한 12년 차인 지은이 이미준은 롯데닷컴을 우리나라 이커머스에서 가장 오래된 회사라고 소개한다. 1996년 롯데닷컴, 인터파크로부터 시작해 온라인 플랫폼 시대까지 26년의 변화를 시대별로 키워드와 함께 여행하는 책 <대한민국 이커머스의 역사>이다.

처음엔 사이트 접속해 상품을 검색한 후 물건을 사는 시대였다. 상품 정보를 검색할 필요가 없어졌다. 가격을 비교하는 사이트가 등장하며 블로거들이 상품을 소개하면서 상품 리뷰에 의존해 구매하기 시작했다. 그 후엔 핫딜, 타임세일에 맞춰 구매했고, 개인 맞춤광고가 핫해지면서 링크 페이지로 넘어가 상품을 샀다.

인플루언서, 셀럽이 추천하는 상품이 인기를 끄는 시대가 왔다. 그다음엔 포인트, 리워드 등 혜택 또는 수익이 구매자에게도 분배됐고, 드디어 개인이 판매자도 되고 구매자도 되는 시대가 됐다. 당근으로 상품을 팔고 사는 시대, 개개인마다 다른 취향, 다른 가치에 따라 상품을 거래하는 시대가 됐다.


유독 외국 상업시설만큼은 우리나라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다. 주변에서 월마트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이마트, 롯데마트는 곳곳에 있는 나라다. 온라인 세상도 마찬가지다. 네이버, 쿠팡에서 쇼핑하며 예스24에서 책을 사지만, 아마존닷컴은 해외 직구할 때만 이용하는 나라다.

해외와 모든 것이 다른 우리나라 이커머스 시장의 소비자들이다. 그래서 유독 우리나라 이커머스 플레이어들이라면 서비스가 어떻게 변했고, 비즈니스 상황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살펴보고 사용자 경험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나라 이커머스 흐름을 정리한 현직 서비스 기획자인 지은이의 인사이트, 최초의 기록물이 가치 있는 이유다. 아무리 좋은 AI 기술이 있다손치더라도 누구보다 깐깐한 우리나라 소비자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좋은 비즈니스 결과를 얻기 힘들다.

'이 책을 써 내려가면서 느낀 두 가지 큰 깨달음이 있다. 바로 '아이디어는 모두 비슷하다. 다른 것은 실행자의 디테일이다'라는 점과 '동일한 서비스라도 환경과 사용자들의 학습이 바뀌면 성공할 때가 있다'는 점이다. (p.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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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부수는 말 - 왜곡되고 둔갑되는 권력의 언어를 해체하기
이라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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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부수는 말>
왜곡되고 둔갑되는 권력의 언어를 해체하기
이라영 | 한겨레츨판 | 2022년 | 368쪽

지나가는 사람을 불러 세워놓고 말한다.
"빨간 속옷 입었지?"
"아니?"
"보여줘 봐"
속옷을 왜 보여줘야 하는지. 황당하다. 안 보여주겠다고 하니
"거봐 빨간 속옷 입었네"라고 단정한다. 억울하다.
할 수 없이 보여주니 "어? 아니네. 아니면 말고..."

권력은 말할 기회가 많을 뿐만 아니라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약자가 진실을 밝히려면 속옷을 보여주어야 한다. 권력의 목소리는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듣지만, 약자는 75미터 굴뚝 위에서 426일 정도는 있어야 몇몇이 귀를 기울인다.

목소리의 불평등은 사회 구조적 불평등의 결과인 동시에 원인이 되어 악순환한다. (...) 그래서 권력의 크기만큼이나 억울함의 목소리가 크다. (p. 7)


예술사회학 연구자 이라영은 고통, 노동, 시간, 나이 듦, 색깔, 억울함, 망언, 증언, 광주/여성/증언, 세대, 인권, 퀴어, 혐오, 여성, 여성 노동자, 피해, 동물, 몸, 지방, 권력 그리고 아름다움, 이렇게 스물하나의 말에서 '권력의 말'과 이에 '저항하는 말'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아름다운 말'은 과연 무엇일지 생각해 보자고 한다.

정확한 언어가 아름다운 언어라 생각해왔다. (p. 10)
스물하나의 말이 이제까지와는 다른 색깔로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일방적으로 들려주는 들려오는 말만 들을 게 아니라, 희미하게 들리는 잘 안 들려주는 말을 들으려 해야 한다. 그 말의 정확한 의미를 들어야 한다.

기울어져 있으니 한 쪽은 아무 노력 없이도 높은 곳에 서 있고, 한 쪽은 목숨을 걸어도 다른 한 쪽과 같은 곳에 서 있기 어렵다. 균형을 맞추려면 약자의 목소리를 더 많은 들어야 한다.


고용노동부의 자료에 따르면 실제로 한국에서 18세~24세 청년의 산재 사망 원인 1위가 '배달'이다. 이 사망 사고의 10퍼센트 이상이 출근 첫날 발생했고, 20퍼센트 이상은 보름 안에 발생했다. (p. 56)
같은 또래의 아이가 있는 아버지로서 숨이 멎는듯하다.

1억 연봉 택배 기사가 있다고 호들갑 떠는 권력의 말만 너무 많이 들어왔다. 매년 산재로 죽어가는 노동자가 이천여 명이라는 진실을 찾아 들어야 한다.
고통을 통과한 언어가 아름다움을 운반하기를. ( p.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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