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로의 나무 일기
리처드 히긴스 엮음, 허버트 웬델 글리슨 외 사진, 정미현 옮김 / 황소걸음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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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에 호숫가를 배경으로 한 자연의 삶을 담았고, <케이프코드>에 바다라는 자연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면, <소로의 나무 일기>는 200만 단어, 14권 분량에 이르는 소로의 일기와 에세이에서 나무에 관한 글 100편을 골라 해설과 사진을 붙인 책이다. 소로에게 나무는 '기쁨을 전해주는 통로'다.

'이 책은 나무를 향한 소로의 개인적이고 창의적인 응답인 셈이다. 나무를 느끼는 그의 명민한 지각력, 나무가 그에게 전한 기쁨, 나무에서 그가 발견한 시적 감흥, 나무가 그의 영혼을 살찌운 과정을 엿볼 수 있다. (p. 12)'


소로는 모든 감각을 동원해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선 나무를 '보고', 나무의 마음에서 기쁨을 '느끼고', 숲을 묘사하는 말놀이 Woodplay를 하며 '시인'이 됐으며, 숲의 나무가 품은 생각에서 '배움'을 얻고, 나무의 신성한 영혼을 만났다.

'처음에 천천히 자라는 나무일수록 속이 더욱 견고하다는 사실에 놀랐다. 인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아이가 조숙한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새싹처럼 어린 시절에 엄청 쑥쑥 자라서 무르고 썩기 쉬운 목재가 되는 게 아니라, 처음에는 마치 역경과 씨름하듯 천천히 생장하면서 단단해지고 완벽해지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그런 나무는 최고령에 이를 때까지 거의 동일한 속도로 꾸준히 큰다. (p. 130 인간과 나무 3)'

또한 소로는 숲의 위풍당당한 '경보병' 스트로부스소나무, 훌륭한 시민의 자질과 미덕을 갖춘 기사 느릅나무, 숲의 보배 참나무를 각별하게 예찬한다.

'태양은 소나무 가지에 아늑하게 자리 잡고 가지 사이로 햇살을 비추기 좋아한다. (p. 188, 공기 지표계)'

눈을 걸머져 다채로운 자세로 구부러진 나무는 소로에게 온 세상을 새롭게 바꾼 한 폭의 펜화다.

'사과나무를 비롯한 많은 나무가 눈밭에서 갑자기 도드라져 보였다. 흰 바탕에 검은 잔가지 하나하나가 자연 크기의 펜화처럼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p. 272, 펜화)'

끝내 소로는 나무껍질을 타고 초록빛 숲의 바다를 항해한다.

'소나무 위로 포효하는 바람 소리가 마치 무수한 해변과 끝없이 펼쳐진 바닷가에 밀려오는 파도 소리처럼 들린다. (p. 294, 끝없이 펼쳐진 바닷가에 밀려오는 파도)'


아름답고 절묘한 소로의 표현들... 항상 빠져들곤 한다.

하늘로 뻗어나간듯한 느릅나무의 육중하고 강렬한 인상을 주는 나뭇가지를 본 소로는...
'덩치가 어마어마하고 가지가 많은 프랫네 느릅나무는 하늘을 향해 쏘는 거대한 벼락처럼 가지를 뻗었다. 뻗대는 하늘에 거뭇한 식물성 벼락을 돌려보낸다. 마치 번갯불 경로를 따라 역류하는 모양새다. (p. 34, 하늘에다 벼락 쏘기)'

붉게 물들어가는 숲에서 붉은 제복의 군인들이 보이고...
'해가 저물기 전에는 숲 군대에 붉은 제복을 입은 군인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그들의 제복은 강렬히 타오르는 붉은빛인데, 그들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강렬함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 같다. 잎사귀 속에 잠복한 그늘은 이 거리에선 자기 소재를 보고하지 않는다. 그들은 만장일치로 붉을 뿐이다. (p. 44, 붉게 타오르는 숲)'

하늘로 쭉 뻗은 것도 모자라 나무는 그림자를 만든다.
'나무는 밤이면 대지를 따라 길게 눕는다. 공중에 우뚝 솟아 활모양으로 몸을 구부려 흡사 어둠 속의 샹들리에처럼 길 위로 가지를 늘어뜨린다. (p. 98, 그림자가 그리는 무늬)'

하프 소리까지...
'나무는 바람이 음악을 연주하는 거대한 하프 같기도 하다. (p. 182, 이보다 아름다운 나무는 없다)'


나무로 둘러싸인 숲에 앉아서 책을 읽는 기분이다. 나무 향기, 풀 내음, 자욱한 안개, 호수의 잔잔한 물결까지 곁에 머물러있다. 나뭇가지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 소리를 읽을 때면 한기를 느껴 몸이 움츠러든다. 책장을 넘기며 곳곳에 눈에 띄는 사진으로 이 모든 상상을 더하게 된다. 책을 읽는 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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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려고 읽습니다
이정훈 지음 / 책과강연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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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독? 정독? 지금도 진행 중인 고민이다.
'다독을 자칫 잘못 쓰면 과독過毒이 됩니다.(...) 지금부터 저는 다독에 환상을 가진 당신의 딱딱한 신념에 정면으로 부딪쳐보려 합니다. (p. 6, 7)'

'책과강연' 북콘텐츠 대표 기획자 이정훈은 <쓰려고 읽습니다>에서 '쓰기 위한 읽기'를 제안한다. '쓰기 위한 읽기'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은 마치 나의 고민을 알아채기라도 한듯하다.

책을 쌓아두면 다 읽지 않았더라도 뿌듯한 마음, 책 자랑이나 책 허세를 부리고 싶은 마음이 조금 있다. 누군가 책장을 보고 흠칫 놀라는 표정을 기대하는 마음이 있으니 말이다. 사놓은 책은 언젠가 읽게 된다는 욕심에 쌓아놓는다. 그렇지만 나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을 감안하면 쌓아놓은 책 모두를 읽을 순 없는 노릇이다. 책을 선택해서 읽어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그게 잘 안되는 게 첫 번째 고민이다.

'무턱대고 읽지 말고 먼저 자기 문제부터 객관화하자는 것, 그런 다음 드러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유 있는 책을 주체적으로 선택하자는 것입니다. (p. 72)'

저자는 다 유익하니 아무 책이나 무조건 읽어야 한다는 생각의 밑바탕에 책을 추앙하는 심리가 깔려있다고 꼬집는다. 다독은 단편적 지식을 쌓을 뿐인 한계에 부딪힌다. 저자의 책 선택 기준은 현재 나의 문제와 미래의 예측 가능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두 가지뿐이다. 당장 읽어야 할 책을 소홀히 하지 않으려면 '언젠간 읽겠지'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책을 왜 읽지? 가 나의 두 번째 고민이다. 지식 욕구를 채우려는 이유도 있지만, 근본적인 나의 독서 목적은 쓰기다. 글에 밑줄을 긋고 내 생각을 이어 쓰곤 한다. 책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의 생각을 정리한 글을 쓰고 싶었고, 그 글을 내가 만족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쓰기를 읽기보다 덜 하는 이유는 쓰기가 읽기보다 덜 익숙해서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쓰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자주 쓰기를 하지 않아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 자주 쓰면 익숙해진다. 그런 이유로 저자에 의하면 쓰기의 출발은 제일 익숙한 '나 자신'이다. 나의 문제, 나와 세상의 문제, 겪어온 삶의 문제들이 글감의 출발이다. '쓰기의 과정은 '문제'이고, 완결된 글은 '해답'입니다. (p. 167)'

쓰기를 위한 읽기를 하는 방법도 구제적으로 제시한다. 발췌 읽기와 발췌 문장을 읽고 생각 정리하는 법, 전자책의 독서노트 기능과 전자책 메모 방법 등 매우 상세하다. 특히 책상 위에 전자책 리더기, 데스크톱, 책 등의 위치를 배열한 '쓰기의 풍경'은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이 책에서 다독의 무게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향한 저자의 일관된 주장은 ''읽기'의 본질적인 목적을 재확인하자는 것과 독서의 효과를 즉각적이고 구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쓰기 위한 읽기' (p. 185, 186)'를 하자는 것이다.

다독이 옳으냐 정독이 옳으냐의 질문은 '책을 어떻게 읽느냐'의 논의다. 하지만 '책을 왜 읽느냐'로 질문을 옮겨오면 대답이 선명해진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의 경우는 글쓰기가 목적이었다. 글감을 얻으려고, 표현을 배우려고, 지식을 쌓아야겠기에 읽기 시작했다. 다독은 비효율적이다. 하지만 읽기에서 즐거움은 찾는 사람이라면 그 목적은 나와 다르니 다독이 효과적일 수도 있겠다.

이 책을 읽고 글쓰기에 조금은 자신감을 갖게 된 것도 큰 수확이다. 사례로 든 글들을 읽으면서 글감을 어떻게 얻어야 할지에 큰 도움이 됐다.

이정훈의 <쓰려고 읽습니다>를 내 나름 정리해 본다면, 결국 쓰기와 읽기의 시작은 모두 '나'다. 내 삶에서 드러내기 불편했던 문제를 구체화하는 행위가 '쓰기'고, 그 문제를 풀어내는 행위가 '읽기'다. '쓰기 위한 읽기'는 삶을 변화시키고 성장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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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한강
권혁일 지음 / 오렌지디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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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기분은 아무도 모르지. 죽을 것 같은 기분에 대해서만 떠들어댈 뿐. 진짜 죽으려는 사람은 망설이지 않아. 그러니까 이런 도움의 전화니 뭐니 하는 건 장난감에 불과하다는 거지. (p. 11, 첫 문장)'

제2한강, 서울의 한강과 비슷해서 이렇게 부르는 이곳은 천국도 지옥도 연옥도 아닌 곳이다.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들이 아닌 자살한 사람들만 오는 곳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평범하게 직장 생활을 하던 형록, 앱 개발자 오과장, 60만 뷰티 유튜버 인싸 화짜,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난 제2한강 10년 차 이슬, 이들이 제2한강에 머무는 주요인물들이다. 제2한강을 벗어나는 방법은 다시 자살하는 것뿐이다. '다시 자살'하면 소멸한다.


'왜 그랬을까? 2020년 여름, 친구 M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머릿속은 그런 질문으로 가득 찼습니다. 왜? 도대체 왜? 네가 왜? (p. 7)'

작가는 친구의 자살을 계기로 이 소설을 집필했다. 극단적 선택이라고 하는 자살, 하루에 30~40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목숨을 스스로 끊는다. 이 정도면 작가처럼 친구는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는 친인척 또는 지인, 지인의 지인, 주변에 적어도 자살한 사람 한 명쯤은 있다는 얘기가 된다.

'여기서 1년을 버틴다면 저 모습을 만 번도 넘게 보게 되겠지. 양치도 1년에 고작 천 번 할 뿐인데. (p. 268)'
이토록 많은 사람이 자살한다면 국가가 해야 할 일, 1순위는 자살예방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안타깝게 죽은 사람 한 명쯤은 알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오죽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라고 우선은 이해하는 마음을 갖는다. 곧이어 드는 생각은 꼭 그 방법밖에는 없었을까? 그 정도 힘듦도 견디지 못한다면? 사회에서 개인으로 책임의 패러다임을 바꾼다. 이런 이유로 자살은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로 오랫동안 자리 잡지 못한다.


'"자살했으니까요? 처음부터 죽고 싶어서 자살을 선택한 사람은 없다는 거 잘 아시잖아요. 살기 너무 힘들어서, 살 방법이 없어서 그런 거잖아요... " ( p. 126)'

자살에 연습이 필요했는지, 고통은 없었는지,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왜 자살했는지 등등등 가늠하기 어렵다. 살아있는 우리 모두는 자살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자살한 이들의 이야기, 우리들이 궁금해하는 이야기를 상상하여 들려준다.


''죽음은 삶의 초기화가 아니었어. 강제로 전원을 꺼 버렸던 것뿐이지. 이렇게 모든 것이 그대로 남아 있잖아.' (p. 149)'

지겨운 삶을 다시 시작해 보고 싶어 죽음을 선택했을 수도 있겠지만, 변한건 없다. '다시 자살'을 선택해 소멸되기 전까지 제2한강의 삶은 죽기 직전의 모습 그대로 끝이 없는 멈춤, 그런 삶이다. 좋아지는 것도 더 이상 나빠지는 것도 없다.

'"너 제2한강에 왜 환생이 없는 줄 알아?" (...) "내 생각엔 말이야, 아마도 여기로 이사 온 사람들이 온전히 과거에만 집중하길 바라는 마음인 것 같아." (p. 287)'

제2한강에 있는 이들에게 '다시 삶이 주어진다면?' 그들이 새롭게 설계하는 삶은, 이번엔 자살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다시 얻게 된 삶을 잘 살아보려는 마음이 과한 나머지 과거 삶에서 실수한 것, 잘못한 것, 반복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생각하며 후회가 가득할지도 모를 일이다.

끝이 소멸뿐인 제2한강의 사람들은 과거를 다른 눈으로 보게 된다. 실수, 잘못한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이전 삶이 잘못된 건 내가 못나서, 멍청해서, 바보여서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소멸되기 전 마지막에 간직하고픈 감정은...

'"다들 마음속에 미안한 사람이 하나씩은 있다는 거예요. 소중한 사람을 두고 온 게 너무 미안한 거죠. 떠나간 사람은 남겨진 사람에게 미안해하고, 남겨진 사람은 떠나간 사람에게 미안해하고... 웃기죠? 자살이란 게." (p. 309)'


제2한강이 있다면 그리 나쁘지는 않겠다. 그래서 소설처럼 그곳의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고 또 바랍니다. 여러분이 제 친구 M이 있는 곳으로 떠나지 않으시기를. (p. 8)'
그러면 나 그리고 친척, 이웃... 제2한강으로 가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삶을 더 오래 이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질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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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을 좋아하게 될 당신에게 - 미술전시 감상에서 아트 컬렉팅까지 예술과 가까워지는 방법 뉴노멀을 위한 문화·예술 인문서 4
김진혁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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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바닥에 누구든 까먹을 수 있는 진짜 사탕이 쌓여있다. 약 7,000개의 사탕 무게는 34kg이다. 전시장에 있으니 당연히 작품이다. 예술 참 어렵다. 작품을 감상하는 내 모습을 곁에서 본다면? 엉성하기 그지없는 모습이 아닐까?

'설치 미술은 굉장히 문학적인 예술입니다. 놀라운 은유법을 품고 있어요. (...) 예술가의 사탕은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달콤함이자 책임감이자 그리움입니다. 사탕을 까먹는 행위까지 작품으로 만들어 병으로 점점 사라져가는 연인의 존재를 표현한 창의성이 놀라웠습니다. 사탕이라는 적합한 소재를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이 고민했을까요. 정성스레 그림을 그리는 것만큼 오랜 시간이 걸렸을지도 모릅니다. (p. 177)'

자~ 설명을 듣고보니 이제 34kg의 사탕은 내게 예술 작품이 된다. 이 작품은 쿠바 태생의 미국 시각 예술가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이름도 길다...)의 <무제 Untitle - 로스모어 Ⅱ Rossmore Ⅱ >라는 설치 미술이다.

미술이라니 그림도 아닌데?
변기를 올려놓고 한쪽에 사인을 남겨놓은 작품, 그 유명한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 작품 <샘 Fountain>이다. 작가의 생각이 작품이 되는 '개념 미술'이 미술에 더해진 요즘이다.


이렇게 복잡하고 난해하니 미술관에 갈 마음에 생기겠나.

'미술 작품과 전시에 관한 이야기를 책에 담았습니다. (...) 제가 쓸 수 있는 범위는 미술관에 가고 싶지만 지극히 낯설고 두려운 누군가를 위한 글입니다. 또는 전시장을 찾을 때마다 좀 더 알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누군가를 위한 글입니다. (p. 5, 6)'

현업 문화예술 기획자 김진혁이 건네는 미술전시에 관한 모든 것, <미술관을 좋아하게 될 당신에게>는 도통 미술관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미술관에 갈 마음이 없는 우리를 미술관으로 이끈다. 낯선 미술관을 우리 앞에 친근하게 갖다 놓는다.


이 책은 4개의 전시실로 꾸며졌다.

미술을 즐기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 제1전시실에서 알려주는 곳은 미술관, 갤러리, 갤러리가 한곳에 모인 아트페어, 동시대 미술 즐기기가 가능한 비엔날레, 대안공간, 두 가지 이상의 문화 예술 콘텐츠가 전시된 복합문화공간, 유명 브랜드와 콜라보 하는 명품 브랜드 미술관이다. 그리고 거리에서 마주하는 공공미술까지.

제2전시실에서는 하나의 전시를 위해 어떤 사람들이 무슨 일은 하는지 소개한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예술가다. 좀 더 찾아봐야 보이는 사람들은 전시기획하는 큐레이터, 작품 판매를 위해 고객 관리까지 하는 갤러리스트, 애듀케이터, 도슨트. 여간해서 눈에 띠지 않는 전시 공간 디자이너, 너무나 생소한 보존과학자.

가장 낯설고 어려운 과제인 작품을 어떻게 이해하고 바라봐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곳은 제3전시실이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지에 따라 구별되는 구상회화와 추상회화, 난해한 설치미술, 조각까지, 작품 감상법뿐만 아니라 전시를 기억하는 방법을 배우는 곳이다.

다양한 예술적 경험을 하고 싶다면 그 방법은 제4전시실에서 알게 된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 굿즈 등은 전시를 추억으로 만들어 줄 것이고, 직접 작품을 컬렉팅하여 감상을 독차지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뭐니 뭐니 해도 예술적 경험의 완성은 책 읽기와 마찬가지로 리뷰다.

'그런데 왜 글을 쓰는 거죠? 리뷰를 남기면 도대체 뭐가 좋을까요? 우선, 글쓰기가 갖는 성찰의 힘 때문입니다. 셰퍼드 코미나스의 <나를 위로하는 글쓰기>에서 "글쓰기에 착수하는 시간이 빠를수록 자기 발견의 여정에 빨리 접어들 수 있다.”라고 말해요. (...) 리뷰 쓰기는 방금 보고 온 전시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고 내 삶과는 어떤 접점이 있는지 생각해 볼 기회를 만들어줍니다. (p. 274, 275)'


나는 딸아이가 미술을 전공해서 미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만, 꼭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미술은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왔다. 특정 그룹만이 향유하는 미술이 아닌 모두가 미술을 알아야만 하는 시대다.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난감하다.

무장적 코끼리에게 바짝 다가가 다리도 만져보고 코도 만져보면서 코끼리를 알아갈 수도 있다.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니다. <미술관을 좋아하게 될 당신에게>가 가르쳐주는 방식은 일종에 줌인 줌아웃 방식이 아닐까?라고 혼자 생각해 봤다. 멀리서 코끼리를 보고 다가가 다리를 만져보고, 다시 뒤로 물러서 한눈에 코끼리 전체 모습을 보고 코로 다가가 코를 만져보는 식... 이를 반복하며 미술과 친해지는 효율적인 방법이다.

이제 더 이상 미술관에 서 있는 내 모습을 엉성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책,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던 것을 작품으로 보게 하는 책, 예술을 내 삶에 경험으로 끌어들이게 하는 책, <미술관을 좋아하게 될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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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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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 한 통을 받았다. ‘모친 사망. 내일 장례식. 삼가 애도함.’ 그건 아무 의미가 없었다. 아마 어제였을 것이다. (p. 16, 첫 문장)'

카뮈의 <이방인>은 이 첫 문장 하나면 충분했다. 첫 문장에 소설 모두를 담았다. 고전 중에 고전(김영하 작가가 말하는 고전의 정의에 딱 들어맞는...),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작 <이방인>을 읽었다. 처음 읽지만 '다시' 읽는 거라 변명하면서, 처음 읽지만 '다시' 읽는듯한 느낌을 갖고서 읽게 되는 고전 <이방인>.


주인공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른 후 평상시와 같은 일상을 보낸다. 이웃 레몽과 별장에 놀러 갔고 거기서 또 만난 아랍인을 총으로 죽인다. 이 사건으로 재판에서 뫼르소는 사형선고를 받는다.

거짓말을 거부하고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면 낯선 '이방인'이 되는 사회다. 그 사회는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사형을 선고한다. 나는 이정서 번역의 <이방인>을 이렇게 읽었다.

카뮈는 <이방인>을 이렇게 요약했다.
'우리 사회에서,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사형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 나는 단지 이 책의 주인공이 그 손쉬운 일을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음을 선고받았다고 말하고 싶었다. (p. 5)'. '그는 실재하는 것을 말하고, 그의 느낌을 숨기기를 거부함으로써 즉각적으로 사회는 위협을 느끼는 것이다. (p. 6)'

'"그는 거짓말을 거부한다… 그래서 어떤 영웅적 태도도 취하지 않고, 진실을 위해 죽음을 받아들이는 한 남자의 이야기로서 <이방인>을 읽으면 크게 실수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카뮈가 한 말이다. (p. 11, ​역자의 말)'
옮긴이 이정서 대표는 이 말이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면 <이방인>을 제대로 읽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번역서가 잘 안 읽힌다면 비난의 대상은 옮긴이가 된다. 반면 책을 매끄럽게 읽었다면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에 온 힘을 다했던 옮긴이는 더 이상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번역의 완성도를 옮긴이 혼자 흡족해하며 즐길뿐이다. 번역 세계의 실상이다.

이 책은 새움출판사의 '원전으로 읽는 세계문학 움라우트' 시리즈 중 하나다. 번역서를, <이방인>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면 번역의 잘못이고 그 원인은 의역이라고 생각한다. '움라우트 시리즈'는 원전 그대로, 작가의 글 서술 구조, 쉼표 하나까지 그대로의 번역을 추구한다.

소설 중간중간에 <이방인>의 오역과 왜곡 사례를 살펴보면 매우 흥미롭다.

'그가 그 여자의 이름을 말했을 때, 나는 그녀가 무어인 여자라고 생각했다. (p. 52)'라는 대목으로 들어 뫼르소의 총에 맞아 죽은 아랍인은 레몽에게 쫓겨난 여자의 오빠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 여자는 무어인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내가 결코 말하고 싶지 않았던 일들이 있다. (p. 98)'에서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번역된 책이 없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이것을 '자위행위'라고 해설한다.


작가들은 자신의 소설 첫 문장에 많은 힘을 들인다. 첫 문장은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특히 <이방인> 첫 문장은 더욱 그렇다.

새움출판사 <이방인>의 첫 문장은 '오늘, 엄마가 죽었다.'이다. 모두들 '돌아가셨다' 보다 '죽었다'가 더 시니컬한 번역으로 뫼르소의 성격을 잘 표현했다면서 초점을 여기에 맞췄다면, 이정서 옮긴이는 쉼표의 의미에 더 주목한다. '엄마가 죽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가 아닌 '오늘,(쉼표) 엄마가 죽었다.'


번역의 세계를 잘 모르더라도 새움출판사의 <이방인>을 비롯한 <위대한 개츠비>, <노인과 바다>, <동물농장>...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시리즈를 읽는 때 번역에 초점을 맞춘다면 즐거움은 배가 될 수도 있으리라. 번역이 창작 활동이면서도 원작자의 문체를 살려야 하기에... 참 어려운 작업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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