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로의 나무 일기
리처드 히긴스 엮음, 허버트 웬델 글리슨 외 사진, 정미현 옮김 / 황소걸음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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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에 호숫가를 배경으로 한 자연의 삶을 담았고, <케이프코드>에 바다라는 자연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면, <소로의 나무 일기>는 200만 단어, 14권 분량에 이르는 소로의 일기와 에세이에서 나무에 관한 글 100편을 골라 해설과 사진을 붙인 책이다. 소로에게 나무는 '기쁨을 전해주는 통로'다.

'이 책은 나무를 향한 소로의 개인적이고 창의적인 응답인 셈이다. 나무를 느끼는 그의 명민한 지각력, 나무가 그에게 전한 기쁨, 나무에서 그가 발견한 시적 감흥, 나무가 그의 영혼을 살찌운 과정을 엿볼 수 있다. (p. 12)'


소로는 모든 감각을 동원해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선 나무를 '보고', 나무의 마음에서 기쁨을 '느끼고', 숲을 묘사하는 말놀이 Woodplay를 하며 '시인'이 됐으며, 숲의 나무가 품은 생각에서 '배움'을 얻고, 나무의 신성한 영혼을 만났다.

'처음에 천천히 자라는 나무일수록 속이 더욱 견고하다는 사실에 놀랐다. 인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아이가 조숙한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새싹처럼 어린 시절에 엄청 쑥쑥 자라서 무르고 썩기 쉬운 목재가 되는 게 아니라, 처음에는 마치 역경과 씨름하듯 천천히 생장하면서 단단해지고 완벽해지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그런 나무는 최고령에 이를 때까지 거의 동일한 속도로 꾸준히 큰다. (p. 130 인간과 나무 3)'

또한 소로는 숲의 위풍당당한 '경보병' 스트로부스소나무, 훌륭한 시민의 자질과 미덕을 갖춘 기사 느릅나무, 숲의 보배 참나무를 각별하게 예찬한다.

'태양은 소나무 가지에 아늑하게 자리 잡고 가지 사이로 햇살을 비추기 좋아한다. (p. 188, 공기 지표계)'

눈을 걸머져 다채로운 자세로 구부러진 나무는 소로에게 온 세상을 새롭게 바꾼 한 폭의 펜화다.

'사과나무를 비롯한 많은 나무가 눈밭에서 갑자기 도드라져 보였다. 흰 바탕에 검은 잔가지 하나하나가 자연 크기의 펜화처럼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p. 272, 펜화)'

끝내 소로는 나무껍질을 타고 초록빛 숲의 바다를 항해한다.

'소나무 위로 포효하는 바람 소리가 마치 무수한 해변과 끝없이 펼쳐진 바닷가에 밀려오는 파도 소리처럼 들린다. (p. 294, 끝없이 펼쳐진 바닷가에 밀려오는 파도)'


아름답고 절묘한 소로의 표현들... 항상 빠져들곤 한다.

하늘로 뻗어나간듯한 느릅나무의 육중하고 강렬한 인상을 주는 나뭇가지를 본 소로는...
'덩치가 어마어마하고 가지가 많은 프랫네 느릅나무는 하늘을 향해 쏘는 거대한 벼락처럼 가지를 뻗었다. 뻗대는 하늘에 거뭇한 식물성 벼락을 돌려보낸다. 마치 번갯불 경로를 따라 역류하는 모양새다. (p. 34, 하늘에다 벼락 쏘기)'

붉게 물들어가는 숲에서 붉은 제복의 군인들이 보이고...
'해가 저물기 전에는 숲 군대에 붉은 제복을 입은 군인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그들의 제복은 강렬히 타오르는 붉은빛인데, 그들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강렬함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 같다. 잎사귀 속에 잠복한 그늘은 이 거리에선 자기 소재를 보고하지 않는다. 그들은 만장일치로 붉을 뿐이다. (p. 44, 붉게 타오르는 숲)'

하늘로 쭉 뻗은 것도 모자라 나무는 그림자를 만든다.
'나무는 밤이면 대지를 따라 길게 눕는다. 공중에 우뚝 솟아 활모양으로 몸을 구부려 흡사 어둠 속의 샹들리에처럼 길 위로 가지를 늘어뜨린다. (p. 98, 그림자가 그리는 무늬)'

하프 소리까지...
'나무는 바람이 음악을 연주하는 거대한 하프 같기도 하다. (p. 182, 이보다 아름다운 나무는 없다)'


나무로 둘러싸인 숲에 앉아서 책을 읽는 기분이다. 나무 향기, 풀 내음, 자욱한 안개, 호수의 잔잔한 물결까지 곁에 머물러있다. 나뭇가지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 소리를 읽을 때면 한기를 느껴 몸이 움츠러든다. 책장을 넘기며 곳곳에 눈에 띄는 사진으로 이 모든 상상을 더하게 된다. 책을 읽는 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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